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이미지 창작
유지현
그림과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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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조선 후기 화가 조희룡(1789-1866)이 그린 <매화서옥도>입니다.
19세기 중인 출신의 화가였던 조희룡은 매화를 자주 그림의 소재로 삼아 여러 매화 그림을 남겼습니다.
조희룡은 시·글씨·그림에 모두 뛰어난 재주를 보였는데, 글씨는 추 사체(秋史體)를 본받았고, 그림은 난초와 매화를 특히 많이 그렸습 니다. 유작 중 가장 많은 수가 매화 그림인데 이와 같은 자신의 매화 벽(梅花癖)을 자서전적인 저술 『석우망년록』에 상세히 적었습니다.
매화는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 꽃을 강조하면 매화, 열매를 강조 하면 매실나무입니다. 보통 4월에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연한 홍색 또는 흰빛으로 향기가 강합니다. 다른 나무보다 꽃이 일찍 피어서 매실나무를 꽃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의 ‘화괴(花魁)라고 하기도 합니 다.
우리나라에서는 선비들이 매화나무를 특히나 좋아하였는데, 그 이유는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굳은 기개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많이 재배하였고, 시나 그림의 소재 로도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꽃말은 ‘고격, 기품’입니다.
퇴계 이황이 “매화 분재에 물을 주거라” 하는 유언을 남긴 것처럼 매화에 대한 일화는 많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봄을 알리는 매화 (세상을 바꾼 나무, 2011. 6. 30., 도서출판 다른) [네이버 지식백과] 매화나무 [梅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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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조선시대의 그림을 통해서 집의 이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화면 위쪽의 산에는 아직 흰 눈이 남아있는 듯 합 니다. 아직 산등성이에는 눈이 남아있고 마른 가지들만이 흩어져 있 습니다. 먹의 짙은 빛깔로 남아있는 겨울의 추운 풍광을 암시하고 있 습니다. 산등성이 너머 보이는 하늘도 짙은 구름이 낮게 깔려있어서 겨울의 풍광이 채 가시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어둑어둑함을 배경으로 화사한 매화가 꽃을 피웠군요. 어두운 배경과 달리 가벼운 매화의 꽃잎이 화면을 화사하게 수놓고 있습니다.
마치 어두운 계절의 터널을 지나온 축복처럼 매화 꽃잎이 번져 나오
조희룡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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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아래에는 작은 집이 있습니다. 집에 앉은 선비는 서책을 쌓아 두고 있으며 책상 위에는 화병에 매화 한 가지를 꽂아두고 있습니 다. 등을 보이고 앉은 선비의 눈길이 향한 곳은 매화입니다. 방안은 주변의 어두운 색조와 완연한 대조를 이루면서 밝고 환한 색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방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매화의 화사한 생명력일 것입니 다. 그리고 이 매화를 바라보는 선비의 반가운 마음이 방안을 환하 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즉 방안의 환한 색조는 선비의 마음을 그대 로 드러내는 이미지일 것입니다.
조희룡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작은 집은 겨울의 엄혹한 세월을 견디게 해주는 보호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서책이 쌓인 것으로 보아 독서와 학문을 통해 정신적 수양을 가능하게 했던 공간입니다. 서책 바로 옆에 매화 한 가지를 둠으로써 이 공간은 살아 숨쉬는 생명력의 공간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이 그림은 흑백의 수묵으로 많은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검은 먹색 이 암시하는 겨울의 을씨년스러움과 암담함 그리고 생명력이 위축되 는 무거운 이미지들이 있는 반면, 그와 대비되는 하얀 꽃잎의 생명력 과 유연함이 두드러진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희룡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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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번져있는 매화의 꽃잎은 겨울의 음산한 색조를 누르고 점차 확장되어가는 봄의 생명력을 표현한 이미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채우고 있는 또 다른 이미지는 아마 매화의 향기일 것입니다. 매화가 저토록 가득 피어있다면 작은 집을 둘러싼 주변에는 매화의 향기가 가득할 것입니다.
선비는 그 매화의 모습과 향기를 바라보기 위해 창문을 열어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방안의 서책과 매화 가지를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그러므로 봄의 풍경화이자 자아내면 의 풍경화였던 셈입니다. 자신의 내적 풍경을 매화의 이미지를 빌어 표현한 것입니다.
조희룡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매화를 소재로 한 시의 이미지를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닐곱 그루 성긴 매화 등걸이 참 서늘도 하다
서늘한 매화꽃 듬성듬성 피어 달빛 흩는데
그 그늘 속 무우전 푸른 전각 한 채도 잠들어 서늘하다
송수권 <암향> 전문 10
송수권의 <암향> “ 그림과 이미지
”
송수권의 <암향> 이미지 살펴보기 “ 그림과 이미지
”
• 이 시에 쓰인 감각적 이미지를 살펴봅 시다.
• 매화를 표현한 시각적 이미지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토론해봅시다.
• 매화와 매화 주변의 건축물의 공간적 이미지의 표현에 대하여 생각해봅시다.
• 이 시의 제목인 ‘암향’이 지닌 감각적 이 미지와 이 시의 주제를 연관지어 토론 예닐곱 그루 성긴 매화 등걸이
참 서늘도 하다
서늘한 매화꽃 듬성듬성 피어 달빛 흩는데
그 그늘 속 무우전 푸른 전각 한 채도 잠들어 서늘하다
최북의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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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1720~미상)은 조선 후기의 화가로 김홍도·이인문·김득신 등과 교류하 였으며, 심한 술버릇과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화가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광생(狂生)이라고까지 지목하기도 했지만, 그가 평양이나 동래 등지로 그림을 팔러 가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구하기 위하여 모여들었 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에는 인물·화조·초충 등도 포함되어 있으나 대부분이 산수화입니다. 그의 괴팍한 기질대로 대체로 치기(稚氣)가 있 는 듯하면서 소박하고 시정(詩情) 어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최북은 “무릇 사람의 풍속도 중국 사람들의 풍속이 다르고 조선 사람들의 풍 속이 다른 것처럼, 산수의 형세도 중국과 조선이 서로 다른데, 사람들은 모두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그림만을 좋아하고 숭상하면서 조선의 산수를 그린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하지만 조선 사람은 마땅히 조선의 산수를 그려야 한다.”고 그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 바 있는데요. 이러한 자신만의 화풍 을 계승, 변천시키면서 「조어도(釣魚圖)」와 「풍설야귀도(風雪夜歸圖)」에 보이 는 바와 같이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자신의 조형 양식을 이룩하여 조선 후기 회 화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최북의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이 그림은 조선시대 화가 최북이 그린 <풍설야귀인도>입니다. 그림 의 윗부분에 제목으로 風雪夜歸人이라고 쓰인 것이 보이지요. 이 그림 은 한시의 한 구절에서 온 것입니다. 한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 다.
日暮蒼山遠(일모창산원) 天寒白屋貧(천한백옥빈) 柴門聞犬吠(시문문견폐)
해는 지고 푸른 산 먼데 추운 오막살이 가난해.
사립문에 개 짖는 소리,
풍설 속에 주인 돌아오나보
최북의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이미지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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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며
그림에 나타난 이미지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림에 나타난 계절적 풍광을 나타낸 이미지를 찾아 그 특색을 정 리해봅시다.
• 사립문 밖에 짖고 있는 개와 지나가는 나그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들의 태도를 통해 의미를 찾아 보고 토론해 봅시다.
• 이 그림의 붓질은 단순하면서 거친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필선 이 나타내는 시각적 이미지에 대해 논의해 봅시다.
• 한시의 이미지와 그림에 나타난 이미지를 비교하여 각각의 효과와 의미를 찾아봅시다.
그림을 보고 시의 이미지로 표현하기 “ 그림과 이미지
”
• 여러분이 좋아하는 그림을 택하여 시의 이미지로 표현해 봅시다.
• 그림의 어느 부분을 시로 표현하였나요?
• 시로 표현할 때 어떠한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였나요?
• 그림의 주제와 시로 표현한 이미지의 의미가 달라졌습니까?
•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해봅시다.
• 다른 학우들이 표현한 이미지를 그림과 함께 살펴보며 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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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 <
한 켤레 의 구두
>
고흐(1853.3.30.~1890.7.29.)는 네덜란드 출신의 프랑스 화가 로 그는 처음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공부를 하였으나 광신도 적인 기질과 격정적인 성격으로 결국 전도사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됩니다. 1980년 실의에 빠진 그는 그동안 계속 해온 습작 을 바탕으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렘브란트와 밀레 풍의 어두운 화풍으로 노동자와 농민 등이 하층민의 생활풍경을 그 렸던 <감자 먹는 사람들>(1885)과 같은 작품은 초기의 작품입 니다.
고흐는 1886년부터 파리에서 인상파와 신인상파의 영향으 로 밝은 화풍으로 바뀌게 됩니다. 대도시의 생활에 싫증을 느 껴 1888년 2월 프랑스 아를르로 이주한 그는 밝은 태양에 감격 하여 <해바라기>, <아를르의 도개교>와 같은 걸작을 선보입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새로운 예술촌을 꿈꾸던 고흐는 장 폴 고갱과의 공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성격차이가 심해 생활을 순조롭지 못하였고, 그해 12월 정신병의 발 작으로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귀 를 자르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그의 생활은 발작과 입원이 연속이었으며, 발작이 없을 때에는 병원에 서도 다작의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남 긴 작품 중 유명한 것이 <별이 빛나는 밤>(1889)입 니다. 입퇴원의 생활을 되풀이하던 고흐는 끝내 쇠 약해져 1890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불행히도 고흐의 작품은 생전에는 끝내 인정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1903년 유작전 이후 사람들에 게 인정을 받고, 20세기 초 야수파 화가들에게 큰 지표가 되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1898)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두산백과)
화가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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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그린 <한 켤레의 구두>라는 그림입니 다.
이 그림을 두고 하이데거는 평범한 구두에 담 긴 예술작품의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한 켤레의 구두를 눈 앞에 현전화(現前化, Vergegenwärtigung) 하거나 혹은 그림 속의 텅 빈 사 용되지 않은 구두를 그저 응시하는 한, 우리는 도구의 도구 존재가 진실로 무엇인가를 결코 경험할 수 없다.
심지어 고흐의 그림에서는 이 구두가 대체 어디에 놓 여 있는지조차도 확일할 수 없다. 이 한 켤레의 촌아낙 네의 구두 둘레에는 그것이 귀속될 만한 거라곤 아무 것도 없이, 다만 무규정적 공간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는 이 구두가 사용되었음을 암시해 주는 최소한의 발 흙이나 길바닥의 흙조차도 묻어 있지 않다. 다만 한 켤 레의 촌아낙네의 구두가 있을 뿐 더 이상 아무 것도 없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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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그린 <한 켤레의 구두>라는 그림입니 다.
이 그림을 두고 하이데거는 평범한 구두에 담 긴 예술작품의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림과 이미지
“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두라는 도구 밖으로 드러난, 내부의 어두운 틈으로부터 들일을 하러 나선 이의 고통이 응시하고 있으며, 구두라는 도구의 실팍한 무게 가운데는 거친 바람이 부는 넓게 펼쳐진 평탄한 밭고랑을 천천히 걷는 강인함이 쌓여 있고, 구두 가죽 위에는 대지의 습기와 풍요함이 깃들어 있다. 구두창 아래에는 해 저물녁 들길의 고독이 저며들어 있고, 이 구두라는 도구 가운데는 대지의 소리 없는 부름이, 또 대지의 조용한 선물인 다 익은 곡식의 부름이, 겨울 들 판의 황량한 휴한지 가운데서 일렁이는 해명할 수 없 는 대지의 거부가 떨고 있다. 이 구두라는 도구에 스며 들어 있는 것은, 빵의 확보를 위한 불평없는 근심, 다시 고난을 극복한 뒤의 말 없는 기쁨, 임박한 아기의 출산 에 대한 조바심, 그리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의 전율이 다.”
이미지 창작하기 “ 그림과 이미지
”
• 여러분은 저 구두에서 무슨 느낌을 받았습니까?
• 여러분이 오늘 신고 있는 신발은 어떤 것입니까?
• 늘 여러분의 도구에 불과했던 신발을 자세히 관찰해봅시다.
• 그리고 그것을 감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해봅시다.
• 어떠한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했습니까
• 그러한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도구가 아닌 신발의 존재에 대하여 느낄 수 있었습 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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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소재로 한 시를 읽어봅시다.
그림과 이미지
“ ”
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 사다주신 내 신발을 나는 먼 바다로 흘러내 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邊山 콧등 밑의 개 안을 벗어나서 이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놀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어서 그것 대신의 신발을 또 한켤레 사다가 신겨주시긴 했습니다 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용품일 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하여 했었습니다.
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래도 있습니다.
서정주의 <신발> “ 그림과 이미지
”
서정주의 <신발> 이미지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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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이미지
“ ”
• 시에서 ‘내’가 처한 공간적 이미지와 신 발이 누리는 공간적 이미지를 비교하 여 봅시다.
• 시적 화자가 신발에 대하여 느끼는 감 정을 정리하여 봅시다
• 화자의 성장과정과 대상에 대한 반응 을 연결지어 감정의 변화를 살펴봅시 다.
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 사다주신 내 신발을 나는 먼 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 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邊山 콧등 밑의 개 안을 벗어나서 이세상 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놀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어서 그것 대신의 신발을 또 한켤레 사 다가 신겨주시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나 대용품일 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하여 했 었습니다.
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 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래도 있습니다.
이진수의 <구두 한 짝>
비 맞고 있다
개나리 덤불 후미진 데 버려진 구두 한 짝,
발이 아닌 흙덩이를 신었다
어디서 어떻게 기막히게 알았는지 어린 채송화가 와 뿌리내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의 추억과
냄새가 눈시울을 흔들어 놓기도 했지만 끈 떨어지고 뒤축 닳은 뒤에도
세상 넓어 누울 곳 남았는지
그림과 이미지
“ ”
사실, 사람이 신지 않으면 구두는 아무도 밟지 않는다
사람만이 구두를 신고 무언가 짓밟는다 그럴 때마다 구두는 허리끈 풀며
가까스로 발벗는 꿈에 젖었었다
다시 사람 꿈을 이제 꾸지 않아도 되는 오래된 구두 한 짝, 그 채송화네
집 처마 끝으로 빗방울 소리 수런수런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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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이미지
“ ”
• 이 시에서 구두는 본래의 쓰임과 달리 어떻게 쓰이고 있습니까?
• 원래 구두와 변화된 구두의 쓰임새를 비교해보고, 이 둘의 이미지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봅시다.
• 구두의 현재 모습을 통해 시적 화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인지 논의 해봅시다.
비 맞고 있다
개나리 덤불 후미진 데 버려진 구두 한 짝,
발이 아닌 흙덩이를 신었다
어디서 어떻게 기막히게 알았는지 어린 채송화가 와 뿌리내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의 추억과
냄새가 눈시울을 흔들어 놓기도 했지만 끈 떨어지고 뒤축 닳은 뒤에도
세상 넓어 누울 곳 남았는지
채송화 거처로서 별 불평 없다사실, 사람이 신지 않으 면구두는 아무도 밟지 않는다
사람만이 구두를 신고 무언가 짓밟는다 그럴 때마다 구두는 허리끈 풀며
가까스로 발벗는 꿈에 젖었었다
다시 사람 꿈을 이제 꾸지 않아도 되는 오래된 구두 한 짝, 그 채송화네
집 처마 끝으로 빗방울 소리 수런수런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