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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미의식의 계승과 제의의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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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본 연구에서 고찰한 「신명」, 「우금치」의 작품은 전통굿과 탈춤, 그리고 민 속놀이에서 계승된 미학을 수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각기 극단에 따라 수용의 정도와 표현 양상은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함세상」의 경우는 서구의 반전통 연극의 양 식을 수용한 실험의 형태도 나타났다. 먼저 굿에 대한 양상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지역의 전통굿에서 연극성을 추출하여 구체적인 형상화를 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 집단의 염원을 하나로 결집하는 대동굿 성격이다. 이는 춤과 노래 그리고 놀이라는 형태로 드러나지만 실제는 내면 의식을 표현하는 형식일 뿐, 작품은 내면의 세계에 대한 의지를 굿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작품의 전반적 경향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전자는「신명」의 특징이고, 후자는 「우금치」의 특징이 다.

「신명」의 작품은 1990년대에 아동·청소년극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시기를 제외한 1980년대와 2000년대 대부분의 작품에 굿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이는 현실모순에 대한 극복의 한계나 죽음과 관련된 역사 등을 소재로 다룬 작품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굿은 한 맺힌 내력을 풀고 생존과 직결되는 삶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한풀이의 방법이 다. 사건에 대한 공통된 정서적 요소와 이를 극복 또는 새로운 출발을 다지는 의지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이는 주로 삶과 죽음의 대립, 극중 선과 악의 대결로 나타나지 만 궁극적으로는 외세와 부정한 세력과의 대결로 나타나며 이러한 갈등과 패배에 대한 해소는 굿을 통한 해원, 굿놀이를 통한 축출 등으로 표현하였다. ‘제의’라는 유형화 된 형식을 통해 현실세계의 한계와 모순을 인식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초월의지로 표 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기억과 일상으로부터 오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해 소하고 현세적 삶과 미래에 대한 삶을 보장받기 위한 전통굿의 기능을 마당극에 접목 한 것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1980년대 공연은 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직접 실연하거 나 또는 무굿의 변용을 통하여 민중의 전형화된 인물들이 무당의 능력과 대등한 힘을 내림 받기도하고 또는 관객과 배우가 초월의 능력을 내림받아 가상의 세계에서 승리를 획득하여 현실 세계로까지 연장하는 낙관적인 삶을 지향하였다. 2000년대의 작품은 굿 의 형식을 극 구성에 차용하기도 하고 여러 형태로 변용하고 있다. 굿을 주관하는 무 당을 <언젠가 봄날에>에서처럼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동격 위치로 놓아 삶 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함하기도 하였다.

「신명」이 전통굿의 해석과 계승이라면 「우금치」는 민속놀이를 극의 주요한 기재

로 활용하고 있다. 민속놀이는 한판의 굿이며 대동굿적 성격을 지닌다. 민속놀이는 싸 움을 뜻하는 경쟁의식을 비롯해서 흥을 뜻하는 유희성, 즐김을 나타내는 오락성, 아름 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성이 복합적으로 숨어있는 종교적 행식(行式)이나 세시풍속194)이 다. 「우금치」는 놀이를 단순히 흥미나 재미의 요소보다는 놀이가 지니는 일상의 긴 장으로부터의 일탈과, 규율을 제거하는 기능을 포섭하였다. 놀이에 내포되어 있는 의 미적 요소를 극중 내용과 결합하여 전통적 삶의 가치와 오늘 날의 삶의 가치를 비교 해석하는 서사적 효과도 누린다. 이는 언어를 통한 전달이 아니라 집단적 풍자와 해학 으로 공동체성을 확보하는 과정으로 사용되었다. 놀이는 다수가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집단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갑오년>의 ‘지게 상여놀 이’는 일상의 중압감을 해소하는 굿놀이 형태로 풍자성을 지니고 있으며, 놀이적인 제의는 축제의 성격을 지닌다. 풍물굿은 마당극의 내용과 결합된 풍물놀이, 극중의 서 사적 기능, 춤과 어우러진 형태로 사용되어 두레굿의 형태를 띠었고, 꼬대 각시놀이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의존해서 재미를 느끼게 하고, 현실의 법칙을 벗어난 우연성을 극중 내용과 연결하는 형태로도 보이고 있다.

「신명」과「우금치」의 작품은 과거 우리 고유의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굿과 놀 이의 형식을 빌려 공동의 관심사와 공동의 염원과 공동의 생활의식을 담고 있다. 굿의 본래적 의미와 민속놀이의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민중의 삶과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 를 풀어가는 주요한 기재로 굿의 원리와 민속놀이를 차용 또는 변용하고 있는 것이다.

「함세상」의 공연양상은 「신명」이나 「우금치」와는 차이점이 나타난다. 브레이 트 서사극적 기법의 활용과 아우구스트 보알의 ‘토론연극’등의 적극적인 활용을 하 였다. 탈춤이나 마당극 자체가 서사극적이지만 예술이 더 이상 관객들의 고급스런 감 상의 대상물이 아니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인식 할 수 있 게 하고 그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표현기법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 다. 〈삼팔선 놀이〉에서 보여주었듯이 무대는 6·25 전쟁을 구현하는 곳이 아니라 사 건을 만드는 곳이고, 관객을 관찰자로 만들어 비판적 태도 및 능동성을 일깨워 준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하여 관객에게 일상 아래에 숨겨진 진실을 전달하는 기법 으로 서사극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또한, 관객배우란 개념을 도입한 토론연극은 관객 이 극에 직접 참여하여 공동 토론을 통하여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 낸다. 「함세상」의 공연은 새로이 등장하는 문화요소들이 기존의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추가적 인 문화변동을 가져오듯이 마당극에 브레이트의 서사극과 제3세계 연극의 실험적 결합 을 통한 마당극의 전파(傳播)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4) 김선풍, 「민속놀이와 축제」『민속놀이와 민중의식』, 집문당, 47쪽.

「신명」이나 「우금치」 그리고 「함세상」의 작품의 기재나 표현 양상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공통점은 작품구성이 전통연희의 구성을 이어받은 에피소드식의 구성과 전체가 일관된 사건과 줄거리이다. 전통연희인 탈춤은 부분으로 독자성을 지닌 각 과 장들의 집합체로 이루어져 있어 극중 시공간의 이동이 자유롭다. 탈춤은 일시에 완성 된 것이 아니라 전승되는 가운데 여러 사람들의 참여로 완성되어가는 열린 연극이다.

필요에 따라 한 대목씩 추가 될 수 있는 삽화적 구성195)이다. 마당극은 탈춤의 구성 방식을 전격적으로 수용하여 사건을 순차적으로 배열하거나, 이야기 내용을 크게 몇 단락으로 묶어 집약적으로 구성하여 표현 한다. 이는 탈춤의 전통적 구성에 기인한다.

탈춤의 삽화적 구성을 「신명」, 「우금치」, 「함세상」은 탈춤과 같이 전형화 된 구 성 원리를 작품에 적용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는 큰 이유는 삽화적 구 성을 극대화하여 여러 가지 사건을 담아내거나 마당극의 구비적 특성을 십분 발휘하 는 유용한 틀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명」, 「우금치」, 「함세상」에 나타나는 공동 창작, 공연 공간의 현장성과 개 방성, 관객과의 관계, 현실성을 토대로 한 형상화, 극 구조의 구성 원리, 표현의 전형 성 등은 굿과 탈춤에 내재된 의식과 극적 표현 형식에 대한 계승이다. 작품의 분절된 구성과 특성은 외형적으로 대사, 탈춤이 변용된 춤, 창작무용, 노래, 판소리, 풍물, 인형극,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가 결합된 총체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굿과 탈춤이 가지는 삶과 예술의 총체성과 집단적 신명을 가능하게 한다. 즉 삶과 놀이의 일치를 통하여 과거 탈판을 가능하게 했던 대동굿판 그 자체인 현장적 운동성과 집단 적 신명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마당극은 기본적으로 주제 의식에 대한 공감대를 전제 하였을 때 관객의 반응과 참여가 극대화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는 작품의 분절된 구성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주요 요인이다. 공연은 열린 공간이라는 마당의 특수성과 결합하여 연극적 공간과 실제적 삶과의 경계를 없애고 연극을 통한 현실의 변혁을 지 향하고 있다. 마당극은 전통적 요소에서 추출할 수 있는 연극적 요소를 받아들여 현실 에 맞게 재창조된 제의의 연극인 것이다.

한국 고대 연극의 배경은 무속 신앙문화와 농경의식문화라 할 수 있으며, 그 동제 (洞祭)의 민속과 그에 따른 가무오신(歌舞娛神)의 각종 연희가 바로 고대연희의 발생 기원196)이다. 원시시대부터 집단적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민속 예능은 발전해 왔고 특 히 악과 무는 차츰 내용을 가지면서 풍토적 현상과 함께 오늘날 전통극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마당극은 이러한 원초적인 제의와 연극적 원형을 찾아가는 연극양식이다. 20

195) 임재해, 『꼭두각시 놀음의 이해』, 홍성사, 1981, 18쪽.

196) 한옥극, 『한국 전통극의 미학적 탐구』 푸른사상, 2009, 20쪽.

세기 서구 연극들도 일상화되어 있는 연극을 거부하고 관객과의 공유를 중시하며 연극 의 원형을 회복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연극이 가지는 원형 상실로부터 (내용, 형태, 기능, 목적의 모든 면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원래 연극이 다루던 내용 (인간과 초인간적인 것에 대한), 형태(실외에서 대동놀이), 기능(인간의 의사소통), 목적(인간 존재의 유지)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원형 지향적 연극197)이다. 마당극 또한 전통 민속연희의 민중성과 공동체의식의 가치적 개념과 양식을 기반으로 세계사적 연 극의 흐름과 같이하며 근대연극의 서사극, 표현주의, 상징주의, 사실주의, 비사실주 의, 반사실주의 등의 이념과 다양한 연극기법들이 내재되어 있거나 수용하고 있다. 마 당극의 형식을 이루는 것은 전통극적 요소이지만, 전통에서 출발한 마당극은 오히려 서구 실험연극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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