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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마라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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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마라톤이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권식철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벌어진 게 벌써 올해로 7년째 가 됐다. 이후에도 북한의 ‘서울 불바다’ 위협 발언과 함께 장사정포와 방사포에 관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중 장 사정포는 사정거리가 긴 장축의 대포로, 사정거리가 통상 40km~60km이며, 포신의 길이가 10m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국 내에서도 이미 오래 전, 방위 산업의 육성 차원에서 기존 국내 화 포의 성능과 명중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연구 개발과 실전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의 첫 직장은 한국 기계 금속 시험 연구소(KIMM; 현재의 한국 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로, 입사 당시엔 서울에서 기계 소재

산업의 메카인 창원으로 이제 막 이전한 상태였다. 이렇다보니 공단의 기반 시설이나 인력, 장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채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밤을 새는 작업을 해야 했다.

나는 표면 처리 기술 중 업주 기업체의 품질 시험 평가 지원과 기술 지도 업무를 맡아 일을 시작했다. 먼저 지역에서 필요한 기술 개발을 조사해야 했는데, 크롬 도금 기술 요구가 압도적이었다. 표면 처리 연구실에는 나를 포함해 총 4명의 연구원이 있었다. 초기 배치된 인력 중 어느 누구도 도금에 대한 사전 지식과 경험이 없었다. 오직 연구 개발에 대한 열정으로 전문 자료를 찾고 세미나를 통한 기본적인 실력을 쌓으며 실험실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지역 유압 업체의 실린더 부품에 표면 처리 기술 용역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동일 업체의 새로운 요구에 따라 연속 방식으로 경질 크롬 도금 공장의 공정도 및 소요 설비 구축에 대한 기술 용역으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 창원을 넘어 부산 및 대구 지역의 섬유 실린더 및 압연용 롤 제품의 크롬 도금의 기술지도 요청에 부응하면서, 크롬 도금의 기술력을 더 쌓게 되었다. 방산 제품의 표면 처리 시험 의뢰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기술 지원 요청이 없다가 3년이 지나 K중공업(주) 산하 방산 업체의 중형 총포의 표면 처리에 대한 불량 문제 분석을 의뢰받게 되었다. 방산품의 표면 처리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구체적인 개발 업무는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다.

이 업체는 그동안 도금 전문 인력이 없어 속앓이를 하다가 새로운

연구 개발 사업을 제안해온 것이다. 기존에 제품의 성능 개량 사업으로

구현하는 기술 개발의 의지를 열정적으로 피력했고 그렇게 우리의 파트너가 되었다. 당시 소기업으로 운영되었던 파트너 M사는 방산 관련 보안은 물론 품질보증에 대한 무지로,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았다.

다행히 이러한 난관을 잘 견뎠고,

우리의 페이스에 맞춰 공장 건축과 설비 라인의 설치와 운영 일정을 잘 준비해주었다. 그렇게 마침내 시험용 시제품으로 표면 처리 제품을 만져 볼 수 있는 감격적인 기회가 왔다. 하지만 이건 종착역이 아니라 시작점으로, 제품의 성능 평가를 위해 실제 사격 성능 시험을 치룰 일이 남아있었다. 일차적으로 제품 내면 표면 처리 제품의 성능을 확인한 결과, 포구(muzzle)부위에 파손이 발견되어 좀 더 전체 내면 검사를 통한 결과 분석하기로 하고 시험장을 나섰다.

이번 시험을 통해 내경 표면에 부착된 도금 층의 탈락의 원인에 대하여 여러 모로 검토하면서 내마모성 위주의 레시피로 된 도금층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음 시험품을 준비할 땐 표면 처리 작업 조건에 밀착력 위주의 레시피를 찾아 적용하도록 하였다. 포사격 현장에서 포탄은 음속의 4~5배 고속 이송으로, 포신 내면은 순간 온도가 3000℃로 오르며 압력 또한 1만 기압 정도의 고압이다.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극한 환경으로, 이런 악조건에 견뎌 낼 수 있기 위해서 내식성과 내마모성과 더불어 밀착성이 잘 조합된 표면 처리가 필요했다.

성능시험 합격 통보를 받고 주경야독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 했다.

이 기분은 연구자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쾌감이 아닐까 싶다. 이후에도 실전 배치를 이루기 위한 연속 사격 시험이나, 사계절 환경시험, 정밀 탄도 시험 등을 거쳐 인증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마지막 으로 수요처로부터 최종 합격 소식을 받게 되었고, 미국의 선진국 제품과 비교 시험에서도 성능의 우수함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제품 소요 관련 부처, 기술 전수 업체와 함께 축배의 잔을 들며 환호의 개가를 부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나의 연구 생활 중에 수행했던 여러 연구 과제가 이처럼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성과가 없거나 미약해 아쉬움과 미련을 남긴 일이 태반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연구를 거듭 하며 축적한 노하우와 지적 자산이 연구실에 쌓이고 쌓여, 다른 성과를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과학 기술은 우리 삶의 발판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미래를 열어주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과와 이과의 통합 시대에서, 먼저 이과 공부를 하고 문과 공부를 해야 먼 미래의 통찰이 가능하다는 미래학자들의 견해에 동감한다. 연구 과정에서 겪는 난관을 극복할 때마다, 보람과 애환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단편적인 성과보다는 긴 호흡으로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가 연구 생활의 덕목이 아닐까 한다. 아무쪼록 나의 이야기가 미래의 꿈나무들이 갈 길에 환한 등대불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오뉴월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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