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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지도에 따른 카르텔’ 제재의 법치국가적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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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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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ㆍ금융ㆍ주류 등 특정산업에서 “사업자들이 가격담합을 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사업자들은 “관할 행정청의 행정지도 에 따랐을 뿐”이라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관할 행정청이 필요에 따라 개별 산업 규제영역에서 사업자들의 통일적 행동을 유도하는 행정지도를 하는 경우가 있다. 반 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행정지도가 권고적 성격을 가질 뿐 법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이 에 따른 공동행위라도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부당공동행위(카르텔)에 해당한다며 거 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사업에 대한 실질적인 인 ㆍ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규제 행정청의 요구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엄마는 하지 말라고 하고 아빠는 하라고 할 때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이러한 혼란을 없애기 위한 가장 궁극적인 해결책은 처음부터 상충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개별 산업을 규제하는 행정기관과 공정거래위원회 간의 상호협조를 강화하는 법제를 개선하여 모순된 목소리가 외부로 표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입법이라도 양 기관의 서로 다른 정책기조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고 법적 근거 없이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되는 행정지도를 입법의 형식 으로 통제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바로 이러한 한계선상에서 사업자들은 어느 한쪽을 따라야 할지 선택해야만 하는 처지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행정지도에 따름으로써 공 정거래법상의 부당공동행위 금지규정을 위반했다고 무조건 제재를 가한다면 사업자들 의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수 있다. 따라서 사후적인 제재의 적절성을 담 보할 수 있는 법 적용(해석론)이 필요하다.

국가권력에 의한 제재의 적절성 여부를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과잉제재의 위험이 있다. 직관이 아닌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틀이 필요하다.

법학에서는 국가가 제재하고자 하는 사인(私人)의 행위를 ‘구성요건→위법성→책임’의 단계별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개의 관문을 모두 통과했을 경우에만 국가권력에 의한 제재가 가능하다.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사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법치국가적 한계를 지키기 위함이다. 원래 이러한 논리의 틀은 형법영역에서 사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형법 제250조에는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다. ‘사람을 살해한 자’가 살인죄의 구성요건이다. 이 단계에 서는 ‘사람’의 범주를 어디까지 볼지, 즉 태아나 뇌사자를 사망케 한 경우 ‘사람’을 살 해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바로 처벌할

‘행정지도에 따른 카르텔’ 제재의 법치국가적 한계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1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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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당방위처럼 살인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객관적 상황이 존 재한다면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살인행위는 적법행위가 된다. 살인죄의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이다.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어 위법하다고 평가되더라도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적법행위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주관적 상황’이 존재한다면 책임이 조각되거나 감면될 수 있다.

구성요건 단계

공정거래법 제19조에서는 “2인 이상의 사업자 간의 합의에 의한 경쟁제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것이 카르텔을 금지하는 구성요건이다. 구성요건 단계에서의 쟁점 은 행정지도에 따라 사업자들이 합의를 했을 경우 과연 ‘합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 느냐는 것이다. ‘합의’란 당연히 자율적 의사를 전제로 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공정거 래위원회와 법원의 원칙적 입장은 법적 강제력도 없는 행정지도에 따라 합의한 것은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합의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구성요건상의 ‘합의’에 해당한 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에 대한 인ㆍ허가권을 행사하며 사실적 구속력을 가지는 행 정청의 권고적 요구를 사업자들이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원칙 론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사업자와 행정청의 전반적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강 제력 수반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이 경우 자율적 ‘합의’가 부정되어 카르텔 금지 구성 요건 자체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행정청이 행정지도를 통해 특정내용에 대해 사업자 간의 합의를 유도하기보다는 추상적인 기준만 제시해 주고 구체적 내용은 사업자 간의 자율적 합의로 정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에도 ‘합의’ 자체가 없다고 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구성요건 단계 이후 의 위법성과 책임단계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위법성 단계

‘합의’가 인정되어 사업자들의 행위가 카르텔 금지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해서 바 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성요건에 해당할 경우 일단은 위법한 행위이 지만 혹시 이러한 위법성을 제거할만한 사유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공정거래법 제58조에서는 “사업자가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와 법원은 여기서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이란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 체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법령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행정지도는 법적 구속력이 없 으므로 원칙적으로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에 해당될 수 없지만 예외 적으로 개별 규제법에서 행정청이 행정지도를 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명문화하고 있다면 제58조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렇게 엄격하고 좁게 해석할 경우 행정지도에 따른 카르텔이 제58조의 적용을 받아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 경 우는 매우 드물다. 제58조의 해석은 ‘행정지도의 본질’과 ‘개별 산업규제법과 공정거 래법간의 충돌과 조화’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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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지도란 특별한 법적근거가 없더라도 행정청이 자신의 임무범위 내에서 할 수 있고 여기에 행정지도의 효용성이 있다. 법령상 명시적 근거를 두고 있는 행정지도가 오히려 예외적이므로 명시적 근거가 있는 경우로 제한하여 해석하는 것은 행정지도의 본질을 외면한 해석이다. 또한 개별 규제법에서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 하고 있는 경우 역시 매우 드물고 그러한 경우가 어떠한 경우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모호하다. 이러한 형식적 해석과 달리 우리나라 제58조 해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미국 판례의 최근 동향은 개별 산업 규제법과 공정거래법 간 충돌의 문제를 ‘비용-편 익 분석(cost-benefits analysis)'에 기초하며 해결하고 있다. 개별 산업영역에서의 효율적 기업관행을 반경쟁적 행위로 규정하며 독점규제법을 잘못 적용하였을 경우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false positive error cost)이 그 반대의 경우에 발생하는 사회 적 비용(false negative error cost)보다 일반적으로 크다. 따라서 산업별 특성과 규 제체계, 집행수단 등을 고려하며 특정 산업영역에 독점금지법을 적용할 때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임 단계

행정지도에 따른 카르텔이 제58조에 의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았다고 해도 바로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다. 특정 행위가 카르텔의 ‘구성요건’과 ‘위법성’ 관문을 통과했 는지에 대한 판단은 법질서 전체라는 객관적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객 관적으로 위법한 행동이라도 개별 ‘행위자’의 주관적 관점에서 위법하게 행동할 수밖 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행위자에게 모든 책임을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 따라서 행정지 도가 법적으로 구속력은 없지만 사실적 구속력으로 인해 이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될 경우 그 정도에 따라 책임이 조각되거나 감경되어야 한다. 이때에도 카르텔의 위법성은 인정되므로 이러한 상태는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때의 카르텔 위법성 은 전적으로 사업자간의 자율적 합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행정지도의 개입으로 유 발된 측면이 강하므로 거액의 과징금이라는 제재수단을 통해 위법성을 제거하고자 하 는 것은 과잉규제에 해당할 수 있다. 과징금보다는 시정조치를 통해 위법상태를 개선 하고자 하는 것이 법치국가 원리에 부합한다.

경쟁정책은 우리나라에서 포기해서도 안 되고 포기할 수도 없는 정책이다. 이러한 경쟁정책을 훼손하는 개별 산업 규제영역에서의 행정지도는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행정지도의 관행을 그대로 둔 채 이에 따른 개별 사업자들의 처벌을 통해 개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행정의 단일성과 법치행정을 통해 담보되는 법치국가적 한계를 벗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행사가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사전적(입 법론)ㆍ사후적(해석론) 정책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입법부는 사전적 입법을 통해 두 가지 목소리가 처음부터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두 가지 목소리가 흘러 나온 경우 사법부가 사후적인 해석론을 통해 사업자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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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해 주어야 한다. 아빠 말을 들었다고 엄마한테 혼났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마저 나 몰라라 하고 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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