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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적 관점에서 본 호모 소비에트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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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소비에트 역설

해외 역사학계를 중심으로‘(탈)냉전사’를 새롭게 조명 하고 해석하는 논의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이루어 져 왔다. 사실 지금까지‘냉전’과‘탈냉전’이란 말은 시대를 구분하고 인식하는 하나의 상식으로 강력하게 군림해 왔다. 그 러나 여전히 세계는 각종 분쟁과 살상의 비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들 현상의 대부분이 냉전 지형의 관성과 유산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많다. 그리고 한반도 역시 군사적 대결의 국면을 벗어나 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누구의 냉전이었 고 누구의 탈냉전이었는가? 오히려 수많은‘냉전들’과‘분단들’이 여전히 다양한 방 식으로 수행되고 있고, 우리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그들만의‘탈냉전’을 통해 세계를 인식해 온 것은 아닌지 되물어 봐야 할 것이다.

최근의 냉전사 연구 경향은 냉전을 미・소로 대표되는 동서 대결체계를 중심으로 인식하는 단수화된‘냉전’프레임에서 벗어나 수많은 개인, 집단, 국가 속으로 스며들 어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되는 복수의‘냉전들’을 인식하고 발견하려는 노력들로 나타

수행적 관점에서 본 호모 소비에트쿠스

홍 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부연구위원

Alexei Yurchak, Everything was forever, until it was no more: The last soviet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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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있다. 이들 관점에서 보면, 냉전은 여러 국가와 민족, 개인과 집단의 내면에 스며 들어 다양한 형태와 기호, 상식과 표준, 과학과 기술, 법과 제도, 문화와 일상 속에서 수 행되는‘무엇’이다. 미・소라는 강대국 냉전 프레임을 벗겨내면 세계는 국지화되고 지 역화된‘냉전들’로 곳곳에서 뜨겁게 타오르곤 했다. 이들 복수의‘냉전들’이 수행하 는 세계의 리얼리티는 보다 물질적이고 기술적이고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심성적이 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지속성과 관성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분단체제도 이런 지속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 한 냉 전사 연구 중 크게 두 가지 경향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이라는‘사 건’으로 냉전과 탈냉전을 구분하 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이들 사 이에는 단절보다는 연속성이 강 하다는 해석에 무게를 두는 경향

이다. 냉전이 종결된 과거의 정치적‘사건’이 아닌 지금도 다양한 장소와 내면에서 수 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연구들은 대체로 냉전/탈냉전을 단절보다는 문 화사적, 일상사적, 미시사적, 심성사적 흐름 속에 존재하는‘연속성’에 주목한다. 다 른 하나는 냉전/탈냉전 사이에 존재하는 국가 간 관계 지형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연구 들이다. 이른바 냉전이 조형해 냈던 진영과 동맹, 대립과 갈등의 관계가 지금도 여전히 관성을 갖고 있으며 일정한 변형은 있지만 여전히 냉전적 관계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냉전 시기 사회주의진영 또는 자본주의진영 내의 국가 관계에 대해서 도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기존의 관점이 진영 내의 관계를 이념적 결속(동맹)과 위계 속에서 봄으로써 동질성을 전제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새로운 냉전사 관점은 진

최근 냉전사 연구 경향은 첫째, 냉전/탈냉전을 단절보다는 연속성에 주목, 둘째, 냉전/탈냉전 사이에 존재하는

국가간 관계지형의 연속성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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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내부의 정치적・문화적 갈등과 타협, 약소 사회주의국가들의 문화적 저항 등에 주목 한다. 또한 사회주의진영과 자본주의진영 사이의 관계 역시 적대적으로만 보기 힘든 정치적 공생과 상호의존, 그리고 문화적 모방과 교류 등의 측면도 있었다고 보고 이런 역사들을 발굴하고 새롭게 조명하려고 한다. 사실 동서 진영은 근대 산업주의라는 동 질적 뿌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냉전의 동학 속에서 시차를 두고 서로 모방과 반발 을 거듭하며 공존해 왔다. 이렇게 본다면 냉전은 탈냉전과의 대비 속에서 하나의‘사 건’으로만 인식되기보다는 다양한‘냉전들’이 수행되었던, 또는 지금도 지속성을 갖 고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냉전은‘냉전의 지구사(global history)’또는‘횡단 적 냉전사(transnational Cold war)’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냉전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해석적 다양성의 문이 열리면서 냉전시기 동 서 진영 내의 심성세계 역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맞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체제의 주민 심성세계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냉전사의 새로운 해석 시도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비에트 심성사와 냉전사의 새로운 인식은 낡고 관습적인 정치 사적 설명 방식으로부터 냉전의 경험적 속살을 드러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문 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크게는 개인, 가족, 집단 등의 일상과 실천, 문화적 양식 등을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보고 미시적인 접근을 강조한다는 점에서‘아래로부터의 역사(history from below)’라는 접근 방식에서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크게 보면 소비에트 시기 러시아 주민들의 일상생 활, 심성세계, 문화적 실천 등에 대한 문화사적, 일상사적, 미시사적, 심성사적인 접근 의 연구와 일정하게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2005년에 프린스턴대학 출판사를 통해 출판된 알렉세이 유르착(Alexei Yurchak)의 Everything was forever, until it was no more: The last soviet generation (모든 것은 영원했다, 그것이 끝날 때까지: 마지막 소 비에트 세대)은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로 살았던 저자가 경험에 기초하여 소비에트 사 회에 대한 새롭고 독창적인 해석으로 출간과 동시에 화제를 모았으며 2007년 슬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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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및 유라시아 학회(ASEEES)에서 수여하는 최고 저작상(Vucinich Book Prize)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신화에 도전을 하고 있다. 하나는‘이분법적’프레임에 입 각한 사회주의 설명방식에 대한 도전이며, 다른 하나는 일종의 정형화되어 있는 사회 주의 인간형으로서‘호모 소비에트쿠스(Homo Sovieticus)’에 도전이다. 이 두 신화에 대한 도전은 기본적으로‘소

비에트 역설’현상에 대한 발 견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의 제목에서 은유하듯, 소비에트 주민들은 이 체제가 사라지기 전까지 모든 것이 영원할 것이 라고 믿었다. 그러나 정작 붕 괴의 시점이 오자 이들은 놀라

지도 않았고 마치 오래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 온 듯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소비에트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영원한 국가’였지만 실제 그들이 행했 던 실천은 체제의 붕괴를 가져오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상화된 신념과 실제 행동 사이의 일치와 수행적 차이가 바로 역설을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은 이들 주민들 의‘수행(performative)’안에 있던‘역설’또는‘모순’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페레스트로이카 이전까지 소위‘ 후기사회주의(late social- ism)’시기 소련 사회에서의 주민들이 수행했던 삶의 방식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대표작『젠더 트러블』을 필두로 국내에도 많은 번역서로 소개되고 있 는 급진적 여성주의 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수행성(performativity)’논의 를 적용하여 소비에트 사회를‘수행적 전환(performative shift)’이란 개념을 통해 해석 함으로써 새로운 이론 적용과 독창적 해석이란 측면에서 1990년대 이후 나온 사회주

이 책은 1950년대 부터 1980년대 페레스트로이카 이전까지 소위

‘후기 사회주의’시기 소련사회에서의 주민들이 수행했던 삶의 방식에 대한 독특한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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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체제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연구로 평가할 수 있다.

이분법적 사회주의와 호모 소비에트쿠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이분법적 사회주의’라고 밝힌다. 사실 소련사회 를 비롯해서 현존했던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설명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프레임은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다. 가령 억압과 저항, 탄압과 자유, 국가와 인민, 특권경제와 제2경제, 공식문화와 반문화, 전체주의 언어와 반체제 언어,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 진 실과 거짓, 현실과 위장, 도덕과 부패 등이 그것이다. 이들 이분법 구도는 소련은 물론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설명에서 지배적인 프레임을 점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이다.

“이성, 상식, 그리고 체면이 매우 빈번히 공격받을 때, 인격은 무력해지고, 인간 의 지성은 산산조각 나거나 비뚤어진다. 진실과 거짓 사이의 벽은 효과적으로 무너진 다. 그러한 환경에서 교육받은, 지적인 진취성을 빼앗긴 호모 소비에트쿠스(소비에트 인간형)은 하나의 인격이라기보다는 그저 당의 정책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용기에 불 과하고 당의 이념과 슬로건을 대변하는 것 이상은 절대 할 수 없다.(Ellis 1991, 208)

저자는 이런 이분법에 기초하여 묘사되는 전형적인 호모 소비에트쿠스의 설명 방식을 위와 같이 인용한다. 이들이 묘사하는 호모 소비에트쿠스는 자발적이든 강요 에 의해서든, 자아성찰 수단이 없었든 기본적으로 무력한 순응자로서 소비에트 주민 을 상정한다. 또는 감시와 억압의 두려움 때문에 공식적으로 연출하는 행동과 사적인 공간에서의 행동을 다르게 하는 이중성을 통해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이 역시 공식과 비공식이란 이분법에 기초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이분법만으로 사회주의체제를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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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분법상의 양 극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사이’에 존재하는 행동이나 두 양극단 모두를 동시에 보여주는‘모순’적 행동에 대해 이분법 적 프레임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대다수의 소련 국민들이 사회주의의 가치와 이상, 사회주의적 삶 의 규범 - 평등, 공산주의, 이타적 마음, 우정, 윤리적 관계, 안전, 교육, 노동, 창조성 등 - 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매일 국가의 공식이데올로기, 규범 과 규칙을 일상적으로 위반하거

나, 재해석하거나, 거부하는 행동 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행 동은 신념(사회주의에 대한 믿음) 과 행동의 극적인 부조화나 괴리 와는 거리가 멀다. 신념과 행동을 교묘하게 자신 삶의 편리나 필요 에 맞게 일치시키기도 하고 새롭

게 해석하여 일상생활에서 연결하는‘수행’인 것이다. 이들의 신념을 거짓으로 믿고 위장된 순응을 하고 있다거나 이중적인 행동을 한다고 보는 기존의‘공식-비공식’이 분법적 설명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들은 신념을 믿으면서 그 신념을 생활의 편리에 맞게 교묘하게 재해석하고 전유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을 적절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행동을 국가의 규범과 부합 하게, 때로는 반대되게, 때로는 이분법적으로 가르지 않고 그들을 연결 짓는 그들 주민 들의‘수행’이 갖는 역설적 모습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수행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왜 이들 주민들이 갑작스러운 체제 붕괴를 상상할 수 없었는지, 예상치 못했 음에도 불구하고 왜 주민들이 붕괴 상황에서 전혀 놀라지 않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신념화하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현실이‘영원’할 것으 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행동은 그 신념을 일상의 편의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소련 주민들의‘수행’이 갖는 역설적 모습을 이해해야 주민들이 갑작스러운 체제붕괴를 예상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놀라지 않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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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하면서 사실상 사회주의를 허무는 긴 일상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저자는 냉전적 관성과 결합된 이분법적 시각에서 소비에트 사회를 보는 데서 벗 어나, 이들 이분법 구도‘사이에’수많은 회색지대가 존재했음을 알리고, 그 지대의 다 양한 면모와 색채를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살아갔던 삶의 현장, 일상생활(everyday life)에 주목한다.일상은 역설이 배태되고 실행된 장소이기 때문이 다. 이런 역설은 소비에트의 언어와 담론, 이데올로기, 윤리, 사회적 관계 그리고 시간 과 공간성 속에 기입되어 왔다고 본다. 이런 역설을 발견하기 위해, 개인적인 기록물 (일기, 편지, 그림, 농담, 속어, 음악, 아마추어 영화 등)과 소비에트 공식 출판물(연설 문, 신문, 영화, 사진, 만화 등)에서 시작해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와 그 이후 만들어진 각종 인터뷰, 회고록, 방송 등을 교차시키고 있다. 제1장과 제7장을 제외하고 거의 대 부분이 이런 다양한 문헌과 기록의 교차를 통해 주민들의 심성세계와 사회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스탈린의 기묘한 패러다임 전환: 르포르의 역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스탈린의 기묘한 패러다임 전환’부분이다.

스탈린의 죽음은 절대적인 독재자나 위대한 지도자의 죽음 이상의 것을 가져왔다. 그의 죽음 이후 소련 사회 내에서 나타난 모종의 변화를 저자는‘내적 전환’(internal shift)으 로 개념화한다. 스탈린이라는‘절대적 준거점’또는‘절대적 발화체’의 죽음은 소련사 회의 사람들이 공식담론을 자기 식으로 전유하는 수행을 가능하게 했다. 다시 말해 과 거 스탈린이 살아 있을 때는 스탈린 이외에 누구도 공식담론과 스탈린의 발언에 자의적 해석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절대적 발화체이나 준거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죽 음은 담론과 행위의‘절대적 기준’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공식담론과 스탈린 의 발언들은 그것을 해석(또는 수정)할 수 있는 주인을 잃게 되었고 그런 역할을 대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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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지 못했다. 결국 스탈린의 말을 모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반복 인용되는 말로 만 남게 되었다. 이처럼‘죽은 말’처럼 보이지만, 이런 무한한 반복 인용은 곧‘차이’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절대자에 의해 계속 살아서 의미 변화될 수 없는‘죽은 말’은 사 람들의 반복적 사용 속에서 그들의 삶에 맞게 전유되었다. 삶의 편의에 따라 공식담론 과 스탈린의 말을 해석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언어와 행동의 권위를 독점했 던 초월적 발화체(김일성, 김정일) 가 사라지면 그 말들은 형식적으로 는 절대적 지위로 계속 남아 있지만, 그 언어 사용의 잘못을 수정할 존재, 지속적 재의미화를 수행할 존재는 없는 것이 된다. 만약 초월적 발화체 가 살아 있다면, 모든 언어와 행동이 그의 검열에 따라 재조정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재의미화를 하길 꺼려하게 되며 오히려 언어 세계는 더 욱 경직된다. 그러나 그런 언어를 조정하는 중심 발화체가 사라지면 그들이 남긴 말은 그대로 고정된 경구로 남고, 일상에서는 이런 말들을 현실의 필요에 따라 재의미화를 하게 된다. 가령 김일성이 줄곧 강조해 왔던‘사람과의 사업’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것 은 원래 당간부가 당사업을 잘 하려면 여러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현장을 파 악하는 조직사업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사람과의 사업’을 비 공식적인 연줄, 뇌물, 결탁 관계에 대한 명분으로 전유하기도 한다. 사람과의 사업 자 체를 기만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믿으면서 실제 현실의 필요만큼 재해 석하고 재의미화하는 것이다.

스탈린의 죽음 이후 소련 사회 내에서 나타난 변화를

‘내적 전환’으로 개념화, 즉 스탈린의 발언들을

삶의 편의에 따라 해석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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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적 전환(preformative shift)

공식담론과 규범에 대한 재의미화를 저자인 유르착은‘수행적 전환’을 통해 해 석한다. 저자의‘수행적 전환’은 급진적인 여성주의 학자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제시한‘수행성(performativity)’개념과 논의를 가져온 것이다. 원래 수행성 개념은 오스틴(J. L. Austin)의 화용론으로부터 유래했다. 단순화하면 발화(speech act) 는 행위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젠더는 양식화된 수행적 행위들의 반복이 육 체의 표면에 남긴 흔적에 의해 형성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신념의 일상화와 믿음은 공 식담론과 규범의 반복적 인용과 수행의 결과이다. 그러나 반복적 인용은 그 자체로 인 용인 이유로‘차이’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작지만 그러한 차이가 쌓이고 누적되면 결과적으로 그 규범 자체를 전복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버틀러의 논의를 적용하여 유르착은 소비에트 사회의 공식담론과 메시지 가 주민들과 갖는 관계를 재해석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소비에트 주민들은 당이 제 시하는 공식담론과 구호,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것을 형 식적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신념을 몰래 신봉했던 것도 아니다. 이런 설명들은 결과적 으로 앞서 비판했던 이분법적 가정에 불과하다. 그가 보기에 소비에트 공식담론과 메 시지가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만나는 방식은 결코 이분법적 설명구도로 환원될 수 없 다고 본다. 주민들 차원에서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적 진술들은 삶에 있어서 의미의 차 원과 행위의 차원에서 이중적으로 수용되었으며, 이 둘의 상호구성적 차원에서 주민 들의 삶과 행동을 보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의 핵심 개념인‘수행적 전환’은 엄격하게 형식화된 공식 담론의 수행적 반 복 행위가 새로운 의미들과 실천들을 오히려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개념이 라고 볼 수 있다. 공식담론을 거짓으로만 동의한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하고 전유하여 일상을 새롭게 자신에 맞게 구축한다는 것이다. 공식담론이라는 절대적 준거점의 반 복적 수행 속에서 미세한 균열을 내는 일상의 실천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가령 콤소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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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가 자신의 공식적 삶과 서구 록 음악 매니아의 삶을 어떻게‘모순 없이’결합할 수 있었는가, 동지와 적을 가르는 공식적 분할선과는 다른 독특한‘우리 편’의 사회성을 어떻게 구축했는가는 바로 이런‘수행적 전환’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북한이해의 해석적 전환을 위해

이 책은 첫째,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새로운 문화사적, 일상사적, 풍 속사적, 언어적(담론적) 해석이란 측 면에서 사회주의체제 연구는 물론 서 양사 일반 연구에도 하나의 이정표가 될 책이라고 본다. 단순히 억압적 일

상을 묘사하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억압과 저항‘사이’에서 다양한 행위 전략을 수 행해 온 행위자들로 소비에트 대중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의

‘대중독재’논의나 독재이론 등 역사학적・정치학적 논쟁 차원에서도 주목할 만한 연 구이다.

둘째, (탈)냉전 해석에도 큰 의미를 갖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트를 직접 경험했던 마지막 세대에 대한 풍부한 인터뷰와 구술자료를 통해 냉전이 그들의 언어 와 일상 속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수행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탈냉전이란

‘사건’과 그들의 일상적 삶 사이의 관계를 미세한 터치로 묘사하고 해석해냄으로써 (탈)냉전을 대중의 심성세계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연구라는 점에서 냉전사 연구에 도 의미를 갖는다.

셋째, 주디스 버틀러,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질 들뢰즈(Gilles Deleuze), 슬 라보예 지젝,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등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소

이 책은 국가 사회주의의 본질과 주민들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해석적 지평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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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트 사회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이론과 일반 인문사회과학 연구자 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논쟁적 연구라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체제에 국한되지 않고 지배와 독재 일반의 논의와도 직결되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분단체제 속에 살고 있는 한국사회,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에도 의미 가 있다고 본다. 특히 국가사회주의의 본질과 주민들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 데 새로 운 해석적 지평을 제공할 것으로 본다.

<참고문헌>

Yurchak, Alexei. Everything was forever, until it was no more: The last soviet generation.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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