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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기(1980년대 초반~80년대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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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은 1970년대는 진보적 지식인과 대학생들의 시대 상황에 대한 저항 정신의 발 로로 발생하였고, 김지하의 연극 활동, 사건 전달극, 대학 연극 등이 주도적인 흐름 을 형성하면서 조직화, 집단화되었다.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대항하는 과정 에서 사회문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심층적인 미학적 밀도와 다양한 실험 등이 행 해졌다. 반면, 1980년을 전후한 한국 사회는 격동의 시기였다. 1979년 유신 체제에 대 항한 부마민주화항쟁, 10· 26사건과 12· 12를 지나 1980년 봄으로 시작한 1980년대는 정치사적으로 격변기에 속한다.

광주 5·18 항쟁의 경험은 기존의 마당극보다 보다 진보적이고 확장된 개념의 새로 운 실천이 요구되었다. 이때‘마당극에서 마당굿’(1981)이라는 명제가 등장한다. 이 는 단순히 표현 양식의 변화 이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 중심에서 집회 중심으 로, 문화주의에서 사회운동으로의 이동· 확장45)을 의미하였다. 즉, 민중적 예술 이념 으로 행사와 집회로서 성격을 강화하여 민주화의 변혁 운동에 대한 이념적 가치를 밝 힌 것이다.

이 시기, 1980년대 초 서울에서는 마당극이 이렇다 할 성과가 없던 시기에 광주와 제주도46)를 비롯하여 지역에는 마당극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이 생기기 시작하였

45) 임진택, 앞의 책, 1990, 139쪽.

46) 1980년에 창단된 제주도의 놀이패「수음」은 최초의 지역문화 선언이라 할 수 있는 창립 선언 에서“한반도의 맨 끝에 마치 버려진 아이처럼 홀로 있는 탐라라는 아름다운 고장에서 태어났다.

다. 본 논문의 연구 대상 「신명」의 전신이었던 극회「광대」는〈함평고구마〉(1978) 를 계기로 창단하여,〈돼지풀이〉(1980) 와 〈호랑이 놀이〉(1981)를 공연하였다.〈호 랑이 놀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에 공연된 작품이다. 한국의 해방직후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까지의 정치사를 풍자적으로 다루어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중의 투쟁을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일종의 탈판이었다.〈호랑이 놀이〉는 1970년대〈진오귀 굿〉의 도깨비마당 이후 본격적인 창작 탈춤의 한 획을 그으며 대학가의 창작탈춤 활 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47) 1982년도에 필자도 서울 모대학 단과대학 축제 때 단 대문화패에 초청되어 〈호랑이 놀이〉를 연출하여 공연하기도 하였다. 광주에서 타 지역과는 달리 일찍이 마당극 활동을 펼치고 작품의 성과가 있었던 것은 광주· 전라도 지역이 역사적으로 소외 지역이라는 점과,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통한의 경험이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풀이’와‘저항’의 매체로서 마당극의 강 렬한 연극적 효과를 인식했던 것이다. 신군부세력의 강압과 탄압, 감시라는 시대상황 에서 지역의 현실문제와 역사문제를 마당극으로 공연하여 현실인식을 도모한 활동은 이후 타 지역문화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1980년대 초반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사회 진영의 분위기와‘마당극에서 마당굿’으 로라는 현실 참여 문화운동론과 지역문화운동론이 결합되어 지역구조에 알맞은 문화운 동을 건설하던 시기였다. 당시 사회운동 진영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역운 동의 계기로 삼았다. 광주민주화운동은 1970년대 사회운동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며, 서울이라는 중앙 중심의 운동만으로는 민주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수렴 할 수 없었 던 것이다. 지역운동의 개념은 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분파주의나, 지리적 공간 개념도 아닌 민족 운동을 향한 대중 운동 노선이다. 1970년대 운동이 적은 역량을 중앙에 집 중하여 성과를 이루겠다는 방식이라면, 이젠 각 지역의 양적으로 증가된 민중· 민주화 역량의 결집을 통해 민족운동을 완성하겠다는 80년대 운동의 전략적 개념48)이었다.

본연구의 대상인 「우금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놀이패 「얼카뎅이」(1985년 창

이곳은 문화적 변방이며 행정적 벽지이기 이전에 틀림없이 민족의 얼과 맥박이 살아 뛰는 한국의 국토임을... 따라서 이곳은 중앙과 비교하여 변방이 아니라 사실은 쓰러져가는 우리의 전통문 화에 새로운 활력을 공급할 전위의 자리...”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지역의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지역 전통문화를 현대적 계승의 양식 원리로 쓰겠다는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이후 작 품들은 제주도의 굿과 민요, 민속놀이 등의 전통연희를 원천으로 주로 지역의 역사와 사회 문제 를 소재로 다루었다. 작품은〈땅 풀이〉(1980),〈향파두리 놀이〉(1980),〈돌이〉(1981),〈

녀 풀이〉(1982),〈태땅〉(1983)등을 공연하였다. 놀이패「수눌음」은 1983년 당국에 의해 해 체당하고 1988년 놀이패「한라산」으로 재창단 된다.

47) 임진택, 위의 책, 1990, 140~141쪽.

48) 전용호,「지역운동론」,『민족현실과 지역운동』, 도서출판 광주, 1985, 19쪽.

단)도 이때를 전후하여 창단되었고,「함세상」의 전신이었던 놀이패 「탈」 (1983년 창단)과 극단「진달래」(1983년 창단)도 이 시기에 창단49) 되었다. 지역문화운동은 각 지역 민중의 공동체적 삶의 확보와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구체적 실현을 이루려는 운동이자 중앙에 대한 변방의 하위문화라는 지역문화의 종속적 개념에서 벗어난 주체 적 문화운동이었다. 이는 1984년 소위 유화국면이라는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전국 에 마당극 극단이 확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화국면기를 전후하여 창단된 극단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지역에는 극단

「아리랑」(1986년 6월), 극단「현장」(1988년 1월), 극단「한강」(1988년 2월), 극단

「새뚝이」 (1986년 2월), 여성극단「미얄」(1988년 1월), 부산의 극단「자갈치」

(1986년 3월), 청주의「우리춤 연구회」(1984년), 대구의 놀이패「탈」(1983년 12월), 마산「베꾸마당」(1986년 7월), 광주의 놀이패「신명」(1982년 7월), 극단「토박이」

(1983년 12월), 목포의 극단「갯돌」(1981년), 진주의 놀이판「큰들」(1984년), 제주 도의 놀이패「한라산」(1987년 8월)50)등 전국적으로 양적인 확산을 이뤘다. 이들 극 단들은 부당한 정치권력에 저항하며 사회적으로 시의성 있는 문제와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성 등을 소재로 한 공연활동을 하였다.

한편, 대학문화패들은 졸업 후 마당극 극단이나 농촌현장 또는 노동현장의 문화운동 에 진출하여 문화운동 기반이 저변에 확산되었다. 이 시기에 필자는 교사 문화패, 노 동자 문화패와 농민 문화패 등에 마당극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특히 탈춤 원형의 전수 나 완성된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 교육과는 달리, 자신들의 체험을 짧은 토막연극, 역할 바꾸기 놀이 등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 등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현장 문화패와의 활동 성과로 생산된 창작촌극들은 전문적인 창작지원 과정을 통하여 작품화되기도 하 였다. 또한, 교사와 노동자, 농민들이 직접 공연하여 문화역량을 키우면서 현장문화패 를 결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80년대 초·중반은 전체 사회운동과 지역문화운동이 결합하면서 전국적 으로 지역단위의 문화운동체로서 극단이 확산되었다는 사실과 이들의 문화적 역량과 활동이 대학과 사회의 각 현장까지 전달되어 대중적으로 마당극이 확산된 시기이다.

억압된 정치적 상황이 풀리면서 지역문화의 독창성과 극단이 지향하는 진보성이 기층 대중을 관객으로 확보하는 계기가 되고, 1987년 이후의 마당극 전성기를 맞이하는 기 반이 되었다.

49) 놀이패 「얼카뎅이」는 우금치의 전신이며, 놀이패「탈」과 극단「진달래」는 「함세상」의 전 신임

50) 1980년에 창단된 「수눌음」이 1983년에 당국에 의해 해체되었다가 재창단함.

지역 극단명 작품 내용 기타 부산 자갈치 복지에서 성지로 형제복지원 사건 86년 3월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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