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농촌과목회편집위원회농촌과목회편집위원회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농촌과목회편집위원회농촌과목회편집위원회"

Copied!
256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2020년 겨울호(제88호)



계 간



농촌과목회편집위원회

(2)

발 행 인 편집위원장 편 집 위 원

: : :

손 인 웅 목 사 (원로목사, 서울 덕수교회) 한 경 호 목 사 (21세기농촌선교회) 장 의 성 목 사 (전북 익산 제자교회) 오 명 석 목 사 (경남 거제 하청교회) 엄 용 식 목 사 (경남 함양 옥동교회) 이 종 명 목 사 (충남 아산 송학교회) 김 기 중 목 사 (한국농선회) 이 병 철 목 사 (강원 춘천 주향교회) 박 훈 서 목 사 (충북 충주 야촌교회) 이 태 영 목 사 (전북 군산 수산교회) 박 순 웅 목 사 (강원 홍천 동면교회)

손 은 기 목 사 (충북 충주 엄정교회, 편집담당) 김 성 현 목 사 (경남 합천 관기교회)

표 지 화 : 김 진 열 화 백

계간 「농촌과 목회」를 만드는 사람들

제 88 호



농촌과 목회



발행일/ 2020. 12. 15 발행인/ 손인웅 편집인/ 한경호

발행처/ 도서출판 흙과 생기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 103-2

작업실/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주포안말길 10-24 등록번호/ 원주 제27호(1999.1.20)

전화/ 033-764-6254 손전화/ 010-2416-8098 E-mail/ krhkh@hanmail.net



정가 / 6,000원 (1년 정기구독료 24,000원)

(3)

농신학의 출범을 보면서 한경호 3

◈권두언◈

농 (農)신학의 출범을 보면서

한 경 호(목사, 본지 편집위원장)

지난 11월 3일(화) 강원도 원주 영강교회에서 한국농신학회의 첫 번째 공개 심포지움이 있었다. 출범 후 지난 1년여의 기간 동안 매월 정기모임을 가지면서 발제와 토론한 내용을 『농(農)신학-살림과 평 화의 길』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펴내면서 공개적인 행사로 그 존 재를 알린 것이다. 한국기독교사상 농(農)을 신학의 핵심 주제로 삼 은 행사는 처음일 것이다. 농신학이라는 말조차 처음 사용하는 생소 한 용어이다. 어쩌면 세계기독교사상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다. 농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너 무도 가까이 있지만 그랬기 때문에 그 중요성과 의미가 그동안 우리 몸에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농이 지금 위기에 처했다.

인간의 편리와 욕망에 의한 각종 과학기술농업(화학농약과 비료 중 심의 화학농업, 기계화, 대규모화 단작 농업, 스마트 농업, 정밀농업, 공장식 기업형 농업 등)이 해결책일 것처럼 얘기하지만, 거대한 생명 계의 엄중한 경고 앞에 임기응변의 대응으로 그칠 것이다. 인간은 근 본적으로 땅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농의 위기는 인간 생존의 위기로 직결된다. 위기의식을 갖고 농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안보

(4)

이던 것들이,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기일수록 근본을 들여다봐야 한다. 눈에 안 보이는 것, 그동안 소 홀히 했던 것 속에 답이 있다. 농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내려온 유구 한 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갖고 있는 인간 삶의 토대이다. 그런데 그것 이 산업혁명이후 - 사실은 왕권제체가 들어선 이후이지만 - 지난 200 여년 동안 제 위치를 빼앗긴 채 산업화된 도시문명을 뒷받침해주는 공급기지로 전락하였다. 세계경제가 자본주의 체제로 일극화되면서 농의 위상은 계속 추락하여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천대받는 영역 이 되어버렸다. 농을 경제적 시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유수한 신학대학 내외에 농촌선교 및 목회 동아리 들이 생겼다. 그들에 의해 농촌선교현장의 목회 내용들이 바뀌기 시 작했다. 정의의 가치를 들고 농민들의 고통에 함께 동참했고, 생명의 정신으로 생명농업을 확산시켰다.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마을과 지역 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곳곳에서 새로운 기운들이 형성되었 다. 이러한 기운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농신학운동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국농업과 농촌처럼 빠른 속도로 무너진 나라가 없다. 지난 50여 년 간은 상공업과 도시가 빠르게 성장하고 확대된 만큼 농은 붕괴되 었다. 이 현상은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경을 넘어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전 세계가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 속 에 있으며 농은 경제적 비중이 축소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 거대한 생태계의 파괴와 그로인한 지구온난화, 기후위 기 앞에서 인류는 불안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후위기의 영향 을 제일 크게 받는 것이 농이다. 이를 깨달은 사람이 아직은 선구적인 소수이지만 점차 대중적으로 인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등 서구 에서도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 농의 중요성이 농본주의(農本主義, Agrarianism)라는 말로 제기되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농의 대한

(5)

농신학의 출범을 보면서 한경호 5

인식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면 농신학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 땅에서 출현한 것인가?

그것도 원주에서. 원주는 민주화운동, 생명운동, 협동조합운동이 활 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호저면에서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 형 선생이 포교하다가 피체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해월 선생의 사상을 현대 생명운동사상으로 세상에 밝혀 드 러냈으며, 그 실천을 위해 한살림운동이 시작된 지역이다. 생명운동 의 핵심적인 과제가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인데 그것은 바로 농의 영역이다. 그 ‘농’을 주요 키워드(keyword)로 해서 성경과 인간 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농신학운동이 원주에서 공개적으로 시 작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기독교내에서 이미 문화(토착화)신학과 민중 신학이 오래 전에 자생하여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적으 로 기반을 넓히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한국 그리스도인으로서 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대답하는 노력들이 꾸준히 있어왔고, 성경의 정신인 고난받는 민중들 및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민중 신학운동이 전개되어 왔다. 이 두 신학운동은 농신학운동을 위한 중 요한 토대이다. 농은 문화의 토대이며, 동시에 늘 민중의 자리에 있었 기 때문이다. 농신학은 두 신학을 토대로 그 영역을 더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문화신학이 고답적(高踏的)인 곳에서 내려와 민중들과 함 께하는 문화를 말하도록 해야 하며, 정치경제적 투쟁 중심의 계급적 민중을 넘어서서 생명의 영성을 담지한 민초(民草)로, 나아가 인간존 재의 궁극적인 모습으로 성경이 말하는 ‘농인’(農人)으로 그 개념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조건을 갖고 있는 나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앞으로 농신학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6)

여든 여덟번째 권(2020년 겨울호)

권두언/ 농(農)신학의 출범을 보면서 한경호 ··· 3

기획특집/ 문화신학, 민중신학, 농(農)신학 한국 문화(토착화)신학의 전개 과정/ 김장생··· 8

코로나 이후의 민중신학과 생태적 주체 김희헌··· 18

농(農)신학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영재 ··· 30

정치신학 대(對) 문화신학에서 문화정치학적 신학으로 김진호 ··· 44

<좌담회> / 이영재, 김장생, 김희헌, 한경호··· 55

나의농촌목회이야기/ 갓 구운 사랑의 빵 목회 이야기 김현철··· 85

강소형(强小型) 교회로 가는 길 이수일··· 96

농사이야기/ 행복한 닭 기르기 김승환··· 110

귀농이야기/ 생태마을공동체 만들기 장동범··· 122

작은교회이야기/ 언덕나무교회 이야기 최영민··· 133

농촌목회자와 건강/암은 암이다 임락경··· 143

목회단상/코로나와 전광훈 장의성··· 152

견유학파와 예수 ··· 156

(7)

차 례 7 표지 그림

김진열 화백

자연과함께/ 씨앗 채종하기 박훈서··· 160

곤충이야기 -벼메뚜기 ··· 163

자연농부소식/ 자연농부 최성현의 일기 최성현 ··· 166

성경다시보기/ 밥은 하늘인가? 이태영 ··· 171

노자와기독교/ 신비로운 세상 김홍한 ··· 179

농민기본소득/ 왜, 농민기본소득인가? 차흥도 ··· 189

기후위기/ 기후위기 시대의 한국 농업 이근행 ··· 199

코로나대응/낙동신상교회의 코로나 대응 이야기 김정하 ··· 213

한국전쟁/ 한국전쟁에 대한 회개와 신앙고백 김병균 ··· 222

서평/ 『농신학 -살림과 평화의 길』을 읽고 한국일 ··· 236

선언서/ 저항하고 거부하라! 홍인식 외 ··· 242

알립니다/ 편집실 ··· 248

편집후기/ 편집실 ··· 256

(8)

문화신학, 민중신학, 농(農)신학

한국 문화 (토착화)신학의 전개과정

김 장 생(교수, 연세대 교양교육학부)

시간과 공간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조건이자 기반이 된다. 이 둘 을 떠나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유와 상상력은 시간과 공간을 기틀로 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존재뿐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과 이에 관한 생각 또한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사유의 대전제가 된다. 누군가가 시간과 공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변 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시공 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이다.

신학이라는 학문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며, 또한 하나님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최초의 신학자들은 하나님 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나님을 향하여 던지기 시작한 이들이 었고, 이 전통은 아직도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질문은 시공간 을 벗어나 물을 수 없고 따라서 시간에 따라, 공간에 따라 질문의 내 용도, 질문을 던지는 방식도 그리고 질문에 대한 사유도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신학이 아직도 살아있고 유효한 학문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언제나 새롭게 던졌기 때문이며, 공간에 따라

(9)

한국 문화(토착화)신학의 전개과정 김장생 9

질문은 다양한 방식으로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동일한 질문과 동일한 고민을 하는 정형화된 신학은 죽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신학이라는 학문은 ‘하나님’이라는 질문의 대상을 향할 뿐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나’를 향하여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즉 신학에서 하나님에 대한 질문은 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아우 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이러한 신학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그는 “하 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이 질문은 “하나님, 나는 누구입니까?” 로 이어진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은 안에서 밖으로, 나로부터 외부를 향하여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가 나를 향하는 질문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보았 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존재의 기반으로 보았고, 모든 존재하는 것 들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 때문으로 보았다. 하 나님이 존재 자체이기에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이라는 종이 위에 그 려진 그림과 같은 것이고,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존재 그 자체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사물들은 하나님을 기원으로 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속에서 그려진 그림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시공간적 한계는 그림이 그려질 수 있는 존재의 조건인데, 만 일 사과라는 그림의 한계가 없다면 그것은 무한한 크기의 동그라미 이며 이것은 결국 사과가 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신학적 딜레마가 생겨난다. 제한적 존재가 어떻게 무제한적 하나님에 대하여 질문을 할 수 있는가이다. 무제한적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으며, 그것을 대상화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데 그렇다면 신학적 질문 “하나님 당신은 누구입 니까?”는 무의미한 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묻고 하 나님에 대하여 사고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우구스티 누스는 인간은 제한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따르고 있는 존재이

(10)

고 따라서 인간이 사유를 한다는 것도 제한적으로는 하나님과 유사 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아름답고 선하다고 느끼고 사유한다면 하나님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선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 이다. 따라서 우리가 “나는 누구입니까?” 라고 묻는 질문은 하나님에 기반한 “나는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이며 이것은 더 나아가 나의 존 재의 기반인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고 도 볼 수 있다.

고백록은 질문을 던지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질문에 대하여 고민하 며 그 질문에 답을 하는 아우구스티누스간의 대화인데 이러한 대화 야 말로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나로부터 시작하는 신학적 전회이며 근본적인 신학 방법론으로서 신학적 사유의 전형이 된다고 볼 수 있 다. 팔레스타인에서 시작한 기독교는 북아프리카와 지중해권의 아우 구스티누스에 이르러 신학의 형식을 지니게 되었고 이후 유럽사회로 퍼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서부 유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방법 론은 아쉽게도 그 맥이 사라지게 된다. 유럽인들은 팔레스타인의 기 독교가 아닌 유럽식의 기독교를 정착시키고자 하였고, 하나님에 대한 질문은 하나님에 대한 질문으로 멈추기 시작하였다. 몇몇 신비주의 사상가를 제외하고는 신학자들의 질문은 하나님만을 대상으로 하지, 질문을 던지는 ‘나’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안셀무 스로부터 아퀴나스 그리고 칼뱅으로 이어지는 서양신학사의 맥은 질 문을 던지는 주체에는 더 이상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오직 질문 의 대상에 관한 관심만 남게 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질문을 하는 이는 누구인가, 어디서 그 질문을 던지는가, 언제 던지는가는 중요하 지 않게 되었다.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으로 다시금 자리잡게 되 었고, 인간은 신학의 주체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11)

한국 문화(토착화)신학의 전개과정 김장생 11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 길지 않은 역사 가운데서 한국의 신학자들 은 사라져 가고 있었던 신학 방법론을 되살리기 시작하였다. 아우구 스티누스의 “나는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다시금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보편적이며 유일하고 만고불변의 질문 은 있을 수 없다고 보았고,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만 있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복음을 전해준 이들의 질문과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 서유럽과 북아 메리카에서 제국주의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이들이 던진 하나님 에 대한 질문과 동북아시아의 끝에서 식민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던 조선의 신학자들의 질문이 같을 수 없었는데 그들과 조선의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출발한 신학적 방법론을 되살린 조선의 신학을 우리는

‘토착화신학’이라 부른다. 주로 감리교 신학자들이 주를 이룬 토착화 신학자들은 인간의 존재는 시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며 이러 한 사건들이 일련의 무늬를 그리는 것이 문화라고 보았다. 인간이 존 재한다는 것은, 사물과 달리 우연히 던져진 채로 있는 것이 아닌, 인 간의 사유와 고민이 담긴 일정한 패턴(pattern)을 만들어 가는 주체 적인 사건들이 있고, 이 존재의 사건들을 통칭하여 문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시공간은 주어졌지만, 그 가운데 순간순간 결단하는 주체적 인간은 문화를 창조하고 또한 이 문화 가운데서 존재의 양식이 탄생 하게 된다. 따라서 문화는 존재의 부산물이 아닌 존재의 조건이자 존 재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그들은 보았다. 토착화 신학자들은 하 나님에 대한 질문은, 질문을 하는 이들의 존재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문화야 말로 신학적 질문의 기반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토착화 신학자들은 문화신학자들이며 조선의 문화라는 상 황 속에서 일어난 하나님 사건을 조명하고 해석하며 그 의미를 고민 한다는 의미에서 상황신학자라고도 볼 수 있다.

(12)

토착화 신학자들만이 유일한 조선의 신학을 했다고는 볼 수 없겠 으나, 그들은 조선의 역사에 신학적 고민을 뿌리내린 유일한 신학자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주권을 빼앗긴 조선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조선인의 삶의 가치와 방식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했고 부정된 자신의 정신문화의 자리에 선교사들의 신학을 기입해야 했던 그 상황을 토착화 신학자들은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강산을 빼앗 긴 피식민자로서, 조선의 정신유산을 버려야만 기독교인으로서의 새 정체성을 얻을 수 있다는 서구 신학의 도전에 조선의 신학자들은 다 시금 신학은 무엇이며, 무엇을 물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으 며, 이것이 토착화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최병헌의 『성산명경』(1909)과 『만종일련』(1922)은 이러한 토 착화신학의 질문이 구체화된 작품들이다. 최병헌은 기독교를 가장 완 성된 진리를 담지한 종교로 보았지만, 조선의 종교문화를 대하는 태 도는 배타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았다. 그의 작품 성산명경에는 유 교, 불교, 도교,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서로의 종교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데, 그들의 대화는 타종교에 대한 겸손의 자세를 끝까지 유지한다. 그중 아마도 최병헌을 대리하는 인물로 등 장한 신천옹은 기독교를 변증하는데, 그의 논증 방식과 문학적 수사 는 장(章)마다 한시(漢詩)가 등장하는 등 서구식 방법을 탈피하고 있 다. 또 다른 작품인 만종일련은 20여개의 종교를 비교 설명하는 비교 종교학 서적인데, 타종교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성산명경과 마찬가지 로 상대종교를 정죄하지도 배척하지도 않는다. 물론 타종교 비판이 있지만 비교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고, 싯다르타의 출가를 설명하면 서는 탁월지기(卓越地氣)하며 뇌확심성(牢確心性)한 것이라고도 보 았다. 그는 조선의 종교문화를 모두 불태우고 그 위에 기독교를 세우 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종교 문화 위에 세우려 했고, 또한 기독교는

(13)

한국 문화(토착화)신학의 전개과정 김장생 13

타종교를 아우르는 완성된 형태의 종교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후대 학자들은 그의 기독교 이해를 포괄적 성취론으로 부른다. 기독교는 모든 종교 문화를 포괄하며 참된 진리가 기독교에 이르러 완성되었 다고 보았던 것이다.

종교문화를 수용하려는 최병헌의 태도는 1960년대에 이르러 유동 식과 윤성범에 의해 꽃피우게 된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너무나 분명 하였다. 신학은 ‘나’의 질문이며 ‘나’로부터 시작하는 질문이지, 서양 으로부터 주어진 질문은 더 이상 나의 신학이 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차원에서 그들에게 토착화는 성서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 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유동식은 ‘토착화’를 신학의 주제로 사용하기 시작한 출발이라고 볼 수 있는『복음의 토착화와 선교적 과제』(1962)에서 말한다.

“토착화는 초월적 진리가 자기를 잃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 자성과 초월적인 진리가 일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적응하도 록 자기를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독자성과 초월성을 가지고 자기가 처해있는 역사와 세계를 자기의 의도대로 새롭 게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토착화는 진리를 ‘나’가 복속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오히려 ‘나’

의 주체적 사유와 인식으로 진리가 이해되고 더 나아가 창조적으로 진리를 재구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유동식은 보았다. 선교사들의 기독 교가 그리스와 라틴문화를 통하여 재구성 되었듯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의 종교문화를 통하여 한국인에게 의미가 생기고, 기독교의 정신 은 재탄생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복음이라는 씨앗은 한국인의 마음의 밭에서 자라는 것이며, 한국인의 심성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싹트고

(14)

자라기에, 한국인의 복음은 한국인의 것이고, 한국인의 복음을 알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심성을 알아야 한다고 그는 보았다. 그렇다면 복 음의 밭이 된 한국인의 심성은 무엇인가? 유동식은 이를 종교문화로 보았다. 종교는 정신세계의 근원이 되기에 한국의 종교 전통을 이해 하는 것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불선은 한국의 정신세계를 지탱해온 종교들이지만 이들은 파편 적으로 인도와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고 유동식은 보았다. 한 국으로 전래된 유불선은 한국인의 종교가 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유불선은 이를 관통하는 풍류도(風流道)라는 정신적 토대 위에서 세 워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유동식은 설명한다. 유동식의 풍류란 자연과 인간과 하나님을 매개하는 예술적 영성이라고 볼 수 있다. 바람과 같 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 기상이지만 다른 한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영적인 기운이 풍류도이다. 유동식에 따르면 풍류도는 유불 선을 아울러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영성의 기반이 되었고 한반도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그는 말씀이 육화되 듯 기독교는 풍류도를 통하여 비로소 한국인의 종교가 된다고 보았 다. 풍류는 하나님과 한국인을 만나게 해주고 또한 유불선 전통과 기 독교를 하나로 융화시켜준다고 유동식은 보았으며 바로 이것이 그의 토착화였다.

윤성범 또한 유동식과 마찬가지로 주체로부터 신학적 질문은 시작 된다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발견하지 않고는 믿음은 성립될 수 없으며, 믿음이 성립 되지 않는 한 신학은 수립될 수 없는 것이다. 살아계신 인격자 이신 하나님과 대립되는 인격적인 주체자인 나를 확실히 모르 고 성경만으로 믿음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윤성범, 『신

(15)

한국 문화(토착화)신학의 전개과정 김장생 15

학방법서설』)

“기독교는 세계 종교이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주체성 이 결여되어가지고는 아무런 성과도 기대할 수 없고 기독교 진리의 내면성과 한국 문화 일반의 형식적인 면이 어떻게 조 화하고 합류하느냐의 문제는 토착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윤 성범, “환인, 환웅, 환검은 곧 하나님이다”)

윤성범에게 복음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나’였고 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복음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복음의 구 성자이다. 이러한 복음 수용의 자리를 윤성범은 선이해(先理解) 즉 아프리오리(a priori)라고 불렀다. 복음은 무시간적이고 무공간적인 것이 아니기에 한국에 들어와 아프리오리위에서 싹터 한국적 복음이 되는데, 그가 가장 먼저 발견한 한국적 복음은 단군신화였다. 단군신 화의 환인, 환웅, 환검은 삼위일체 교리를 투영하고 있다고 보았다.

한국의 종교문화는 하나님과 배치되어 배척해야할 것이 아닌 하나님 을 받아들이는 토양으로 보아야 하는데 그 근거는 단군신화에 나타 난 삼위일체론의 흔적 속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윤성범은 1971년 『성(誠)의 신학』을 발표하는 데 유교의 성(誠)이란 말씀(言)이 이루어짐(成)을 의미하며 이는 말 씀이 육(肉)이 되신 하나님에 대한 요한의 신학과 다르지 않다고 말 한다. 성은 이 세계의 초월성을 담지하고 있기에 복음을 담는 종교문 화적 그릇이며 이는 한국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의 장이 된다고 말한다.

윤성범과 유동식에게 복음과 상황은 토양 혹은 그릇의 유비를 통 하여 나타나는 수용의 문제였다면 변선환에게 복음과 상황의 관계는 그의 스승들을 넘어 ‘만남’이라고 보았다. 즉, 기독교 복음은 한국 종

(16)

교문화의 토양 속에서 싹이 솟아난 것이라기보다는, 기독교와 한국의 종교가 상하가 아닌 수평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변선환의 화 두(話頭)는 기독교는 불교와 유교와 같은 동양종교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였고, 이를 위해 다양한 종교 간의 만남의 유형을 소개하였 는데, 주로 불교와의 대화를 주도하며 해외신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 였다. 이로 인하여 감리교에서 고초를 겪었던 변선환은 후에 토착화 신학과 더불어 한국 신학의 양대 산맥인 민중신학과의 대화를 시도 하였다.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은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의 만남의 결과 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역사와의 조우를 신학의 기반으로 하였지만 결국 고통받는 민중의 경험을 경시한 토착화 신학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 종교문화적 심성을 무시한 채 정치해방을 중심에 둔 민중신학 또한 넘어서려 하였다. 변선환은 종교 간의 만남과 대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또한 정치, 경제적 해방이 인간의 해방을 의미하 지 않는다고 보았다. 새로운 인간의 탄생과 구원의 신비를 선포해야 하며 이를 종교해방신학이라고 불렀다. 즉 기독교인들은 일상 속에서 도 타종교인과 대화를 하지만 참된 의미의 대화란 ‘나’와 ‘너’를 넘어 공동체의 변화와 영적 해방을 가져오는 것이 대화의 중추적 의미라 고 보았던 것이다.

변선환에 대한 종교재판으로 토착화신학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 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토착화신학은 그의 제자 이정배를 통하여 더 욱 확장되어 나갔다. 최병헌의 포괄적 성취, 윤성범과 유동식의 복음 과 상황,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을 자신의 신학적 기반으로 하여 생 명신학으로 나아간 이정배는 다양한 학문과의 대화를 통하여 한국적 기독교를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자연과학, 환경, 생태, 타종교, 근현대 한국 사상가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가 던지는 질문은 선대 학자들

(17)

한국 문화(토착화)신학의 전개과정 김장생 17

의 맥에 서있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의 대 화의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나’를 ‘나’이게 한 근거를 문화종교 전통에서 찾았고, 내가 당면한 현대사회의 과제를 환경, 생 태에서 찾았으며, 무종교의 위협에 대한 응답을 자연과학과의 대화를 통하여 찾아 나선 것이다. 최근 그는 한국 기독교가 당면한 과제들을 유영모, 함석헌, 김흥호와 같은 근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모색하고 있고 또한 작은교회들과의 실천을 통하여 구체적인 신학적 실험을 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최병헌으로부터 이정배에 이르는 토착화신학의 흐 름이 탈(脫)민족주의, 세계화, 범지구적 자본시장의 확대 속에서 어떻 게 발전할 것인가는 후대 학자들에게 과제이다. 과거 토착화신학이 당면하였던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과제들이 앞에 놓여있다. 인공 지능의 등장, 전(全)지구적 빈곤, 전(全) 지구적으로 삶의 근간을 흔 드는 코로나와 같은 질병의 등장, 트럼프 이후 다시 등장한 보호주의 등과 같은 문제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해나갈 것인데 이런 상황 속에서 토착화신학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18)

문화신학, 민중신학, 농(農)신학

코로나 이후 시대의 민중신학과 생태적 주체

김 희 헌(목사, 서울 향린교회)

1. 민중과 민중신학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보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추모행사는 조 촐했지만, 반(半) 백년이 된 그 사건은 의미를 잃지 않고 우리 사회의 좌표가 되고 있다. 추모행사에서 한 노동자는, “50년 전의 참담한 현 실은 여전하고, 지금의 노동자는 기계보다 못한 사람이 되고 있다.”

했다. 피복 노동을 본다면, 청계천에서 창신동으로 장소를 옮겼을 뿐 노동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수백만의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또 다른 수백만의 노동자들에게 노동조 합을 설립할 권리는 없다.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열린 뜨거운 민중의 시대를 생각하면, 오늘의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돌이켜보니, ‘민중’은 가슴 설렌 말이었다. 민중운동, 민중문화, 민 중신학, 민중교회 등 ‘민중’은 진보하는 역사의 활력을 대변하는 말이 었다. 일찍이 최남선의 “기미독립선언서”에서 수줍게 등장한 ‘2천만

(19)

코로나 이후 시대의 민중신학과 생태적 주체 김희헌 19

민중’은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에서는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 되어 해방의 주체로 나타난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를 열어온 민중은 분단과 독재에 잠시 숨죽이다 전태일 사건을 계기로 다시 역사의 지 평 위로 솟아오른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유신시대 진보적 지식인의 상징이 었던 안병무는 한국신학연구소를 토대로 삼아 ‘한국 민중론’을 구성 하는 작업을 이끌었으면서도, 자신의 민중 개념은 한사코 제시하지 않았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는 민중을 개념 규정하는 데, 그 것은 특정 사회집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상징이었다.

그는 민중을 가리켜 ‘역사의 생명’ 또는 ‘동양의 기(氣)에 해당하는 존 재’, ‘성서의 루아흐, 프뉴마’라고 말한다. 동료 서남동이 ‘민중의 신학’

을 위해서 전통신학 방법론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탈(脫)신학과 반(反)신학’을 제안할 때, 안병무는 신학을 결코 사회학으로 치환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안병무가 민중이라는 존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마도 민중 이 보이는 두 양상에서 오는 오해와 왜곡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민중에게는 소극적인 모습과 적극적인 모습이 함께 있다. 한편 으로, 민중은 정치/경제적 고난의 직접적 당사자로서 권력의 지배에 포섭된 모습을 보인다. 억압적 현실에서 민중은 오히려 수동적이며,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정치/

문화적 선도성을 갖고 역사적 변혁의 주체로 등장하는 또 다른 모습 을 띤다. 이율배반적인 이 두 모습으로 인해 오해와 이데올로기가 교 차한다.

민중의 소극적인 모습에 천착할 때, 민중을 위하는 행위는 도리어 그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국가복지와 종교의 자선에는 이 런 위험이 뒤따른다. 이와는 달리, 민중의 적극적 모습이 강조되는 상 황은 좀 미묘하다. 그것은 존재의 현실을 운동적 가치의 근거로 보는

(20)

데서 생기는 착시현상이다. 민중의 주체성은 성찰과 훈련이 필요한 데, 그 과정이 생략된 채 변혁적 정체성이 마치 수여될 수 있는 것처 럼 이해될 때, 민중의 변혁성은 ‘기능’하기보다 ‘주장’되면서 결국 운 동은 일그러진다. 1990년대 민중교회의 해체과정이 이 문제와 무관하 지 않다고 본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민중신학의 주장이 민중교 회에 곧장 적용되었을 때, 종교 공동체로서의 동력은 도리어 취약해 졌다. 진보적 정신은 특정 집단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

안병무가 민중에 대해 말할 때 사회학적 개념보다는 신학적 상징 화를 선택했던 것은 민중이라는 말이 사회적 ‘신분’보다는 사건적 특 징에 가깝기 때문이다. 민중담론에서 중요한 문제는 역사의 활력을 길러낼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 정신은 역사에 진보 의 열매를 맺으면서 보다 나은 사회질서로 물화(物化)되어 가지만, 그것이 질서 자체와 동일시될 때는 제도에 포섭되는 운명에 빠진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가 이룬 민주주의는 민중운동의 성취이자 덫이다. 오늘날, 민중이라는 말이 게토(ghetto)화 된 특정 영역을 벗 어나면 듣기 힘들게 된 이유도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 이후 기독교 교회에서 민중신학은 활력을 잃었다. 일차적 으로는 사회 환경이 변했기 때문인데, 그 변화는 민중이라는 ‘사회학 적 집단의 축소’에 있다기보다는 그 ‘가치론적 의미가 퇴조’했기 때문 이다. 현실에서 민중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민중으로 상징된 역사의 활력이 세계화로 포장된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압도당했을 뿐이다.

1970-80년대 한국교회가 민중신학을 통해서 사회적 고난에 대처하는 신념의 목소리를 갖추고 역사와 소통할 수 있었다면, 1990년대 이후 의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편승하려는 욕망으로 바벨탑을 쌓아 갔다. 전체적인 여건이 변해가면서, 민중신학도 교회의 신학으로 기 능하지 못하고 생기발랄함을 잃어왔다.

민중신학에 항구적 지혜가 있다. 그것은 민중의 고통과 부르짖음에

(21)

코로나 이후 시대의 민중신학과 생태적 주체 김희헌 21

주목하는 ‘성서 전통’을 잇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중’이 상징하는 가치는 사회적 소외집단에 대한 헌신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라, 그 헌신이 역사의 진보를 이끌만한 가치를 지녔다는 사 회적 동의를 얻을 때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중운동은 과거의 계 급투쟁보다 훨씬 복잡한 과제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종교에는 사회적 영성이, 사회에는 신학적 감각이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2. Covid-19 시대와 근대문명

코로나 시대의 삶이 어느덧 일상이 되어가며, ‘뉴 노멀’(new normal)로 지칭된 새로운 사회 규범이 만들어지고 있다. 낯설게 경험 하는 현상들 가운데, 무엇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뉴 노멀의 내용과 방 향도 설정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비대면’(untact) 상황에 주목할 경 우, 새로운 ‘행위규범’으로써의 뉴 노멀에 관심하게 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의 위계’에 주목할 경우, ‘체제구상’으로서의 뉴 노멀을 상상하게 된다. 코로나 이후 시대에는 새로운 행위규범 못지않게, 근 대문명의 청산을 기획하는 체제구상의 뉴 노멀도 절실하다.

하지만, 요청된 변혁이 근본적일수록 이루기 힘들다는 비관이 앞선 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연을 약탈해온 근대 자본주의 소비 문명이 언 젠가는 삶 자체를 파괴하는 지점에 이를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살아 왔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해온 산업문명이 환경의 역습으로 전환될 것 이라는 경고, 사회적 갈등의 뿌리에는 양극화된 빈부격차와 새로운 신분제도를 도입한 자본의 악습이 있다는 인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우리 시대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단지 자본의 재배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문명전환을 겨냥한 상상이 구현될 수 있는 길을 내야 한다.

철학자 에롤 E. 해리스는 근대문명이 파국으로 귀결된 본질적인 원 인을 근대과학의 사유방식에서 찾고, 인류의 과제를 낡은 정신적 편

(22)

견을 떨쳐내는 것으로 봤다. 여기서 낡은 편견이란 뉴턴이 완성한 근 대적 사유 패러다임에 담긴 특징들 즉, 물질주의와 기계론, 원자론과 개체주의, 외적(external) 관계방식과 환원주의, 선입견과 주관적 가 치가 배제된 과학, 목적론적 설명에 대한 거부, 물질과 정신의 분리 등이다.1) 이러한 뉴턴 패러다임이 과학만이 아니라 인식과 실천의 전 영역에 만연하여 근대문명의 병폐가 깊어 파멸에 이르고 있음에 도 불구하고 인류는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고 그는 말한다.

근대문명이 세계를 이해할 때 ‘실체’(substance)에 착안하여, ‘자기 존재를 위해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개체적 존재에 관한 관념 위에 문명을 축조할 때부터 그 행로는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개 인의 존엄과 가치를 중시한 근대정신이 중세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과 인도주의적 가치를 높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 유기체가 자신 의 환경과 맺는 참된 관계를 무시’하고 ‘그 환경의 고유한 가치를 무 시하는 습관’도 기르게 했다. 이렇게 상호연관 감각을 잃은 근대정신 은 타인을 단지 ‘도구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간주하고, ‘인간의 형제 애에 유의하기보다는 부적격자를 근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2) 결 국, 인도주의적 이상은 공동선(common good)을 향한 전체적 비전을 구성하기보다는 ‘소득, 여가, 그리고 안전이 더는 향상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봉사하게 되었다.3)신자유주의 시대 가 열린 것이다.

자연과 노동에 대한 약탈로 구성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점에서

1) Errol E. Harris, Apocalypse and Paradigm: Science and Everyday Thinking, 이현휘 역, 파멸의 묵시록 (산지니, 2009), 53

2) Alfred North Whitehead, Science and Modern World (New York: Free Press, 1925), 194-96;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Free Press, 1967), 36.

3) 데이비드 하비,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 최병두 역 (한울아카데미, 2007), 58.

(23)

코로나 이후 시대의 민중신학과 생태적 주체 김희헌 23

터진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는 길을 잃은 근대문명의 현실을 보는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종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중산 층을 위해 진화해 왔기 때문에 문명전환의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 고 있다. 개신교와 같이 한국 현대사회에서 급부상한 종교일수록 코 로나 사태를 맞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 사태가 소 위 ‘탈(脫)진리 시대’(post-truth era)로 불리는 상황에서 펼쳐지고 있 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가짜뉴스마저 취향이 되어버린 탈진리 시 대 환경에서, 윤리는 당위성에 대한 성찰보다는 심리적 취향이나 사 회적 효용성에 함몰되어가며, 사회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이 좀체 구성되지 않고 있다.

고통에 잠긴 삶을 구원으로 인도할 신성한(sacred) 무엇은 과연 있 을까? 고통의 삶에는 혼돈과 신비가 교차한다. 아니 고통은 그저 혼 돈일 뿐, 신비란 말은 어쩌면 실재의 깊이에 대한 암시라기보다는 현 실을 은폐하는 현혹일지 모른다. 하지만 고통의 심연에서 해방의 문 을 여는 열쇠를 얻을 수만 있다면, 적자생존의 삶으로 얼룩진 근대문 명의 ‘힘의 철학’과 ‘번영의 복음’을 넘어서는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 삶의 불안정성과 사회적 비탄 속에서 인류 공동체에 관 한 새로운 감각, 약탈적 체제의 종식과 생태적인 삶에 관한 갈망이 거세게 일어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사실, 근대문명의 억압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은 오 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났다. 그것이 ‘탈근대’라는 이름을 가 졌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근대문명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진보적 주체 는 여러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 글은 그것을 세 유형으로 분류하여, 저항적 주체, 해체적 주체, 생태적 주체로 부를 것이다. 그들은 진보 담론의 세 가지 패러다임을 대변한다. 저항적 주체는 억압적 체제를 전복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려는 피억압자의 관심을 대변하며, 해체적 주체는 근대정신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성과 관용에 주목한

(24)

탈근대적 주체이며, 생태적 주체는 유기체적 관계성을 중시하는 생태 문명을 지향하는 주체를 상징한다. 앞으로의 민중신학을 위해, 어떤 주체가 모색되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논의될 것이다.

3. 근대문명 극복의 두 시도, 저항적 주체와 해체적 주체

근대문명의 정신적, 제도적 폭력성을 해결하려 한 ‘저항적’ 주체는 근대문명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억압적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저항적 주체는 세계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세계 자체를 ‘변 혁’하는 일에 관심했다. 이들은 공동체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종교 와 국가 그리고 자본에 부여된 절대 권위를 전복하려 하였고, 이데올 로기적 왜곡과 제도적 억압에 맞선 실천을 철저히 밀고 갔다는 점에 서 이후 모든 진보적 양심은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이들이 가진 당파 적 윤리는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서 세계를 해석하고 재편성하려는 해방의 이상을 대변하였기에, 그 역사적 한계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저항적 주체가 추구한 해방 정신의 항구적 교훈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항적 주체의 대표적 실험이었던 사회주의 혁명은 지구적 차원에 서는 실패했고, 이제는 국지적으로 남았다. 그 이유에 대한 여러 설명 가운데, 저항적 주체가 유기체적 사회의 복잡한 운동과 그 구성원의 포괄적 관심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진보에 대 한 절대적 낙관과 자기 이상의 당파적 실천이 결국 자기비평을 소홀 하게 만들고,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형성된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포괄적인 고려를 제한했다는 것이다.

사상적인 면에서 보면, 저항적 주체의 변증법적 사유에서 갈등과 투쟁이란 보다 고상한 종합의 전조로 이해되기 때문에, 역사적 진보 에 대한 낙관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발전이 역사 속에서 발

(25)

코로나 이후 시대의 민중신학과 생태적 주체 김희헌 25

견될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갈등과 투쟁이 고상한 종합을 ‘필 연적으로 발생’시킨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갈등 가운데 하나의 선(善)이 또 다른 선을 위해 파괴되는 것은, 고차적인 종합으로서의 지양(aufhebung)이 아닌 항구적 상실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따 라서, ‘이전의 사회를 파괴할수록 더 완벽한 사회가 더 빠르게 건설되 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치가 박멸되면 될수록 그것이 회복될 수 없는 위험이 높아질 뿐’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4)

마르크스주의 운동 자체의 ‘오독’도 있었다. 이를테면, ‘소명으로서 의 프롤레타리아’와 ‘역사적 상태로서의 노동자 계급’의 혼동을 말하 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프롤레타리아가 어느 특정한 사회계급인 노 동자 계급과 동일시” 되면서 ‘혁명의 소명(klesis)을 망각하기 시작’했 다는 것이다.5) 유사한 딜레마가 역사에서 되풀이된다. 기독교 교회 (ek-klesia)가 자신의 소명을 ‘실행’하기보다는 그것을 ‘소유’한 집단 처럼 행세할 때 종교적 추락을 완성하듯이, 부처의 자비도 승가(僧 伽)의 소유가 될 수 없고, 진보적 정신 역시 특정 집단의 ‘소유’가 되 지 않는다. 소명을 활용하기보다는 그것의 특권적 소유에 집착하는 이들은 반드시 몰락한다.

오늘날 저항적 주체는 과거의 ‘계급투쟁’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 한 과제를 맞고 있다. 노동가치이론의 ‘유통기한이 만료’되어 노동의

‘부정적 존재론’이 널리 퍼져서, 진리가 ‘노동의 힘’에 뿌리박혀 있다 는 생각은 거의 깨졌으며, 돈이 ‘신비화’되어 이제 노동은 ‘착취’에 대 한 저항이 아니라 ‘배제’에 대한 대처를 먼저 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 다.6) 공항노동자들의 정규직화라는 노동의 꿈이 바로 노동자들에 의

4) John B. Cobb, Jr., Process Theology as Political Theology(Manchester, England: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2), 59-60, 105.

5) 조르조 아감벤, 남겨진 시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강의 (코 나투스, 2008), 60.

(26)

해 위태로움을 겪었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의 인식론적 특권’은 이제 상실감을 경험한 대중들의 ‘공정성’이라는 명분 앞에서 설득력을 잃 었다. 네트워크나 기계에 의해 노동이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과 포스 트 휴먼(post-human)의 전망 또한 저항적 주체의 진화를 요청하고 있다.

저항적 주체가 억압적 ‘체제’의 전복에 관심했다면, 해체적 주체는 억압적 ‘정신’의 해체에 주목했다. ‘탈근대성’을 표방한 해체적 주체는 근대사상의 문제점을 ‘전체성에 대한 전쟁’(a war on totality) 또는

‘거대담론’(meta-narratives)에 대한 회의’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거기에는 분명히 절대적 진리를 표방한 근대 이성의 병폐와 한계들 즉, 객관주의적 과학 이론, 토대주의적 인식론, 보편주의적 도덕과 문 화 관념이 억압 기제로 기능하는 체계를 타파하려는 해방의 요소가 있었다. 또한, 해체적 주체에게는 기존의 진보를 상징한 저항적 주체 안에 내장된 폭력성이 근대성의 잔재로 포착되었다.

해체적 주체는 차별에 맞선 연대와 차이에 대한 관용의 미덕을 인 간 정신에 심어주었다. 하지만, 상대화/파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어 떻게 담론과 투쟁을 위한 공통의 토대를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서 어려움에 빠졌다. 여기서, 저항적 주체가 ‘하나의 진리를 절대화’

하는 극단에 치우쳤다면, 해체적 주체는 ‘모든 진리를 상대화’하는 또 다른 극단에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7) 말하자면, 해체적 주체 는 새로운 문명을 향한 ‘동력’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 문을 받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 관심에 매몰되는 소아병을 극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상대성에 대한 인식이 편협성으로 흐르지 않게 할 것

6) 안토니오 네그리, 욥의 노동: 고통과 노동의 창조적 존재론 (논밭출판 사, 2011), 33-34.

7) John B. Cobb, Jr., “Responses to Relativism: Common Ground, Deconstruction, and Reconstruction.”

(27)

코로나 이후 시대의 민중신학과 생태적 주체 김희헌 27

인지, 어떻게 지식의 파편화를 방지하고, 허무주의를 넘어설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

이러한 질문은 해체적 주체의 탈근대적 감각이 진리를 향한 열정 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근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서 생긴다. 진 리 자체가 아니라, 감정과 자기 신념을 만족하게 하는 것을 진리로 여기는 ‘탈-진리’(post-truth) 시대를 맞은 오늘, 문제는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선동적/ 반동적 존재보다 그 흐름을 제어할 사상적 장치가 없는 데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다양성의 윤리를 권장해온 탈근대주의가 마주친 최대의 복병으로서, 당위성의 감각이 소실되거 나 왜곡된 지점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증후군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근대의 이기적 주체 못지않게 탈근대의 해체적 주체도 이해관계나 자기 편견 속으로 잘게 부서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탄식이 생긴 다. 해체되어 개인의 ‘취향’으로 미끄러진 진리는 묵시록적인 미래에 대한 순종의 지표처럼 읽히지만, 다행히 존재의 무게에 이끌린 영혼 은 어느 시대든 미래의 그루터기로 남는다.

4. 생태적 주체와 민중신학

생태적 주체는 ‘저항과 해체’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수렴한 존재로 서, 타자(他者)와의 연관성을 내재화하여 자기 고립을 극복한 존재이 다. 그는 근대문명이 ‘생존 경쟁을 증오의 복음으로 해석’한 사상적 잘못을 깨달은 존재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유기체적 연관을 실재의 본질로 알기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도구적 가치가 아닌, 생명의

‘고유한’(intrinsic) 가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요소이자 환경으로 서로 작용하는 것을 이해한다. 이것은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과장한 개체 주의적 편향과 공동체의 질서를 위한다는 명목의 전체주의적 편향을 함께 극복하려는 것이며, 각 생명의 본원적 가치를 키우고 보호하는

(28)

‘공동체적 환경’과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

의 가치를 동시에 지지한다.

생태적 주체의 관계성에 대한 인식은 ‘우주의 본성에 대한 경외심 을 일으키는 통찰’에 근거한 것이다. 생태적 주체는 근대문명의 전제 가 되는 실체철학의 개체주의적 관념 즉, ‘모든 존재는 자기이해관계 에만 관심할 뿐이다’는 생각이 실상은 추상적 이데올로기이자, 전체 전망을 상실한 부분적 관찰에 기인한 편견으로 본다. 생태적 주체에 게 중요한 것은 ‘진리’ 못지않게 ‘아름다움’과 ‘평화’이다.

해체적 주체가 이미 밝혔듯이, 다양한 생명이 어우러진 세계에서 자신의 진리를 구축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타자의 진리에 대 한 인식이다. 생태적 주체에게 그러한 인식은 상대성의 관념에 머물 지 않고, 아름다움의 윤리로 전진한다. 세계를 설명하고 윤리적 행동 을 하는데, 진리보다 더 ‘넓고 근본적인’ 의미를 아름다움에서 찾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떠날 때 진리는 선도 악도 아니다. 진리가 없는 아름다움에 중후함이 없다면, 아름다움이 없는 진리는 사소성으로 전 락한다. 진리가 중요하게 되는 것은 바로 아름다움 때문이다.”8)

더 나아가, 생태적 주체에게 평화는 궁극적 이상으로서, 이상적 관 계요, 이상적 상태이며, 이상적 목적이다. 이 평화는 웅대한 관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파괴적 격동을 가라앉히고, 문명을 완성하는 조 화 중의 조화’이다. 이 평화는 현실의 아픔에 눈감지 않고 ‘비극에 대 한 감수성’을 생생하게 간직한 채, ‘무한성의 파악’ 즉 ‘한계를 초월하 는 호소’를 듣는다. 이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수많은 아름다움과 무수한 영웅적인 행위와 무수한 대담성이 일어나고 지나가는 한복판 에서 영원을 직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9) 다시 말해서, 생태적 주 체는 평화의 감각을 잃은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은 ‘무자비하고,

8) Whitehaed, Adventures of Ideas, 267.

9) ibid., 284-6.

(29)

코로나 이후 시대의 민중신학과 생태적 주체 김희헌 29

딱딱하고 잔인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안다.

진보하는 사회는 약탈적 풍요 위에 세워진 안락한 사회가 아니다.

진보하는 사회는 인간의 관심사들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 유혹을 받 는 사회요, 그것을 이룰 방식으로 ‘비폭력/설득’의 길을 신뢰하는 사 회이다. 역사의 진보란 단지 과학적 기술이나, 철학적 신념만으로 이 뤄지지 않는다. 예술의 감각과 종교의 전망이나 결단 없이 역사는 도 약하지 않는다.

사실, 종교가 중요하다. 근대문명의 비극은 종교적 전망을 잃은 과 학에 의존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과학적 세계관으로 부터 분리된 종교 역시 근대문명을 질곡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자 신의 낡은 관념을 수정할 용기를 갖지 못한 종교는 과학에 패배하면 서 결국 자신의 중요성까지 잃게 되었고 단지 ‘안락한 삶을 장식하는 형식신앙’이 되었다. 평화에 대한 비전으로 ‘직접적인 동의’를 불러일 으키는 힘을 잃은 종교, 신의 분노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여 정서에 호소하여 연명하는 종교는 결국 외면받는다. 그런 이유로, 종교는 저 항적 주체에게는 단지 ‘도구’였고, 해체적 주체에게는 ‘취향’이 되었 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과 개체적 만족 너머로 뻗어가도록 충동하는 종교적 힘을 잃은 문명 역시 쇠퇴할 것이다.

억압과 파괴로 얼룩진 문명을 싸매는 지혜가 필요하다. 민중신학의 일차적 과제가 있다면, 생태적 주체를 길러내는 지혜를 구성하는 것 이다. 자기 진리에 대한 충실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감각과 평화의 이상으로 충동질 당하는 영혼이 역사의 품에서 자라나도록 해야 한 다. 자비로운 열정과 은혜로운 관계에 대해 겸손한 생태적 주체가 등 장할 때 교회의 미래도 다시 열릴 것이다.

(30)

문화신학, 민중신학, 농(農)신학

농 (農)신학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

이 영 재(목사, 원주 영강교회, 구약학 Ph.D)

한국에서 자생하여 생겨난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은 한국교회사 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모든 신학이 그렇듯이 완결된 사상체계일 수 가 없다. 역사의 현상은 늘 변화하고 있고, 성서에 대한 지식과 이해 도 시대를 이어 점점 깊고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의 60년 대에서 세기말까지 살아온 한국의 기독교는 엄청나게 급변하는 사회 경제적 변전과 정치적 변동을 체험하였다. 그 변전의 과정 속에서 소 중하게 열매로 맺힌 것이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이다.

21세기를 들어와서 역사의 새로운 지평이 펼쳐지고 있다. 이 시대 에 교회는 좀 더 깊고 폭넓은 신학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인공지능 (AI)시대에 요구되는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신학적 대응도 절실히 요 구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서 말한 두 가지 자생적 한국신 학을 바탕에 깔고서 이 시대의 요구에 대해서 서구신학과 교조를 중 심으로 살고 있는 한국 교회가 어떻게 부응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 민한 것이 ‘농신학’이다. 특히 이 시대의 질문들을 성서에게 진지하게

(31)

농(農)신학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영재 31

물어보는 작업을 하면서 조직신학과 역사신학, 그리고 실천신학의 학 자들과 머리를 맞대면서 보낸 노력의 결과가 ‘농신학’(農神學)이란 이 름으로 태동했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들

시대의 주제들을 성서에 물어 보는 작업이 지난 10년간 이어졌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서 신학은 산업이란 무엇인지를 다 시 생각해야 했다. AI의 개발을 보면서 인간은 누구인지를 다시 물어 보게 되었다. 인간이 왜 살고 있는지, 꼭 이러한 문명의 형태로 살아 야 하는 건지, 역사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누구신가, 성령은 성경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우리가 믿는 예수는 누구이시며, 나의 그리스 도론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서가 말하는 교회론은 무엇인 가, 등등 긴급한 질문들을 가지고 응답해야 했다.

전통적인 신학을 구성하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과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렇게 성서에 직접 질문하고 얻은 대답과는 매 우 거리가 동떨어진 고백을 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500-600년이나 지난 서구의 신앙고백문을 오늘의 상황에서 그대로 고백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오늘의 문제를 한국의 상황에서 생각하면서 전 세계의 보편교회들과 소통하는 가운데 보편성을 견지 하면서 다시 성경을 읽어본 결과 떠오른 생각들이 모여서 ‘농신학’이 라는 하나의 일관된 사상체가 형성되었다.

우선 창 1:28과 창 2:5의 관계를 문학적 관련성 속에서 살펴보는 농 신학의 작업부터 소개해 보려고 한다.

성서에 나타난 ‘농’(農)의 사상

(32)

창세기 2장 5절 말씀에 ‘땅을 갈 사람이 없었으므로’란 구절이 문장 끝에 나온다. 이 말씀은 사람의 사는 의미와 목적을 밝혀준다. 사람의 존재이유, 곧 인생론이 펼쳐진다. 사람은 땅을 가는 존재로 생겨났다 는 뜻이다. ‘땅을 갈 사람’이란 곧 농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본디 농인(農人)으로 창조되었다는 뜻도 된 다. 그런데 ‘땅을 갈 사람’이란 말씀이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지는 너무나 애매하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를 완성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다(창 1:1-2:3). 하지만, 들판이나 산야에는 아직 식물들이 다 나지 않은 상 태에 있었다(창 2:5).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셨으나 창조작업은 계 속됨을 의미한다. 창조의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문서가설로는 이 두 문장을 따로 떼어서 혹자는 P문서와 J문서, 근자에는 P문서와 pre-P문서의 결합으로 이해했지만, 그러한 이론은 이 다른 본문을 최 종본문으로 읽는 독자에는 사전 지식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토 라를 완결한 최종본문을 읽는 독자의 눈에는 1장의 창조기사가 2장 에서 다시금 술회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창세기 2장이 1장을 더 욱 상론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주께서 하시는 창조사역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끝 날까지 주의 창조는 이어질 것이라는 암시가 창 2:4ㅎ 의 ‘톨도트’란 단어를 통해 주어져 있다. ‘톨도트’는 처음과 끝을 전제한 단어로서 개역은 ‘내력’이라고 번역했다.

주께서 창조의 사역을 계속하기 위하여 ‘땅을 갈 사람’이 필요했다.

‘땅을 갈 사람’의 히브리어 원어는 ‘아담 라아보드 엩-하아다마’이다.

동사 ‘아바드’는 ‘섬기다/노동하다’란 뜻이고 명사 ‘아다마’는 ‘흙’이란 뜻이다. 직역하자면 ‘흙을 섬기는 사람’이 된다. 모든 피조물은 흙으 로 지어졌다고 전제한다면, 이 말씀은 ‘모든 피조물을 섬기는 사람’이 란 의미로 확대할 수 있다. 사람의 몸도 흙이고, 모든 동물도 흙이며,

(33)

농(農)신학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영재 33

식물도 흙이다. 이렇게 볼 때, 흙을 섬긴다는 말은 생명을 살린다는 뜻도 된다. 흙은 모든 존재자이다. 따라서 흙을 섬기는 사람은 타자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꾼이 ‘땅을 갈 사람’이다.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창 1:28). 이런 일을 하는 존재가 있어야 하나님의 창조 작업은 계속될 수 있다. 예수는 전적으로 타자 를 위해 사신 분이셨다. 예수는 창조의 원인간의 삶을 살아내신 것이 다. 본회퍼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타자를 위하여 사신 분’이라고 정의 하였다(Being for others).

창세기 1장은 ‘농’(農)의 개념을 정립하고 있으며, 2장은 ‘농인’(農 人)이 누구인지를 정의하고 있다. 흙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이 농사 가 아니다. 흙에 노동력을 투여하여 흙을 살리는 일이 농사이다. 흙의 생명을 증진하고 보존하는 사람이 농인이다. 타자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 그가 곧 ‘농인’인 것이다. 농인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다. 사람은 본디 하나님과 함께 생명을 살리는 농인으로 이 땅에 태어 났다.

현대의 산업사회에서 농사는 산업의 한 분야가 되었다. ‘공업’이나

‘상업’과 마찬가지로 ‘농업’도 국가경제를 위해서 중요한 산업이다. 자 본주의 국가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농사꾼은 돈을 벌려고 농사를 짓 는다. 돈이 안 되는 작물은 수확하지 않고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농부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 흙을 파고 밭을 고르면서 농사 꾼은 하나님의 숨결에 흠뻑 젖는다. 인간은 본디 모든 타자를 살리는 일을 하는 창조의 동역자로 태어났다.

농부가 일을 해야 사람이 먹을 채소가 자란다. 농사꾼이 없는 채소 는 존재하지 않는다. 채소는 사람의 식단에 오르는 재료가 된다. 창세 기 1장 29절은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가 본디 사람의 먹을거리였다고 한다. 사람은 워낙에 채식동물로 지음 받았다는 선언이다. 채소가 나지 않으면 사람은 굶어 죽는다. 이 점은

(34)

모든 육식동물에게도 적용된다. 동물도 모두가 채식을 하도록 창조되 었다. 채소를 재배하는 믿음의 농사꾼의 일이 있어야 지구상의 사람 은 생존할 수 있고, 땅에서 채소가 자라야 동물들도 생존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경의 선언은 인류학적 지식에 비추어 볼 때 참이 아니다.

원인류학이나 지구학의 연구결과로 미루어 볼 때 본디 사람이나 동 물이 채식만 하였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근거가 없다. 그러나 성서의 저자는 자기 시대에 사람들에게 채식의 원론을 제시함으로써 하나님 의 뜻을 선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영적인 지도자라는 사실은 불변의 참이다. 성서의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생명 존중의 사상이 담뿍 담겨 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셋째 날에 식물이 창조되었다(창 1:11-12). 마 른 땅이 드러나니 거기에 씨 맺는 식물이 났다. 식물의 씨이 창조된 이후인 넷째 날에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창조되었다. 지구와 태양계가 넷째 날에 이루어졌다면 식물과 씨의 창조는 지구의 세 계를 너머 우주적 삼차원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이 것도 과학적으로는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언설이지만, 창세기 저자의 시대에 그가 선포하려는 진실은 오류라고 볼 수 없다. 그는 생명과 씨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동물은 창조의 다섯째 날에 생겨났다.

창세기 2장 5절에 의하면 지구에는 아직 식물이 다 나지 않았다고 한다. 히브리어 ‘테렘’은 ‘아직 아니’란 뜻인데 접속사가 되면 ‘〜하기 전에’ 곧 영어로는 before〜가 된다. 게다가 ‘모든 것/ all/ everything’

이란 의미의 명사 ‘콜’과 부사 ‘테렘’을 연결하면 “채소가 아직 다 나 지 않았다”라고 부분부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역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테렘’을 접속사 before로 간주하여 채소나 초목이 아직 나지 않았다고 해석하였다.

(35)

농(農)신학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영재 35

식물이 계속 돋아나는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구상에 식물을 창조하셨는데 각종 식물들이 계속 번성하여 나고 있는 중이었다. 식물은 번성하려면 물이 있어야 하고, 채소를 생산하 기 위해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비가 오지 않았고 흙을 가꿀 사람이 없었기에 아직 땅에는 식물이 잘 번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종래의 성서학자들은 창 1:1-2:4ㅈ과 창 2:4ㅎ 이하의 본문을 서로 다른 문서자료에서 온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이 두 문서자료 사이 의 상이점과 모순점이 성경으로서의 최종본문에서 어떻게 통합적으 로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거의 논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2000년대에 들어와서부터 성경을 온전한 하나의 본문으로 일관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식물 창조에 대한 창 1:11-12의 말씀과 창 2:5의 말씀 사이에 보이는 불연속성을 하나의 통일된 연속성으로 주 석해 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구상의 동물 창조는 창조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 이루어졌고 지구상의 식물창조는 최초의 안식일 이후에 이루어진다. 지구상의 식 물창조를 위해서는 물과 사람의 존재가 필요하였다. 이레째 안식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월요일부터 창조사역을 계속하신다. 이제 식물의 창조에 초점이 쏠리면서 물과 사람의 존재가 부각되는 것이다. 사람 의 창조는 앞의 창 1:26-28에 보도되었지만 그것은 다시 창 2:5-25에 서 다시 재론되면서 해설이 곁들여서 나온다. 2장은 1장에 대한 ‘미드 라쉬’이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의 계속 창조를 전제하고 있다. 토라 의 최종본문 차원에서 창세기 2장은 한번 창조된 피조물은 고정된 것 이 아니라 계속해서 창조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의 계속창조론은 과학의 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토론에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 2장 6절에 나타난 생명신학

참조

관련 문서

남자 아이가 같은 책을 읽은 여자 아이에게 재밌는 책인 것 같은 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으므로 동의하는 응답은 알맞다..

따라서 농촌다움 보전이나 농촌 난개발 · 저개발 대응 등 농촌의 현재에 대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농촌계획제도도 계획의 수립

사람이 컴퓨터에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데 이터를 통해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  학습이 이루어지지 못한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으로서의

나는 낙제를 하면 했지 절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 나는 최근 영화를 보고 눈물을

현재 전하는 최고의

한국어 높임법과 그에 따른 문법형태소를 안다. 한국어 부정법과 그에 따른 문법형태소를 안다. 한국어 피동법과 사동법과 그에 따른

-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범죄자와 관련된 소셜 네트워크를 분석하여 범죄자 집단에 대한 감시 시스템 마련6. ■ 다양한 데이터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골치 아픈 사업을 하지 말고 가업으로 이어가라고 조 언하고 있다... - 기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