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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체로서의 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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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은 그 형성과 발전 과정이 한국 사회운동의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마당극 자체가 사회운동, 문화운동의 성격으로 그 사회적 기능이 분명하게 나 타난 연극이다. 1980년대 이후에 창단된 연구대상 극단들의 공통된 창단 동기는 순수 미학적이고 유미주의적인 관점에서의 예술 활동이 아니라, 예술은 현실을 반영해야 하 며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마당극 의 예술성과 사회성의 상관관계는 사회성을 전제로 하여 의미를 판단하게 된다. 예술 성과 사회성이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사회와 무관하게 존재하 는 것은 아니다. 마당극은 바로 이러한 전제를 보여주는 연극이다.

연극은 혼자 할 수 있는 예술 단위가 아니다. 집단화 또는 조직화를 필요로 하는 예 술이다. 연극을 위해서 집단화된 이들은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게 되고 실천 행위는 곧 현실 상황이 된다. 「신명」, 「우금치」, 「함세상」의 극단 활동과 작품에서 보았듯

이 마당극의 성장 과정은 곧 사회성과 예술성의 조화이며, 이것이 이들의 과제라 할 수 있다. 필자가 1982년도에 신명 창단에 가입하여 활동한 동기는 아래와 같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연극 활동을 하였다. 주로 성극 위주의 공연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80년도 3월로 기억하는데 광주 YMCA 무진관에서 관람한 극회「광 대」의 <돼지풀이>는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모방과 재현이라는 사실주의 연극이 연극의 전 부로 알고 있었던 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군사독재 시대에 농민의 문제를 다루면서 반정 부적인 내용을 공공연하게 공연하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이렇게 연극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이어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탈춤동아리에 가 입하였고 연극을 통해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작으나마 힘이 되자는 결심에서 곧바로 사회문화운동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191)

마당극의 활동 단원들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이 필자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참여하였 고, 외래문화보다는 전통문화를 선호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극단을 구성하고 있는 단원들의 사회적 입장은 참여 연극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마당극은 구성원들의 시 대적 사명에 의한 대의적 운동이었다. 민속 연희의 정신을 배경으로 한 초창기 마당극 의 공동 창작·공동 연출론도 개인 중심이 아니라 ‘극단’이라는 소공동체와 관객과의 소통을 통하여 모두의 보편적 염원과 공통된 의식을 민주적으로 결집하고 문제에 대한 핵심과 의견을 나누자는‘공동체 의식’이다. 집단과 지역과 민족의 공동체 이념을 표 방하고 공동구성원을 결집시켜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제로서 마당극은 그 기능을 가장 효율적이고 즉각적으로 수행하는 연극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신명」의 공연 연보나 「우금치」나 「함세상」의 작품이나 이들의 전신이었던 극 단들의 공연 작품은 예술성보다 정치·사회성을 강하게 담고 있다. 그렇다고 예술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성이 우선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층별 집단 공동체성 강조와 현실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다룸으로써 당대의 현실 비판기능과 새로운 민중예술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80년대 한국사회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절박했던 것이다.

1980년대, 더 나아가 1990년대 초반까지 사회성이 우선하는 시기였다면, 사회성을 담 보하지만 예술성으로 축이 변화하는 시기는 1990년대 초 중반이다. 시대적 상황에 따 라 사회성과 예술성은 중심축이 옮겨가며 구동하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는 대안언론 의 역할과 실험성이 강한 시기였고, 1980년대는 문화운동의 시기이며 이어 1990년대 중·후반부터 현재까지는 그간의 성과를 토대로 마당극에 대한 예술성과 미적 측면의 강화과정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까지가 국가권력을 대상으로 한 변화와 변혁이 주 191) 필자가 마당극운동을 하게 된 동기임.

제였다면, 이후는 사회를 대상으로 한 변화의 요구이며 삶의 가치에 대한 변화를 주제 로 표현하고 있다. 사회적 비리는 계속 발생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발생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 모순이며 오늘날에도 사회 경제적 혼란과 서민대중들의 삶에 대한 위기의식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함세상」의 거리극 공연은 1980년대 현장공연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신명」과 「우금치」도 시의성에 따른 현장 공연을 계속 하고 있다. 예술은 사회에 도전하거나 그 역사를 이끌어 나가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예시이다. 예술은 이미 현존 하는 사회 현상을 단지 수용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반영하지 만 그 이상의 창조적 세계를 추구한다. 사회에 대해 친근한 작용과 아울러 적대적 작 용도 가질 수 있는 다양성192) 을 마당극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술성 담보를 위한 전문적 영역은 대본 창작과 연출력 그리고 배우의 기량일 것이 다. 이를 반영하듯 공동 창작에서 1990년대부터는 개인 창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각 극단별로 1980년대에 몇 편의 개인 창작이 있었지만, 1990년대는 개인 창작으로 이행 되는 시기로 변화된 문화의 지형만큼이나 예술성을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공동 창작은 극단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단원들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다루고 자 하는 주제의 공동된 인식과 삶의 경험 등을 집단적 논의와 창조적 행위의 과정을 통해 만든 결과물이었다. 공동 창작이 가능했던 것은 시대의 공통된 담론이 존재 했다 는 점, 극단 내부의 구성원들이 현실참여라는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 당 시 극단의 단원들은 나이 편차가 크지 않은 비슷한 연령층으로, 성장 환경 등의 유사 성과 탈춤 수련 등을 통해 형성된 공동체성을 들 수 있다. 공동창작은 문학성보다는 실제 공연을 전제로 한 연극성을 중심에 두고 있어 문학으로부터는 자유로운 의미를 가지고 있어, 공연의 중심축은 극작가가 아닌 연기자 중심이다.

전문 창작이 나오게 되는 내부적 요인은 단원들의 유동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그 렇고 연구 대상 극단들의 소유는 기존 일반 극단처럼 대표나 동인들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 운동체라는 인식하에 사회의 공유물로 생각했다. 다수가 결합된 조직체이다 보 니, 「신명」처럼 단원들이 매 사회운동 변환기 때나 시기별로 내부조건에 따라 단원 들이 입단하거나 극단 활동을 그만두는 일들이 발생하였고, 「우금치」처럼 창단 이후 로부터 주요 단원들의 변화가 없거나 또는 앞의 두 가지가 혼용된 형태의 단원들이 함 께하고 있다. 극단 활동의 지속성이 더해지면서 단원들 나이와 경험 등의 편차가 발생 하였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축적된 경험과 더불어 작가의식에 의한 뚜렷한 주제 192) Hallser, 최성만·이병진 역, 『예술의 사회학』, 한길사, 181쪽.

의식이 부각된 작품을 필요하게 된 것이다. 「신명」, 「우금치」, 「함세상」의 작가 와 연출들은 짧게는 10년 이상, 보통 20년 이상의 활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각 극단에서 극작을 하고 있는 작가들은 1980년대 또는 1990년대 초반의 공동 창작 과정 시절부터 경험과 기량이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극작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극단 활동의 지속성을 통해 과거 공동 창작 방식과 공연의 양식적 실험 등이 개인에게 집약되었고, 작품은 개인 창작과 개인 연출 이지만 각기 극단이 가지고 있는 마당극의 양식적 전통 이 자리 잡고 있다.

연극은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 즉, 관객 없는 연극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마당 극의 대중성은 시대상황에 따라 확보·진행되어 왔다. 마당극도 연극 장르로서 예술의 범주에서 본다면 예술의 대중성은 다음과 같은 입장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지적·정서 적 수준이 빈약한 이들의 통속적인 취양에 영합하려 한다는 회의주의적 입장, 모든 이 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문화 민주주의적 입장, 민중문화와의 연속성 맥 락에서 정치적 변혁 의식은 결여되어 있으나 그 나름대로 삶의 맥락에서 제도권의 지 배 이데올로기에 맞서고 있다는 후기 민중주의적 입장193)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본고의 내용에서 보았듯이 마당극의 대중성은 회의주의적 입장은 지양하고 문화 민주주의적 입장과 정치적 변혁의식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선 입장에서의 대중성이다.

마당극이 ‘사회성’과 ‘예술성’이라는 커다란 두 개의 축으로 시대의 담론과 민 중성에 주목하면서 정치적 변혁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 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 민주주의 실현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중성과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중성은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이거나 비전문적이고 대체로 저속하며 일반 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일이거나 대중의 세속적이고 천박한 취향에 영합하여 고상한 예술성이 부족 한 것이라는 통속적 의미와는 구별된다. 본 연구에서의 대중성은 한국사회의 성장 과 정에서 일반 대중이 친숙하게 느끼고, 즐기며 좋아할 수 있는 성질을 뜻한다.

앞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마당극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극단의 기반은 사회적 운 동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전통문화를 자산으로 한 예술적 형상 능력, 그리고 이를 선 호하는 관객이다. 마당극은 사회적 전달 수단인 언어를 중심으로 춤과 소리를 매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와 분리 될 수 없으며, 사회적 존재인 인간을 표현의 대상으 로 하고 있다. 또한, 일정한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이 성립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회 적 행위로 계속 현존할 것이다.

193) 박성봉, 『대중예술의 미학』, 동연, 1995,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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