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Spin-off 전략’은 2009년 8월 11일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라는 로동 신문 정론으로 유명해진 ‘CNC’로 구체화되었다.24) 이전 시기 “수자조종장치” 혹은
“콤퓨터수자조종공작기계”로 번역하여 부르던 것을 영어표현 그대로 표현한 것이 다.25) 외국어, 외래어를 최대한 우리말로 바꾸어 쓰려는 북한에서 외국어를 ‘씨엔
23) 주규창이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수행한 주요 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01.9 김책공업종합대학, 2002.8 러시아 극동지역 방문, 2002.10 낙원기계연합기업소, 2004.5 낙 원기계연합기업소, 2004.6 구성공작기계공장, 2005.1 낙원기계연합기업소, 2005.9 흥남비료연합기 업소, 2008.1 제18차 전국프로그램 경연 전시장 방문 및 출품작 참관 시 수행 2008.12 천리마제 강연합기업소, 2009.01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와 금성뜨락또르공장, 2009.01 평양시 경공업공장들, 2009.02 김책제철연합기업소와 나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 2009.02 7월7일연합기업소, 2009.04 위성 관제종합지휘소에서 인공위성 ‘광명성2호’ 발사과정 관찰시 수행, 2009.10 희천 시내 여러 부문, 2009.12 김책제철연합기업소, 2010.04 희천발전소 건설현장, 2010.05 중국 비공식 방문(5.3-7)시 수 행.
『김정일 현지지도 동향 1994~2011』 (통일연구원, 2012); “주규창”, <통일, 북한 정보-주요인물, http://unibook.unikorea.go.kr/?sub_num=54&sty=I&ste=%25A4%25B8&state=view&idx=106> (접 속일시 : 2012년 10월 15일).
24)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 『로동신문』 2009년 8월 11일.
25) CNC라는 말은 2001년에 북한 CNC 공작기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구성-10호’를 개량한 ‘CNC 구성-10호’를 만들면서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고 극히 일부에서만 사용된 것이었다.
심규석, “북, CNC공작기계 생산돌입”, 『연합뉴스』 2001년 3월 16일 (『통일뉴스』 2001년 3월 16 일 재인용); 심규석, “첨단 기계공업 기술개발 나선 북한”, 『연합뉴스』 2001년 4월 17일 (『통일뉴
씨’라는 한글표기가 아니라 알파벳 표기 그대로 사용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 이었다. 이후 북한 언론에서는 CNC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였고 급기야 2010년 신년 공동사설에는 “CNC기술, CNC화”라는 알파벳 표기가 그대로 실렸다는 것이 다.26) 2010년 8월에 개최된 ‘아리랑’ 공연에서는 “CNC 주체공업의 위력”이라는 카 드섹션까지 등장하였다.
CNC란 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의 약자로서 컴퓨터를 통해 수치제어하 는 장치를 말한다. 이 장치는 보통 ‘기계를 만드는 기계’라고 하여 어미기계 (mother machine)이라고 불리는 공작기계에 적용이 되어 ‘CNC공작기계’를 뜻하기 도 한다. 즉 CNC란 좁게는 CNC공작기계를 뜻하고 넓게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정 밀하게 수치제어를 하는 기계장치 전체를 가리킨다. ‘CNC화’란 생산설비를 컴퓨터 로 정밀하게 수치제어할 수 있게 바꾼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즉 설정된 목적을 위해 생산설비를 컴퓨터가 자체적으로 상황을 조절하도록 바꾼다는 의미를 북한 에서는 ‘CNC화’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작업자가 손으로 일일이 부품을 깎고 수치를 측정하는 작업방법으로는 정밀한 기계장치를 만들기 어렵다. 작업의 한계가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재 료의 낭비도 많다. 무엇보다 기계의 정밀도를 보장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기계장치(대표적으로 우주발사체)는 정밀한 CNC공작기계를 활용해야만 만들 수 있다.27) 우주발사체 관련 기술을 자체적으로 보유한 국가들을 일컫는 ‘스페이스 클럽’ 국가들이 대부분 최첨단 CNC공작기계 제작 기술을 보유 한 국가이기도 한 까닭이다.28)
2009년 하반기부터 CNC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국가과학원 조종기계연구소 연구진에 의해 ‘5축동시조종 수력타빈날개가공반’이라는 장치가 2009년 1월에 개발된 것이 있었다.29) 북한에서 민간 부문의 CNC 핵심연구집단이
스』 2001년 4월 18일 재인용).
26) “당 창건 65돌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 을 이룩하자”, 로동신문 (2010.1.1).
27) 성대중, 정대혁, 박승규, 박종명, “다계통 e-CNC 개발”, 『한국정밀공학회지』 26권 4호 (2009), 7-15쪽.
28) 지구정지천이궤도로 인공위성을 올릴 수 있는 나라는 6개국(미국, 러시아, 유럽, 중국, 인도, 일본)뿐 이고 저궤도로 위성을 발사할 능력만을 보유한 나라에는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이란 3개국이 포함된 다. 최남미, “2011년 세계 각국의 우주분야 투자 및 우주산업 현황”, 『항공우주산업기술동향』 9권 1호 (2011), 3-14쪽. CNC공작기계의 주도권은 독일, 일본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고 그 뒤를 미국, 중 국 그리고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이 따라고 있는 정도이다. “우리나라 기계산업 품목별 수출 시장 점 유율 분석”, 『기계기술정책』 Vol.6 No.3 (2012).
29) CNC기술을 바탕으로 첨단을 돌파하자는 선전 내용에서는 이 기술의 개발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CNC기술의 첨단은 다계통 CNC제작인데 이것의 축수가 적어도 5축은 넘어야 한다.
라고 할 수 있는 조종기계연구소 연구자들은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에 파견되어 생산설비의 혁신, CNC화를 진척시켰던 것이다.30) 김정일이 2009년 1월 11일에 이 곳을 찾은 것은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당시 현지지도를 수행한 사람으로 공개된 3인 중에 주규창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에서 CNC와 우주 발사체-로켓 개발의 직접적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31)
사실 표준형 CNC가 아니라 고급형, 고성능 CNC라 할 수 있는 5축가공중심반 은 ‘련하기계공장’에서 2002년 이전에 이미 개발한 것이었다.32) 그런데 조종기계연 구소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새 형의 전용수자조종장치’를 개발하여 대안중기계 련합기업소에 도입하였던 것이다. 이후로 이들은 ‘10m광폭선반’과 ‘300㎜보링반’까 지 CNC화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대화의 본보기 공장으로 선정된 ‘구성공작 기계공장’과 트랙터 특화공장인 ‘금성뜨락또르공장’에도 CNC화된 생산설비와 생산 공정이 완비되었다고 한다.33)
경제발전 전략의 핵심으로 CNC를 부각시킨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에서는 기 계공업의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CNC기술에서 세계적 수준을 돌파하였다고 공 언하였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련하기계공장에서 개발한 5축가공중심반, 5축방전가공반과 “세계에서 처음으로 보는 새로운 형의 CNC조종장치”의 완성이 었다. ‘초정밀 고속 자동화 기계제작 기술’인 CNC기술을 확보하였기에 과학기술을 중시하여 기술강국을 완성하고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경제발전 전략이 구체적 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경제강국의 대문을 힘차게 두드리며”,
“경제강국에로의 직선주로에 들어섰다”는 표현이 사용되었다.34) 물론 제품의 정밀 도나 작동속도, 가동시간 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긴 하지만 공개된 성능표와 가 동모습을 보면 세계 10위권 이내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만하다.35) 결국
따라서 5축 CNC 제작 기술의 확보가 변화의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여 본 인은 이 기술의 개발시점이 변화의 시점으로 언급된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30) 려명희, “대형설비의 현대화를 적극 떠밀어주어- 국가과학원 조종기계연구소에서”, 『로동신문』
2009년 11월 10일.
31) 당시 수행했다고 공개된 사람은 박남기, 주규창, 리재일이었다. “김정일 총비서 대안중기계련합기업 소, 금성뜨락또르공장을 현지지도”, 『로동신문』 2009년 1월 11일.
32) 다계통 CNC에 대한 연구 지시가 2001년에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2002년 이전에 고급형 CNC 장치가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송미란, “장군님과 CNC”, 『로동신문』 (2011년 3월 3일부터 2011년 3월 26일까지 연재); 심규석, “첨단 기계공업 기술개발 나선 북한”, 『연합뉴스』 2001년 4 월 17일 (『통일뉴스』 2001년 4월 18일 재인용).
33) 리병춘, “첨단을 돌파한 우리의 CNC기술”, 『로동신문』 2009년 12월 31일.
34)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 『로동신문』 2009년 8월 11일.
35) CNC기술과 관련한 국내외 상황에 대한 소개와 우리나라 기술개발 계획에 대해서는 정밀제어기기 기술로드맵 최종보고서 (산업자원부, 2004)을 참고하라.
2009년부터 북한 정책의 핵심이 된 CNC는 김정일이 제시했던 ‘국방공업을 우선 시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의 구체적인 정책을 상징 하는 것이 되었다.36)
컴퓨터수자조종 공작기계가 아니라 CNC공작기계로 부르기 시작한 “(정론) 첨단 을 돌파하라”에서 이 기술의 기원을 1995년 4월 29일 련하기계공장을 방문한 김 정일이 공장 현관 앞에 전시된 시제품을 살펴본 것이라고 소개면서 대부분의 CNC기술이 이때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것으로 오해받고 있다.37) 하지만 실제 북 한 CNC기술의 기원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에서 최초로 제작한 현대적 의미의 수자조종기계38)는 1986년에 제작된 ‘구성-105호’이다. 이는 1982년 11월 “자동화된 공작기계”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공작기계새끼치기 운동”을 제안 하면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었다.39) 과학원에서 과학기술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 를 시작한 것은 1983년 3월부터였다고 한다.40)
‘전자화, 수자조종화된 대형 및 특수정밀 공작기계’들를 개발하기 위한 ‘제2의 공작기계새끼치기 운동’은 1985년 6월부터 1988년 9월까지 전개되었다. 그 사이에 NC공작기계인 ‘구성-105호’가 제작되었던 것이다. 김정일의 CNC관련 업적을 정 리한 송미란은 1982년에 ‘가장 초보적인 조건을 갖춘 수자식공작기계’가 만들어졌 다고 이야기했지만 이 당시에 실제로 제작되지는 않았기에 잘못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제작에 대한 결정이 나서 정책이 집행되기 시작한 해가 1982년이라 이렇
하지만 제작에 대한 결정이 나서 정책이 집행되기 시작한 해가 1982년이라 이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