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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형태

문서에서 재벌의 다각화와 경제력집중 (페이지 38-42)

기업집단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시장과 기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또 다른 형 태의 기업조직이다. 즉 전통적인 기업관에 따르면 기업 안에서는 위계 메카니즘 이 작용하고 기업 사이에서는 시장 메카니즘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 나 기업집단은 일반적으로 통제 피라미드라고 하는 레버리지 수단을 통해 여러 개의 법률적으로 독립된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기업 사이의 관계는 부분 적으로는 시장 메카니즘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그룹본부 중심의 위계 메카니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집단은 기업과 시장의 성격이 혼재된 조직이라 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특성을 갖는 조직은 기업집단 외에도 기업간 전략적 제 휴, 네트워크, 지주회사, 가상조직 등 여러 가지가 있다(Picot, Ripperger &

Wolfe, 1996). Williamson(1985)은 전통적 의미의 시장과 기업의 성격이 혼재된 조직의 보편성을 인정하여 이들 조직을 시장과 기업과 구분된 개념으로서 혼합형 (hybrid)으로 부르기도 한다.

기업집단의 생성배경은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최근에는 재벌의 구조조정과 관련 하여 재벌의 미래 모습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재벌은 논자마다 서로 다 른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나 지금까지의 설명에 비추어 볼 때 일반적 의미에서의 기업집단과 소유지배구조상의 한국적 특성이 결합된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 다. 다시 말하면 재벌은 시장과 기업의 성격이 혼재된 혼합형 조직이라고 하는 일반적인 특성에 대주주의 경영참여와 경영재량권 행사에 대한 외부 투자자의 무 견제, 그룹기조실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내부통제구조, 정경유착 등의 한국 적 특성이 더해진 개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재벌을 이원적 특성 의 결합으로 보면 재벌을 둘러싼 그 동안의 수많은 찬반논쟁에도 불구하고 재벌 의 본질이나 정책방향에 대한 의견이 왜 점진적으로도 수렴할 수 없었던가를 이

18) 미국의 사례는 본장 제1절을 참조.

해할 수 있다.

오랜 논쟁에도 불구하고 재벌에 대한 접점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재벌을 일원 적 개념으로 접근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재벌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심지어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재벌의 한국적 특성을 강조했고, 기업집단 이라는 일반적 속성마저 한국적 특성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반면에 재벌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주어진 제도적 환경에서 거래비용을 절 감하려는 기업가의 환경적응 과정에서 재벌이 나타났다고 하며 기업집단의 일반 적 속성과 기능만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재벌 개념에 내포되어 있는 이원적 측면을 간과하고 상반된 시각에서 재벌문제에 접근하는 한 재벌에 관한 논쟁은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며 평행구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정부 정책에서까지 미분화된 재벌 개념이 사용될 경우 혼란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 경제가 위기를 맞은 이후 1998년부터 정부가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는 ‘재벌개혁’ 정책은 그 지향점이 불분 명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유승민, 1999). 이러한 지적은 정부가 기업집단의 일 반적 속성까지 부정(재벌해체)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장과 기업의 혼합형으로서의 기업집단적 속성은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부당 내부거래와 같이 한국적 특성과 관련된 부정적 측면을 문제시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할 것이다.19)

재벌의 미래를 예측함에 있어서도 기업집단으로서의 일반적 속성과 한국적 특성 을 구분해 보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 <표 2-4>에서 정리된 환경변화 요인에서 보듯이 시장개방, 경쟁심화, 경영투명성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에 따라 한국적 특 성에 기인한 재벌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재벌 의 다각화 범위는 평균적으로 축소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지배구조의 대폭적인 개선에 힘입어 각 계열사의 경영에 대한 대주주의 영향력도 점진적으로 감소하면 서 계열사의 경영 자율성도 제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사업범위의 축소와 계열사 단위의 경영 자율성 제고에도 불구하고 대주주 의 경영권에 대한 집착과 통제 피라미드에 기초한 그룹형 경제조직의 한국적 특 성은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전망이 가능한 것은 기업조직의 형태와 경영구조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외적 제도의 실질적인 변화

19) 1999년 5월 17일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와의 월례 간담회에서 이와 관련 의미있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통령은 “앞으로 재벌은 계열기업간 부당 내부거래 등이 어 렵게 됐으므로 연계․연합은 돼 있을지 모르나 실제로는 계열기업이 각각 독립해서 경영할 수밖에 없다”며 “이제 과거와 같은 형태의 재벌은 이 나라에서 없어질 것”임을 강조했다고 한다(서울경제, 5월 18일자 1면 기사). 이러한 발언은 언뜻 시장과 기업의 혼합형으로서의 기 업집단의 존재는 부정하지 않겠다는 여운을 남기고 있지만 여전히 진의는 불투명하다.

< 그림 2-5> 거래비용의 변화가 거래조정방식에 미치는 영향

시장 (Market)

위계 (Hierarchy) 혼합조직

(Hybrid) 거래비용

TCM

TCH

TCB

SM SB

TCM' T CH

' TCB

SM SM' SB SB' 시장

(Market)

위계 (Hierarchy) 혼합조직

(Hybrid)

자산의 전속성

거래비용

자산의 전속성

가 아직 미흡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정책 및 제도의 생성기능을 담당하는 우 리나라 정치시장의 불완전성은 단기적으로 극복되기 어려운 과제라고 할 것이다.

정책집행 과정에 있어서는 정부의 재량적인 정책운용 패턴이 관행의 지속성을 감 안할 때 쉬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우며, 최근의 ‘빅딜’이나 ‘재벌개혁’ 추진 과정에서 보듯이 시장과 정부역할의 경계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을 수도 있 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공식적인 제도의 상당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을 뒷 받침하는 관습과 가치관의 변화는 오랜 기간의 실행(enforcing)과 적응과정을 거 쳐 바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재산권에 대한 보호와 사회적 신뢰 자본 역시 단 기간 내에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경영외적 불확실성이 온존 되는 한, 기업집단의 대주주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경영에의 참여를 통한 경 영권 확보에 강한 애착을 보이며, 정부-기업 관계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것 으로 전망된다.

재벌 개념에 내포된 한국적 특성이 점진적으로 바뀔지, Global Standard로 접근 할지는 앞으로의 상황변화를 더 관찰해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벌 의 한국적 특성이 어떻게 바뀌든지 다변화 기업집단으로서 재벌의 일반적 속성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장기적으로 소유와 경영이 분 리되고 중앙집중형의 내부통제구조가 좀더 수평적인 위계구조로 대체되는 등의 변화가 발생한다고 해도 시장과 기업의 혼합형으로서 다변화 기업집단의 일반적 속성은 계속 유지될 듯하다. Williamson(1985)은 시장, 기업, 혼합형 조직 중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인가는 거래비용의 상대적 크기에 따라 결정되고 또 이 거래비용 은 자산의 전속성(asset specificity)에 크게 영향받는 것으로 본다. 즉 자산의 전 속성이 낮은 경우에는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 유리하고 전속성이 매우 높은 경 우에는 기업조직 내에서 거래를 내부화하는 것이 유리하며, 그 중간쯤에서는 혼 합조직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그림 2-5>에서 자산의 전속성이 SM 이하이면 시장거래가, SH

이상이면 기업 안에서의 내부화가, 그리고 SM과 SH사이에서는 혼합형 조직이 효 율적인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자산의 전속도는 물리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장이 발전되면서 하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자산에 대한 시장평가방식이 개선되면 과거에는 시장에서 거래되기 어렵던 자산들이 쉽게 거래될 수 있게 된 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Picot, Ripperger & Wolfe(1996)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이 자산의 전속성에 따른 거래비용을 떨어뜨리게 되며, 만약 정보통신기술의 발 전이 시장, 기업, 혼합형 조직의 거래비용을 각각 동일 비율로 떨어뜨린다고 가정 하면 <그림 2-5>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존에 기업(위계)에 의해 조정되던 거래 를 또는 혼합형 조직이 대신하게 됨을 보이고 있다. <그림 2-5>는 하나의 예시 에 불과하지만 시장과 기업의 기능을 겸비하는 혼합형 기업조직이 정보화 사회에 서도 그 중요성이 감소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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