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C를 통한 생산현장의 기술 수준을 한꺼번에 향상시키려는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은 원래 계획보다 늦은 만큼 급속도로 추진되었다. 이미 1990년대 중반 일반 범용 CNC라고 할 수 있는 1계통 CNC공작기계(4축 CNC줄방전가공반)를 제작했 던 북한은 2002년 즈음에 2계통 CNC공작기계라고 할 수 있는 5축가공중심반를 생산했다. 하지만 북미관계는 정상화가 아니라 최악의 상태로 급변했기 때문에 군 수-민수 전환 프로젝트 가동은 유보되고 다시 국방력 강화, 즉 핵과 로켓 기술을 키우는 데 역량이 집중되었다. 2009년 광명성 2호 시험발사와 2차 핵실험이 나름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원래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
그 사이 CNC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CNC공작기계장치는 물론 조종장치생산까지 자체적으로 개발하였다. 이전보다 많은 지원을 받았는지 CNC발전 속도는 이전보 다 빨라져 ‘5축수직가공중심반’은 물론 ‘6축동시조종CNC기계’와 ‘크랑크축연마 반’, ‘8축 선삭가공중심반’들을 연이어 개발하였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 개 최 즈음에는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계통수를 하나 더 높인 ‘9축 선삭가공중심반’
을 생산했다. 2011년 10월, 북한의 핵심 기계제작공장인 희천종합공장이 CNC 전 용 제작 공장(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으로 완전히 바뀔 당시 CNC공작기계 본체를 생산할 수 있는 ‘11축 복합가공중심반’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53) 이례적으로 사진 으로 도배된 로동신문이 발간되었는데 그 사진 속의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은 규 모나 설비 성능 등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이와 함께 북한의 대형 생산현장들이 개보수 작업을 거치고 새로운 기술을 적
52) 송미란, “장군님과 CNC”, 『로동신문』 (2011년 3월 3일부터 2011년 3월 26일까지 연재).
53) 송미란, “최첨단돌파의 새 경사 -《련하기계》집단에서 새 형의 9축선삭가공중심반 개발”, 『로동신 문』 2010년 9월 11일; 리병춘, “최첨단목표에로 끊임없이 비약하는 련하기계”, 『로동신문』 2011 년 11월 7일.
용하여 재가동에 들어갔다. 비날론 공장, 비료공장을 비롯한 함흥 지역의 화학공 장들이 전면 재가동할 수 있게 되었고 성진제강련합기업소에서는 전량 수입해야 하는 코크스를 사용하지 않는 제철방법을 완성시켰다. 2009년 12월(성진)54), 2011 년 10월(함흥)55), 11월(자강도)56)에는 이러한 성과들을 일단락하면서 해당 지역의 노동자, 과학자, 기술자들을 평양으로 초청하여 환대해주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개별 생산현장의 업그레이드는 ‘CNC화’, 혹은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 다. ‘현대화’는 노후 생산설비를 새 것으로 교체하면서 연속식, 흐름식으로 바꾸는 것을 말하는 듯하고, ‘CNC화’는 이러한 설비의 운용을 컴퓨터를 이용하여 자동으 로 제어하는 수준까지 실현시킨 것을 말하는 듯하다. 낡은 설비들을 새로운 설비 로 교체하는 사업은 이전과 달리 급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전 시기 북한 의 기술혁신은 기존의 생산방식을 유지하여 할당된 생산계획을 수행하면서 동시 에 혁신 과제를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존의 생산방식을 완전히 중단한 상태에서 새로운 기술로 생산 공정 전반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57) 과거의 생산방식을 잠시 중단하더라도 새로운 생산방식을 제대로 도입 하면 늦춰진 생산일정을 짧은 시간 안에 보완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 현장의 급속한 개조 프로젝트는 예상보다 더딜 수밖에 없었다. 북한 언론에서 연이어 생산현장의 현대화, CNC화 에 대해 보도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옛날 모습을 탈피하지 못한 면이 남 아 있었다. 기초 토목공사에 중장비가 동원된 모습보다 개인 장비로 수작업을 하 고 있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나오기도 하였다. 생산현장을 새로운 기술 수단으로 완전히 바꾸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 특히 대규모 자본이 필요 하다. 이러한 대규모 자본을 북한이 스스로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외부로부 터 자본을 최대한 유치해야 한다. 이를 위한 조치로 북한 지도부는 2010년 1월 20 일 국방위원회 결정으로 “국제금융기구, 국제상업은행들과 거래하며 국가정책에 따르는 중요 대상들에 대한 투자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국가개발은행’을 설립하 였다.58) 2010년 1월 22일 북한 고위관리들로 구성된 대표단이 투자를 유치하기 위 해 네덜란드를 방문하였다.59) 그리고 대풍국제투자그룹이 2010년부터 10년 동안 54) 이계환, “주체철 생산한 성진기업소 일행들 평양 초청방문”, 『통일뉴스』 2009년 12월 25일.
55) “(정론) 10월의 축하연”, 『로동신문』 2011년 10월 29일.
56) “자강도안의 일군들과 로력혁신자들, 과학자, 기술자들 평양 도착, 수도시민들 뜨겁게 환영”, 『로동 신문』 2011년 11월 4일.
57) 양호남, “경제강국건설에서 기술개건의 절박성”, 경제연구 2002년 1호; 김동식, “인민경제의 개건 현대화사업을 집중적으로 벌리는 것은 현 시기 경제건설의 중요과업”, 경제연구 2006년 2호; 리기 성, “새 세기 우리 식의 사회주의경제리론을 연구하는데서 나서는 중요문제”, 경제연구 2007년 2호.
58) 김성진, “北, 국방위 결정으로 `국가개발은행' 설립”, 연합뉴스 2010년 1월 23일자.
총 1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를 위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처였다고 볼 수 있다.60) 대풍국제투자그룹이 해체된 이후 러시아의 대북 투자가 대폭 늘어났다. 25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20년에 걸쳐 철도현대화 등에 투자하기로 협정을 체결하였다고 한다.61)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이루지는 못하였 지만 자신들에게 필요한 조치들을 하나둘 취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부터 국방 비중을 조금 줄이면서 경제발전 전략을 추진하기는 하였지만 미국과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국방 관련 활동을 완전히 줄일 수 없었다. 따라서 북한은 2009년 이후에도 우주발사체-인공위성-로켓 기술 과 핵 관련 기술을 더욱 연마할 수밖에 없었다. 핵 기술과 관련해서는 영변 지역 에 대규모 우라늄 농축 설비를 완비하여 가동에 들어갔고 자체적으로 경수로 발 전소를 짓기 시작하였다.62) 인공위성 기술과 관련해서는 시험통신위성 수준에서 지구관측위성 수준으로 발전했고 예상 수명도 2년으로 늘어났다. 로켓 관련 기술 과 관련해서는 사거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추력이 늘어났을 것이며 자세 제어 수준도 늘어났을 것이다. 또한 정식 발사대가 완비되었다.63) 인공위성-로켓 기술 과 관련해서는 광명성 3호, 3-2호 발사를 통해 공개하였다. 핵관련 기술과 관련한 성과는 2010년 11월 미국 핵과학자를 평양에 초청하여 공개하였고 2013년 2월에 는 3차 핵 실험까지 시행했다.
59) 장용훈, “北대표단, 투자유치 차 네덜란드 방문”, 연합뉴스 2010년 1월 22일자.
60) 대풍그룹은 2005년에 소개된 적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0년 1월부터였다. 김 양건 아태평화위원장이 이사장을 맡고 재중동포 박철수가 상임부이사장 및 총재를 맡는다. 투자유치를 위해 ‘2010~2020 북 경제개발 중점대상’과 같은 자료도 만들어 공개하였다. “4개 분야 총 1천억 달 러, 철도·도로 250억 달러 투자 - 청진·라선·남포지구 개발에 중점”, 민족21 2011년 11월호.하지 만 이후 실적 부진때문인지 전략이 수정된 것인지 2013년 초에 통일부에서는 이 조직이 해체된 것으 로 발표하였다. 북한 권력기구도 (통일부, 2013).
61) 김학기,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협력 관계와 남-북-러 삼각협력에 대한 시사점”, 산업경제 (2015년 2월호), 6~21쪽.
62) 지그프리트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과 로버트 칼린 객원연구원, 존 루이스 명예교수 등은 북한의 초청으로 2011년 11월 9일에서 13일까지 북한의 영변 핵과학 연구센터를 방문해 1000 개가 넘는 고성능 우라늄 농축 시설(원심분리기)가 작동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왔다. 2011년 11월 30 일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권리는 우리(北)의 자주권·발전권 에 속하는 사활적인 문제로서 추호도 양보할 수 없다”며 “시험용 경수로 건설과 저농축 우라늄 생산 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조선신보』 2011년 11월 30일 (『통일뉴스』 2011 년 11월 30일 재인용)
63) 광명성2호와 달리 광명성3호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발사되었는데 이전과 달리 거대한 고정 식 발사대가 완비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