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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하자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30-36)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하자

ReSEAT 전문연구위원

이종국

세계가 겪고 있는 물 부족과 오염된 물로 인한 피해는 상 상을 초월한다. 2,500만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14억 명이 깨끗한 식수를 마시지 못하며, 30억 명 이상이 오염된 물을 소독하지 못한 채 사용한다. 물 문제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는 우리나라는 거의 매년 가뭄을 겪고 있다.

저수지 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식수조차 제한 될 정도로 심각한 사태가 빚어지곤 한다. 이럴 때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물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물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홍수로부터 피해를 줄이고 조절하는 것이다. 지구상 물의 총량은 약 13.9억㎦인 것으로 추산된다. 그중 대다수는 해양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빙하나 만년설 등의 얼음 상태로 존재하며, 지하수와 토양에도 아주 적은 양으로 존재한다. 지구 대기 중의 수증기는 그 총량의 0.001%에 지나지 않지만, 이렇게 적은 양의 물이 기상과 기후의 변화에 매우 막중하고 복잡한 역할을 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은 끊임없는 순환을 반복한다.

나는 이 점이 참 흥미롭다. 물 순환의 펌프 역할을 하는 태양 에너지에 힘입어 증발된 수증기는, 바람에 의해 이동하고 응결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지상으로 되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폭우와 뇌우는 삽시간에 엄청난 비를 쏟아 부어 돌발 홍수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300mm정도지만, 대부분 6~10월에 집중되다보니 침수 피해가 빈번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 농작물, 시설물 피해뿐만 아니라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연간 수백 명, 수천억 원에 이르니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닌 일이다.

특히, 집중 호우는 우리나라 전역에 안전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생 장소와 규모의 무작위성이 강하다. 이 같은 배경으로 강수의 가치 평가, 호우로 인한 침수 예측 기술의 새로운 개발이 필요했고, 산업계, 학계, 관계 부처 등에서 모인 연구자들로 팀이 꾸려졌다. 나는 이 팀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았다. 강수의 대체 수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는 사회적 여건과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게

평가된다. 장마 기간 같이 물이 아주 풍부할 때 강수는 처치 곤란이지만, 가뭄 때의 비는 황금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봄철 가뭄과 같은 갈수기에 근접할수록 강수의 값어치는 최고조에 달하기 마련이다.

우리 연구팀의 첫 번째 과제인 ‘강수의 경제성 평가’의 연구 대상 지역은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 정했다. 봄 가뭄이 몹시 지속되던 갈수기 였는데, 때마침 딱 두 차례에 걸쳐 대전과 충남 지역에 비가 내린 것이다. 이때 관측된 강수량의 총량이 평균 181mm로, 이를 토대로 환산한 강수의 가치는 총 3,017억 1,100만 원으로 추산되었다. 1mm당 약 16억 6,700만 원인 셈이다.

이때 내린 빗물의 약 70%가 저수지와 댐의 저수에 나머지는 토양 수분으로, 하천유지의 용도로, 대기 오염 해소와 도로 및 도시 청결의 효과에도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한 이 연구는 성공적이었다. 이를 두고 TV 뉴스와 중앙 및 지방 일간지 매체들이 ‘돈비가 내렸다’며 성과를 크게 부각시켰고, 연구진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두 번째 연구 과제는 침수 위험을 사전에 인지해 대응체계를 갖춰 피해를 줄이는 방법으로 ‘호우 침수 예측 정보 서비스 연구 개발’로 선정했다. 연구 대상 지역은 과거 여러 번 침수 피해를 당했던 충남 부여군이었다. 집중 호우에 의한 침수 피해는 하천 유역과 농경지, 저지대에서 반복되고 있으니 호우 침수 재해 가능성을 잘 예측 한다면,

해당 지역의 자치 단체에서 방재를 대비할 여력도 충분히 갖출 수 있고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일이었다.

각 기관과 업무 협의를 한 끝에 장마 기간 중 호우가 발생할 때, 침수 예상 12시간 전에 통보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다. 시스템을 간략히 설명하지면, 기압골에 접근해 집중 호우가 예상되는 상황이 오면, 호우 침수 예측 정보가 부여 군수에게 제공된다. 이렇게 제공된 기상 정보를 면밀하게 분석해 침수 지역이나 시점 등을 예측 하는 것인데, 첫 분석 결과는 침수 시점은 맞췄지만 지역 범위의 예상은 빗나갔다. 부여 군청에서 집계한 재해 통계 결과, 509ha의 농경지 침수와 1.64ha산사태, 1,170m의 임도 유실, 소 1두의 가축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침수 예측의 정확도와 방재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면 재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연구진의 분위기가 크게 고조됐다.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태풍이 우리나라 서해로 접근해왔고, 태풍에 동반된 강한 집중 호우 예측 정보가 부여 군수에게 즉각 통보됐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예상과 달리 태풍이 비켜나갔고, 호우 침수 예측 역시 빗나갔다. 비록 결과는 달랐지만, 안도하는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의욕 있게 시작한 이 연구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끝을 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수행한 연구 개발 과정에서 우리 연구팀이 얻은 성과와 교훈은 무엇일까? 어느 누구도 생각도 못해본, 심지어 기본적인 업무 매뉴얼조차 없었던 ‘강수 경제성 평가

프로젝트’는 참으로 소중한 체험을 안겨주었고, 덕분에 강수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래 전, 가뭄 때문에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져 타들어가는 논바닥에 바가지로 물을 뿌리던 한 농부를 본 적이 있다. 중학생 시절, 극심한 가뭄 탓에 엄마와 함께 텃밭에 우물물을 퍼다 뿌린 기억도 생생하다.

기우제를 지내며 애타게 기다린 끝에 맞는 비가 얼마나 달콤한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돈이다. 비를 맞을 때마다 돈이 내린다며 반기는 내 자신을 보면서, 하늘을 향한 감사의 미소가 번진다.

일부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호우 침수예측서비스 연구개발’ 또한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정부 기관과 지자체의 협력 네트워크는 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홍수로 인한 침수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방재 활동에 여념이 없는 공직자와 농민들에게 안겨준 심리적 안정감의 크기가 얼마나 큰 지 직접 겪어보지 않는다면 모를 것이다. 지자체 관계자가 고마움을 표현했을 때, 우리 연구팀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는지 실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무엇 보다 어려운 과제를 해낸 연구팀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를 연구를 자신 있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연구원 모두의 열정과 도전 정신 덕분이었다.

새로운 도전 앞에는 긍정보다 부정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출발선 앞에 선 자의 주변엔 응원은커녕 도와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 에너지 뱀파이어가 왜 그리 많을까. 그들에게 녹다운 될 것 인가, KO

시키고 과감히 정비할 것인가. 선택은 모두 본인의 몫이다. 우리 연구팀이 후자를 택한 것은 백번 옳은 선택이었다. 한 번의 과감한 선택이 분위기를 급반전 시키며, 뇌에서 수 천 배나 강력한 파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모두를 달라지게 했다. 이 기운은 파도처럼 번져가며, 믿을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고 결국 우리 연구팀의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 열정과 목표가 뚜렷하면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할 수 있는 법이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변화와 발전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작은 기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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