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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시대 경제발전 전략 : 국방 과학기술을 핵심으로

문서에서 북한과학기술연구 (페이지 48-52)

선군정치와 강성대국은 김정일 시대를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다. ‘고 난의 행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내우외환이 겹쳤던 1990년대를 극복하자면서 김정 일이 제시한 전략적 지향이었다. ‘선군정치(The Songun Policy, The Military-First Policy, The Army-based Policy)’라는 말은 1997년에 처음 등장하 여 1999년 즈음에 자세한 내용이 정리되어 공개되었다.5) 여기서 선군정치는 “군사 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 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군대를 혁명의 기 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위업 전반을 밀고나가는 영도방식”이라고 정의되었다. 군 대에 의지해서 위기상황을 돌파하겠다는 뜻인데 정책의 우선순위 및 실행 방법에 대해 밝힌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우선시한다는 주장은 군대만 살리고 민수 경제는 포기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선군정치 의 경제적 측면을 도외시한 일면적 평가이다. 선군정치 노선에서 표방하는 경제발 전 전략은 경제활동 중에서 국방 관련 정책을 우선시한다는 소극적인 수준을 넘 어 군대가 국방은 물론 민수 경제까지 담당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주장까지 담고

5) 선군정치라는 말이 처음 쓰인 로동신문 기사는 최용덕, 김정웅, “우리는 백배로 강해졌다,” 로동신 문 (1997년 12월 12일)이었고 자세한 내용이 소개된 것은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필승불패이다",

로동신문 (1999년 6월 16일)이었다. 선군정치라는 말과 함께 ‘선군후로’, ‘선군혁명령도’, ‘선군혁명 사상’등의 말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있는 것이었다. 민수 경제 영역에도 북한의 군인과 군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그 형태도 단순히 노동력 제공에 머물지 않고 기업소의 정상적 운영과 기술 이전까지 담당하는 수준이었다.6)

‘강성대국’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이었다.7) 이후 1998년 8월 22일

로동신문 정론에서 강성대국 건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사상의 강국을 만 드는 것부터 시작하여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튼튼히 세우고 그 위력으로 경제 건설의 눈부신 비약을 일으키는 것”을 강성대국 건설방식이라고 소개하였다. 결국 강성대국 건설은 1999년 1월 1일 로동신문, 조선인민군,청년전위 공동사설 을 통해 최종 목표로 공식화되었다.8) 사회주의강성대국을 ‘정치(사상)강국, 군사강 국, 경제강국’의 통일체라고 정의하면서 정치(사상)강국과 군사강국은 이미 달성하 였으므로 경제강국만 완성하면 된다고 주장하였다.

선군정치라는 방법으로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자는 이야기인 데 그 핵심은 경제발전이고 경제발전은 과학기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뒤 이어 나왔다. 2000년 1월 1일 공동사설에서는 ‘강성대국의 3대 기둥’으로 ‘사상중 시’, ‘총대중시’와 더불어 ‘과학기술중시’ 노선이 거론되었고 2000년 7월 4일에는  노동신문, 근로자 공동사설에서 “과학중시사상을 틀어쥐고 강성대국을 건설하 자”라는 제목으로 강성대국의 핵심으로 ‘과학기술중시사상’이 직접 거론되었던 것 이다. 과학기술을 중시한다는 것은 “과학기술을  혁명과  건설의  모든  사업에  확고히 앞세우고 여기에 최대의 힘을 기울이며 사회주의건설에서 제기되 는 문제를 과학기술에 의거하여 풀어 나간다”는 의미이다.9)

이러한 전략적 논의의 결론은 2002년 9월 김정일에 의해 ‘국방공업을 확고히 앞 세우는 것과 함께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 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그가 정식화한 경제발전 전략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 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김일성 시대의 경제발전전략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10) ‘국방공업’이 ‘중공업’의 한 영역이면서 기술적으로 특 화, 심화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시기에는 어느 영역도 제대로 갖추

6) 발전소 건설현장과 같이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현장에 군인들이 많이 파견된다. 기업소나 농장의 운영 이 어려운 경우에는 군대에서 운영 지원을 하기도 한다. 김진환, “북한의 선군정치(先軍政治)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0), 62-63쪽. 련하기계공장에서 CNC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군 출신 인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고도 한다.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 『로동신문』 2009년 8월 11일.

7) "위대한 당의 령도 따라 사회주의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키자," 로동신문 1997년 7월 22일.

8) "올해를 강성대국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 로동신문, 조선인민군,청년전위

1999년 1월 1일.

9) "과학중시사상을 틀어쥐고 강성대국을 건설하자", 로동신문, 근로자 2000년 7월 4일.

10) 서재영, 박제동, 정수웅, 『우리 당의 선군시대 경제사상 해설』 (조선로동당출판사, 2005).

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중공업 부문을 ‘우선적’으로 갖추자는 의미였고 이번에는 이미 ‘확보한’ 국방공업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사실 드러난 북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제품 수준을 보면 북한의 기술수준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3차례에 걸친 인공위성 발사 시험과 3차례 진행된 핵실험은 북한이 우주발사체-미사일 관련 기술과 핵 관련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게 만든다.11) 사실 북한 지도부는 해방 직후 부터 경제발전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과학기술자를 우대하 였고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정책적 우선권을 부여하였다. 그 결과 1950년대 말 북 한 경제의 급격한 발전이 기술혁신의 형태로 진행될 수 있었다. 그리고 1960년대 들어서면서 도입된 경제-국방 병진노선에 따라 국방과학기술 영역으로 우수한 과 학기술 인력이 우선적으로 공급되었고 자원 배분권도 우선적으로 보장받았다.12) 오늘날 북한이 상대적으로 앞선 국방 과학기술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 러한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방부문의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김정일이 제시한 경제발전 전략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우주발사체 관련 기술이 ICBM 기술과 겹치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상당한 의미 를 지닌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군사적 의미로만 국한 시켜 해석하는 것은 시야가 너무 좁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항공우주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주발사체 관련 기술은 그 자체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최 첨단 산업이면서 동시에 그 기술들이 상품생산에 활용되기 시작하면 탁월한 기술 경쟁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13) 오늘날 세계 항공우주 시장의 규모가 대략 연간 5493억 달러(2013년 기준)에 달하지만 이를 일부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그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 이고 있다.14) 북한의 경우, 일반 상품과 관련한 기술은 아직 많이 뒤떨어져 있지 만 군수 부문에서 이미 인공위성-미사일 관련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

11) 6차례의 시험에 대해 대부분 실패/성공 논쟁이 있었는데 시험의 목표를 무엇으로 두느냐에 따라 실 패/성공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므로 이에 대한 논쟁은 큰 의미 없다. 다만 우주발사체의 성능이 점차 강화되었고 인위적인 핵폭발이 통제되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북한의 관련 기술 보유에 대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12) 강호제, 북한 과학기술 형성사 I (선인, 2007).

13) 『항공우주 스핀오프(Spin-off)』(e-Book: http://www.kari.re.kr/ebook//ecatalog.asp?Dir=60) (항 공우주연구원, 2007).

14) 2013년 기준으로 전 세계 항공우주 산업의 규모는 5493억 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10년이 지난 2022년에는 전체 항공우주산업의 규모는 6조 6665억 달러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장태진,

“세계 항공 산업 현황과 전망”, 항공우주산업기술동향 12권 1호 (2014) 36~47쪽.

를 민수로 전환하기만 한다면 북한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다.

물론 군수를 민수로 전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 경제구조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러한 전환에 긍정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 북한 지도부는 1970년대부터 ‘제2경제’라는 이름으로 군수 관련 경제를 일반 경제와 분리하여 우 선적으로 보장해왔다. 이는 다른 분야보다 군수 관련 분야가 우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기 위한 조치였지만 1990년대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군수 관련 분야가 일반경제 분야보다 피해를 훨씬 덜 받을 수 있게 보호하는 기능도 하였다.15) 따라서 낙후된 경제를 빠른 시일 내에 끌어올리려는 오늘날이 과거 어 느 때보다 군수에서 민수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과 요구가 강한 때라고 할 수 있 다. 이러한 필요성과 절박함이 군수-민수 전환(Spin-off)에 대한 저항력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 지도부는 ‘제2경제’를 일반 경제와 분리해서 운영하면서도 유사시에 는 민수 시설을 군수 시설로 전환하기 쉬운 체제를 구축하였다. 예를 들어, 일정 규모 이상의 종업원을 보유하고 있는 공장에는 하나 이상의 군수 관련 생산 시설 을 설치하게 되어 있었다.16) 따라서 이미 북한 경제는 민수와 군수의 연결고리가 강하고 그 거리가 상당히 가깝게 형성되었다.

이제는 이러한 구조를 역으로 이용해서 군수를 민수로 전환하기 쉬운 체제를

이제는 이러한 구조를 역으로 이용해서 군수를 민수로 전환하기 쉬운 체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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