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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어라, 최선의 것이 다듬어 진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93-101)

많이 읽어라, 최선의 것이 다듬어 진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조 만

연에 있는 가장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을 더 무겁게 만들 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니, 그 원소는 쪼개지거나 요동을 칠 것이다. 이때 우라늄이 두 쪽으로 쪼개지면서 나오는 막대 한 에너지를 발전에 사용하는 곳이 원자력발전소이다. 1973년 제1 차 석유파동으로 놀란 에너지자원빈국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원자 력발전소도입을 추진했다. 우라늄자원도 없는 나라들도 사용후핵 연료를 재처리하여 순환시키는 소위 핵연료주기시설도입도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핵연료주기시설을 도입하지 않는 나라에는 농축우라늄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 준공당시인 1978년의 사용후핵연료저장용량은 최초 사용후핵연료 배출량인 노심핵연료의 1/3만을 수용할 수 있었다. 별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저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 핵연료 교체기간이 되었을 때 다시 노심핵연료 1/3을 수용 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저장한 사용후핵연료를 비워내야 했다. 1년의 냉각기간이 지나면 다른 저장저로 이동시키거나 프랑스나 영국의 상용 재처리시설로 보내야 한다.

1973년 발생했던 제1차 석유파동이후 각국의 에너지안보의식은 극도로 강해졌고, 미국정부는 재처리를 시행하지 않는 국가에게는 농축 우라늄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했던 터라 원자력발전과 핵연료 주기완결을 위한 시스템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프랑스와 그 당시 서독(지금의 독일) 그리고 일본 등 우리보다 먼저 미국의 경수형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한 국가들은 경수형 원자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재활용하는 국제적인 관습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카터행정부의 “핵확산 방지법 1978” 「Non Proliferation Act of 1978」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재처리사업을 일괄적으로 금지 시키고, 지금까지 허가 된 것들도 모두 재심을 받도록 했다. 그래서 재처리하기로 계약된 것들도 모두 중단되었다. 미국의 국내법 하나가 세계의 원자력발전사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 셈이다.

당시 원자력발전사업자인 한국전력도 고리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용량확장을 위한 용역을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와 한국

전력의 공동출자기업인 KNE에 발주했다. 발주조건은 이러했다. 사용후

사업에 관심이 없었다. 주미 대사관 Scientific Attach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안전성분석보고서와 NRC평가보고서 그리고 시공 및 엔지니어링 보고서 등 공개 자료를 최대한 모아 한국으로 가져왔다.

사실 이 분야는 나의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이 일의 수행에 필요한 핵 임계 계산코드, 붕괴열제거능력평가용 열 수력해석 코드 및 안전성 분석 코드 등 여러 계산프로그램 등은 우리 연구실에 거의 갖추어 놓은 상태이기는 했으나 실제로 활용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기계구조설계와 내진성 등은 다른 부서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당시 과기처장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의 한마디에 고리1호기 건설현장에 투입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는데, 원자력 전문가들이 책상에 않자 있을 것이 아니라 내려가서 현장 감각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 연구원들은 전 출력운전 및 종합점검반의 핵공학담당으로 참가하면서 고리 1호기와는 친숙해질 수 있었다. 한국전력, 안전규제담당부서인 과학기술처 그리고 우리들 원자력전문가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작업했다. 과제가 생길 때마다 토론회를 개최하여 의견을 모으는 등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었다.

다만 한국전력 고리1호기 담당자들은 소장을 위시하여 일본 KYUSHYU 전력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실지훈련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분야 에서 우리보다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들 역시 스스로 하는 것은 처음이라 우리들의 의견을 경청해주었다. 그러나 이들은 거대한 프로 젝트 수행의 담당자들이라 건조 사업에 대한 책임감도 강했고, 기술적 숙련도도 우리보다 뛰어났다.

우리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확장용역을 해본 경험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그런 사람도 없었다. 다만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 (IAEA)전문가와 함께 고리1호기 설치와 운전에 필요한 안전심사에 참여한 원자력 전문가들이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여러 분이 계셨고, 원자력 안전규제심사 담당행정기구인 과학기술처 원자력 안전국장이 물리학과 동기였기 때문에 안전심사에 관해 궁금한 점들은 쉽게 물어 볼 수 있었다.

우리 세대는 겁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기간과 8.15해방후의 혼란기 그리고 6.25사변을 겪으면서 황폐해진 교육환경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과서도 없었고 일부 선생을 제외하고는 충실한 강의도 못 듣고 대학을 졸업했다.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책을 돌려보면서 스스로 공부했던 습관 덕분에, 읽을 자료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우리 세대들은 자신은 없으나 도전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하여간 많이 읽는 것을 좋아 한다. 그래서 우리 연구원들은 그 많은 자료들을 가리지 않고 미련하게 모두 읽었다.

우리는 어떤 자료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 인지 선별할 능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무턱대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 내려가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각 엔지니어링 회사의 용역보고서들이 모두들 형식은 갖추어 안전규제항목들은 충족하고 있으나 취급하는 분량들이 핵 임계 계산, 안전성 분석 등 분야별로 차이가 났다. 엔지니어링 회사마다 분야별로 강점이 있어서 그 분야의 보고서는 심층적으로 분석해 내용도

많고 자세한 수식과 자료 및 심지어는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들어 있었다. 많이 읽다보니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부실한 자료인지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우리 같은 원자력후발 참여자들에게 원자력이 고마운 것은 첨단 기술이 숙련된 엔지니어와 전문가들의 몸에 배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과 재현성 및 품질보증을 위해 모든 것이 컴퓨터에 들어 있었 다는 것이다. 프랑스, 서독 그리고 일본이 원자력을 개발할 당시, 원자력은 첨단 과학기술이었고 컴퓨터는 만져보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영어에 능통하지도 않고, 문화도 달라서 미국 엔지니어와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거다. 더욱이 비즈니스로 전문가를 파견하는 것이니 인원수도 제한되어 정예부대만 보냈었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공대 원자핵공학과는 전교 수석 등이 모이는 곳이었고, 원자력은 이제 하나의 기초일 뿐이지 첨단기술은 아니다.

더욱이 이직률이 높은 미국에서 개발된 원자력기술은 철저히 문서화 되어 있었고, 모든 안전성 분석 자료와 설계 자료가 프로그램까지 포함해 컴퓨터에 들어 있다. 우리 연구원들은 컴퓨터를 자신의 발보다 잘 쓴다. 우리는 인해전술이다. 미국사람과 경쟁하며 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에 미국 엔지니어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가 상승 작용하여 프랑스, 서독 그리고 일본보다 단기간에 원자력을 자립한 국가가 된 것이다.

우리는 많은 자료를 읽고 분석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핵 특성 임계해석, 열 수력 해석, 안전성 분석, 자연 순환 냉각성능 확보, 사용후핵연료 저장건물 내진해석 및 사용후핵연료 저장 랙 구조 해석과 제작도면 등을 작성하여 제출했다. 미국 엔지니어링 회사 보고서 들의 전문분야별 최우수 용역보고서를 참조하면서 프로젝트수행과 수치 해석은 우리 노물리연구실과 열수력학 연구실 연구원들이, 기술적 자문은 원로들이 담당하는 역할분담으로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의 용역보고서가 모든 분야에서 최선의 것이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가토스 소재 Quadrax가 우리의 용역 보고서를 감수했고, 한국전력은 우리의 제작도면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저장 랙을 스테인리스스틸을 사용하여 국내 기술로 제조하여 설치했다.

이 프로젝트가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엔지니어링 용역사업이 되었고, 고리 2호기 등 후속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확장용역 에는 우리가 수행한 용역보고서가 크게 참조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수행하면서 느낀 점은, 해답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일단 많은 자료들을 읽고 분석하다보면 결국은 최선의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을 성공으로 이끈 많은 분들과 작고하신 분들의 영전에 이 조촐한 에세이를 바친다.

산소 함유 에너지 결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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