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다각화의 범위

문서에서 재벌의 다각화와 경제력집중 (페이지 30-38)

1997년 말 한국 경제가 IMF 관리체제로 접어든 이후 재벌개혁, 또는 재벌 구조 조정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변화 기업집단의 생 성배경을 논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오히려 기업가로서는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떤 환경변화 요인 들을 고려하여 어떤 방향으로 기업조직과 사업구조를 조정해야 하는가, 정책당국 으로서는 원하는 ‘재벌개혁’의 효과를 얻기 위해 어떤 제도들을 어떻게 바꿔나가 야 하는가, 더 나아가 지금의 구조조정기를 겪고 난 이후의 대기업은 어떤 모습

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다. 이에 관한 논의는 필 자의 능력밖에 있으나 기업 구조조정은 앞서 설명한 기업의 형태와 범위(다각화) 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의 변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개략적이나마 언 급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조직형태와 범위(다각화)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에 변화가 생기면 기업은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조직과 사업구조를 위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하게 된 다. 이러한 변수에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장경쟁의 강도, 소유지배구조, 자 산의 전속성, 생산요소 및 상품시장에서의 거래비용, 계약과 재산권 보호 관련 제 도, 정경유착 또는 특혜적 산업정책과 같은 정책적 요인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된 다. 물론 한 번 결정된 기업조직과 사업구조는 그 자체로 埋沒費用(sunk cost)적 성격을 띠게 되며, 구조조정은 경우에 따라서 주변의 이해관계자에 대한 충분한 설득을 전제로 해야 하는 등 상당한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환경이 바뀐다고 해 서 그 때마다 즉시적으로 조직 및 사업구조를 조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의 변화가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인 현상이고, 또 이러한 변화가 누적되면서 현재의 조직과 사업구조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 증가하는 경우 기업은 장기적 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시장경쟁의 심화는 기업(집단)의 범위(다각화)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 래할 수 있다. 시장 전 부문에서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면 기업이 아무리 두툼한 지갑(deep pocket)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새로운 업종에서 시장지배력을 확보하 기가 쉽지 않고, 현재의 주력업종에서 경쟁우위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한계사업을 정리해야 하는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 이다. Fershtman & Kalai(1993)가 경쟁의 강도와 다시장 범위(multimarket scope)는 서로 逆(-)의 관계에 있음을 보이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경쟁의 심 화는 일반적으로 기업집단의 사업범위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기업지배구조 역시 기업의 조직형태와 범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기업의 경영자는 항상 주주와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영재량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유인이 있다. 주주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도산위험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범위의 경제를 활용하여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적정한 수준 의 다각화가 바람직하다. 이러한 주주는 기업가치의 극대화를 최우선하는 반면에 경영자는 앞서 대리비용 가설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업가치 뿐만 아니라 기업 의 외형과 자신의 고용위험까지 감안하여 사업구조의 범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경 영자가 생각하는 적정 다각화의 범위는 주주의 그것보다 항상 높게 된다.

<그림 2-2> 주주와 경영자의 다각화 성향 불일치

S

M

DS DM

전업형 본업형 부분관련형 비관련형

다각화 성향 S : 주주의 효용곡선 M : 경영자 효용곡선

주주와 경영자의 입장에서 적정 다각화 수준이 어디인가 하는 것은 기업마다 다 를 것이다. 그러나 Hoskisson & Turk(1990)의 예시적인 설명에 따르면, <그림 2-2>에서 보듯이 주주는 대체로 전업형(dominant business)이나 아니면 본업형 (related-constrained business) 사업구조를 선호(DS)하고, 반면에 경영자는 부분 관련형 또는 비관련 다각화를 선호(DM)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처럼 주주보다 경영자의 다각화 성향이 높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기업지배구조가 사 업구조의 범위에 미치는 영향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경영자에 대한 규율 메카니즘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경우 사업구조는 자연스럽게 경영자의 이 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결정되고 이 때의 사업구조는 주주의 입장에서 보면 지 나치게 다각화된 모습이다. 따라서 거꾸로 주주권이 크게 강화되어 경영자에 대 한 효과적인 견제가 가능하면 경영자는 주주의 압력을 수용하여 불가피하게 다각 화의 범위를 점차 DM에서 DS로 축소시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16)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공시제도의 개선을 통해 경영투명성을 높이 고, (소유) 경영자의 경영책임을 담보하기 위해 주주권이 강화되었으며, 이사회의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외이사제를 도입하는 등 기업지배구조 관련 제도에 상 당한 변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한층 강화된 주주권을 바탕으로 외부

16) 지배구조를 선진화한다해도 주주-경영자 사이의 대리문제를 완벽하게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DM이 DS에 일치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주들이 주주제안권과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위임 등을 이용하여 그룹내 타 계 열사에 대한 지원성 거래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관련 제도의 개선과 더불어 투자자의 권리의식 향상으로 주주 행동주의 (shareholder activism)는 앞으로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는 추세이다. 따라서 그룹 본부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많은 계열사를 일사불란하게 통합 조정하거 나 선단식 경영을 고집한다면 각 계열사 단위의 외부주주와 불가피하게 마찰을 겪게 될 것이다. 소모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기업집단은 지금의 ‘통제 피라미드’

의존적인 조직형태에서 벗어나 사업부제 복합기업 또는 지주회사형 기업조직으로 탈바꿈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이는 장기적인 검토과제일 것이다. 기 업의 조직형태가 장기적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하든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경영투명성 제고, 주주권 강화는 기업집단의 사업범위, 또는 계열기업의 수를 축 소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경쟁심화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재벌그룹의 사업범위에 미치는 영 향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러나 Markides(1995)의 분석틀을 이용하면 좀더 일반적 인 관점에서 최근의 환경변화가 사업구조에 미칠 영향을 전망해 볼 수 있을 듯하 다. Markides는 기업이 다각화 범위를 계속해서 확대해가면 시너지 효과가 없는 비관련 산업으로 다각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계수익(Marginal Benefit; MB)은 점차 감소하고, 반면에 조직의 확대에 따른 통합조정비용은 높아지기 때문에 한 계비용(Marginal Cost; MC)은 점차 증가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하에 기업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적정 다각화점은 <그림 2-3>에서 보는 바와 같이 MB와 MC 곡선이 서로 교차하는 점, D*에서 결정된다.17)

17) Markides(1995)는 주주 또는 경영자 중 누구의 관점에서 본 적정 다각화인지에 대해 명시하 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주와 경영자의 관점에서 측정된 적정 다각화는 체계적인 차이가 있 으며 후자는 전자보다 항상 높은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양자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그림 2-3>은 주주의 입장에서 본 적정 다각화를 전제하고 있다.

<그림 2-3> 적정 다각화의 결정

MC

MB

D*

D* 다각화

기 업 가 치

한계비용(MC) 한계수익(MB)

다각화

<그림 2-3>의 MB와 MC 곡선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여건의 변화에 따라 이동한다. 예를 들어 MB 곡선은 생산 및 거래의 내부화에 따른 거래비용 절감폭, 공동자원의 활용에 따른 시너지 창출효과, 복합력에 기초한 독점이윤의 획득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변화에 따라 좌우로 이동하게 된다. 이를 제2절에서 살펴본 요인들을 중심으로 다시 설명하면 시장이 불완전하여 내부자본 시장이나 내부노동시장의 장점이 높으면 높을수록, 평판이나 상표, 조직에 체화된 지식, 경영자질, 기술적 역량 등 기업 전속적인 자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영위업 종 간의 공동전선을 형성함으로써 각 시장에서의 지배력과 정부정책에 대한 영향 력 또는 외부금융자원에의 접근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면 MB 곡선은 우측으로 이 동하게 되고 이에 따라 (MC 곡선이 그대로 있다고 가정하면) 적정 다각화 수준 은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생산요소시장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서 과거에 비해 내부자본 시장과 내부노동시장의 장점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동시에, 시장 전 부문에서 경쟁이 심화되면서 복합력에 기초한 시장지배력의 확대가 어려워지고, 정치의 민 주화와 부패방지법의 제정 등으로 정경유착에 의한 지대추구가 어려워지며, 기업 지배권 시장과 자산평가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과거에 기업 전속적인 것으로 간주 되던 자산의 시장거래 가능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경제환경이 바뀐다면 MB 곡 선은 좌하 방향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조직 재구축과 정보통신기 술의 발달에 힘입어 그룹 본부에서 다양한 업종에 참여하고 있는 계열사에 대한 통제비용이 감소하는 측면도 있지만 기업지배구조의 변화를 바탕으로 각 계열사 단위의 외부주주들이 계열사간 내부거래 등 통합경영에 반발하고 정부 또한 재벌 의 선단식 경영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감안하면 MC 곡선은 과 거에 비해 좌상방향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우리나라 상황은 종합적으로 볼 때 다각화를 통해 추가적인 이득을 얻기 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반면 지금의 다각화된 사업구조의 유지에 드는 한계비용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 2-4>는 시장지배력, 대리비용, 공동자원, 시장제도, 정부정책 등 다각화의 한계비용과 한계수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최근 우리나라의 상 황은 대체로 MB곡선은 좌하 방향으로 그리고 MC 곡선은 좌상 방향으로 이동시 키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림 2-4>는 이러한 환경변화가 적정 다각화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즉 MB0는 MB1으로, MC0는 MC1으로 이동하게 되면 적정 다각화의 수준은 MB1과 MC1이 서로 만나 는 D#에서 결정되며, 이에 따라 해당 기업은 D*-D# 만큼 탈다각화 해야하는 구조 조정의 과제를 안게 된다.

< 표 2-4> 요인별 환경변화와 다각화 적정수준에 미치는 영향

구 분 다각화 추진동기 최근의 여건변화 전 망

시장지배력 가설

복합력에 기초한 시장지배력 강화

- 지원성 내부거래(횡적보조) - 공정위의 지원성 내부거래 제재 강 화

- MB ↓ MC ↑

- 상호구매 - 시장개방, 경쟁심화 - MB ↓

- 다시장접촉 - 주주권 강화: 계열사 단위의 경영

책임 제고

- MB ↑

공동자원 가설

잉여자원의 자체 활용에 의한 지대추구 - 지식재산 등 기업 전속적 자산

의 시장거래 불완전

- 특허, 지적재산 증가

- 지적재산 기업회계 반영 노력, 거 래비용 감소

- 분사화↑

- MB ↓

- 범위의 경제 - 기술의 복합화, 융합화 산업간 경

계의 모호성 - MB ↑

대리비용 가설

적정 수준 이상의 과잉 다각화를 선호하는 경영자의 성향

- 주식 및 부채의 대리문제 - 경영투명성 제고, 적대적 M&A 허 용, 사외이사제 도입 등 지배구조 개선

- MB ↓ MC ↑ - 자유현금흐름(FCF) - 부채비율 200% 축소 부담으로

FCF 소진

- MB ↓

- 경영자 고용위험 회피 - 스톡옵션 계약 확산 - MB ↓

- 외형성장과 연계된 보수체계

제도적 요인

주어진 시장제도의 불완전성 극복, 거래비용 절감

- 내부자본시장 - 자본시장의 개방, 금융 개혁으로

외부자본시장 기능 점진적 개선

- MB ↓ (중장기)

- 내부노동시장 - 고용조정 요건 완화, 대량해고 경

험에 따른 경영자의 의식 변화

- MB ↓ (중장기) - 저신뢰 사회 ⇒ 소비자, 협력

업체, 금융기관 등 거래 상대 방에 대한 평판효과

- 계약, 거래의 보호제도 미흡, 저 신뢰 상태 지속

- MB →

- 재산권 보호제도 미흡 ⇒ control pyramid의 적극 활용

- 계열사별 외부주주의 견제 증가 - MC ↑

정책왜곡 요인

정부의 특혜적 산업정책 및 재량적 정책운용에 편승한 지대추구

- 로비력에 기초한 정경유착 - 부패방지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비 공식적인 제도(관행)의 경로의존성 때문에 단기간내의 획기적 변화 어 려움

- MB →

- 진입 및 퇴출규제 - 퇴출허용, 규제완화, 시장개방(수입 선다변화 해제)에 따른 경쟁심화

- MB ↓ - 재량적 정책 운용 및

time-inconsistency

- 정책운용 관행의 지속가능성 상존 - MB →

주 : MB는 다각화에 따른 한계수익을, MC는 다각화에 따른 한계비용을 의미.

문서에서 재벌의 다각화와 경제력집중 (페이지 3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