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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는 꾸준함 이외에 왕도가 없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140-149)

학문에는 꾸준함 이외에 왕도가 없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윤성철

년 3월, 진주 소재의 대학교 미생물학과에서 학생들 을 가르치며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부임 초기에는 생물물리 전공 교수로서, 생명과학전공 학생들을 위해 화학의 기본지식을 쌓을 수 있는 과목들을 가르쳤다. 미국에서 3년 반의 연구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였기 때문에, 대학원과 미국 에서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연구 과제를 설정할 것인지 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당시 80년대에는 국가재정 등의 이유로 국립대 신규임용자의 연구실 및 연구기자재 확충이 매우 어려운 때 였다. 특히 미생물학과는 설립 2년차라 상황이 더욱 어려운 실정

이었다. 그래서 줄곧 강의만 진행하였고, 2년이 지나서야 실험실 공간이 겨우 확보되어 연구 기자재 및 시설 확충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미생물학과에서 내가 어떤 연구를 시작해야 성공적이고 재미있는 연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89년도 가을 대한화학회 학술발표에 참석하였다. 미국 시애틀에서 진행했던 연구 결과를 발표 하는 동시에 초청 강연을 들을 기회까지 주어졌다. 여러 주제 중

<세균의 폴리에스터 합성 관련 유전자>에 관한 내용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초빙 강사는 해당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을 처음 보고한 미국 MIT 생물학과의 Sinskey 교수였다. 그 당시의 나는 생물학 전반의 유전자 등에 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빈약할 때였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순간,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과 함께 무릎을 탁 쳤다. 1989년 9월 영국의 종합화학회사 ICI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PHB 또는 PHA)을 생산한다는 내용이 사이언스지에 소개된 시점이었다.

이듬해인 90년도에 <세균을 이용한 생분해성 폴리에스터 생산>이라는 주제로 2년 과제, 91년 특정기초 3년 과제가 선정되어 동료 교수들과 함께 본격적인 세균 폴리에스터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행 스럽게도 대학원에 미생물학과 개설이 승인되어, 대학원생들도 참여해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외국에서는 80년대 전·후반부터 PHA 연구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MIT의 Sinskey 그룹, 일본 RIKEN의 Doi 그룹, 독일의

하였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 미국, 일본 등에서 진행된 PHA 관련 국제학술대회에도 초청받아 연구 성과를 발표한 적도 있다. 이러한 성과는 한 번 시작한 연구주제를 과정 중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온 덕에 얻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연구에서 새로운 결실을 맛보기 위해서는 꾸준함이 절대적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인정받는 연구 성과는 꾸준함의 산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한 우물만 파는 꾸준함은 누구에게나 그냥 주어 지지 않는다. 피, 땀, 그리고 어린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꾸준한 연구의 버팀목은 연구자 자신의 건강이다. 나는 UMASS 에서 1년간 방문연구를 마치고 돌아온 뒤, 지난 20년 동안 학교 뒷산의 등산로를 1시간 동안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연구실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 사이에 체력도 기르고, 진행 중인 연구를 생각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시간을 가졌다. 크고 작은 아이디어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항상 기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중요한 연구를 수행하는 중에는 집에서 잠을 자다가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연구노트에 정리해놓았다가 대학원생들과 토론을 하기도 했다.

일명 ‘PHA맨’으로 25년간 세균의 세포내 폴리에스터 합성과 분해 및 응용을 연구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정년 1년을 앞둔 2011년 4월, 폴리에스터 효소분해에 관해 지금까지 보고된 적 없는 전혀 새로운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PHA의 효소적 분해 메커니즘은 생분해성 플라 스틱의 개발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그 메커니즘의 이해가 난분해성 플라스틱을 대체할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디자인에서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환경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난분해성 폴리머가 폐기 된 후 환경에서 서서히 붕괴(분해가 아님)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나노 크기의 폴리머 입자들이 생명체 내에 들어와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최근에 많이 보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 후 폐기 방법을 철저히 관리하거나 일회용 사용을 전부 금지하고, 값이 비싸더라도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대체 하는 방법밖에 없다.

현재의 PHA 효소 분해 메커니즘은 일본 RIKEN의 Doi 그룹이나 Saito 그룹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설명되고 있다. 일본 과학자 들은 효소반응 모델기질로 짧은 올리고머를 사용하였다. 올리고머란 폴리머의 기본 반복 단위 단량체가 10개 이하의 2~5개로 구성되어 연결된 매우 짧은 반복 단위체 화합물이다. 폴리머를 분해하는 효소는 일반적으로 폴리머 사슬을 붙잡아주는 집게 영역과 가위질을 하는 촉매활성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폴리머 분해효소 한 분자는 대체로 한 가닥으로 된 단백질 사슬의 삼차원적 배열구조를 가지며, 가위질 영역과 집게 영역은 떨어져 있지만 연결되어있어 서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일본 과학자가 문헌에 보고한 메커니즘은 실제 긴 폴리머를 단량체 또는 이량체로 가수분해하여 잘라내는 과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PHA 폴리머가 양쪽 말단 그룹이 각각 히드록실과 카복실 그룹 으로 된 비대칭 기질이라는데 관심을 갖고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연구를 거듭해 왔다. 대체로 폴리머를 자르는 효소는 효소분자 자신이

반응을 일으킬 타깃을 폴리머 사슬 위를 오가며 찾아내는 속성이 있다.

PHA 분해효소가 긴 PHA 폴리머를 모노머, 또는 다이머(이량체)로 한정해서 잘라내는 이유는 반드시 양쪽 말단 중에서 효소의 방향성에 따라 어느 한쪽 끝만이 분해시작점일 것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한 것이다.

나사의 방향은 나선형이듯 비대칭 폴리머 사슬도 효소가 접근할 때 방향을 인지하고 찾아 간다는 가정을 세웠었다.

내 연구실은 2004년부터 우수한 외국 학생을 받아들여 10명 이상의 외국인 박사학위 학생을 배출하였다. 그 중에 비교적 똑똑했던 파키스탄 에서 유학 온 대학원생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일단 PHA 사슬의 양쪽 말단 중 카복시 말단을 에스터화 시켜 분해효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조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초기실험에서 대학원생의 효소 분해 실험 데이터가 예상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원생이 반응 시킨 시료를 NMR로 철저히 분석한 결과, 말단 카복실 캡핑1) 반응이 약 60% 정도만 일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은 몇 달간에 걸쳐 촉매를 바꾸거나, 반응조건을 바꾸는 등의 수없는 반복 실험을 해도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해당 학생이 문제를 푸는데 한계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모든 반응 시스템을 체크한 끝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지도교수인 내가 나섰다. 그 결과 100%에 가까운 캡핑 반응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용액에서의 에스터화 반응은 보통의 반응조건에서는 완결이 어렵다. 비교적 강한

1) PHA 폴리머 사슬 양끝 중 카복실 그룹으로 되어있는 한 쪽 끝을 알코올로 반응시켜 에스터화 시켜 효소 반응을 차단하는 것을 블로킹 또는 캡핑(뚜껑을 씌운다는 뜻)이라 한다.

나의 물리화학적 지식 덕분에 카복시 말단의 100% 가까운 캡핑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하여 PHA의 생분해에서는 사슬 말단의 카복실 그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것을 에스터로 만들면 효소적 분해를 차단시킬 수 있음을 알아내고, PHA 생분해조절 방법에 관한 미국 특허출원 등록절차 중이다.

여기에서 배우는 젊은 학생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내용이 있다. 배울 때는 기초를 확실히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선 에스터화 반응 실험에서 완결반응에 실패한 것은 실험하는 학생의 손이 서툰 게 아니라 에너지 속성 때문이다. 따라서 학부에서 배우는 기초 지식을 철저히 다져놔야 불필요한 노동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된다.

PHA 한 주제를 꾸준히 고집한 결과 얻어낸 또 하나의 성과가 있다.

지난 90년간 미생물학계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문제를 풀어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미생물학 대학교과서의 PHA 폴리에스터 나노입자의 세균 세포내 기능이 지금까지 알려진 에너지 저장물질로서의 기능이 수정되고, 토양세균의 진화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설정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PHA 연구 초기의 효소분해 실험에서 세균세포로부터 분리한 PHA알갱이의 분해산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대학원생이 실험할 때마다 가져오는 데이터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를 찾느라 무척 오랫동안 애를 먹었었다. 그 이유는 영국의 어느 학자가 미국화학회지(JACS)에 발표한 연구논문의 가설에 문제가 있어 생긴 일이었다. 학술지에 발표되는 연구 결과가 더러는 조작된 것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된 가설이

지난 90년간 미생물학계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문제를 풀어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미생물학 대학교과서의 PHA 폴리에스터 나노입자의 세균 세포내 기능이 지금까지 알려진 에너지 저장물질로서의 기능이 수정되고, 토양세균의 진화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설정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PHA 연구 초기의 효소분해 실험에서 세균세포로부터 분리한 PHA알갱이의 분해산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대학원생이 실험할 때마다 가져오는 데이터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를 찾느라 무척 오랫동안 애를 먹었었다. 그 이유는 영국의 어느 학자가 미국화학회지(JACS)에 발표한 연구논문의 가설에 문제가 있어 생긴 일이었다. 학술지에 발표되는 연구 결과가 더러는 조작된 것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된 가설이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140-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