<5주차> 교육의 목적2 ‘과학으로서의 수업과 예술로서의 수업’
1. 한국 교육학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교육의 정의는 정범모에 의하여 제시되었다.
그는 그의 책(교육과 교육학, 1968)에서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교육학은 과학으로서 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교육은 ‘인간 행동의 계획적 변화’로 정 의된다. 이 정의는 인간행동, 계획성, 변화라는 세 가지 요소로 분석될 수 있다. 첫째 로 그가 어째서 인간의 영혼이라든가, 사고, 정신, 인격, 인성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 ‘행동’을 주된 문제로 삼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혼이나 정신 등과 행동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반해서 행동은 눈에 보인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영혼이나 인격에 관한 논의는 다분히 주 관적이고 철학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데에 비하여 행동은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 하기 때문에 엄밀한 과학적 논의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정범모가 보기에 이때까지 교 육학의 이론과 논의는 온통 ‘구호와 허구에 불과할 뿐 오리무중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기존의 교육학은 교육을 예컨대 ‘영혼에 아름다운 수를 놓는 일’이라는 식으로 그 실체가 불분명하며 과학적으로 확인될 수 없는 대상을 겨 냥했기 때문이다. 교육학이 현대적 과학적 학문으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각 교육프 로그램이 가르치고자 하는 인간의 특성을 먼저 객관적으로 관찰가능한 행동으로 규정 (조작적 정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가령 지능은 ‘특정 지능검사의 결과로 얻은 수 치’로, 교우관계는 ‘친구와 대화하는 시간의 수’로, 수학적 사고력은 ‘특정 수학시험의 점수’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계획성은 교육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여타 공학분야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이다. 의료, 농업, 전기기술, 건축 등의 전문가는 활동을 하기에 앞서서 그 활동의 목 을 분명하게 설정하며,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을 정확한 이론에 근거하여 세 부적으로 마련해둔다. 예컨대 뇌수술을 하기 위해서 수술실로 들어가는 의사의 머릿 속에 있는 계획성과 교과를 가르치기 위해서 교실로 들어가는 교사의 계획성을 비교 해보라. 정범모는 이러한 분야의 눈부신 발전을 감탄하면서 교육은 그와 같은 계획성 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았다.
셋째로 교육은 모종의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활동이다. 이 경우의 변화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 비교적 단시일안에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한다. 교육받은 후에 오년, 십년이 지나서 일어나는 변화는 참다운 변화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교육에서 변화는 장기간 동안 지속되는 변화를 의미한다. 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 잠시 변 화가 일어났다가 6개월 후에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갔다면 그것은 참다운 변화가 아니 다.
이상과 같은 정범모의 교육의 정의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주목을 받았다. ‘과학’이 유일한 시대정신으로 숭배받는 현대사회에서 교육이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 정범모의 주장 에 긍정적인 사람들 가운데에 그의 정의를 수정하여 ‘인간 행동의 바람직한 계획적
변화’로 교육을 규정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바람직한’이라는 개 념은 객관적으로 합의될 수 없는 것이며, 정범모의 문제의식 자체와 조화를 이룰 수 가 없다. 정범모는 분명히 말한다. ‘교육은 뜻하는 바가 무엇이건 게릴라건 성자건, 창의적 성격이건 민주적 자질이건, 유효하고 강력성이 있어야 한다.’ 즉, 그에 따르면 게릴라를 기를 것인가 성자를 기를 것인가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은 ‘가치관’의 문제로 서 교육자가 관심을 가질 일도,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 가치관은 시대와 사 회에 따라서 달라지며 그 결정은 사회성원의 합의나 철학자, 정치가의 주장을 거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에 관해서는 교사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교사 는 교육의 근본적 목적이 미리 정해진 다음부터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세부적인 목표 와 계획을 수립하면 되는 것이다.
2. 반면에, 교육은 예술이라는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가르치는 일’
과 ‘자동차를 만드는 일’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과 자동 차를 만드는 일 사이의 차이를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한 쌍의 용어들로 설명해 보자. 상호적, 융통성, 무한, 다양성, 가치지향, 주관, 비가시적 / 일방적, 고정성, 유 한, 획일성, 가치중립, 객관, 가시적 의 대비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의 정범모의 교육은 양자의 차이보다는 공통성, 즉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행동), 계획, 변화의 세 가지 요소를 강조하였다. 이와는 달리 엘리엇 아이즈너(Elliot Eisner)는 교육적 상상 력(1979)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교사는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표현하는 예술가임을 강 조한다. 그에 따르면 교육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열린 소통의 과정이다. 구체화 된 학습목표의 설정은 항상 가능한 것도 아니며 바림직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교육 내용은 성격상 주관적이고 구성적이고 다원적인 것이므로, 개인이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각각의 학생들에게 적합한 형태로 교육내용을 바꿔서 제시해야 한다. 이처럼 아이즈너는 교수행위의 예 술성을 강조하였다.
요컨대 가르치는 일이 예술인 까닭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고도의 기술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며 정서적 만족감을 추구한다. 2. 행위 중에서 나타 나는 질적인 현상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조정한다. 3. 고정되지 않고 예측불가능한 일을 창조적으로 처리한다. 4. 수업목표가 수업 과정 속에서, 즉 교사와 학생의 만남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수업은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