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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티타늄개발 이야기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105-112)

이산화티타늄개발 이야기

ReSEAT 전문연구위원

황용길

날 여성들의 얼굴 치장을 위해 썼던 코티분이나, 건물이나 주거 환경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해 칠하는 하얀 페인트 등 에 쓰이는 재료 중에 이산화티타늄이라는 성분이 한몫을 차지한다.

이산화티타늄(TiO2)은 자연계에서 티타늄사철로 존재하고 있으며 미국,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 유럽 등에 매장되어 있고 우리나라 는 동해 해변에 조금 매장되어 있다. 이 원료들은 금속티타늄과 이산화티타늄으로 제조되어 공업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산화티 타늄은 굴절률이 높고 은폐력이 우수해서, 1916년대부터 도료, 안 료, 제지, 플라스틱 첨가제, 세라믹스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는데, 이후 각종 전자 정보 소자, 광기능 소자, 약품, 화장품, 세 라믹스 등의 용도로 확장되고 있다.

티타늄금속은 세계 2차 대전 시기에 독일 등의 선진국에서 더 가벼운 전투기를 제조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연구했지만, 1945년도 까지는 개발 하지 못하다가 미국의 Kroll이 처음으로 티타늄사철을 염화 배소하여 얻은 염화티타늄(TiCl4)을 마그네슘(Mg)으로 환원하여 스펀지티타늄 금속을 생산하게 되었다. 티타늄금속으로 만든 제트 엔진이 개발되어 제트기가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하였을 때 처음 실전 배치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1961년 5.16 이후 최형섭 박사 귀국을 필두로 외국에 유학 갔던 학자들이 속속 입국하게 되면서, 금속 연구의 싹이 트이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6.25 전쟁에 참전하였던 함정들이 연평도 근해를 순항하던 중 나침판이 NS극을 지시하여 자력에 끌린다는 이야기가 학계에 돌았다.

연평도 근해의 자력에 대해 금속 연료 종합연구소 설립을 추진한 최박사와 서울대학교 김교수 등이 조사한 결과, 연평도 전체에 티타늄 자철광이 1억 톤 이상 매장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1963년 금속 연료 종합연구소에서 김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들이 타타늄자철광을 연구한 결과, 경도가 높고 자력 선별로 분리하기 어려운 상태의 혼합광이었다. 이를 용융 제련하는 방향으로 생각해봤지만 용융 제련을 하게 되면, 융점이 높은 이산화티타늄은 슬래그를 형성해도 점도가 높아서 열역학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점 때문에 아직까지 해결

하지 못한 상태이다. 당시 이산화티타늄은 안료 및 도료 용도로 수입 해서 사용하고 있을 뿐, 제조에 대해 관심을 가진 연구자나 기업인은 적었다. 우리나라의 티타늄사철은 동해안 해변의 검은 모래를 연마제용 가넷으로 비중선별 및 자력선별에 의해 회수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약간 생산되긴 했지만 쓸 만한 용도가 별로 없었다.

나는 이 부산물로 생산된 티타늄사철을 황산처리법을 통해 이산화 티타늄으로 제조하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것을 대체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고 조금이라도 나라에 도움이 되고자 연구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1960년대 초기에는 무기물계 안료나 도료는 대부분 수입하고 있었고, 생산 되는 도료는 황철광을 채광하여 자연 산화시킨 원료를 분쇄 및 배소해서 생산한 산화철을 다시 분쇄하여 320mesh 이하로 만들어진 산화철 도료를 건축용 기와나 시멘트 벽돌, 적갈색 첨가제, 페인트 등에 주로 활용했다. 산화철이 안료 품위가 되려면 0.5㎛ 전후의 미세입자로 제조되어야 해서 황철광 배소와 분쇄 법만으로 ㎛이하의 미세입자를 제조할 수 없었다. 때문에, 고급 산화철은 미국의 듀폰이나 독일에서 분체 또는 페이스트를 수입하여 사용해야 했다. 이산화티타늄은 전량 외국에서 수입해 제지공업, 피혁공업, 고무공업 및 페인트 공업에서 사용했다.

나는 우선 염화배소법과 황산 침출법을 통해 이산화티타튬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봤다. 하지만 염화배소법은 장치도 복잡하고 간단하게

실험하기가 어려웠다. 해서 차선으로, 실험실에서 비커 실험으로 간단히 할 수 있는 황산 용해법을 택했다. 하지만 기초 시험에서는 티타늄 사철의 분쇄도 경도가 높은 탓에 분쇄하기도 용이하지 않았고 또, 황산 용해 시험에서도 황산 농도 결정하는 것 등 수회 반복 시험할 때 반응 열에 의해 인체에 위험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화학 분석 기술이 지원된다면 할 수 있는 연구라고 생각되어, 간단한 기초 시험으로는 가능성만 확인 하고 시험 공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우선 기본적인 계획은 티타늄사철을 황산으로 용해한 뒤, 철은 황산염으로 회수해서 고급 산화철 안료와 자성산화철를 제조하고 산화 티타늄황산염은 가수분해하여 수산화티타늄을 제조하여 하소하고 분쇄 하여 0.2 ㎛의 미세한 이산화티타늄 (이하 TiO2)을 제조하는 것이었다.

TiO2 100kg/day 규모의 시험 공장을 건설하고, 200ℓ세라믹스 용기에 국산 티타늄사철를 분쇄하여 장입하고 고농도 황산수용액을 반응시키면 강하게 발열 반응하여 황산염 케이크가 형성되었다.

이 케이크에 물을 주입하여 용해시키면서 철 스크랩을 첨가해 황산 제2철염을 황산제1철염으로 환원시키고 산화티타늄황산염(이하 TiOSO4) 으로 생성시켰다. 처음 세라믹 용기에서 시료와 황산수용액의 펄프 상태가 맹렬히 반응 하면서 스팀이 분출하고 난 후 반응 물질은 굳은 떡시루 같이 되었다. 이런 현상을 처음 보았을 땐 겁이 나기도 했지만, 반면 어느 정도 성공예감도 들었다.

서서히 물을 주입하면서 회전체로 회전시키니까 다시 용해되기 시작

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세라믹 반응조에서 용해되어 생성된 산화티타늄황산염과 제 1철황산염 용액을 4~6℃로 냉각시킨 뒤, 황산제1철염결정을 원심 분리기로 여과하여 회수하고 여액을 정제해서 티타늄황산염 (TiOSO4) 정제 액을 회수했다. TiOSO4 수용액은 90℃정도에서 가수분해하여 Ti(OH)4 수산화물을 제조하여 세척 후에 하소하여 TiO2를 제조하였다.

처음 제조한 TiO2입자가 상당히 크게 mesh 단위의 입자로 형성되어 분쇄법에 의해 ㎛ 단위의 입자로 만들려고 생각 하니 앞이 캄캄했다.

이는 가수분해 시에 가수분해 된 Ti(OH)4가 응집되어 조대한 입자를 형성한 수산화물이 하소하면 응집 상태에서 하소되기 때문에 조대한 입자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조대입자를 물리적으로 분쇄한다는 것은 당시 내 능력으로는 부족 했던 터라, 단체입자분리 가수분해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문헌 조사 등 여러 방법으로 조사해서 반복 실험을 수개월 동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자 입이 바싹 마를 정도로 가수분해 종자 핵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어느 날, 고심 중에 고등학교 화학 교과서를 뒤적거리다가 책 내용 중 수소 이온 농도 이야기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계면활성제를 약간 첨가하고 수소 이온 농도를 조절해서 90℃

정도에서 가수분해 하니까 대단히 미소한 티타늄수산화물이 형성되었다.

이 현상을 처음 보는 순간, 무릎을 치며 바로 이거야 이제 됐어! 하며

연구원들과 손을 잡고 뛸뜻이 기뻐했다. 드디어 한 고비를 넘기게 된 것이다. 입도 조절 제조 노하우는 각 연구자마다 가지고 있으면서 공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산화티타늄황산염이 가수분해하여 생성된 미세한 수산화티타늄을 세척 후 미량의 에탄올수용액으로 마지막 처리 후 하소해서 2산화티타늄을 생산하였다. 처음 미세한 산화티타늄 분말을 생산한 기술자들이 신기해하며 분말을 손에도 비벼보고 얼굴에도 화장해 보면서 촉감이 좋다고 벙글대는 모습이 선하다.

1960년대 초기는 분말의 크기를 ㎛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전자 현미경을 국내 연구소나 대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기였기에, 모든 제품을 물리 화학적으로 증명하기는 곤란했다. 이런 이유로 나와 연구원 들은 외국 제품과 대비하여 활용하는 방법 이외는 실증할 수 없었다.

겨우 고생 끝에 제품을 제조하여 피혁 공장, 고무공장에 페이스트나 분말로 납품했지만, 규모가 100kg/day 생산해서 공장을 운영할 수 없었고 투자가를 모색하던 중 1960년대 후기에 한국 티타늄이 외국 기술을 수입해서 대대적으로 공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나는 거의 목표 대로 TiO2와 α-FeOOH, α-Fe2O3를 제조해서 시험 판매도 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기업 경영이 불가능하게 되어 결국 중단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술자는 도전 정신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공정기술 개발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같이 참여한 기술자들에게 고생만 시킨 결과가

되었다는 씁쓸한 마음이 항상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내가 이산화 티타늄 용도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는 nano TiO2가 개발되면서, 최신 수소제조촉매 등 각 분야의 첨단 재료가 개발되어 응용이 점점 확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앞으로 이 분야에는 많은 연구 개발 기술자 들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맞춰 새로운 도전자들이 많이 등장해 발전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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