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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의 변용과 민속놀이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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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치」는 놀이패「얼카뎅이」활동 시절이나 창단 초기에는 현실을 사실주의적으 로 묘사·재현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동네 갑오년>(1994)에서부터는 설화 와 고전의 변용을 통한 창작범위의 확장과 민속놀이의 현대적 의미를 더하기 시작하였 다. 설화의 변용은 순수한 재현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핵심적 사상의 변용, 또는 콜 라주 기법을 통한 해체·구성 내지는 번안적 형식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민속놀이의 현대화는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놀이에서 얻어지는 카타르시스적 해방과 전통과 현대, 상층 및 하층 문화를 아우르는 다층위의 개방성을 지니면서 보편 성과 포용성으로 확대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작품 <쪽빛 황혼>, <노다지>의 분석을 통하여 설화의 서사적 활용에 대한 공연 양상과, <두지리 칠석놀이> <꼬대각시> <우리 동네 갑오년> 에서는 민속 놀이의 현대화에서 나타나는 극적 요소, 그리고 풍물굿의 활용 양상을 살펴보도록 하 겠다.

가. 설화의 서사적 활용

효 (孝)마당극 <쪽빛 황혼>(류기형 작, 연출, 2000)은 충남 부여와 전남 진도의 대 표 문화유산과 토화(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것), 땅재주 등, 가(歌)·무(舞)·악(樂)의 다양한 볼거리와 표현 기법을 집대성하여 현대사회의 노인 문제를 그린 작품이다.

2000년 전통연희 개발공모 당선작으로 서울국립극장 초연에서 당시 국립극장 이래 최 대 관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작품은 늙은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속에서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노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아들 사업자금을 위해 논밭을 처분하고 서울로 올라온 박씨 내외는 아들 집에서 살게 되는데, 어느 날 약장사에게 속아 가짜 약을 사게 되자 며느리에게 타박 당한다. 노부부는 신세한탄을 하게 되고 노인들이 모인 공원에 나가 하루하루를 소일 하게 된다. 점점 도시생활에 지쳐가게 되고 자식들은 최씨 할멈이 치매에 걸리자 요양 원에 모시자고 박영감을 조른다. 박씨 내외는 실의와 실망을 안고서 고향마을로 돌아 가 인생의 추억이 담긴 당산나무 밑에서 저승길로 향한다는 이야기이다. 전반적으로 즉흥성과 재치로 거부감 없이 이끌어가는 마당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으로 효에 대한 교육적 성격을 띠고 있다.

마당극은 주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지 는 특성에 맞게 <쪽빛 황혼>과 <노다지>는 첫째마당에 설화의 재현을 통해 이를 구현 하고 있다. <쪽빛 황혼>의 작품 서두‘탄생 마당’과‘고려장 이야기’는 삶과 죽음, 부모와 효에 대한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노다지>는 ‘처용설화’를 통해 오늘 날 현대인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인간의 ‘돈과 욕망’에 대한 집착을 표현함으로써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공감을 형성한다.

<쪽빛 황혼>의 1장면‘탄생 마당’은 남녀 세 쌍이 이성지합(異性之合)의 과정을 통 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을 탈춤, 풍물, 음악, 마임 등의 소재로 이야기를 갖춘 춤 극 형식으로 표현한다. 이어 등장하는 당산신들은 아이를 낳기 위해 산고 속에 겪는 부모의 고통과 생명의 존귀함 그리고 부모와 자식과의 인연을 당산신을 통해 설명한 다.

당산 1 : 좋다 좋아. 생명은 존귀한 거여.

일 동 : 그렇지.

당산 2 : 아이고 심들다 심들어. 애 낳는 것이 심들어.

당산 1 : 아, 그럼 애가 거저 니나노 낑낑 하믄 나온다던가. 음과 양의 조화로 왼갖 정성 을 들여야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여.

일 동 : 그렇지.

당산 2 : 새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오려면 에미가 서말 서되나 되는 피를 쏟고, 자라는데 여덟섬 너말이나 되는 젖을 먹여야 한다네.

일 동 : 그렇지.

당산 3 : 자식은 애비 에미가 애간장 다 썩이며 왼갖 정성을 들이고 사랑으로 보살펴야 그 덕으로 자라 사람이 되는 것여.

일 동 : 그렇지. (당산 2, 3 퇴장)133)

자식은 부모가 온갖 정성들여 사랑으로 보살핀 덕에 자라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 산신들의 대사는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게 만든다. 2장면‘고려장 이야기’는 늙고 병 든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내다 버리려던 아들이 아버지를 지고 간 지게를 자신을 버릴 때 다시 쓰겠다는 자식을 보며 반성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자식의 생성과 성장은 부모 의 덕이며 늙은 부모를 버리는 것은 결국 인과응보(因果應報)로 되돌아오니 살아생전 부모님께 효도함이 마땅하다는 주제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당산신들의 대사는 해설 적 기능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1장면의 ‘생명의 탄생’과 2장면 ‘고려장 이야 기’는 <쪽빛 황혼>의 도입부로서 한국인의 생사관과 효에 대한 전통적 요소를 춤과 음악과 설화의 형상화를 통해 오늘날의 의미로 전환시킨다.

<노다지>도 <쪽빛 황혼>처럼 첫째 마당에서 ‘처용설화’를 재현하고 등장한 광대들 의 해설은 주제 의식의 전달이다.

광 대 : 이 일이 있은 후로 사람들은 처용에 형상을 문에 붙여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광 대 : 욕망과 소유에의 집착을 떨쳐 버린 처용!

광 대 : 화해와 용서, 사랑의 숭고한 정신을 가르쳐준 처용!

광 대 : 천년을 유유히 우리의 어두운 가슴속에 등불이 되어 살아 왔건만, 광 대 : 오늘 처용의 정신은 온데 간데 없고, (텀 두고 나서)

광 대 : 욕망과 소유욕으로 물신만을 숭배하며 처용신을 모신 용신당조차 발길이 끊어지는구나!134)

광대의 해설 앞 장면에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용왕의 한 아들이었던 처용설화를 재현하여 보여주었고, 광대들의 해설은 용서와 사랑과 해탈을 얻은 처용의 이야기를 통하여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노다지>와 <쪽빛 황혼> 두 작품은 첫째 마당에 설화를 배치하고 있는 공통점을 지 닌다. 작품 전반부에 설화를 배치하는 것은 주제를 암시하거나 예고하는 서사의 기능 을 가지며 다음 장면에서 광대가 등장하여 해설함으로써 다음에 전개될 현실장면의 전 환을 돕고 있다. 먼저 설화와 현실이 복합구조로 구성된 <쪽빛황혼>장면의 구성과 주 요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33) 「우금치」소장 대본, <쪽빛 황혼>, 2000.12월 공연본, 1~2쪽.

134) 「우금치」소장 대본, <노다지>, 2004년 초연, 2005년 국립극장 공연본, 3쪽.

장면 설 화 현실극 1 탄생마당

2 고려장 이야기

3 당산나무 밑-서울로 떠나는 노부부의 기원

4 약장사-약장사 묘기와 가무

5 서울 생활 1-아들부부의 핀잔

6

할멈마당-아들에게 맞아 죽은 할멈이야기

7 서울 생활2-공원에서 노인들의 일상

8 영감마당:새처럼 날다 죽은 영감이야기

9 서울 생활3: 치매증세로 갈등 발생

10 너도 늙는다: 소리와 마임

11 당산나무 밑: 돌아온 박영감 내외 저승길을 택하다 12 천도굿

<표-9> 작품 <쪽빛황혼>의 마당별 구성

<표-9>에 나타나듯 작품은 총 12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설화와 현실은 병렬방식의 혼합 배치이다. 설화의 몽환적 구조는 1장면, 2장면, 6장면, 8장면이며, 10장면은 판 소리 한마당을 통해 해설적 기능을 한다. 현실의 극적 전개는 3장면, 4장면, 5장면, 7 장면, 9장면으로 이들 양자는 병렬형식의 다층적 복합 구성을 이룬다.

즉, 6장면이 아들에게 맞아 죽은 할미가 먼저 죽은 영감을 찾아가 당산신에게 부모 에게 효도하기 어려워진 세상을 한탄하는 몽환적 설화의 세계라면, 7마당은 현실사회 의 장면으로 하루하루가 저승사자와의 술래잡기 같은 노인들의 일상이 공원을 배경으 로 펼쳐진다. 이젠 늙어 건강을 잃고 서러움을 겪는 할머니들과 이렇다 할 재산과 할 일도 없어 외롭고 무력해진 할아버지들의 사연이다. 즉, 6마당의 몽환적 설화세계는 7 마당의 현실 세계와 상호 교섭하고 다음 장면에 대한 복선이 되면서 도리에 어긋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불효의 부조리를 증폭시키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8장면의 몽환적 설화의 세계는 사람 대접받는 세상을 찾아 새처럼 날다 죽은 영감의 신세 한탄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9장면은 치매 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를 모 실 수 없다는 아들과 며느리와 다툰 영감이 할멈을 데리고 고향으로 나서는 장면으로 8장면과 9장면은 복합적 구조를 이루면서 죽음에 대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10장면은 다음에 이어지는 11장면의 박영감과 최씨 부부의 죽음을 암시하는 해설 기

능으로 판소리라는 전통적 기재를 통하여 관객들에게 이성적 인식을 유도하고 있다.

소 리 : 어화 청춘들아 백발보고 비웃지 마라.

흐르는 세월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느니라.

나도 예전에는 꽃같은 젊은이로 뛰는 가슴속에 꿈과 희망 가득 안고 황소처럼 일도 하고 불타는 사랑도 하고 세상 젊음은 모두 내 것이었다 아무리 아름답고 자태고운 꽃들도 단 열흘 못넘기고 시들어 떨어진다 여보게 젊은이들 너도 내일은 늙는다

오늘 젊음 자랑말고 내일 늙는 것 탓하지 마라 오늘 젊다 하여 늙은이를 괄세 마라

세상 사람들아 늙은이를 위하는 것이 너의 미래를 사랑하는 것이다 너도 내일은 늙는다.135)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미 완결구조를 갖추고 있는 설화의 재현이나 몽환적 세계에 대 하여 노부부를 중심으로 현실세계의 내용을 덧붙이는 추보(追補)적 전개이다. 설화가 내포하고 있는 효에 관한 의미적 요소는 현대의 노인 문제와 상호 맞물리면서 과거 전 통적 효의 가치와 현대인의 효에 관한 자세를 비교하고 있다. 점층적인 긴장고조를 통 한 갈등국면을 조성하지는 않는다. 다만, 각기 설화의 완결구조와 현실세계에 대한 줄 거리의 반복배치로 획득되는 긴장과 이완은 작품에 대한 집중을 유도하고 있다. 고령 화 사회의 노인의 소외 문제를 포착하여 작품의 내면을 전통적 가치관에 접근시키고 이에 대한 기제로 설화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설화세계의 형상은 효에 대한 전통적 의식의 표현이며 노인 인구 천만 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도 누구나 늙고 죽는다는 단순 한 진리를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노인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나의 미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회 세태 마당극 <노다지>는 2004년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초연 이후 2005년 국립극 장 기획 공연작품으로‘처용설화’를 모티브로 해서 돈에 대한 무한경쟁 시대에 사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욕망과 용서, 화해를 노래한 처용설화의 서사 배치를 통하여 돈에게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기업 홍보기획실에서 정리해고된 주인공 박용출을 통해 신용 불량자 시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 돈만을 쫓아가는 현대인들의 욕망에 대하여 물욕을 버리면 자본의 노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처용설화와 고전 민담,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구성으로 <노다지>장면별 흐름을 간단히 요약하면

135) 「우금치」,소장 대본, 앞의 대본,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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