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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 란슬롯의 극적 의미*

1)

남 장 현 (인하공전)

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은 햄릿 (Hamlet)과 더불어 셰익 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며 무수한 논쟁을 야기한 작품 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논한다는 것은 상당한 학문적 부담과 문제의식을 내 포한 도전인 동시에 새로운 시각의 도입을 의미한다. 뉴 캠브리지 셰익스피어 판의 편집자 마후드(M. M. Mahood)는 이 작품의 풍부한 공연 경력에도 불구 하고 각 시대마다 각 공연의 문화적, 정치적 및 극적 효과에 대한 연구나 사료 는 부족하기 그지없다고 말한다(42). 이는 텍스트로서 이 희극에 대한 논의는 시대와 이데올로기에 따라 많은 변천을 기록하고 있지만 기타 부분에서는 연 구나 논쟁이 미흡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베니스의 상인 에 등장하는 하인 란슬롯(Lancelot Gobbo)의 극적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다.

텍스트 상에서 란슬롯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하인으로 2막 2장 에서 처음 등장한다. 1막이 작품의 인물들과 줄거리에 관한 도입부라면 2막은 주요 사건들이 전개되는 부분이다. 2막 1장이 포시아(Portia)와 첫 구애자를 묘 사하고 2막 3장이 제시카(Jessica)의 짧은 독백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주요

* 본 논문은 2010년도 인하공업전문대학 학술연구 지원을 받아 연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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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인물에 대한 소개 뒤에 제 2군의 인물들에 대한 소개와 사건의 전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부분이다. 극의 구성 순서가 인물의 중요성과 무관하 지 않다면 란슬롯의 입지는 미미한 수준은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한다. 더불어 란슬롯이 광대 옷을 입고 혼자서 무대를 장악하며 작품에서 첫 독백을 한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가 그에게 부여한 극적 중요성은 증대된다. 독백이란 일반 대화보다 호소력이나 극적인 면에서 남다르기 때문에, 첫 독백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란슬롯은 등장부터 극적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독백에 이어 그와 아 버지 고보(Gobbo)간에 이뤄지는 재치 있는 응답(repartee)도 관객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기 때문에 란슬롯을 단순히 웃음을 제공하기 위 한 광대나 미미한 희극 인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본고는 란슬롯이 희극적인 역할의 광대이며 하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서 셰익스피어가 그에게 독백과 기타 여러 대사를 부여한 의미와 중요성을 추 적하고자 한다. 이는 베니스의 상인 의 의미와 비평의 주요 쟁점들에 대한 보 다 다층적인 이해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란슬롯이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베 니스의 상인 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주는가?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하여 필 자는 작품의 주요 쟁점들 중에서 란슬롯의 극적 의미와 긴밀하게 연관된 주제 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 작업에 수반하여 란슬롯이 지닌 극-외적인 중요 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텍스트 상에 나타난 그의 비중이 아니라 무대 위에 서 그가 관객과 맺을 유대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적은 대사 안에 들어있는 그 의 극적 잠재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선결 작업에 이어 본고는 란슬 롯의 독백과 기타 대사들이 극 전체에 지니는 극적 의미를 상세히 논의할 것 이다.

I

베니스의 상인 의 주제 혹은 논쟁거리는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우스(K. E. Maus)는 노튼 셰익스피어 (The Norton Shakespeare)에서 이 작 품이 제기할 수 있는 논쟁거리에 대한 질문들로 서문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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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반유대주의인가?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가? 단순히 인정도 비 난도 없이 단순히 반유대주의를 보여줄 뿐인가? 기독교인들이 유대인 고 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을“악마” 혹은“용서할 수 없는 개”로 부르는 것인 옳은 것인가? 아니며 그는 기독교인들의 편협성에 의한 이해할만한 분개 한 희생양인가? 포시아는 . . . 여성의 덕을 최상으로 예증하는 인물인 가? 아니면 그녀는 술수에 능한 여장부인가? 인물들에 대한 이런 질문은 보다 일반적인 용어로 정리될 수 있는 다른 문제들을 제시한다. . . 보편 적인 인간의 특성들이 인종적 혹은 종교적 차이를 능가하는가? 아니면 그러한 차이가 결정적인가? (1081)

그녀의 질문들은 셰익스피어 당대의 공연부터 현재까지 전반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들이며 궁극적으로 도덕적인 판단을 내재한 질문들이다. 도덕적인 문제 가 이 작품이 양산하는 질문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인식은 브래드브룩 (M. C. Bradbrook)의 해석을 낳았다. 그는 극의 중심 문제는 현실의 충실한 반 영이 아니라 정의와 자비에 대한 도덕적인 통찰에 있다고 하면서 이 작품을 도덕적인 우화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133).

브래드브룩은 작품의 주제를 보다 심오한 도덕의 문제로 승화시킴으로써 반유대주의 문제를 축소시키면서 작품에 대한 다양한 도덕적인 견해를 양산하 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예를 들어 리사 프레인클(Lisa Freinkel)은 구약의 율법 에 대한 신약의 사랑과 자비의 문제로 해석하였으며(122-41), 마후드는 역사적 인 맥락을 고려하면서 주제를 기독교인들이 우월한 도덕의식을 지녔다는 편견 에 대한 비판으로 간주한다(21). 시대에 따른 반유대주의의 부침을 초월해서 이 작품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야기하는 이유도 근본적인 인간의 옳고 그름, 정 의와 자비, 그리고 선과 악의 문제를 끈질기게 화두로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1)

1) 이런 학문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학생들과 기타 셰익스피어 극을 공부하고자 하는 초보자 들을 대상으로 한 기본적인 수준의 학습서 및 참고서들도 베니스의 상인 의 공통적인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크 노트(York Note)는 사랑, 결혼 및 우정과 더불어 중요한 주제로 정의와 자비의 문제를 다루며 자비와 정의가 극의 핵심 쟁점으로 극은 인 간 삶에 있어 두 가지 근본적으로 상반된 태도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고 말한다(61). 캠 브리지 스터디 가이드(Cambridge Study Guide)의 경우, 전통적인 비평 및 기타 현대의 비평 조류 별로 작품에 대한 접근법을 소개하면서 여전히19세기와 20세기의 많은 전통 적인 비평은 정의와 자비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인물들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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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슬롯의 문제도 바로 정의와 자비,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특히 그의 독백은 이 문제에 대한 도덕적, 철학적 내면극에 해당한다. 따라서 본고 의 주요 관심은 그가 표출하는 선과 악의 문제와 그의 고민이 깊이이다. 물론 작품의 다른 문제들도 논의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가 제기하는 문 제가 포시아와 제시카와 관련하여 가부장제 및 여성의 문제 또는 샤일록과 안 토니오, 안토니오와 바사니오 그리고 포시아와 바사니오 사이의 약조(bond)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바이드백(B. A. Videbaek)은 극 의 전체를 조망하는 평자(commentator)로서 역할이 광대-하인인 란슬롯에게 주 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63).

극을 조망하는 평자로서의 역할은 그의 극-외적 중요성과도 연관된다. 엘리 자베스 시대의 희극에서 광대의 극적 비중은 극의 구성이나 그들의 역할의 정 량적 크기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당대의 광대 배우들은 거리의 광대에서 극장 의 광대로 자신들의 위상을 끌어올리며 극단의 주요소로서 자리 잡는 데 기여 한 인물들이다. 엘리자베스조의 극단에는 적어도 한 두 명의 광대가 있었고 그 들은 희극적인 역할을 하는 상당히 인기 있는 배우였다(Wiles vii). 당대 관객 이라면 적어도 희극을 볼 경우 그들이 좋아하는 광대격의 희극배우의 등장을 기대했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여 광대는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곤 했다.

엘리자베스조의 광대 배우는 탈튼(Robert Talton)과 윌슨(Robert Wilson)처 럼 죽어서도 일화의 주인공이 될 정도로 유명하였다. 셰익스피어의 창작 시기 에도 켐프(William Kempe)와 아민(Robert Armin)은 이들과 견줄 정도의 인기 를 구가했다. 그들은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하인 역할을 하면서 주요 광대 역 할을 독점했었다. 와일즈(David Wiles)는 사랑의 헛수고 (Love’s Labour’s Lost)의 코스타드(Costard), 한 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의 보텀(Bottom) 역할과 더불어 베니스의 상인 의 란슬롯을 켐프가 맡았을 것이 라고 주장한다(73, 77). “삽을 삽이라 부르는 평범한 사람”임을 자처하며 못난 얼굴로 유명했던 그는 무대 위에서 사소한 기행과 장기만으로도 관객의 폭소 를 자아냈고, 그의 어눌한 언변과 말장난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Wiles 24).

전히 우세하다고 말한다(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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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셰익스피어는 광대로서의 능력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종종 극 의 구성과 유기적이면서도 독립적인 공간인 하부 플롯을 도입하였다. 독자적인 공간에서 광대 배우는 관객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반응을 조율하 고 정서적으로 관객을 지배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세상읽기를 광대의 대사에 녹여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관객과 함께 웃으며 광대 스스로 웃음의 대상이 되는, 즉 스스로 풍자의 주체 이자 대상이 되는 순간 배우의 세상 읽기는 큰 호소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 다. 이런 맥락에서 바이만(Robert Weimann)은 광대 배우가 주요 플롯의 세계 를 풍자하며 관객과 함께 웃을 때 그 웃음은 기존 질서의 당위성을 의심하고 궁극적으로 우상을 파괴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다(35).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이런 웃음은 독백이나 방백 같은 희극 배우의 직접 적인 대사에 의해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독백의 순간 희극 배우는 객석으로 한 걸음 가까이 가거나 무대의 끝에 앉아 즉흥극을 연출하듯 그들의 독백을 풀어낸다. 이 순간은 극의 주요플롯에서 다소 벗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진정으 로 광대 배우가 극의 일부로서 극의 세계와 실재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매개 체가 되는 순간이다. 이렇듯 메타드라마적인 즉흥 연기는 란슬롯의 역할을 했 을 것으로 추정되는 켐프의 특기였다. 그는 웃음의 촉매로서 극과 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관객이 지루함을 잊고 보다 적극적으로 극의 세계에 참여하도록 하 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Fenton 11).2)

광대 배우의 즉흥 연기가 텍스트에 기록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즉흥 연기의 극적효과를 가늠하기란 불가능하다. 만(David Mann)은 희극 배우의 즉 흥 연기는 극-외적(extra-dramatic)인 유형으로 현대판 에드리브(adrib)를 포함하 며 광대들이 채워 넣도록 극본의 빈 상태로 남아있었다고 말한다(67). 그럼에 도 불구하고 광대가 즉흥연기를 펼칠 수 있는 가장 개연성 있는 순간은 관객 의 반응에 따라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자신만의 독백, 즉 무대를 혼자 장악한 순간이다. 이 경우도 즉흥 연기를 이끌어내는 대사의 첫 줄은 작가가 극의 주 제나 구성상의 의도에 맞추어 희극 배우에게 제공했다. 이런 맥락에서 즉흥 연

2) 예를 들어 베로나의 두 신사 (The Two Gentlemen of Verona)의 론스(Launce)도 2막 3 장에서 말도 못 알아듣는 고집불통의 개 크랩(Crab)과 함께 무대에 나와 주인을 따라 떠 나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껏 신파조의 어조로 독백과 함께 즉흥연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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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엘리자베스 조의 연극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관행이면서도 “작가의 계획 된 의도”에 의해 연출된 것이다(Fenton 8).

극작가에 의해 의도되었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광대의 독백과 그에 수반한 연기는 관객의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음에 틀림없다. 광대 배우들의 강한 인상은 탈튼의 우화−“사람들이 굉장히 웃었다”(Weimann 189)

−나 시동 모스(Moss)에 대한 도버 윌슨(Dover Wilson)의 공연 평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윌슨은 모스의 공연에서 느낀 전율을 강조하며 “재미와 영원한 재치와, 화려하고 매력적인 상황으로 가득 찬 귀감이 될 최고의 희극”으로 그 의 연기는 “햇빛 가운데 춤추는 반짝이는 한 점”과 같다고 극찬했다(66). 이는 광대배우들이 희극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주인공들보다 관객에게 더 깊 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증거이다. 베니스의 상인 의 란슬롯이야 말로 바 로 관객과 호흡하며 관객과 함께 웃으며 독립된 공간에서 자유로이 즉흥 연기 를 펼쳐내는 인물이다. 그의 첫 등장이 독백으로 시작하는 것은 셰익스피어가 그에게 최대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극 전체의 평자로서 관객에게 다가서 같이 극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함께 호흡하며 함께 웃으며 고민하는 문제야 말로 극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관객의 뇌리에 지 워지지 않고 남아있을 인상인 것이다.

II

희극적인 독백을 하기 위하여 무대에 단독으로 등장한 란슬롯은 무대의 전 면으로 걸어 나와 관객과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서거나 무대 가장자리에 걸터 앉아 관객에게 말을 걸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독백에서 그는 우스꽝 스럽지만 번민에 쌓인 표정으로 자신의 심각한 고민을 관객에게 호소한다. 그 독백에서 엘리자베스 조의 주인-하인 간의 계약 문제, 즉 샤일록을 떠나느냐 아니면 그를 섬기는 저주스런 일을 계속하느냐가 고민의 주축이다.

란슬롯의 고민을 분석하기 전에 독백에 이어지는 장면을 먼저 살펴보자.

독백이 끝나자 눈먼 아버지 고보가 등장하여 란슬롯에게 그의 소재를 묻는다.

장난기가 발동한 그는 아버지를 골탕 먹이기로 작정한다. 그는 무릎을 굻고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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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앉아 아버지에게 축복을 내려줄 것을 간청하고 눈먼 아버지는 그의 뒤통수 를 만지며 수염이 많이 자랐다고 놀란다. 이어 그는 아버지가 샤일록에게 주려 고 가져온 선물을 새로 섬기고 싶은 바사니오에게 주며 하인으로 자신을 써줄 것을 부탁하게 한다. 란슬롯 부자의 청을 받아들인 바사니오는 그에게 새 제복 을 주라고 명하고 란슬롯은 “제 주인 샤일록과 주인 나리 사이에는 옛 말씀이 아주 잘 구분되죠. 나으리가 ‘하느님의 축복’을 지녔다면 그는 ‘많은 걸’ 가졌 죠”(The old proverb is very well parted between my master Shylock and you sir, you have ‘the grace of God’ sir, and he has ‘enough’. 2.2.140)라는 종교적 으로 의미심장한 말로 이 장면을 마무리한다.

란슬롯의 부탁은 문화인류학적인 측면에서 교환의 의미를 재현한다. 모스 (Marcel Mauss)에 따르면, 선물의 교환은 원시 사회의 가장 눈에 띄는 특색으 로 교환−선물을 주고, 받고 보답하기−을 통해 사회 구성원은 사회적인 유대 관계를 형성하였다. “음식, 여성, 아이들, 소유물, 부적, 땅, 노동력, 서비스 및 종교적인 성물들”이 교환되었는데, 선물을 주는 사람은 우정이나 보상을 얻고 자 하며 선물 교환은 궁극적으로 사회적인 유대를 구축하는 권력의 전략이다 (재인용 Newman 20). 유대의 구축이란 측면에서 란슬롯이 새로운 주인을 섬기 고자 선물을 이용하는 것은 작품 곳곳에 산재한 선물의 교환과 그에 수반하는 모든 거래 및 계약 그리고 구속과 맥을 같이한다.

란슬롯의 비둘기(a dish of doves) 선물은 안토니오, 샤일록, 바사니오, 그리 고 포시아 사이에 이루어지는 선물의 교환과 유대 혹은 구속을 해학적으로 재 현한다. 눈먼 아비가 아들의 청을 주저 없이 받아들여 전혀 모르는 바사니오에 게 선물을 바친다. 이는 안토니오가 이자 없이 무료(gratis)로 바사니오나 상인 들에게 주는 돈, 즉 바사니오를 위해 “내 지갑, 내 자신, 내 가장 극단적인 수 단”(my purse, my person, my extremest means)까지 바치는 안토니오의 태도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바사니오와 란슬롯의 주인-하인 관계는 선물에 의한 바사니오와 안토니오 의 유대관계와 다른 측면에서도 유사하다. 바사니오가 안토니오에게 “난 그대 에게 돈만이 아니라 사랑도 아주 많은 빚을 졌지요”(To you Antonio/ I owe the most in money and in love 1.1.130-31)라고 말하듯,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관계는 단순한 경제적인 관점에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를 넘어서 정신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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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관계를 형성한다. 라즈 앵글(Lars Engle)은 안토니오에 대한 바사니오의 빚 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며 감정적인 보상이 경제적인 빚을 갚을 수 있고 그 역도 성립한다고 말한다(24). 결국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관 계는 경제적인 요소와 감정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엘리자베스조의 주인-하인 관 계와 일맥상통한다.

베니스의 상인 에서 하인 란슬롯과 주인 바사니오의 관계는 선물을 통해 약조, 혹은 계약을 체결하는 결혼 혹은 구애의 과정을 유비적으로 반영한다.

힘의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주인-하인의 관계로서 란슬롯과 바사니오 간의 계약 은 바사니오와 포시아의 구애 및 결혼, 제시카와 로렌조의 사랑의 도피와 결혼 에서 제공되는 선물과도 연관된다.3) 제시카와의 사랑의 도피에서 로렌조는 사 랑의 감정과 이익을 연계시킨다(Berry 47). 베니스의 결혼관을 따라 말괄량이 길들이기 (The Taming of the Shrew)에서 페트루키오의 구애처럼 그들의 도피 에서도 지참금의 문제는 빠질 수 없다. 처음부터 로렌조는 “그녀가 얼마나 많 은 금과 보석을 지녔는지”(What gold and jewels she is furnished with. 2.4.31) 알고 있으며 제시카는 기대에 부응하듯 “여기 이 상자를 받아요, 고생할 가치 가 있는 물건이니”(Here catch this casket, it is worth the pains. 2.6.33)라고 말 하며 그에게 보석 상자를 던져준다.

더불어 바사니오와 란슬롯의 주인-하인 계약은 결혼에서 선물이 일정한 형 태의 위계질서를 구축하는 포시아와 바사니오의 약조를 연상시킨다. 바사니오 는 란슬롯의 청을 받아들이며 옆에 있던 시종에게 “그[란슬롯]에게 이 자들[다 른 하인들]보다 더 많은 띠를 두른 제복을 주게”(Give him a livery more guarded than his fellows. 2.2.148-49. 필자 강조)라고 말한다. 그의 명에서

‘guarded’는 옥스퍼드 판 주석에 따르면 ‘띠(braid)와 다른 마감으로 장식된’의 뜻이지만 ‘guard’나 ‘braid’ 모두 묶고 구속하는 데 사용된 물건이다. 나아가 제 복도 엘리자베스 조의 영국에서 한 귀족의 가산으로서 소유를 분명히 하는 기 제임을 고려할 때 띠를 두른 제복에 내재된 구속의 암시는 분명해진다.

소유와 구속의 징표인 제복이 포시아와 바사니오의 관계에서는 반지가 된

3) 엘리자베스 조의 주인과 하인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 아비와 자식 간의 관계와 크게 다 를 바가 없었다. 한 가정의 가부장으로서 남자는 아내, 자식, 하인 모두에게 주인(master) 이었으며, 그들을 교육하고 지배할 책임과 권한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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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포시아는 바사니오에게 반지를 주며 엘리자베스조의 가부장제 내에서 남편 과 아내의 관계에 내재된 이데올로기를 분명히 한다.

포시아: 제 자신과 제 모든 것은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 것으로 이제 변했죠. 얼마전만해도 전 이 아름다운 저택의 주군이었고, 하인들의 주인이며 제 자신을 넘어 여왕이었죠: 그런데 이제, 바로 지금은, 이 집과 하인들과 바로 변함없는 제 자신도

당신 거예요,−나의 군주님 거죠!−그 모든 것을 이 반지와 함께 드려요. . .

Portia: Myself, and what is mine, to you and yours Is now converted. But now I was the lord Of this fair mansion, master of my servants, Queen o’er myself: and even now, but now, This house, these servants, and this same myself

Are yours,−my lord's!−I give them with this ring. . . (3.2.66-71)

그녀는 자신을 하인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남편-아내의 관계와 주인-하인의 관 계의 유사성을 분명히 한다. 바사니오는 엘리자베스조의 결혼과 가족은 소단위 의 왕국이라는 정치 기제를 “그녀의 군주요, 통치자요 왕이니”(“her lord, her governor, her king”)라는 말을 통해 밝히면서 반지의 서약에서 암호화된 위계 관계를 확고히 한다(Newman 25).

이어서 포시아도 바사니오에게 반지를 잃거나 남에게 줄 경우 그녀의 사랑 은 끝날 것이라면서 반지가 지닌 책임과 구속의 의미를 분명히 한다. 엥글도 반지란 약속(commitment)의 징표이며 사유화(enclosure)의 잠재적 상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33). 바사니오는 발타자(Balthasar)로 변장한 포시아에게 반지를 주며 그들의 약조를 위반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바사니오가 반지의 약 조를 어기는 행위는 새로 회복된 안토니오와의 유대관계를 위해 포시아와의 관계를 저버린다는 점이다. 이는 란슬롯이 샤일록을 버리고 새로운 관계를 위 해 바사니오에게 비둘기를 선물을 건네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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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바사니오에게 선물을 주면서 새로운 주인-하인 관계를 형성하 는 란슬롯의 행동은 작품 전체에서 선물을 통한 유대관계의 형성 그리고 그에 수반한 구속과 책임, 그리고 위반에 따른 처벌의 단계를 아주 통속적인 차원에 서 재현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바사니오와 맺는 관계는 결과적으로 안토니오 와 샤일록의 관계, 포시아와 바사니오의 관계, 바사니오와 안토니오의 관계, 제 시카와 로렌조의 관계 등 전반적으로 이 작품에서 짝을 이루는 거의 모든 인 간관계의 양상을 해학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대변한다. 이런 맥락에서 셰익스 피어는 란슬롯을 통해 작품 전체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약조의 의미를 희 랍극의 코러스처럼 압축적으로 재현하고 정리한다고 볼 수 있다.

III

약조(bond)와 구속의 의미를 고려하면서 란슬롯의 독백을 살펴볼 때, 그의 독백의 극적 중요성은 의미심장해 진다. 마치 희랍극의 코러스나 작품 전체의 평자로서 란슬롯이 관계, 약조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선과 악의 문제를 고민한 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다른 인물들이 약조와 관련하여 행하는 모든 행동에 대 한 도덕적인 고민의 대변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독백을 전체적으로 인용해 보 자.

란슬롯: 분명 내 양심은 내 주인 이 유대인에게서 달아나면 날 소환할 거야. 악마는 내 소매를 잡고 유혹하지, ‘고보, 란슬롯 고보, 유 익한 고보,’ 아님‘유익한 란슬롯 고보, 다리를 써, 출발을 해, 달 아나’라고 말하면서. 내 양심은 말하지, ‘안돼: 조심해, 정직한 란슬롯, 조심해, 정직한 고보’−아니면(미리 말했듯이)−‘정직한 란슬롯 고보; 달아나지 마, 부리나케 달아나는 걸 비웃어야지.’

음, 가장 용감한 악마는 내게 짐을 싸라고 명하지. ‘푸하!’ 악마 가 말해, ‘떠나!’ 악마가 말해. ‘맹세컨대, 용감한 마음을 내서’, 악마가 말해, ‘달아나.’ 음, 내 양심은 내 마음의 목줄을 잡고, 아 주 현명하게 내게 말하지, ‘내 정직한 친고 란슬롯, 정직한 애비 의 아들이니, 아니 오히려 정직한 어미의 아들이니.’ (맞아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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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뭔가 구린데가 있어, 뭔가 기우는 경향 말이야; 뭐 일종의 맛을 아는 거지): 음, 내 양심은 말해 ‘란슬롯, 꼼짝도 하지마!’

‘움직여!’ 악마가 말해. ‘꿈쩍 마’ 양심이 말해. ‘양심아’, 내가 말 해, ‘충골 잘하는 군.’ ‘악마야’ 내가 말하지 ‘충고 잘하네.’ 내 양심에 이끌리면, 난−주여 이 말을 용서하소서−일종의 악마인 내 주인 유대인과 머물러야하고; 유대인에게서 도망가면 난- 용 서를 구하오니−마왕 자신인 악마의 지배를 받는 거지. 분명 이 유대인은 바로 악마의 화신이야, 그리고 내 양심 속에서, 내 양 심은 그 유대인과 함께하라고 충고하는 걸 보니 엄한 양심인 거 지. 악마가 더 우정 어린 충고를 하네. 난 달아날 거야, 악마야, 내 다리는 너의 명을 따르마, 달아날 거야.

Lancelot: Certainly my conscience will serve me to run from this Jew my master. The fiend is at mine elbow and tempts me, saying to me

‘Gobbo, Lancelot Gobbo, good Lancelot,’ or ‘Good Gobbo,’ or

‘Good Lancelot Gobbo, use your legs, take the start, run away.’

My conscience says ‘No: take heed, honest Lancelot, take heed, honest Gobbo’−or (as aforesaid)−‘honest Lancelot Gobbo; do not run, scorn running with thy heels.’ Well, the most courageous fiend bids me pack. ‘Fia!’ says the fiend, ‘Away!’

says the fiend. ‘fore the heavens, rouse up a brave mind,’ says the fiend, ‘and run.’ Well, my conscience, hanging about the neck of my heart, says very wisely to me, ‘My honest friend Lancelot, being an honest man’s son, or rather an honest woman’s son’ (for indeed my father did something smack, something grow to; he had a kind of taste): well, my conscience says ‘Lancelot, budge not!’ ‘Budge!’ says the fiend. ‘Budge not!’

says my conscience. ‘Conscience,’ say I, ‘you counsel well.’

‘Fiend,’ say I, ‘you counsel well.’ To be ruled by my conscience, I should stay with the Jew my master who−God bless the mark!−is a kind of devil; and to run away from the Jew, I should be ruled by the fiend who−saving your reverence

−is the devil himself. Certainly the Jew is the very devil incarnation, and, in my conscience, my conscience is but a 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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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hard conscience to offer to counsel me to stay with the Jew.

The fiend give the more friendly counsel; I will run, fiend, my heels are at your commandment, I will run. (2.2.1-24)

엘리자베스 시대의 주인-하인 관계는 부자 관계처럼 절대적인 권위와 예속을 의미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두었다. 따라서 그의 고민은 군주와 신하, 부모와 자식 간의 신의와 계약을 파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맥 락에서 란슬롯의 고민은 포시아와 제시카의 고민이기도 하다. 형체는 없지만 권위는 남아있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도 없고 따르기도 힘든 포시아의 고민−“살아있는 딸의 의지가 죽은 애비의 의지에 구속되어야 한단 말인가”(so is the will of a living daughter curbed by the will of a dead father 1.2.20-21)

−은 권위적인 가부장제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딸이 지닌 부모와 자식 간 의 신의와 계약의 문제이며 이에 수반하는 옳고 그름의 도덕적인 선택의 문제 이다.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한 포시아는 “만약 좋은 것을 행하는 것이 아는 것 만큼 쉽다면, 예배당은 교회가 되고 가난뱅이의 오두막도 왕자의 궁과 같을 텐 데”(If to do were as easy as to know what were good to do, chapels had been churches, and poor men’s cottages princes’ palaces. 1.2.11-12)라며 가부장제의 구속을 거부하지 못한다. 제시카의 고민도 다를 바가 없다. 로렌조와 함께 사 랑의 도피를 하려는 그녀는 “내 운명이 엇갈리지 않는다면 난 아비가 있지만, 아버진 딸을 잃는군요”(if my fortune be not crossed, I have a father, you a daughter, lost. 2.5.54-55)라며 란슬롯처럼 결단을 내리고 아버지의 굴레로부터 벗어난다.4) 제시카와 포시아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양자택일의 길에서 서로 다 른 길을 선택한다는 점일 뿐이다.

포시아와 제시카의 고민은 란슬롯의 독백에서 하나의 새로운 극중극으로 재현된다. 그의 독백에서 눈에 띄는 특색은 “도덕적 모호성의 극적 구성”(the dramatic construction of moral ambiguity)이다(Rhodes, 609). 더불어 그의 독백 은 로시터(A. P. Rossiter)가 주장하듯이 한 극중 인물이 서로 상반된 관점을

4) 란슬롯과 제시카의 유사성은 주군의 역할을 하는 주인과 아버지를 버리는 것 말고도 마 후드가 지적하듯이 나이든 부모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라는 점에서도 그 두 인물은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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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수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예이다(107). 상반된 관점을 동시에 수용하기 위해 셰익스피어는 란슬롯의 독백에 소피스트의 수사학 혹은 도덕적 상대성을 발전시킨 르네상스 시대의 수사학을 도입한다. 수사학적으로 그의 독백은 햄릿의 독백과 같이 ‘이거냐 아니냐?’의 문제를 제기하는 형식인

‘declamation’이다. 이 declamation은 논쟁이나 이야기에서 묘한 비틀림을 사용 하여 도덕적 모호성을 야기하거나 선과 악의 구분을 혼란스럽게 하여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를 유도한다(Rhodes, 613-14).5) 마치 포스트모던 극의 한 장면처 럼 논리와 수사학적 기교가 일정한 범주화를 거부한다.

수사학적 기교 외에도 란슬롯의 독백은 극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 치를 지니고 있다. 극의 전통 면에서 란슬롯의 독백은 중세 시대의 설교 혹은 도덕극에서의 설교와 유사한 직접 대화법(dialogue)을 사용한다. 피터 데이비슨 (Peter Davidson)은 우의적인 주제에 대한 대화체의 설교를 도덕극의 선례로 보 는 의견에 동의하면서 극에서 배우는 설교의 기법, 특히 대화체의 기법을 활용 하여 관객에게 직접 말을 하면서 핵심 주제를 분명히 느끼게 한다고 주장한다 (14).6) 바로 대화체의 기법을 사용하면서 관객에게 직접 다가가는 극적 호소력 을 지닌 독백이 바로 란슬롯의 독백이다. 결국 그의 독백은 중세 도덕극처럼 양심(conscience)과 악마(fiend), 극화된 자신이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일인극이다.

이 일인극 내에서 란슬롯은 관객과 함께 웃는 흥미진진한 소극(farce)을 이 끌어낸다. 베로나의 두 신사 의 론스 이후에 켐프가 연기했을 란슬롯은 이 장 면에서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희극적인 극적 장치를 이용하여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웃음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론스처럼 그도 당대 희극 배우

5) 소피스트의 수사학에 있어 이중 설명(double accounts)은 닐 로즈의 “논쟁적 구조”에서 르네상스 영국에서 그리스 시대의 수사학에 대한 서지학적 고찰(610-12)과 찰스 오스본 맥도널드(Charles Osborne McDonald)의 비극의 수사학: 스튜어트 조의 극의 형식 (The Rhetoric of Tragedy: Form in Stuart Drama, Amherst: Massachusetts UP,1966)에서 르 네상스 시대의 비극에 나타난 수사학적 특징들에 대한 설명을 참조. 특히 로즈는 이 수 사학적 기교를 작품의 제목과 사법 제도가 지닌 문제와 연결시키면서 셰익스피어 시대 의 이 수사학적 기교의 중요성을 논하고, 간접적으로 셰익스피어 자신도 그래머 스쿨 (Grammar School)에서 충분히 이 수사학적 기교를 배웠음을 암시한다.

6) 데이비슨은 란슬롯의 독백을 대화체로 다시 쓰면서 독백의 등장인물과 구성을 분명하게 도해한다. 14-15 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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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자주 사용하던 극적 도구인 개와 같이 등장하여, 양쪽 신발을 악마와 양심 에 빗대어 자신의 고민을 직접 대화체로 극화했을 수 있다. 아니면 적어도 켐 프의 주특기이며 광대의 소도구였던 북과 북채를 잡고서라도 시각적인 효과를 최대화하며 자신의 고민을 관객이 같이 느끼고 같이 웃을 수 있도록 연출했을 것이다.

수사학적 기교와 극의 전통과 소도구를 통한 연출의 기법을 총동원하여 셰 익스피어가 란슬롯에게 화두로 던진 것은 궁극적으로 선과 악의 문제이다. 극 적으로 배우와 관객이 하나 되는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셰익스피어는 이 문제 에 복잡한 두 개의 구조 쌍을 도입한다. 첫째 쌍은 정직(honest)과 좋은(good) 이고 두 번째 쌍은 양심과 악마이다. 우선 독백의 첫 부분을 면밀히 살펴보면 악마는 란슬롯을 세 번에 걸쳐 ‘좋은 란슬롯’이라 부른다. 이 작품에서 ‘good’

은 무려 60여 번 나온다. 그 뜻도 ‘좋은’, ‘착한’, ‘유용한’, ‘이로운’ 등 다양한 뜻으로 쓰이며 많은 경우 이중 혹은 삼중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그 중에 서 특기할 만한 것은 안토니오와 바사니오를 위시해서 작품에 등장하는 상인, 신사 및 귀족뿐만 아니라 돈의 힘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이름에 ‘good’을 붙이는 것이다. 이는 칭호에 관행적으로 붙이는 수식어이긴 하지만 2막 1장에서 집중적으로 ‘good’을 사용하는 포시아와 네리사의 대화를 살펴보면 ‘good’의 의미 중에서 현실적으로 유익하거나 도움이 되는 뜻−“좋은 운”(good fortune), “유익한 일”(good to do, good to be done), “도움이 되는 견 해”(good, divine, good counsel, good inspiration)−이 부각되어 이 어휘가 지닌 금전적 혹은 정신적 이익의 의미를 떨쳐버릴 수 없다. 더불어 4막 1장의 재판 장면에서 포시아를 위시한 다른 인물들이 샤일록의 재산을 ‘property’ 대신에 반복해서 ‘goods’로 언급하는 것을 고려할 때 ‘good’이 지닌 현실적인 이득의 의미는 작품 전체를 주도하며 칭호 앞에 붙은 ‘good’의 의미마저 현실적인 이 해관계를 근저에 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란슬롯이 독백 을 시작하기 바로 전에 쓰인 ‘good’도 모로코 왕자의 ‘good fortune’으로 다시 한 번 ‘good’이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돈과 재산, 모험과 운의 모티브에 연결 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악마가 란슬롯에게 권하는 것은 결국 현실적으로 이익이 되는 선택이다.

그리고 악마의 충고를 따라 샤일록을 떠나는 란슬롯은 기아에서 벗어나 멋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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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이 상징하는 풍요로운 의식주를 보상받는다. 물론 샤일록은 란슬롯에게 바 사니오의 집에서는 자기 집에서처럼 실컷 먹지 못하리라 악담을 하지만 (2.5.3-4), 란슬롯이 활수한 바사니오−“방탕한 기독교인”(the prodigal Christian 2.5.15)−의 집에서 빌려간 돈을 탕진하는 데 일조를 할 것이라 평하는 점 (2.5.49-50)에서 란슬롯의 ‘good’의 선택은 물질적인 이익을 내포하고 있다.

반면 란슬롯의 독백에서 양심은 연속적으로 4번 란슬롯을 ‘정직한 란슬롯’

(honest Lancelot)이라 부른다. 무려 60번 이상 나오는 ‘good’과 달리 ‘honest’는 작품 전체에서 단지 12번 나온다. 란슬롯의 독백과 이어지는 란슬롯과 고보의 대화에서 나오는 8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honest’는 단지 4번 나올 뿐이다.

‘honest’의 의미와 관련하여, 첫째는 아이러니하게 여성의 정조를 풍자적으로 빗대어 암시하는 용법−정직한 여인(honest woman 3.1.7)−으로 란슬롯의 독백 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그가 임신을 시킨 무어인 하녀의 정조를 반어적으로 풍 자하는 음탕한 광대-하인의 농담과 연관된 용법이 있다. 두 번째는 고보를 묘 사하는 데서 그를 “정직한 늙은이”(this honest old man 2.2.132) 혹은 “정직하 여 지나치게 가난한 사람”(an honest exceeding poor man 2.2.48))으로 부르는 경우로, 정직함은 가난과 비천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셋째, 발타자를 “정직하며-진실한”으로 부르는 포시아의 대사에서 정직과 진실, 진정 성의 연관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끝으로 양심이 란슬롯을 부를 때 쓰는 ‘정직 한’을 제외한 의미심장한 ‘honest’의 사용 예는 솔라니오(Solanio)가 안토니오를

“good Antonio”라고 칭한 뒤 바로 이어 “honest Antonio”라고 칭하는 경우이다.

이는 솔라니오는 살라리노(Salarino)로부터 안토니오의 배 굳윈즈(Goodwins)가 좌초했다는 소문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 소문을 낸 여인이 정직하지 않고 거 짓에 능란한 여인이길 바라며 안토니오가 금전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파란을 겪을 것을 한탄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장면이다(3.1.10-14). 솔라니오의 ‘good Antonio’와 ‘honest Antonio’의 연속적인 대치는 이전의 ‘honest’의 용례를 고려 할 때 안토니오가 겪게 될 금전적인 궁핍과 파란을 예견한다. 작품 전체에서 쓰인 ‘honest’를 염두에 두고 볼 때, 양심이 란슬롯에게 반복해서 사용하는

‘honest’는 가난과 진실, 그리고 진실을 지키기 힘든 상황들을 모두 포괄적으로 내포한다. 결국 ‘honest’에 대한 란슬롯의 고민은 상업과 금융이 사회의 전반적 인 체계를 지배하는 초기 자본주의의 시대에 ‘honest’를 고수하는 것이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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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honest’를 통해 결혼이든 주종관계든 신의와 충절 혹은 정조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암시한다.

란슬롯의 고민이 지닌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직과 유용의 대비만큼이나 양심과 악마가 제시하는 충고의 대비도 문제를 미로 속으로 빠 뜨린다. 란슬롯을 가운데 놓고 서로의 주장을 펼치는 양심과 악마는 4막의 법 정 장면을 예견해준다.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라고 제시하는 악마의 충고와 군주제에서 중요한 덕목인 충절을 지키라는 양심의 충고는 언뜻 보기에 간단 한 선택의 문제처럼 보인다.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흔들 수 있는 충절의 포기, 즉 배반은 중죄이므로 무조건 따라야할 엄명이다. 충절을 버릴 경우 국가적 차 원에서는 반역이며, 사회와 경제 차원에서는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약조의 불이 행, 가정의 차원에서는 바사니오와 포시아의 관계에서 부정, 그리고 작품에서 풍자적으로 언급되는 혈통의 불확실성이며, 포시아와 제시카와 그들의 아버지 에 대한 거역의 문제로 이는 무질서와 혼돈의 주범이다. 그것은 법으로 정해지 기 이전의 기본적인 덕목이면서 사회가 지켜야할 가장 주된 버팀목과도 같은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란슬롯의 선택은 도덕적으로 혹 은 정치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는 선택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란슬롯이 떠나는 대상 은 누구인가? 바로 희극적이든 비극적이든 악한인 샤일록이다. 그가 양심의 충 고를 따라 충절을 지키면 ‘악마의 화신 자체’(a kind of devil; the very devil incarnation)를 섬겨야하며 샤일록을 떠나려면 악마의 뜻을 따라야한다. 란슬롯 이 기독교인이었는지는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가 표출하는 반-유대주 의를 고려할 때 그를 기독교인으로 가정하면, 이는 기독교인의 근본적인 도덕 적 고민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그의 고민은 제시카의 고민이기도 한다. 로렌 조가 “현명하고, 아름다우며, 진실한”(wise, fair and true 2.6.56) 페트라르칸 연 인으로 찬미하는 제시카도 그에게 진실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버지인 샤일록과 종교적인 믿음을 배신해야 한다(Halio 44).

제시카의 고민에 비해 란슬롯의 고민의 깊이는 훨씬 더 복잡하며 도덕적인 정의와 자비의 차원을 넘어 철학적인 선과 악의 문제로 확장된다. 양심과 악마 의 상반된 충고에 대해 그는 악마의 충고도 좋다고 하고 양심도 충고를 잘한 다(you counsel well)고 말한다. 양심과 악마 모두 그르지 않으며, 선과 악이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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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백처럼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그는 경계와 구분이 없는 도덕적인 선택 의 수렁에 빠져 쉽사리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 선택의 미로에서 마지막 이 성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란슬롯은 독백 속에서 자신 내면 깊이에서 우 러나오는 고민을 다시 독백으로 읊조린다. 그리고 그 독백 속의 독백은 관객을 자신과 같이 도덕적 판단의 수렁으로 곤두박질치게 한다. 이제 관객도 어떤 선 택이 옳은지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양심의 충고를 따라 악마의 화신인 샤일록 을 섬기냐 아니면 악마의 충고를 따라 악마의 화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가?

악마의 화신과 같이 있기를 요구하는 양심은 진정 선인가? 악마로부터 떠나라 는 악마는 정말 악인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악마의 충고를 따르면 충절을 지키지 못하는 문제가 남고 양심을 따르면 계속 악마의 화신을 섬기며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배반해야한다.

선택의 길에서 진퇴양난은 란슬롯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흑백 논리에 따른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구분의 불가능성을 란슬롯은 제시카 와의 대화에서 다시 음탕한 풍자로 도입한다. 란슬롯에 따르면 제시카는 유대 인이라는 허물을 벗어나기 위해서 로렌조와의 결혼만으로는 부족하다.7) 제시 카는 그녀의 남편이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지만 란슬롯이 보기에 유일한 해결책은 그녀의 아버지가 샤일록이 아니라 어머니가 정조를 버리고 바람을 펴서 다른 남자, 즉 기독교인 아버지에 의해 태어났을 가능성을 상정한다. 란슬롯 자신도 이 가정은 보기에 “개 같은 희망”(a kind of bastard hope)이고 제시카가 동의하듯이 더러운 희망이다(3.5.3-14). 결국 제시카는 자신 이 타고난 죄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간음이라는 죄를 전제로 해 야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기독교인이 되고”(become a Christian)자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것도 아버지와 자신의 종교, 그리고 아버지의 재산까지 탕진하

7) 이 문제에 대해서 자넷 아델만(Janet Adelman)은 “그녀의 아버지의 피”(Her Father's Blood)라는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봉건주의의 종교에 의한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구별에서 근대 사회의 국가의 출현과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운데 유대 인과 기독교인의 구별의 문제가 인종과 혈통의 문제로 변화되었음 추적하면서 제시카의 결혼이 왜 완전한 기독교 사회의 국가 안으로 편입되는 필충 조건이 되지 못함을 상세 히 기술한다. 그녀는 한 나라, 통합된 국가를 형성하려는 전반적인 노력 가운데 왜 끊임 없이 유대인이 차별의 대상이며 온전한 국가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는지를 설 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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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로렌조를 따라 나서는 것이 옳은 것인가? 제시카는 어느 선택을 해도 란 슬롯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인 오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란슬롯은 악마의 충고를 따라 현실적으로 유익한 선택을 한다. ‘good’이라 는 단어가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와 그의 무리들을 칭하는데 무수히 많이 쓰이 고 ‘honest’는 단지 한 번 안토니오만을 칭할 때 쓴 점을 다시 되새길 때 그의 선택은 근대 상업자본주의 베니스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가? 란슬롯의 독백은 끝나고 그는 눈먼 아버지 고보를 놀려대며, 그에게 축복의 기도를 요청 하며 무대 위에서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펼치고 있지만 그의 고민은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의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악마의 화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마를 따르냐 아니면 양심을 따라 악마를 섬기냐? 켐프와 같은 희극 배우가 관객과 웃고 호흡하며 제기하는 풀기 힘든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은 관객에게 끝 없는 극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그른 것 인가? 자신도 찌르면 피가 난다는 샤일록의 항변과 정의에 대한 무모한 집착이 정말 그른 것인가? 포시아가 말하는 자비의 판단은 정말 자비롭고 선한 것인 가? 재산도 모두 몰수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마저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라 는 자비의 선처가 “아니, 내 생명과 모든 것을 가져가시오”(Nay, take my life and all 4.1.370)라는 샤일록의 외침 앞에서 정말 선하고 옳은 판단인가? 셰익 스피어의 란슬롯은 독백을 통해 끝없는 질문을 양산하며 극이 끝나고도 관객 을 놓아주지 않는다.

결론

셰익스피어의 광대-하인 란슬롯은 극 전체에 대한 평자로서 극의 주제를 압축하고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역할을 아마도 희랍극의 코러 스와 그리 다르지 않으며 그는 작품의 모든 인물들의 관계와 극의 전체 흐름 을 거울처럼 비추는 인물이다. 란슬롯의 독백은 바로 셰익스피어가 광대에게 부여한 역할을 완전히 승화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베로나의 두 신사 에서 론스가 믿었던 충견이 떠나는 자신에게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냉혹한 배 신에 몸부림치며 긴 독백을 관객에게 풀어내며 발렌타인(Valentine)의 친구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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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티우스(Proteus)의 배신과 우정의 문제를 압축하듯이, 베니스의 상인 의 란 슬롯은 독백에서 양심의 선택을 바탕으로 주인-하인의 문제, 나아가 작품 전반 을 지배하는 약조의 문제를 도입한다. 또한 그의 독백은 단순한 약조와 배신의 문제를 넘어서 옳고 그름, 선과 악, 그리고 정의와 자비의 문제까지도 함축적 으로 내포한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고찰로 나아간다.

이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이 극적 수사학과 연출법을 통해 마치 포스트 모던 극의 한 장면, 혹은 희화화된 내면극의 한 장면처럼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란슬롯은 무대 위에서 광대 배우로서 관객과 마주하며 관객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요구하는 일대일의 직접적인 호소를 한다. 그리하여 그 의 고민은 관객의 고민이 되고 관객은 그가 희화화하는 극중의 다른 인물들이 처한 문제를 그의 고민의 잣대로 저울질한다. 웃음을 통해 관객에게 문젯거리 를 던져주는 란슬롯은 에라스무스(Erasmus)가 우신예찬 (Praise of Folly)에서 르네상스 문학의 한 전통으로 세운 어리석음을 가장한 교훈, 어리석은 현인 (wise fool)의 한 예가 된다. 궁극적으로 란슬롯은 작품 전체를 꿰뚫고 집약하 는 구심점이며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마우스피스로 등장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주제어: 베니스의 상인 , 정의, 자비, 선과 악, 란슬롯, / The Merchant of Venice, Justice, Mercy, Good and Evil, Lance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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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rchant of Venice: Lancelot's Dramatic Significance

Abstract Jang-Hyun Nam

The Merchant of Venice is one of the most controversial in Shakespeare’s plays, having enjoyed theatrical popularity as much as Hamlet. Despite a great range of criticism, Lancelot Gobbo, the clownish servant, has been slighted by a lot of scholars whose interests are directed to Shylock and the problem of anti-Semitism in the work. In this article, therefore, I would like to examine Lancelot's dramatic significance with regard to one of the main thematic issues of the play such as justice versus mercy, which is subsequently intertwined with the matter of good and evil as well as that of right and wrong.

Before discussing how abundantly Lancelot's soliloquy presents those moral problems, I conduct a brief survey of critical history on anti-Semitism and its consequent moral themes and then investigate the extra-dramatic potential of Lancelot who is very likely to have been played by one of the most influential comic actors in the Shakespearean age, William Kempe.

The second part of the article investigates the repartee between his father Gobbo and himself in Act 2 scene 2. Here, his fundamental problem is whether he should leave Shylock, that is, he faces the moral and religious dilemmas of keeping or breaking his bond with Shylock his master. It allegorically represents the problem of Portia and Jessica who should decide to either follow or betray their father’s will. Breaking a bond i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matter of Antonio and Bassanio, who cannot avoid breaking their respective ties with Shylock and Portia in one way or another.

The final section follows with a substantial analysis of Lancelot's allegorical and satiric soliloquy where he delves into the serious moral problem of good and evil and consequently justice and mercy. In his repercussive role of mirroring the moral dilemma of main characters like Portia, Bassanio, Jessica and so on, he morally dramatizes his problem in which two opposite par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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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st on their own opinions. Particularly, Lancelot's soliloquy, predicting the court room scene in Act 4, consists of two pairs of opposites, that is, ‘good’

and ‘honest’ and devil and conscience. Through a complicated crisscross match of these two contrasting pairs, Shakespeare shows how deeply Lancelot falls into the abyss of ambivalence between good and evil and ultimately demonstrates the impasse of judgment between them. Lancelot’s comical wondering in his soliloquy challenges the complacency of simplistic moral divisions, drives the audience into a complete cul-de-sac of judgment, and continuously engenders a myriad of almost unanswerable questions just as the play itself does.

남 장 현 (단독연구)

인하공업전문대학 어학교양학부 leonord@hanmail.net

논문투고일: 8월 10일 논문심사일: 8월 11일 ~ 31일 게재확정일: 9월 10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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