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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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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풍수적 재현으로서 고지도 읽기

3.2 존재의 근원

고지도 중 특히 군·현 단위 지도를 보다 보면 가끔 의아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보통 지 도의 상단에는 북쪽이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북쪽 이외의 방위가 배치되어 있는 다수의 지도들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조선시대에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북쪽을 중요시했 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지도 상 위쪽에는 북쪽이 배치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9>에서 보듯 고지도 상에서는 북쪽만이 아닌 동쪽·서쪽 어느 방 위든지 지도의 위쪽에 배치되고 있다. 이렇듯 지도 위쪽에 다양한 방위가 배치되는 것은 군·현 지역의 행정 중심지인 읍치의 주산(主山)이 북쪽만이 아닌 다른 방위에 위치하고 있 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림 9>는 현 충청남도 지역에 속하는 조선시대

(13) 인간 삶과 관련된 다양한 규모의 장소를 풍수에서는 명당(明堂), 혈장(穴場), 혈(穴) 등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이들 표현은 묏자리, 집터, 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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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 수 적 재 현 으 로 서 고 지 도 특 별 기 획 고 지 도

군·현 중 주산이 읍치의 북쪽이 아닌 동쪽(회덕현의 계족산, 천안군의 태조봉)과 서쪽(석성 현의 파진산, 한산군의 건지산)에 위치하고 있는 『해동여지도』의 일부 사례를 제시한 것으로 이런 예는 전국 수백 개 군·현 단위에서 다수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해동여지도』뿐만 아 니라 『해동지도』·『광여도』·『여지도서 첨부지도』·『비변사방안지도』·『1872년 지방지도』 등 수많은 고지도에서도 이런 예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림 9. 주산을 지도 상단(북쪽)에 배치시킨 『해동여지도』의 각 군·현 지도(출처: 국립중앙도서관)

회덕(계족산) 석성(파진산)

천안(태조봉) 한산(건지산)

본래 풍수상 주산 개념은 산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이해했던 풍수적 인식의 반영으로 조선 전기 국도나 왕릉, 중앙 권력층이나 지식엘리트들 사이에서 주로 언급되던 것이 조선 후기에 이르면 군·현 단위 수준에까지 널리 유행하게 된다. 조선후기 지리지인 『여지도서』에서부터 주맥(主脈) 또는 주산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14)

풍수에서는 용맥(산)의 계보를 조산(祖山) → 종산(宗山) → 주산(主山)의 흐름으로 파악하 고 있는데,(15) 최종 단계에 위치한 주산은 고을의 행정중심지인 읍치를 비롯하여 마을·국도, 심지어 묘지 등 다양한 입지를 결정하는 중심 맥세로 역할한다. 즉 백두산으로부터 시작된 용맥 흐름은 ‘조산 → 종산 → 주산 → 인간 삶터’의 흐름을 통해 끊어짐 없이 전국의 산천, 인 간 삶터, 인간을 하나의 몸처럼 묶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산은 근원인 조산으로부터 종산 을 거쳐 주산으로 이어져 구현되는 근원의 상징물이자, 산의 흐름으로 대변되는 ‘자연’과 명 당 국면으로 대변되는 ‘인간’ 영역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이해될 수 있다. 달리 말해 주산은 용 맥의 근원지인 조산·종산의 최종 도착점이자 인간의 장소로 유입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근원의 구현체로서 주산에 의해 품어지는 읍치나 마을·묘지·국도 등 인 간 삶과 관련된 다양한 입지는 근원으로부터 그 존재의 근거를 부여 받은 특별한 장소 즉 명 당 국면으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근원의 상징물이자 자연-인간 간 매개체로서 조선 후기 정상화(normalization)되는 주산의 의미가 수많은 군·현 단위 지도들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식은 군·현 단위의 주산뿐만 아니라 보다 큰 권역의 종산, 심지어 전국 규모의 조산 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전국적 규모에서 볼 때 백두산은 한반도 모든 산 의 근원 즉 시원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를 가장 잘 재현해주고 있는 대표적인 지도가 정확 성의 표본으로 제시되어 온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라고 할 수 있다.(그림 10, 11) 「대동여지 도」에서 백두산은 한반도 내 다른 산들의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하게 마치 한반도 전체를 덮는 우산 모양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14) 이에 대해서는 「권선정, 2010, “조선시대 읍치의 주산과 진산,” 문화역사지리 22(2): 50-72」 참조.

(15) 한반도 모든 산의 시조산인 백두산으로부터 각 고을 주산까지의 흐름을 인간 계보처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분하여 정리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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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동여총도」의 백두산(출처: 국립중앙도서관)

그림 11. 「대동여지도」의 백두산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보통 존재의 근원이나 장소의 시원, 성스러운 상징물 등이 위치하고 있는 방위를 지도의 위 쪽에 배치시키거나 다른 요소와 구별되도록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심성에 관계된다 고 한다. 그럴 때 <그림 9>의 사례처럼 북쪽 이외의 방위까지도 지도 위쪽에 배치한 것이나 한반도 모든 산의 시원인 백두산을 특징적으로 표현한 것 등은 존재의 근원으로서 주산·조 산에 대한 인식 곧 풍수가 얼마만큼 일상적, 보편적 수준에서 공유되고 있었는지 반증해 주 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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