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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과 <이춘풍전>의 비교문학적 연구*

1)

권 오 숙 (한국외대)

I. 들어가는 글

16세기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과 19세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판소리 정착본 소설 <이춘풍전>은 시공간을 달리하면서도 유사한 점이 대단히 많다. 두 작품은 능력 있고 현명한 아내, 여 주인공의 남장(男裝)과 치죄 장면 등의 설정에서 유사한 모티브들을 지녔으며 이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유형 및 성격에서도 유사한 점이 많다. 아내의 덕으로 놀고먹는 춘풍은 방탕한 생활로 파산한 귀족 밧사니오(Bassanio)에 상응하며, 지혜롭고 능력 있는 춘풍의 처 김씨는 뛰어난 기지의 소유자로서 베니스 법정 에서 샤일록의 궤변을 제압하는 부유한 상속녀 포샤(Portia)에, 배금주의에 사로 잡힌 몰인정한 기녀 추월이는 냉혹하고 탐욕스러운 유대인 샤일록(Shylock)에 각각 상응된다.

물론 베니스의 상인 과 <이춘풍전>은 스케일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베 니스의 상인 에서는 인종적, 종교적 차별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다루어지고 있

* 이 논문은 2011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NRF-2011-35C-A00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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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반해, <이춘풍전>은 무능한 가부장의 그릇된 권위와 허영에 초점을 맞춘 가정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긴 하더라도 이 두 작품은 엄청난 역사적․문화 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셰익스피어와 우리 문학과의 비교 연구는 그다지 많은 연구 결과 를 낳지 못했다. 또한 몇 안 되는 연구들이 <춘향전>과의 비교에 치우쳐 있다.

그 동안 진행되어온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1969년 한노단이 쓴 「‘햄릿과 춘향 전-그 Analogy를 중심으로」( 국제문학논지 7호)가 셰익스피어 극과 우리 고전 의 비교 연구의 시발점이었다. 그 뒤를 이어 1978년 최금순의 방자와 폴스태 프의 성격대비론 (고려대 석사학위 논문), 1982년 김우탁의 「Shakespeare 극과 판소리의 비교 연구」( 인문과학 11, 성균관대), 1994년 김주현의 영어비평서인 셰익스피어에 관한 동서문화간 에세이 (Bi-cultural Essays on Shakespeare)에 수록된 “Parallel Examples of Chastity: East and West”, 최수정이 석사학위논문 으로 쓴 Romeo and Juliet과 <춘향가>의 비교 연구 , 강석주의 「로미오와 줄 리엣 과 <춘향전>의 사랑에 대한 소고」, 김현생의 「판소리 <춘향가>와 셰익스 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비교 연구—사랑의 주제를 중심으로」를 들 수 있다.

조성원이 조금 독특하게도 끝이 좋으면 다 좋아 와 <춘향가>를 비교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 군주에게 말걸기: 셰익스피어의 끝이 좋으면 다 좋아 와 <춘 향가>의 비교문화적 연구 (Talking to the Monarch: A Cultural Comparison of Shakespeare’s All’s Well that Ends Well and Sin Joe-Hyo’s Nam Chang Chun-Hyang Ka)도 있다.

플롯상으로나 사회 문화적 배경 면에서 <이춘풍전>과 베니스의 상인 은 분명 비교의 여지가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 두 작품에 대한 비교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본 연구는 두 작품이 탄생한 시대의 사회적 변동과 장르 상의 특징, 두 작품의 소비 주체에 천착하여 두 작품을 비교 고찰하고자 한다. 비교 문학 연구의 방법에는 발생론 적 연구와 유형론적 연구가 있다. 전자는 비교 대상간의 영향 관계가 직접적일 때 취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그렇지 않을 때 취하는 방법론이다. 초기에는 비교 문학하면 영향 관계를 따지는 발생론적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비교 문 학을 영향 연구에만 한정시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전 문학과 중국 문학, 현 대 문학과 일본 문학 혹은 서구 문학과의 영향 연구에 한정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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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영향 관계가 없는 <이춘풍전>과 베니스의 상인 의 비교 연구는 후 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두 작품의 플롯 상의, 인물의 성격상 의, 시대 배경상의 유사점에 천착하여 유형론적으로 비교분석하였다.

II. 베니스의 상인 과 <이춘풍전>의 유사성

어떤 두 작품을 비교 문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비교의 근거가 되는 공통점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선 두 작 품의 플롯상의 유사점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이춘풍전>은 판소리계 소설의 영향을 받은 세태소설류로서 풍자성이 강 한 것이 특징이다. 이 소설에서는 춘풍이나 추월을 통해 당대 가부장 문화와 배금주의 사회상을 비판한다. 춘풍은 가부장적 권위 의식을 지니고 있으나 그 에 부합하는 책임감을 갖추지 못했고 물신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면서도 정작 돈을 버는 일에는 무능한 남편이다. 이런 춘풍의 모습에서는 구시대의 관습을 버리지도 못하고 새 시대의 가치를 구현하지도 못하는 과도기적 인간상을 볼 수 있다. 이렇듯 불건전한 가장의 행태를 묘사 비판하면서 춘풍의 처를 작품 전면에 내세워 뒤틀린 가부장에 대해 징치와 교정 역할을 부여한다.

춘풍은 갑부 부모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기생을 끼고 산해진 미와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기방이나 노름판에서 돈을 물 쓰듯 한다. 작품 초 반에 이런 춘풍의 생활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춘풍이 외입하여 하는 일마다 방탕하고 세전지물(世傳之物) 누만금(累萬 金)을 남용하여 없이할 제 남북촌(南北村) 외입장이와 한 가지로 섭실려 다니며 호강하여 주야로 노닐적에. . . 청루미색(靑樓美色) 달려들어 수 천금을 시각에 없이하니 천하 부자 석숭(石崇)인들 그 무엇이 남을손가, 티끌같이 없어지고 진토(塵土)같이 다 마른다. (413)

이런 방탕하고 호사스런 생활로 소설 초반에 파산한 춘풍은 가정의 모든 일을 아내에게 맡긴다는 수기까지 쓰면서 사정하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가장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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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을 보인다.

하지만 춘풍의 처는 남편이 치산에 실패하는 상황에서 신세 한탄이나 하고 수동적 자세로 남편을 원망만 하는 소극적인 여성이 아니다. 춘풍과는 대조적 으로 바느질 등 부지런히 일을 하고 그렇게 번 돈을 이자놀이를 하여 다시 재 산을 일구고 가세를 일으킨다.

침재 길쌈 능난하니, 오 푼 받고 새 버선 짓기, 서 푼 받고 새김 볼 박기, 두 푼 받고 한삼(汗衫) 짓기, 서 푼 받고 헌옷 깁기, 너돈 받고 창옷 짓기, 닷 돈 받고 도포(道袍)하기, 엿 돈 받고 천익(天翼) 짓기, 일곱 돈 받고 금 침(衾枕)하기, 한 량 받고 돌찌 누비, 삼량 받고 긴옷 누비, 두량 받고 바 지 누비, 사 량 받고 관복(官服)지며, 겨울이면 무명 나이, 여름이면 삼베 길쌈, 가을이면 염색하기, 이렁성 사시장철 주야로 쉴 새 없이 사오 년을 모은 돈을 장변이며 월수 일수 놓아 불려 수천금을 모았고나. (415)

이런 김씨의 치산 능력은 춘풍의 무능력과 대조를 이루며 조선 후기 남녀의 지위와 역할 변화를 보여준다.

그런데 춘풍의 처가 억척같이 치산하여 다시 가세가 살아나자 춘풍은 다시 교만해진다. 아내의 돈과 호조에서 빌린 이자돈을 합쳐 이천 오백 냥을 가지고 평양으로 장사를 떠나고자 한다. 장사에 경험이 없는 춘풍이 빚까지 내어 평양 으로 가려하자 김씨가 춘풍이 쓴 수기를 들먹이며 이를 만류한다. 그러자 춘풍 은 김씨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다.

춘풍이 이 말 듣고 대노하여 어질고 착한 아내 머리채를 휘잡아 선진시 진(縇廛市廛) 비단 감듯, 상진시진 연줄 감듯, 사월 파일 등대 감듯, 뱃사 공의 닺줄 감듯, 휘휘 칭칭 감아쥐고 이리 치고 저리 치며,

“천리원정(千里遠程) 장사길에 요망(妖妄)한 계집년이 잔말을 이리 하니, 이런 변 또 있는가?” (415-16)

춘풍이 이처럼 아내에게 폭력과 폭언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무력을 사용하여 감추려는 가부장 권위주의의 추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집을 나선 춘풍은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탐욕스런 기녀 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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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유혹당하고 만다. 추월의 탐욕의 먹잇감이 되어 돈을 홀딱 날리고 그녀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기에 이른다. 이때 추월이 온갖 교태로 춘풍의 돈을 울궈내 는 묘사에서 탐욕스런 물질주의가 만연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빈털 터리가 된 춘풍이 추월에게 사환으로라도 부려달라고 애걸하는 장면은 앞서 아내에게 수기를 써주며 애걸하는 장면과 함께 남존여비라는 전통적인 사고 방식이 와해되고 있는 시대상을 보여준다.

남편이 이런 비참한 처지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을 구해내고 개과천 선을 시키고자 춘풍의 아내가 택한 것은 남장(男裝)이다. 김씨는 변복을 하고 회계비장이 되어 평양감사를 따라 평양으로 간다. 그리고는 추월과 춘풍을 잡 아들여 그들의 죄를 취조하고 곤장으로 다스려 추월이 우려간 돈을 이자까지 붙여 춘풍에게 돌려주게 한다. 하지만 그 회계 비장이 자신의 아내인지 모른 채 추월로부터 원금에 이자까지 돌려받고 평양에서 돌아온 춘풍은 장사에서 돈을 남긴 냥 의기양양하며 김씨 앞에서 허세를 부린다.

“안주도 좋지 않고 술맛도 무미하다. 평양서는 좋은 안주로 매일 장취하 여 입맛이 높았으니 평양으로 다시 가고 싶다. 아무래도 못 있겠다.

. . .

평양일색 추월이와 좋은 안주 호강으로 지내더니 집에 오니 온갖 것이 다 어설프다. 호조돈이나 다심하고 약간 전량 소쇄하여 전주인에게 환전 부 치고 평양으로 내려가서 작은 집과 한가지로 음식을 먹으리라.” (426-27)

김씨는 처음에는 남편의 가장(家長)으로서의 체면을 생각하여, 혹은 춘풍의 권 위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가장으로 복귀시키려고 변복했던 사실을 숨긴 채 평 양에서의 일을 모른 척 하려 한다. 그러나 춘풍의 이런 허세에 다시 비장의 옷 으로 갈아입은 다음 나타나 춘풍을 주눅들게 한다.

“네 평양에서 추월의 집 사환 할 적 형용도 참혹하고 걸인 중 상거지라, 추월의 하인되어 봉두난발 헌누더기 감발버선 어떻더냐.”

춘풍이 부끄러워 제 계집이 문 밖에서 듣는가 민망하건만은, 비장이 하는 말을 제가 어찌 막을쏜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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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라. 추월의 집에서 깨어진 헌 사발에 누룽밥 토장덩이에 이지러진 숫가락도 없이 먹던 생각하고 먹으라.” (427-28)

이렇게 한창 춘풍을 조롱한 춘풍의 처는 입고 있던 남장을 벗어 회계 비장이 자신이었음을 밝힌다. 그제서야 춘풍은 각성하여 아내를 존중하고 가정에 충실 한 남편으로 개과천선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춘풍은 사고가 단순하고 무능력하며 건전한 사고방식이나 목 적의식이 결여된 자이다. 그러면서도 가정 내에서는 남편이라는 가부장적 권위 를 주장한다. 그에게서는 남존 여비 사상에 젖은 남편의 전형적인 행동방식을 보게 된다. 이런 춘풍의 모습에는 조선 후기 남성들의 봉건적 권위와 방탕한 생활, 무능력이 모두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소설은 모순되고 불합리한 가부장 사회상을 드러내 보여준다. 반면 지혜롭고 적극적인 춘풍의 처를 통해서는 적 극적이고 지혜로운 근대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 에 등장하는 젊은 귀족 밧사니오도 춘풍처럼 방탕하고 사 치스런 생활을 하다 파산한 귀족이다. 그는 이미 안토니오(Antonio)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터였으나 자신의 표현처럼 “미약한 수입으로는 끌어가기 힘든”

사치스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다음 대사는 밧사니오의 방탕한 일면을 잘 보 여주는데 위의 춘풍의 생활상과 아주 흡사하다.

밧사니오: 안토니오, 자네도 모르는 바가 아니지 않는가, 미미한 재산으로 지속할 수 있는 이상으로 낭비벽이 심한 생활로 인해서

내가 재산을 얼마나 탕진해버렸는지를. 이제 그런 호사스런 생활을 줄여야 해서 한탄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걱정거리는 나의 과거 방탕함으로 인해서 내게 남겨진 큰 빚 때문이라네. 안토니오 자네에게 금전적으로나 우정에 있어서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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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 ‘Tis not unknown to you Antonio How much I have disabled mine estate, By something showing a more swelling port Than my faint means would grant continuance.

Nor do I now make moan to be abridg’d From such a noble rate, but my chief care Is to come fairly off from the great debts Wherein my time (something too prodigal) Hath left me gag’d: to you Antonio

I owe the most in money and in love, (1.1.122-31)

이렇듯 방탕한 생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밧사니오는 경제 문제를 해 결하고자 돈많은 상속녀 포샤에게 청혼 모험을 떠나려 한다. 이 청혼 모험의 경비를 마련해 주고자 안토니오는 자신에 대해 대단히 반감을 지니고 있는 유 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인육을 담보로 한 채무를 빌리게 된다. 이렇듯 춘풍과 밧사니오는 둘다 자신의 힘으로 부를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부유한 집 안의 자제로서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허비하는 인물들이다. 게다가 이 둘은 빚 을 내어 한탕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을 보인다.

밧사니오는 포샤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함고르기 테스트를 현명하게 치 루어 포샤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죽은 아버지의 유언이 살아있는 딸의 배우자 를 결정한다는 설정에서 당대 영국 사회의 부권주의를 잘 엿볼 수 있다. 포샤 는 죽은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거부할 수도 없고 마음 에 드는 자를 선택할 수도 없는 상황에 대해 한탄한다. 하지만 포샤는 부권에 대해 전면 부정하기 보다는 지혜를 발휘하여 이 억압적 상황을 극복한다. 예전 부터 밧사니오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던 포샤는 시녀들로 하여금 자신의 초상 이 들어있는 옳은 함인 납(lead)함과 같은 각운을 가진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밧사니오의 납함 선택에 힌트를 제공한다. 가부장의 유언에 따르면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가 원하는 남편의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지혜로 가부장제의 강압적 측면을 극복한다.

밧사니오가 이런 행운을 누리는 동안 안토니오가 파산하게 되고 샤일록과 의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목숨을 빼앗길 처지가 되었다는 베니스 소식이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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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다. 포샤는 밧사니오에게 안토니오를 구해낼 돈을 후하게 제공할 뿐만 아니 라 젊은 법학박사 발타자(Balthazar)로 변장을 하고 베니스 법정에 나타난다.

포샤는 샤일록의 악의를 뛰어난 기지로 제압하고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해낸다.

게다가 외국인으로부터 내국인을 보호하는 베니스의 법을 적용하여 안토니오 의 목숨을 노린 샤일록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의 목숨은 공작의 처분에 맡긴다.

이는 마치 김씨가 회계비장으로 변장을 하고 평양으로 가서 취조를 통해 추월 이 춘풍에게서 앗아간 돈을 이자까지 쳐서 물게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재판이 끝나고 모두들 벨몬트로 돌아온 뒤 포샤는 밧사니오에게서 감사의 표시로 받아둔 반지와 벨라리오(Bellario) 박사의 편지를 통해 젊은 법학박사가 자신이었음을 밝힌다. 이는 마치 춘풍의 처가 다시 회계비장의 모습으로 나타났 다 옷을 벗어 자신이 회계비장이었음을 춘풍에게 밝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포 샤는 자신이 사랑의 정표로 준 반지를 그리 쉽게 빼어준 것에 대해 밧사니오를 강하게 질책한다. 춘풍의 처가 자신이 회계 비장이었음을 밝혀 남편의 존중을 얻어내듯이 포샤 또한 이 반지 트릭을 통해 가정생활에서의 기선을 제압한다.

지금까지 두 작품의 플롯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사점을 살펴보았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유사점은 방탕하고 무기력한 남편과 능력있고 지혜로운 아내라 는 인물의 설정과 두 작품의 여주인공이 남장을 하고 기지와 재치를 발휘하여 재판을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외양적 플롯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춘풍의 처나 포샤가 보여주는 적극적인 면모와 주도면밀함에서도 유 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춘풍의 처는 남편이 기생의 치마폭에 수중의 돈을 다 날리고 종살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기존 여성들에게 강요되던 미덕 인 인내와 순종에 갇혀 있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이 잃은 돈과 남편의 위치를 되찾아줄 계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한다. 게다가 남편을 구하러 평양으로 가기 위해 장차 평양감사가 될 양반의 어머니인 모(母)부인의 마음을 미리 사두는 주도면밀함을 보인다. 결국 모부인의 아들이 평양감사가 되어 부임할 때 춘풍 의 처는 그간에 벌어진 일들을 소상히 아뢰고 남장을 하고 회계비장이 되어 따라갈 수 있도록 허가를 얻어낸다.

포샤 또한 남편 밧사니오가 평생 안토니오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게 될지도 모를 상황을 막아내고자 베니스의 법정에 적극 개입한다. 그 과정에서 적극성과 주도면밀함을 보인다. 포샤는 샤일록을 설득하여 그가 자발적으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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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베풀어서 소송이 원만히 해결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샤일록은 끝까지 차 용 증서에 쓰인 “문자대로” 법을 이행할 것을 고집한다. 그러자 명민한 포샤는 차용증서대로 시행하되 안토니오를 치료할 의사를 법정에 데려오자고 제안한 다. 하지만 샤일록은 이런 최소한의 인정도 문서에 명기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 로 허용하지 않는다. 포샤의 이런 제안은 “증서에 쓰인 대로”를 부르짖는 샤일 록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다. 즉 마지막 순간에 포샤는 안토니오의 살을 떼어내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결정적인 판결을 내린다. 증서에 는 오로지 살 1파운드만 쓰여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증서를 자구적으로 해석 하며 악의를 행사하던 샤일록을 똑같은 방식으로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다. 포 샤가 자신과 똑같이 증서를 자구적 해석하자 샤일록은 포샤가 내린 판결에 복 종할 수 밖에 없게 되며 결국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지게 된다. 이런 상 황을 유도하는 포샤의 재판 과정에서 주도면밀함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포샤의 주도면밀함을 보여주는 것은 반지 트릭(ring trick)이다. 밧 사니오가 올바른 함을 고른 뒤 포샤는 당시 결혼 관습대로 자신의 모든 재산 을 밧사니오에게 바친다. 하지만 이때 밧사니오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이 사랑 의 정표를 그의 손에서 빼는 순간 자신에게 심히 질책을 받을 것이란 경고를 한다. 그리고는 재판정에서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한 뒤 그 은공에 보답하고자 하는 밧사니오에게서 굳이 그 반지를 받아낸다. 이 반지 트릭은 포샤가 가부장 제를 지혜로 극복하는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녀는 가부장인 밧사니오에 복 종하는 척하지만 밧사니오가 반지를 소유하고 있을 때만 그녀의 “주인이요, 지 배자이며 왕”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재판 후 기어코 그 반지를 감사 선물로 받아내고는 반지의 상실을 빌미로 지배적인 위치에 있던 밧사니오의 권리를 박탈하고 지배권을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포샤의 기민한 재치와 주도면밀함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두 여성들의 남성 세계 개입이 모두 원만한 결혼 생활의 견고한 기초를 마련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 다. 춘풍의 처는 가장을 기생의 품에서 끌어내 가정에 충실한 남편을 만들고자 평양으로 간다. 반면 포샤는 자신의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안토니오를 샤일록의 손아귀에서 구해낸다. 남편과 지고지순한 우정을 나누는 안토니오가 자칫 샤일 록의 피해자가 됐을 경우 밧사니오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초래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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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적극 개입하여 막은 것이다. 그리고는 밧사니오와 안 토니오에게 두 남자의 우정보다 부부간의 사랑과 의무가 우선함을 확인시킨다.

나아가 안토니오로 하여금 자기 부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의 보증인이 되게 한 다. 안토니오는 베니스에서 밧사니오의 채무를 위해 보증인이 되었듯이 벨몬트 에서는 그가 충실한 가장이 될 것이라는 서약에 보증을 하는 상황이 된다.

또한 이 두 작품에는 화폐경제 체제로 변모된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배금주 의가 잘 담겨져 있다. 베니스와 평양은 교환 가치와 경제적 이해타산이 가장 중시되는 상업 도시이다. 셰익스피어가 베니스를 주무대로 설정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인육재판 플롯의 원전인 지오반니(Ser Giovanni) 의 일 페코로네 (Il Pecorone)의 배경이 베니스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상업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다루기에 일찍이 동방 무역을 시작하여 유럽에서 가 장 번성한 도시였던 베니스가 최적지였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대사 속에서도 거대한 상선, 무역 거래선, 공증인, 고리 대금업자 등의 어휘들이 그런 베니스 사회를 잘 보여준다. 게다가 베니스는 상거래가 중심인 도시여서 본디 재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장소였고 여러 민족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국제적인 도시이 기도 했다.

반면 <이춘풍전>에서는 춘풍이 평양으로 장사를 떠난다는 데서 배금주의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춘풍의 처가 바느질, 길쌈으로 재산을 모으는 것도 노동이 화폐로 환산되는 상공업이 대두된 사회상을 나타내준다. 두 작품 모두에서 이자를 목적으로 한 대금업이 등장하는데 이렇듯 두 작품은 새로운 경제 체제의 등장과 그로 인해 변화해가는 시대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두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다른 유사성은 사회적 타자에 대한 차별 혹 은 소외된 계층의 법적 불이익 양상이다. 두 작품 모두 재판 장면이 등장하나 베니스 사회의 타자라 할 수 있는 유태인 샤일록과 여염집 아낙이 아닌 기생 추월에 대한 판결은 결코 공평하다고 볼 수 없다. 회계비장의 모습으로 춘풍과 추월을 단죄하는 춘풍의 처의 태도는 대단히 감정적이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공평무사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춘풍의 처는 춘풍이 평양에서 날린 원돈 이 천오백 냥에 호조의 이자까지 추월에게 물리어 오천 냥을 추징한다.

그런데 이렇게 추월이 일방적으로 단죄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 논란이 많 았다. 예를 들어 진은진은 <이춘풍전>에는 기녀와 아내라는 두 여성 형상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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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다고 주장하며 “추월의 행동은 기녀로서 정당한 경제 활동을 한 것이기 때 문에 추월보다는 주색에 탐닉하느라 가산을 탕진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소 홀히 한 춘풍의 죄가 더 무겁다. 그러나 춘풍의 처 김씨는 추월을 묶어놓고 죄 를 인정하라고 호령한다. 그리고 김씨가 추월을 정치하는 방식은 법적 논리적 근거에 의거한 방식이 아니라 윤리 도덕을 문제 삼는 심정적 방식”이라고 지적 했다(63쪽 참조).

사회적 소외 계층에 대해 공평무사하지 않은 모습은 법학박사 발타자로 변 장한 포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포샤의 재치 있는 판결로 샤일록은 안토니 오의 살 1파운드는커녕 원금도 받지 못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포샤는 샤일 록에게 베니스의 국법에 외국인이 베니스 시민의 생명을 노린 사실이 판명될 경우 가해자의 재산의 반은 생명을 빼앗길 뻔한 시민의 소유가 되고 나머지 반은 국고로 몰수된다는 “내국인 보호법” 위반을 적용한다. 그래서 샤일록의 재산권을 박탈하고 안토니오의 요청에 따라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한 이 재판 장면은 후대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바로 전에 포샤가 수사적 으로 멋지게 부르짖은 자비가 기독교인들끼리의 자비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 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춘풍전>과 베니스의 상인 은 사회적 타자 에 대한 차별이라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또한 유흥과 향락의 도시라는 점에서 평양과 베니스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작품은 모두 사치와 향락의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당대 사회를 풍자 하고 있다. 추월의 기방에 모여드는 한량들에 대한 다음 묘사를 통해서는 당대 조선의 향락풍조를 잘 알 수 있다.

주야로 한량들은 청산에 구름 모이듯, 수륙굿(水陸齊)에 노승(老僧)뫼듯, 개성부에 장사 모이듯, 추월의 집으로 모여와서 온갖 희롱 다하면서, 좋 은 술 별 안주에 배반(杯盤)이 낭자(狼藉)하며 청가일곡 화답하여 한창 이리 노닐적에(420)

그런가 하면 추월의 차림새, 기방의 가구, 주안상에 나온 음식, 음식을 담아낸 그릇, 온갖 종류의 술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당대의 사치 풍조를 고스란히 담 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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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에서 밧사니오의 사치 또한 이에 못지않다. 그는 이미 큰 빚을 진데다 안토니오의 살을 담보로 샤일록으로부터 돈을 빌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청혼길에 오르기 전날 밤 샤일록을 비롯한 지인들을 초대하는 대향 연을 연다. 샤일록은 그의 만찬에 가면서 “돈을 물 쓰듯 하는 예수쟁이의 음식 을 실컷 먹어 치우기 위해 악의에서 간다”(2.5.14-15)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밧사니오는 샤일록으로부터 도망 나와 자신을 모시겠다고 하는 론슬롯 (Launslot)에게 “다른 하인들의 것보다 장식이 많이 달린 새 옷”(2.2.147-48)을 맞추어주라고 호기를 부리기도 한다.

이와 같이 두 작품에서는 플롯상의 유사점 말고도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 한 점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300년이라는 시대적 차이나 동서양이라는 거 리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발견되는 이 많은 유사점들을 설명할 길이 있 을까? ‘비슷한 경제․사회적 격변기’라는 배경과 두 작품 모두 ‘여성’이 소비 대상으로 포함된 예술 장르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III. 두 작품의 유사성을 낳은 유사한 사회 문화적 배경

베니스의 상인 을 낳은 영국 르네상스 시대나 <이춘풍전>의 배경이 되는 조선 후기는 각각 중세 봉건적 경제 구조를 지닌 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 형 성기로 넘어가는 전환기 사회였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한 16세기 영국 사회를 먼저 살펴보면 이때 영국은 봉건제 하의 농업중심 사회가 상업을 바탕으로 하 는 경제 체제로 바뀌면서 도시가 발달하고, 교육이 확대되었으며 개인주의가 대두하는 엄청난 변화와 혼란의 시기였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사회적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 문제를 그의 작품 속에 반영하였다. 특히 베니스의 상인 에는 이런 시대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에 대해 이기욱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Shakespeare가 살았던 Tudor 왕조는 “팽창과 모험”의 시대로 지칭된다.

이 시대의 희곡이나 기타의 문학작품 속에 빈번히 언급되는 항해, 폭풍 우, 해상 전투 등의 용어들은 모두 이 시대의 특성을 설명해주는 용어들 이다. 신대륙이 발견되었고 동방무역을 위한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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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새로운 지역과의 교역을 통해 얻어지는 막대한 재화는 격변의 시대 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다. . . . 상인들은 그들 자신이 건조한 상선 을 이용, 부를 찾아서 새로운 해안이나 대륙을 탐험했고, 상선의 소유자 는 장대한 모험에 그의 전 재산을 걸어야 했다. Shakespeare의 The Merchant of Venice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151)

이렇듯 당대 영국사회는 토지를 중심으로 각 계층의 유대를 강조하던 중세 봉 건적 경제 체제에서 금전 자본을 중심으로 각 개인의 이득을 무엇보다 중시하 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전환되었다.

밧사니오가 안토니오에게 포샤를 처음 설명할 때도 “벨몬트에 돈 많은 상 속녀가 있다네”(1,1.161)라는 말로 시작한다. 포샤의 아름다움이나 미덕보다도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상속녀임을 가장 먼저 언급하는 데서도 그의 결혼의 동 기가 상당 부분 그녀의 재산에 있고, 그녀의 여러 매력 가운데 부(富)를 가장 중시함을 알 수 있다. 결혼을 부채 청산의 기회로 생각하거나 구애의 목적을 황금 양털 가죽을 얻은 이아손과 같이 물질적 행운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 기는데서도 상업 자본주의 가치관이 엿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결혼에 있어서도 사랑이나 애정 같은 속성보다도 물질적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되는 상업자본주 의 시대의 배금주의를 엿볼 수 있다.

유대인 샤일록은 배금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학 속 캐릭터이다. 샤일 록의 딸 제시카(Jessica)와 그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던 론슬롯(Launcelot) 등 주 로 다른 인물들의 입을 통해 그의 탐욕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다. 제시 카는 탐욕스런 아버지를 증오하여 기독교로 개종한 뒤 밧사니오의 친구인 로 렌조(Lorenzo)와 결혼하고자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보석과 돈주 머니를 챙겨 도망간다. 그런데 딸이 도주한 뒤에도 샤일록은 딸에 대한 걱정보 다는 잃어버린 재물 때문에 울부짖는다.

샤일록: 어이구, 이를 어째, 이를 어쩌냐구. 다이아몬드가 없어졌어. 프랑크포트에서2천 더컷이나 주고 산 것을. . .

내 딸년이 보석을 귀에 단 채 내 발치에서 뒈져 있으면 좋겠다! 고년이 돈을 지닌 채 관 속에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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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ylock: Why there, there, there, there! A diamond gone cost

me two thousand ducats in Frankfort, . . . I would my daughter were dead at my foot, and the jewels in her ear: would she were hears’d at my foot, and the ducats in her coffin: (3.1.76-82)

재물에 대한 이런 편집광적 애착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이기적 배금주의를 잘 엿볼 수 있다. 그에게서는 인간보다 돈이 우선하고 매사에 타산적인 물욕의 노 예로서의 면모가 보인다. 그가 물욕에 사로잡혀 돈에 집착하는 모습은 그의 딸 제시카가 “우리집은 지옥이야”(2.3.2)라고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 의 집에서 도망갈 때 금은보화를 챙겨 떠나는 그녀조차도 물질주의에 물든 모 습이다.

돈거래를 둘러싼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대립은 이러한 과도기적 시대에 흔 히 볼 수 있는 가치관의 차이를 첨예하게 보여준다. 안토니오는 친구 밧사니오 를 위해 주저 없이 경제적 도움을 베풀 뿐만 아니라 고리대금 이자에 시달리 는 서민들에게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기도 하는 등 탐욕스런 이득 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반면 샤일록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 돈놀이에 몰두함으로써 상업 자본주의 시대의 이기적 탐욕성과 개인주의를 구현한다. 샤일록이 자신의 이윤 추구를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에서 차용하는 야곱의 이야기에서도 이득을 창출 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업주의 가치관을 잘 볼 수 있다.

<이춘풍전>에도 17세기 중엽 이후 발달한 화폐 경제와 그로 인해 야기된 배금주의 양상이 담겨있다. 이지하는 당시의 이런 분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9세기 조선에서는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사회 경제적으로는 상업 화 폐경제 체제가 정착되면서 중세적 산업 구조가 와해되고 상업자본 중심 의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변모가 중세적 사회체제에 동요를 불러 일으켜 전 사회적으로 신구의 이념이 충돌하고 계층간 대립이 심화 되는 가운데 역동적인 이행기적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165-66)

<이춘풍전>에서는 극단적 물신주의로 도덕성마저 상실한 평양 기생 추월에게 배금주의가 잘 구현되어 있다. 그녀에게서는 예전의 기생들에게서 엿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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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던 ‘의’나 ‘정’은 찾아볼 수 없고 화폐경제 시대에 어울리는 탐욕스런 모습만 보일 뿐이다. 돈이 있을 때는 거짓 사랑으로 남자들의 돈을 후려내고 돈이 없 을 때는 냉정하게 내치는 그녀는 대단히 이해타산적이며 재물에만 눈이 어두 운 속물로 묘사되어 있다. 추월이의 극단적인 탐욕뿐만 아니라 춘풍의 처도 바 느질삯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 놀이를 한다. 이주연은 “춘풍의 처도 조선 후기 노동의 화폐 가치가 증대되는 시대의 흐름에 승하여 지략적 처세술을 유 감없이 발휘하며 능동적 대응을 하고 있다”(ii)고 쓰고 있다. 심지어 국가 기관 인 호조조차 백성들에게 이자놀이를 하는 등 소설 곳곳에 화폐 경제 체제의 사회상이 담겨있다.

춘풍은 호조에서 돈을 빌려 한탕 장사를 떠나고 밧사니오는 안토니오를 내 세워 샤일록으로부터 돈을 빌려 돈많은 상속녀 포샤에게 청혼 모험을 떠난다.

이때 밧사니오가 안토니오에게 말하는 다음 대사에서 호조의 이자돈까지 빌려 평양으로 장사를 떠나는 춘풍과 같은 한탕주의를 목격하게 된다.

밧사니오: 자네의 사랑을 믿고 내가 진 모든 빚을 청산할 나의 은밀한 생각과 계획들을 자네에게 모두 털어놓겠네.

. . . . .

학창시절 나는 화살을 한 대 잃어버리면 먼저 쏜 화살을 찾기 위해서

무게가 꼭 같은 화살을, 더욱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똑같은 방향으로 쏘았네.

두 개 다 잃어버릴 수 있는 모험을 걸어서 나는 흔히 두 개를 다 찾곤 했네.

. . . . .

자네가 기꺼이 처음 쏜 것과 똑 같은

방향으로 다른 화살을 하나 쏘아 준다면, 내가 방향을 잘 살필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화살을 둘 다 찾거나 아니면 나중에 쏜 것을 자네에게 찾아다 주든가 해서 고맙게도 첫 번째 것에만 빚을 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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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 And from your love I have a warranty To unburthen all my plots and purposes How to get clear of all the debts I owe.

. . .

In my school-days, when I had lost one shaft, I shot his fellow of the self-same flight The self-same way, with more advised watch To find the other forth, and by adventuring both, I oft found both: . . .

but if you please To shoot another arrow that self way Which you did shoot the first, I do not doubt, (As I will watch the aim) or to find both, Or bring your latter hazard back again,

And thankfully rest debtor for the first. (1.1.132-52)

이 두 인물의 행보에서 한탕주의가 팽배한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모두 근대로의 이행 과정에 나타나는 상업 정신의 소산이다. 이렇듯 유사한 경 제체제의 변화가 두 작품의 유사성을 낳은 것이다.

또한 두 사회는 가부장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 나고 있는 변화들은 이러한 위계질서에 도전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국은 봉건 사회의 엄격한 계급 질서가 와해 위기에 처했다. 로렌스 스톤 (Lawrence Stone)은 이 시기를 ‘전례없는 규모의 지진과도 같은 대변동’의 시 기라고 표현했고(7), 데이비드 언더다운(David Underdown)은 ‘위계질서의 혼란 에 대한 강렬한 불안감이 역사상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팽배했다’고 주장했다 (116). 1580년부터 1640년에 이르는 영국의 근대 초기에는 특히 성별 위계질서 의 혼란에 대한 강렬한 불안감이 팽배했다. 이 때 영국은 여성 교육의 확대, 엘리자베스 여왕의 존재, 청교도의 변화된 결혼관에 힘입어 여성의 성 역할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셰익스피어 희극 속 여주인공들은 가부장제에 입각한 여성의 행동 지침이나 성차에 관한 당대의 관념을 무시하고 아버지의 억압적 권위에 반항해 가출을 하거나, 남성에게 부과된 특권과 성 역할의 영역 을 자주 침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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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춘풍전>이 쓰일 당시의 조선 사회가 바로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 다. 조선조 동안에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여성 비하의 사회 관념과 여권에 대한 법적, 제도적 규제가 지배적이었다. 주자학의 유입 이후로 봉건적 생활양 식과 억압된 행동 규범의 엄격한 사회가 지속되어 오다가 영정조 시대의 다양 한 개혁정치, 청나라의 신학문인 고증학 등이 들어오면서 사회 이념에 변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다 왜란과 병란, 양란을 겪은 뒤 봉건제가 해체되었고 그에 따라 신분 질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후 실학이 유입되고 기독교와 동학 사상1)이 퍼지면서 신분체제가 점차 붕괴되고, 아울러 가부장 제도도 약 화되어 갔다. 이같은 사회분위기를 세태소설인 <이춘풍전>은 적극 반영한 것 으로 보인다. 즉, 춘풍의 처가 남장을 하고 남성의 역할을 하는 것은 가부장 문화의 변화상과 남녀 위계질서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와 조선 후기는 비슷한 사 회, 경제, 문화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리고 두 작품은 당대의 그런 변화된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이 두 작품의 플롯에서 흡사한 모티브가 발견되는 것이다.

IV. 두 작품의 유사성을 낳은 장르적 특징

장르면에서 <이춘풍전>은 조선 후기 판소리에서 파생된 소설이고 베니스 의 상인 은 영국 르네상스 기의 희곡으로, 판소리나 연극은 둘 다 당시 사회에 서 가장 대중적인 공연 예술 장르에 속한다. 다시 말해 두 작품은 문학 장르이 기에 앞서 각 문화권을 대표하는 공연예술의 정착본인 것이다. 연극과 판소리는 유사한 기능과 예술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고 두 장르에 대한 비교는 본질상 시 대적 분위기와 함께 당대의 공연 여건을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1) 동학 사상 중 가도화순(家道和順), 부화부순(夫和婦順) 같은 실천 윤리도 새로운 부부 관 계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이 사상들은 부부의 관계를 우주 만물 형성의 기초로 보고 부 부가 화순하면 천지가 안락해지고, 가부장적 권위로 아내를 부리는 남성들에게 겸손한 태 도로 아내에게 임할 것이며 가정의 화평을 위해 여성의 인격을 존중해야 함을 가르친다 (이주연 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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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셰익스피어 극과 판소리는 서민에서부터 귀족까지 전 계층을 망라하 는 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다양한 관객층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 시키면서 특유의 다원성을 확보하여 모든 관객에게 호소력을 지녀야만 했다.

두 작품이 모두 여성들이 소비대상으로 포함되는 대중 예술이었다는 장르상의 문제도 두 작품의 유사성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선 후기에는 우리 문학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한문 소설 의 오랜 전통에서 국문소설의 창작으로 변한 것이다. 조선 초기부터 나라에서 는 정책적으로 <삼강행실도>와 같은 여성 수신서를 한글로 번역하여 보급하였 다. 이에 따라 한글로 간행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성의 수도 늘어난 데다 17 세기말 이후부터 한글소설의 창작과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소설을 탐독하는 여 성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듯 당시에는 소설의 창작이나 유통에 영향을 미 칠 만큼 소설을 읽는 여성 독자의 수가 많았다. 여성 독자의 증가에 힘입어 여 성을 영웅으로 등장시킨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는데2) <이춘풍전>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영웅 소설들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대부분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여성의식을 드러 내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성 관객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셰익스피어의 극들도 같 은 맥락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여성들을 창조해 내었다. 진 하워드(Jean E.

Howard)에 의하면 당대에 관객의 상당수가 여성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극장 출입 자체가 여성을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대중 생활에 참여하게 함 으로써 가부장적 통제를 불안정하게 하는 요소였다. 이윤주도 이 점을 주목하 여 “셰익스피어가 남성적 여성들에 대한 가부장제적 억압을 옹호하기보다는 이런 여성들의 저항적 측면을 동정하는 입장에서 심도 있게 그렸다는 점을 뒷 받침하기 위하여 당대의 극장에서 관객으로서의 여성들이 갖는 중요성도 고려 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21). 또한 줄리엣 듀신베르(Julliet Dusinberre)도 “관객 의 상당수가 여성들이었고 수입이나 인기 면에서 여성 관객을 즐겁게 해야 할 필요성을 직시한 극작가들이 여성의 권리에 대한 급진적인 태도들을 취했을

2) <이춘풍전>외 여성 영웅 소설로는 <박씨전>, <금방울전>, <홍계월전>, <방한림전>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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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이 높았으리라는 점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71)고 주장했 다. 그래서 두 작품은 모두 표면적으로는 가부장제를 수용하면서 기존 지배층 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듯하지만 이면적으로는 남녀 차별이라든가 가부장제의 모순 등을 꼬집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이 두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성역할의 경계를 허무는 서사가 지배적이다.

가부장인 춘풍이나 밧사니오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반면 춘풍의 처와 포샤는 남장, 가정에서의 재산권 행사, 남성의 영역인 재판 장면, 플롯을 주도해 나가 는 창의성 등을 통해 작품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춘풍의 처 와 포샤는 여장부와 같은 기개를 지닌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여성들이다. 또한 그녀들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결정, 실행할 줄 아는 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둘다 대단히 기지가 뛰어나고 영민하다.

하지만 두 작품에서 여주인공의 이미지는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수차례 굴 절된다. 어느 순간 두 여인의 목소리에서는 가부장제에서 요구하는 바람직한 부인상을 체화한 듯한 면모도 볼 수 있다. <이춘풍전>의 김씨는 평양감사의 회 계비장이 되어 함께 평양으로 가려는 자신의 의도를 감사의 모부인에게 다음 과 설명한다.

소녀 지아비가 방탕하여 청루에 외입하여 두세 번 폐가하고, 호조돈 이천 냥을 대동변으로 얻어내어 평양장사 가서 추월을 작첩하여 주야로 즐기 다가, 이천 오백 냥 돈을 달리 한 푼도 아니 쓰고, 추월에게 다 없애고 추 월의 집 사환이 되었다 하옵기로 소녀의 마음이 매양 절통하옵더니, 천행 에 삿도덕택으로 비장이 되어 내려가서 추월도 설치하고 호조돈 수쇄하 고 지아비 다려다가 백년동락하게 되면 마누라님 덕택이오니[. . .] (423)

남편의 온갖 방탕과 무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구해와 백 년 동거하기를 바라 는 열녀의 모습이다. 때문에 진은진은 <이춘풍전>에서 춘풍의 처는 남성이 무 능한 경우에도 남성의 권위를 보좌하고 유지시켜 주는 여성으로 남성 중심의 기존 질서를 유지시킨다고 주장한다. 또한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남편을 교화시켜 가장의 자리에 서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녀를 남성적 이데올로기를 체화한 여성이라고 평했다(70). 이성권도 이 소설을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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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治産)의 문제를 중심으로 가정생활의 문제점을 지극한 부덕으로 해결해 나 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규수서”라고 평했다(진은진 62에서 재인용). 장덕 순도 그녀를 <인형의 집>의 노라에 비견되는 근대적 인물이라고 높게 평가하 면서도 “새로운 타입의 열녀”라고 표현했다(66).

이와 유사한 면모를 포샤의 대사에서도 들을 수 있다. 포샤는 자신이 은밀히 연정을 품었던 밧사니오가 바른 함을 고르자 당대 가부장제의 결혼 관습대로 자 신의 모든 재산과 권리를 그에게 양도하면서 순종적인 아내의 모습을 보인다.

포샤: 가장 다행인 것은 당신을 저의 군주, 지배자, 왕으로 삼고 제 온순한 마음을 당신의 가르침에

내맡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내 자신과 내 전 재산은 이제

당신 것이 되었습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 아름다운 저택의 왕이었고,

하인들의 주인이었으며, 내 자신의 여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지금 이 집과 이들 하인들과 나 자신도 나의 군주이신 당신의 것이 되었습니다.

Por.: Happiest of all, is that her gentle spirit Commits itself to yours to be directed, As from her lord, her governor, her king.

Myself, and what is mine, to you and yours Is now converted. But now I was the lord Of this fair mansion, master of my servants, Queen o’er myself: and even now, but now.

This house, these servants, and this same myself are yours,—my lords! (3.2.163-71)

이때 포샤가 남편을 군주처럼 떠받들고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남편에게 바 치는 데서 아내의 재산에 대한 남편의 권리 인정, 남편의 지배와 아내의 종속 이라는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체화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듀 슨베리는 포샤가 위 대사를 하며 밧사니오에게 내보이는 복종의 모습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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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변장을 위해 걸쳤던 의복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85).

또 두 여성은 남장을 통해 여성에게는 차단된 공적 장소에서 법적 논쟁을 벌인다. 그런데 춘풍의 아내나 포샤가 남장을 하고 재판을 하는 것은 여성이 가지는 한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변신을 통해 타자를 경험한 춘풍의 처와 포 샤는 다시 본래의 성으로 복귀하여 변화를 내재화함으로써 전통적 질서를 강 화한다는 인상도 받는다. 마치 카니발에서처럼 잠깐 동안 그들에게 허가된 시 간을 맛본 후 그들은 원래 자리로 회귀한다. 그래서 <이춘풍전>에 대한 최초의 비평가로 여겨지는 장덕순은 이 작품에 대해 “시대적, 사회적 흐름에 걸맞은 새로운 타입의 열녀를 내세우는데 그 의의가 크다”고 평했다. 그리고 최혜진은

“가부장의 자리를 회복시키는 동시에 자신은 현모양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결 론을 보건대, 이 작품이 유도한 것은 사회적인 관습이나 제도를 문제 삼기보다 는 제도에서 추구하는 건전한 성적 역할 책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 다(45).

하지만 비록 그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더라도 그들은 더 이상 가부장제 의 요구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여성은 아니다. 춘풍이 변함없이 허세를 부리고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자 다시 회계비장의 모습으로 변복했다 회계비장이 자신 이었음을 밝혀 남편을 쩔쩔 매게 만들었던 춘풍의 처도, 반지 에피소드를 통해 교묘하게 결혼 생활에서의 기선을 제압한 포샤도 남편들이 가부장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권순긍은 “이춘풍에 대한 풍자는 표면적으로는 경박한 유흥풍조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은 왜곡된 가부장 적 권위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앞의 비평가들과는 정반대의 평가를 했다 (161).

결론적으로 볼 때 두 작품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남편들과 능력 있고 현명 한 아내, 여주인공의 남장과 법정 장면 등의 설정에서 기존 가부장 이데올로기 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여성들의 생산 활동이나 공 적 활동을 통해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 탈피하여 진보적 여성관을 보 여주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에서 이런 근대적 여성관을 제시 하고 있는 것은 두 작품이 탄생한 시기가 각각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사 회문화적 격동기였을 뿐만 아니라 두 작품 모두 여성이 소비 대상으로 포함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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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나가는 글

엘리자베스조 연극과 조선시대 판소리는 다양한 계층과 취향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대중적 공연 예술이었다. 민간 사상의 집체적 성격을 갖는 두 장르의 두 작품을 다각적으로 비교 연구해보니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 서사와 인물에 있어서 유사성이 많았다. 그리고 그 이유가 두 사회가 비슷한 사회문화적 변동 기에 쓰였으며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 그 중에서도 여성이 소비 주체로서 상당 수를 차지한 탓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동서 문학의 비교 연구라는 시도가 상 당히 의미가 있지만 아직 그 연구의 방법에 있어 한계성을 느꼈다.

포샤나 춘풍의 처는 모두 가부장 문화에서 통용되는 여성의 행동 규범을 가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변화된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그들 은 아직 사회 전반에 가부장적 권위가 팽배해 있는 시대에 남성들의 세계에 들어가 자신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남성의 가면을 쓰고 남 성들이 저질러 놓은 무질서와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두 여성의 지력과 재 치를 엿볼 수 있다. 결국 두 작품은 춘풍의 처와 포샤의 활약을 통해 엄격한 가부장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전통적으로 양극화된 남녀 간의 성 구분 혹은 역할이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성립된 것에 불과함을 독자와 관객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분명 <이춘풍전>에는 베니스의 상인 만큼의 심오한 인종 문제나 정의와 자비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결여되어 있다. 베니스의 상인 에서는 결혼과 가정 문제의 수준을 넘어 이교도 혹은 타민족에 대한 차별이라는 이데 올로기적인 주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차이점 때문에 <이춘풍전>을 셰익 스피어의 작품의 스케일에 견줄 수 없다는 식의 우열을 논해서는 안 될 것이 다. 왜냐하면 이런 차이를 낳는 것은 두 사회의 시대적 배경의 차이와 그로 인 한 정서와 감수성의 차이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반유 대주의가 보편적인 정서인데다 유대인 전의(典醫)에 의한 여왕 암살음모로 인 해 반유대주의가 고조된 상태에서 셰익스피어가 유대인 샤일록을 창조해낸 것 이다. 또한 두 여인의 속성이 아주 똑같은 것도 아니다. 포샤에 비해 춘풍의 처는 대단히 현실적이고 지략적인 처세술을 보인다. 그녀는 남편을 가정으로 데려오기 위해 뇌물과 청탁에 의존하고 관권의 횡포를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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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과 유사 한 서사와 진보적인 여성주의 이데올로기를 지닌 <이춘풍전>을 꼼꼼히 비교분 석해봄으로써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극적 구성력과 진보적 세계관을 우리 문학 이 지니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상이한 문화권에서 독립적으로 형성된 동서양 문학의 유사성을 통해 국경과 언어적 차이를 넘어 존재하는 문 학의 보편성도 확인하게 되었다.

▸주제어: 베니스의 상인 , <이춘풍전>, 비교문학, 가부장제도, 자본주의 / The Merchant of Venice, Yichoonpoongjeon, comparative literature, patriarchism, 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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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mparative Study on Shakespeare’s The Merchant of Venice and Yichoonpoongjeon

Abstract Osook Kweon

Shakespeare’s The Merchant of Venice and our traditional novel Yichoonpoongjeon have lots of similarities in spite of the distinct gap of time and culture between the two works: prodigal and incompetent husbands, wise and courageous wives, slaves to money, trial scenes and transvestism. These similarities give the validity to this comparative study.

We can explain the reason of those similarities between the two works on the basis of their analogical social background. The enormous economic and political changes were experienced by both the early modern England and the late Chosun dynasty: the shift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breakdown of conventional hierarchy and the change of traditional gender roles, etc..

Transvestite Portia in The Merchant of Venice and Ms. Kim in Yichoonpoongjeon refuse to accept the conventional stereotypes for gender and prove their wit and intelligence. Their brilliant roles under the patriarchy system reveal the change of the gender role in each society. The two works describe the long lasted and absurd contradiction of feudalism and patriarchism realistically and satirically.

From the study we can conclude that the similar social background in different cultures gives birth to similar stories and this conclusion brings us to sense the universality of human mind and sensitivity.

권 오 숙 (단독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대학 서울 동대문구 이문로 107 port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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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2월 10일 논문심사일: 2월 11 ~ 28일 게재확정일: 3월 10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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