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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배경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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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함께 사는 세상」(이하「함세상」)은 1990년 12월 창단하여 ‘연극을 통해 서 세상을 변화·발전시키고자 하는 연극’ 단체로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극단이다. 창립 공연은 해직 노동자의 고난과 좌절, 그리고 극복을 담아낸 <노동자 내 청춘아>(1991.5)이다. 창단 이후 노동 현장, 교육 현장, 그리고 여성, 장애우 인권운 동의 현장 등을 찾아다니며 공연하고 있다. 작품의 주된 내용은 주로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민초들의 삶을 담으며, 형식은 전통연희를 계승한 마당극의 지속적인 실험과 관 객이 직접 참여 가능한 공연들이다.

부설단체로 「연극과 교육연구소」를 통해 삶의 과정과 당면한 상황 속에서 바르게 생각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연극의 교육적 효과를 연구하고 실험하기 위해 연극의 교 육적 효용을 확대하고 있다. 매년 <교사를 위한 연극교실>(1991년부터), <어린이를 위 한 연극교실>(1997년부터)을 기획하였고, 학교의 <연극반 수업>을 시행하였다. ‘함 께 사는 세상’이란 명칭은 모두가 평등한 관계의 공동체 세상을 의미하며, 이는 극단 이 추구하는 이념이라 할 수 있다.

대구지역 민족극 운동은 「함세상」의 전신인 놀이패「탈」과 극단「시인」이 활동 한 1983년부터이다.「함세상」이 창단된 1990년은 전국적으로 마당극이 정체기를 맞이 하는 시기였다. 「우금치」나 「신명」의 경우처럼 전통연희의 양식성과 내용을 강화 하거나, 또는 기존의 공연대상을 바꿔서 소재를 다양화했던 것과 다르게 대구는 극단 의 통합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이다. 극단「진달래」는 극단「시인」이 해체된 후 그 단원들이 새롭게 결성된 극단이며,「함세상」은 놀이패「탈」(1983,12. 창단)과 극 단「진달래」(1983.1월 창단)가 결합해서 만든 극단이다.

대구지역 마당극의 시작은 1980년 4월 19일 경북대‘민속문화연구회’가 공연한 <냄 새굿 놀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김사열의 주도하에 준비된 이 작품은 전통탈춤을 모태 로 하고 있으며 <냄새굿 놀이>의 양식적 특징이 대구지역 마당극의 초창기를 이끈 놀 이패 「탈」로 이어지게 된다.153)

마당극의 확산기에 해당하는 1983년 12월에 놀이패「탈」은 경북대학교 ‘민속문화 연구회’(탈춤반) 출신들을 주축으로 결성되었다. 창단 작품은 한국과 일본과의 문제 153) 김재석·최재우 엮음, 『이 땅은 니캉 내캉』, 태학사, 1996, 383쪽.

를 다룬 <내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154)이며, 이후 활동은 풍물놀이 <통일 의 북춤> 공연과 풍물 및 춤판 <모둠놀이>를 공연하였다. 또한, 전통문화 복원 작업의 일환으로 경산군 자인면의 전통 탈춤인 <자인 팔광대 놀이>의 복원에도 참여하였고, 각종 강습회와 더불어 『푸리』라는 회보도 발간하였다. 「탈」의 초창기는 창작 탈춤 극과 탈춤과 풍물 강습 활동을 통한 전통문화 보급에 노력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탈」은 회보『푸리』에 ‘이 땅에서 그야말로 통시성을 지닌 생동성 있는 놀이로 써 잠든 민중들을 깨워 함께 분단과 같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면 이 시대는 전체가 구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다 같이 주먹 들어 외쳐보자. 이 시대 이 땅의 놀이를 우리가’155)라는 선언에서 말하듯, 사회·문화운동으로서의 역할과 추 후‘민족극’개념에서 ‘분단 극복’과 관련하여 공통된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 지역 문화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극단들의 운동이념은 현실 모순의 원인 중 하나가 분단 상 황이며, 이를 민족문화를 바탕으로 공동체성을 회복하여 극복하자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창단공연 <내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이후, 마당극의 전성기(80년대 중 반~80년대 후반)에 속하는 기간 동안 <꼬리 뽑힌 호랑이>(1987. 2), 남존여비의 악습 을 고발한 <엉겅퀴 꽃>(1987. 10), 거창 양민 학살을 다룬 <이 땅은 니캉 내캉>(1988.

3), 파업에 임한 노동자의 분노와 희망을 담은 <노동자의 햇새벽>(1988. 8), <米國, 美國, 未國>(1989. 4), 전교조 결성과정의 갈등을 다룬 <선새임요>(1989. 9), <단결!

투쟁!>(1990. 3), 골프장건설 의혹을 다룬 <골프공화국>(1990. 9)으로 이어지는 작품 활동을 보여 주었다.

놀이패 「탈」과 함께 통합한 극단「시인」은 1983년 1월 경북대 극예술연구회 출신 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동인제 형식의 극단이다. 극단의 목표를‘연극을 통한 대사회 발언’으로 규정하고 회보 『시인』을 발간하였고, 음반을 이용한 <판소리 감상회>를 여는 활동부터 시작하였다. 또한「연우무대」의 <장사의 꿈>(1984.5) 초청과 임진택을 초청하여‘마당극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회도 열었다. 이어서 윤대성 원작 의 <너도 먹고 물러나라>(1984.4)156)를 공연하였다. 이후 이강백 극작의 무대극 <파수

154) 창작탈춤 형식을 원용한 이 작품은 일제시대의 정신대와 오늘날의 기생관광을 연결시키면서 박 제상과 신돌석, 논개, 지문 날인을 거부하는 재일동포 등, 역사상의 항일투사들을 등장시켜 오늘 날의 세태를 꾸짖고 반일자주정신을 고취한 작품이다.

155) 「푸리」, 제15호. 1985.

156) <너도 먹고 물러나라>는 삼면 무대를 택한 마당극으로 무대극의 원리에 탈춤식의 진행 방식을 결합시킨 작품으로 자식을 지워버렸던 죄책감으로 박판수를 찾아온 모조리네가 겪는 아픔을 다룬 원작에 사회적 의미를 강화시킨 작품이다.

꾼>(1985.4) 공연과, 작품 <출세기>(1986. 3)를 마당극으로 각색하여 공연하였다. 그 후 1988년도에 교육 문제에 대한 작품 <전천후 선생님>과 <서서 잠드는 아이들>을 잇 달아 공연한다. 무대극과 마당극의 두 양식을 병행하여 공연한 극단「시인」은 무대중 심의 사실주의극에서 마당극으로 양식적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놀이패「탈」의 활동은 창작 탈춤에서 마당극으로, 극단「시인」은 무대극에서 마당 극을 지향한 걸로 보인다. 이러한 두 극단이 1990년에 통합하게 된 배경을 살피면 다 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외부 조건이다. 1990년 당시 마당극은 1987·88년 노동자 대투쟁을 정점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정치 정세와 노동운동의 하강에 따른 공연 공간의 심각한 축소와 유 통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전국의 다른 마당극 극단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이래 1980년대까지 마당극이 현장과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서 성장·발전하였다는 점에서 고 유한 활동 영역이었던 ‘현장’ 축소는 극단의 존립마저 어렵게 한 것이다. 또한, 변 화된 정치·사회지형에 대응할 만한 작품이 창작되지 않는 작품의 생산성도 극단의 운 영을 어둡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내부 조건이다. 대구지역에 진보적 연극 단체로 놀이패「탈」, 극단「진달 래」, 극단「한사랑」, 극단「시월」등 다수의 극단이 활동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활동들이 고립 분산적이고 위기를 극복하기 보다는 기존활동의 성과를 조직적 으로 집약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157)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1980년대의 마당극의 전 성기를 보내면서 대학의 탈춤반이나 연극반 출신의 활동단원을 유입하는 재생산 구조 가 원할 했던 것과는 다르게 배우의 재생산 구조도 갈수록 어려웠던 것이다. 결론적으 로 1990년대 들어 찾아온 마당극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극단을 통합하여

「함세상」을 창단한 것이다.

당시 단원이었던 이승미는 두 극단 간의 통합의 의미를 ‘함께 모임으로 해서 수적 으로나 능력 면에서나 전업 극단의 체제가 갖추어짐으로써 공연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 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고, 앞서의 공연에서 얻어진 예술적 성과들을 지 속적으로 실험·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다’158)고 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마당극에 대한 전문성 강화와 단원들의 전업활동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1990년대 초기 마당극의 침체기 또는 정체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구지

157) 이승미, 「은근과 끈기의 극단 함께사는 세상」『신태평천하』, 대구민족극운동10주년기념, 2000, 93~94쪽

158) <노동자 내청춘아>, 팜플렛, 1991.

역은 진보 연극 단체의 역량결집과 기존의 운동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전업극단 체제의

「함세상」을 창단한 것이다.

창단 후「함세상」의 초기 활동은 소재에 제한을 두지 않고 시대의 공동 문제를 작 품화하는 창작활동, 전통혼례의 양식을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전통혼례 정 착, 탈춤과 풍물강습을 통한 전통문화의 대중적 확산, 연극 교육의 확산을 위한 교사 를 대상으로 하는 연극교실 개설, 한 해 동안의 액을 물리치고 만수복덕을 기원하는 지신밟기를 통한 전통문화의 대중화, 전국 혹은 지역의 타 단체와의 연대활동159) 등을 들고 있다. 공연과 전통문화 보급 그리고 연극교실을 통한 예술교육을 중심에 두고 있 다.

창단 이후「함세상」의 20여 년 활동을 <삼팔선 놀이>(2010) 팜플렛에는 크게 4단계 의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1단계는 창단과 초심의 시기(1990~1995), 2단계는 젊어지는 시기(1996~2001), 3단계는 「함세상」표 마당극이 자리 잡는 시기(2002~2006), 4단계 는 마당극 이어 달리기 시기(2007~2010)160)등이다. 이를 기준으로 「함세상」의 활동 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창단과 초심의 시기는 마당극의 침체를 예술의 힘으로 타계하자는 취지에서 놀이패「탈」과 극단「진달래」가 통합하여 활동한 초창기이다. 창단 대표자 김헌근에 의하면 「함세상」의 창단작품 <노동자 내 청춘아!>의 창작 과정이 4개월이나 걸렸 다161)고 한다. 이 점은 탈춤을 기본으로 한 놀이패「탈」과 리얼리즘 연극을 기초로 한 극단「진달래」의 양식적 차이의 극복과 융합이 1차 과제였던 시기로 볼 수 있다.

두 단체가 진보적 연극이라는 공통된 연극관을 기반으로 통합하였다고 할지라도 창작 방식, 무대 운용방식, 연기방식 등 각기 차이가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통은 창립 공연이었던 <노동자 내 청춘아!>에서 하나의 성과로 나타났다. 작품의 주요인물 인 해고노동자와 나이 많은 노동자의 시련극복을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과 내면의 풍 경에 천착하여 표현하게 된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노동 연극이 파업투쟁의 과정, 또 는 파업 과정속의 노동자의 단결을 중심으로 작품이 전개되었던 반면에 이러한 형상은 마당극과 리얼리즘 연극의 양식적인 차이에서 오는 두 극단의 상호 보완성을 확보함으 로써 향후 작품창작의 발판으로 삼게 된다.

이 시기 공연된 작품은 <노동자 내 청춘아!>(1991,공동창작, 김창우 책임연출), 송 년 연대 판굿 <함께가자 우리>(1991, 공동 창작, 손병렬 연출), <해직일기 - 아저씨,

159) <해직일기>, 팜플렛, 1992, 160) <삼팔선 놀이>, 팜플렛, 2010.

161) 김헌근, 대구 함께 사는 세상 연습실에서 인터뷰, 2011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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