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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분석 05 주: 지식 I: 앎이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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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적 분석

제 5 주: 지식 I: 앎이란?

(2)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미래를 알 수 있는가? 지각할 수 없어도 사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우주 어딘가에 외계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신이 우주를 창조했거나 우주의 역사를 이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동물에게 정신이 있다는 것을알 수 있는가? 살인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3)

앎이란 무엇인가?

이들은 모두 인식론(epistemology), 즉 지식론 (theory of

knowledge)의 물음이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런 물음들은 매우 복잡한 물음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앎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의 첫번째 물음은

앎이란 무엇인가?

이다. 우리는 “앎”이라는 말을 다른 낱말들처럼 우리가 선택하는 의미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사용 방식에 따르면 그 말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가?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무언가를 믿는 것으 로 충분하지 않으며, 그저 추측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어떤 상태여야충분 한가?

(4)

할 줄 아는 것

“무언가를 안다”라는 구절이 언제나 똑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의미들이 있다:

1. 할 줄 아는 것.

I 당신은 말을 탈 줄 아는가?

I 수영을 할 줄 아는가?

I 용접을 할 줄 아는가?

I 집을 지을 줄 아는가?

이 같은 물음들은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ability)과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것처럼 학습된 능력이지만, 울 줄 아는 것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가끔 있다.

(5)

익히 아는 것

2. 익히 아는 것.

I 요세미티 폭포에 가 봤다면, 즉 감각기관을 통해서 어떻게든 그 폭포와 마주한 적이 있다면, 당신은 그 폭포를 (“익히 안다”는 의미로) 안다.

I 이것은 요세미티 폭포에 관한 사실(facts about)을 아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I 요세미티 폭포에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그곳에 관한 모든 것을 백과사전에서 읽은 사람은 그 폭포에 가보기는 했으나 그곳에 관한 사실을 전혀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보다 그곳에 관해 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앎을 일컬어 친숙지(knowledge by acquaintance) 라고도 한다.

(6)

익히 아는 것 (계속)

그러나 이것은 익숙함이지 지식이 아니라고 말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예를 들어, 요세미티 폭포를 본 사람은, 그 장소의 지리적 위치 등, 그 폭포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밖에 어떤 실질적 지식을 추가로 획득한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것을 옳거나 그르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지식을 갖게 된다. 요컨대 지식은 명제 (proposition)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7)

무엇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것

3. 무엇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것. “안다”라는 말을 사용할 때 우리는 주로 무엇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상태(knowing- that)를 언급한다.

I 나는 내가 지금 앉아 있다는 것을 안다.

I 나는 지구가 오랜 세월 존재했다는 것을 안다.

I 나는 내가 당신 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처럼 무엇이 어떻다는 것을 이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사태가 실제로 성립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8)

앎은 믿음을 함축한다

p가 명제를 나타낸다고 하자. p가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에 p를 믿는 것만으로는 앎을 위해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즉 믿음이 앎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p를 믿지 않는 한 p를 안다고 할 수 없다. p를 알기 위해서는 p를 믿을 필요가 있다. (즉 앎은 믿음을 함축한다.)

(9)

믿음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한 경우들

하지만 어떤 이가 명제 p를 실제로 믿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정하는 것은 생각보다어려운 일일 수 있다. 다음 경우들을 생각해 보자:

1. 믿지 않지만 믿는다고 말하는 경우. 사람들은 때때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솔직하지 않은데도 스스로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처럼 p를 믿는다고 거짓말하거나 스스로 그렇다고 착각하는 경우와 p를 실제로 믿는 경우를 구별하는 것 종종 어려울 수 있다. 선희는 철수에게 말한다.

“철수 씨는 정말 착하고 순진해요. 당신이 약혼하지만 않았다면 내게는 좋은 남편감이었을 거라고 믿어요.” 철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내 약혼자 영희를 사랑해. 나는 결단코 섹시한 몸매에 남자를 속이고 다니는 선희에게 반한 게 아니야.”

(10)

믿음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한 경우들(계속)

2. 믿음과 감정의 불일치. 당신이 방금 백만 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해 보자. 당신은 “내가 백만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당신은 그것을 믿고 있지 않은가? 이성적으로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수없이 실망한 나머지 당신의 감정이 이성적 인식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당신은 복권 당첨 정보를 아직 “소화하지”

못한다.

(11)

믿음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한 경우들(계속)

3. 믿음과 행동의 불일치. “어떤 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그에 따라 흔쾌히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진술이 우리에게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그에 따라 흔쾌히 행동할 수 없는 그런 진술일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당신은 토 성의 행성이 열두 개라고 믿기 때문에 질문을 받으면 열두 개라고 말하겠지만, 그것 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을 경우

“믿는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당신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12)

믿음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한 경우들(계속)

4. 정도가 약한 믿음. 믿음은 또한 정도의 문제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을 믿기는 하지만 아주 강하게 믿지 않을 수 있다. 믿음

가운데에는 자신의 일생을 내걸 만한 믿음도 있고 아주 하찮은 믿음도 있다. 친구가 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 말을 믿을 수도 있지만, 친구의 정보가 옳다는 것을 항상 신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친구의 말을 어느 정도는 믿지 않는다면,그 말이 나타내는 바를 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13)

앎은 참을 함축한다

어떤 명제를 아는 것은 그 명제가 참(true)임을 아는 것이다. 내가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안다면, 나는 “내가 의자에 앉아 있다”는 진술이 참이라는 것을 안다. 거짓을 믿을 수는 있지만 거짓을 알 수는 없다.

만일 내가 믿은 명제가 참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 명제를 알고 있었고(?), 그 명제는 참되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참되지 않은 앎이 생겨나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애초부터 그 명제를 알지 못했으며, 단지 그 명제를 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당신이 “나는 그녀가 줄곧 옆 방에 있는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데, 그녀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당신은 그녀가 옆방에 있었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던 것이다.

(14)

앎은 참을 함축한다 (계속)

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참이 아닌, 따라서 누군가에게 알려진 것도 아닌 명제들이 존재한다:

1. 확신되는 명제라고 꼭 참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지구가 평평하다고 확신했다. 최근 텔레비전 토크쇼에 나온 한 여성은 지난 몇 달 사이에 금성과 화성을 모두 다녀왔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자기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확실하게 그것을 안다고 주장했다. 종교 전쟁 기간에 한쪽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이 진리임을 확실하게 안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믿음이 진리임을 안다고

주장하는데, 그 두 가지 믿음은 서로 모순이다. 사람들은 결코 확실하지도 않고 전혀 참되지도 않은 많은 명제에 관해 종종 매우 강렬한 확신의 느낌을 가진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다고 그 명제들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참되지 않은 앎같은 것은 없다.

(15)

진리에 대한 회의주의

어떤 사람들은 참(즉 진리)의 개념 그 자체에 대해서 혼란된 주장들을 견지하고는 한다:

2. 진리 같은 것은 없다.

I 진리 같은 것은 없다!

I 하지만 그렇다면, 당신의 방금 주장도 진리가 아닌 것이 되지 않나?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따라서 참이라고 생각했던 명제가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어떤 참된 명제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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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대한 회의주의 (계속)

3. 절대적 진리 같은 것은 없다.

I “절대적”(absolute)이라는 말은 무엇 때문에 덧붙이는가?

I “눈이 희다는 것은 옳다”와 “눈이 희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가 표현하는 내용은 같은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렇다면,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주장은 그냥 진리가 없다는 주장과 같은 언명이며, 따라서 똑같이 불합리하다.

(17)

진리 상대론

4.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 “절대적”이라는 말은 “상대적”이라는 말의 반대어이다. 누군가가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라고 말할 경우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에 상대적인가? “나는 지금 의자에 앉아 있다”라는 진술이 어떻게 상대적인가? 제리는 메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I 내가 식탁의 한쪽에 앉고 당신이 반대쪽에 앉았다면, 당신의 오른쪽에 있는 꽃병이 나에게는 왼쪽에 있다. 꽃병을 보는 사람의 위치가 상대적이다.

“오른쪽“과 ”왼쪽“은 실제로 상대적인 말이지만, 그 말이 표현하는 내용들도 상대적일까?

I 메리가 앉은 곳에서는 꽃병이 오른쪽에 있다.

I 제리가 앉은 곳에서는 꽃병이 왼쪽에 있다.

이 두 명제 모두 정확히 옳지 않은가? 문장의 참거짓은 말하는 사람의 위치에 상대적이지만, 명제—즉 문장이 표현하는 내용—의 참거짓은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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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상대론 (계속)

5. 하지만 진술의 참거짓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가? 예를 들어,

I 미적분은 재미있다

라는 같은 진술이 A가 말할 때에는 참되고, B가 말할 때는 거짓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앞서와 같은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첫째 진술이 A에 의해 말해졌을 때는

I A에게 미적분은 재미있다

라는 참된 명제를, B에 의해 말해졌을 때는

I B에게 미적분은 재미있다

라는 거짓된 명제를 표현할 것이다. 이때 같은 명제가 말하는 사람에 상대적으로 참도, 거짓도 되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명제 중 하나는 절대적으로 참이요, 또 하나는 절대적으로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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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기준

진리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다음 형태를 취할 것이다.

명제 p가 참이면 그리고 그래야만 . . .

위 도식의 예화(instance)는 명제 p에 대해 그것이 언제 참이 되고, 언제 참이 아니게 되는지 말해 줄 것이다. 문제는 위 도식의

“. . . ”에 어떤 내용을 채워넣어야 밑줄친 물음에 대한 올바른 답이 될 것인가 하는점이다.

(20)

대응론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진리 기준은 이른바 대응론이다:

명제 p가 참이면 그리고 그래야만 사실 f 가 성립하고 p는 f 에 대응한다.

언뜻 이것은 당연한 대답처럼 들린다. 하지만 과연 대응이란 무엇인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명제는 모종의 추상체일 것이며, 사실은모종의 물리적 복합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두 가지 범주의 존재자들 사이에 대응이 성립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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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론 (계속)

또 한가지 문제는 대응론이 모든 명제들에 다 적용되는 진리 기준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1. 경험적 명제들. 대응론은 경험적 명제에 간단히 적용된다. 이 책상 위에 책이 다섯 권 있는가? (잠시 대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라는 어려운 문제를 접어놓고 말한다면) 그 명제에 대응하는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기만 하면,

이 책상 위에 책이 다섯 권 있다 는 명제가 참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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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론 (계속)

2. 반사실적 조건명제들. 그러나

누군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0.5 인치 더 길었다면 (안토니우스가 그녀에게 매료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이집트는 로마 제국에 점령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고 해 보자. 역사가들은 이 명제가 옳은지 그른지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명제에 대응하는 사실은 어디에 있는가?

3. 수학과 논리학의 명제들. 어떤 수학적 명제, 예를 들어 2+2=4

라는 명제나, 논리적 명제, 예를 들어 A가 B보다 크면 B는 A보다 작다

는 명제는 분명히 참이다. 그러나 이런 명제에 대응하는 사실이 과연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23)

정합론

또다른 인기있는 진리 기준은 정합론이다:

명제 p가 참이면 그리고 그래야만 p는 다른 명제들과 정합(cohere)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정합성(coherence)이란 무엇인가? 한 가지 정의는 이러하다:

명제 p가 명제들의 집합 S와 정합하면 그리고 그래야만 {p} ∪ S는 논리적으로 일관적이다.

명제들의 집합 S가 논리적으로 일관적이면 그리고 그래야만 어떤 명제 x에 대해서도 x와 not − x가 동시에 S 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합성을 이렇게 정의하면 정합론은 너무 느슨한

진리기준이 되어버린다. 또, 설령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정합론에 등장하는 “다른 명제들”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불분명하다.

(24)

정합론 (계속)

보다 강화된 정합성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명제 p가 명제들의 집합 S와 정합하면 그리고 그래야만 {p} ∪ S에 속하는 명제들은 서로 증거(evidence)가 되어준다.

즉, p는 S에 속하는 명제들을 지지하는 증거이며 S에 속하는 명제들은 p를 지지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p} ∪ S에 속하는 어떤 명제 x도 나머지 명제들의 증거이며, 그 나머지 명제들은 다시 x의 증거이다.

(25)

정합론 (계속)

우리가 존스를 살인 용의자로 의심한다고 해 보자. 증인은 아무도 없지만,

I 피해자의 DNA를 가진 혈액이 존스의 상의에서 발견되었고,

I 확인된 사망시간 몇 분후에 존스가 피해자의 집에서 나오는 것이목격되었으며,

I 살인 발생 한시간 전에 존스가 1 마일 떨어진 자신의 집을 황급히 떠났다.

존스가 살인법이라는 명제는 그것이 참이라면 위 명제들의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역으로 위 명제들은 존스가 살인범이라는 명제를 입증해 준다.

(26)

실용론

여기 또 하나의 진리기준이 있다:

어떤 믿음 p가 참이면 그리고 그래야만 p는 작동(work) 한다.

이 진리기준, 즉 실용론의 가장 큰 문제는 한 명제가 작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해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7)

실용론 (계속)

어떤 사람이

내 경우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작동한다

라고 말한다고 하자. 이것은 신존재에 대한 믿음이 그를 기분좋게 한다는 것을 말하는가?또는 그것은 그가 전보다 지금 더 행복하고 더 희망찬 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일 이 물음들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다면, 그 믿음은 이 사람에게 “작동한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어떤 믿음이

작동한다는 것이, 그 믿음이 참이라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28)

실용론 (계속)

어떤 왕이 자신의 왕국에서 종교적 갈등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그 순간부터 모든 사람이 이시스와 오시리스를 믿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는 포고령을 내렸다고 하자. 포고령을 위반한 사람들은 사형 당했을 것이고,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이시스와 오시리스를 믿거나 침묵했을 것이다. 종교 간 경쟁이 완전히 없어지고 종교에 관한 갈등이나논쟁이 종식될 때까지 다른 종교적 신념은 전혀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이시스와 오시리스에 대한 신념이 “일을 해냈는가?”

그것은 종교 전쟁을중지시킨다는 그런 의미로 일을 해냈다.

하지만 그 신념이 일을 했다는 것은 그 신념이 옳다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가?

(29)

요약

I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인식론의 중심 주제이다.

I 하지만 그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앎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먼저 답할 필요가 있다.

I 특히,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는 물음은 이른바 명제적 앎이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I 할 줄 아는 것(능력), 익히 아는 것(친숙지)은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앎이 아니다.

(30)

요약 (계속)

I 앎은 믿음을 함축한다. 즉, 명제 p를 믿지 않는 한 p를 아는 것이아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p를 아는지 판정하려면 p를 믿는지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I 하지만 p를 정말로 믿는지 혼동되는 경우들이 있다:

I 믿지 않지만 믿는다고 말하는 경우

I 자신이 p를 믿는다고 착각하거나 기만하는 경우

I 믿음과 감정의 불일치

I 믿음과 행동의 불일치

I 정도가 약한 믿음

(31)

요약 (계속)

I 앎은 또한 참을 함축한다. 하지만 p가 정말로 참인지 혼동되는 경우들이 있다.

I 확신되는 명제라고 꼭 참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확신되는 명제가 꼭 참인 것은 아니다.

I 진리의 개념 자체에 대해서 틀린 생각들이 유포되고는 한다:

I (S ) 진리 같은 것은 없다. ⇒ 그렇다면 S 도 진리가 아닐 것이다.

I (SA) 절대적 진리 같은 것은 없다. ⇒ 만일 SA가 S 와 같은 뜻이라면 S와 같은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I 어쩌면 SA는 R과 같은 뜻으로 제안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R)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

I 확실히 어떤 진리는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내게 있어서는 (M) “나는 남자다”라는 것이 참이지만, 박근혜 전대통령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거짓이다.

I 그러나, 바로 “M은 김남중에게 참이다”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인 주장이 될 것이다.

I 결국, (S), (SA), (R) 등은 모두 자기파괴적이거나 그럴 듯하지 않은 논제로 보인다.

(32)

요약 (계속)

I 참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를 일컬어 진리이론이라고 한다.

I 전통적으로 널리 고려된 진리 이론들에는 대응론, 정합론, 실용론이 있다.

I 대응론: p가 참이면 그리고 그래야만 p에 대응하는 사실 f 가 성립한다.

I 정합론: p가 참이면 그리고 그래야만 p는 다른 명제들과 정합한다. p가 다른 명제들의 집합 S와 정합한다면 그리고 그래야만 {p} ∪ S는 논리적으로 일관적이다.

I 실용론: p가 참이면 그리고 그래야만 p는 작동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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