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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보다 독창성에 점수를 주자

문서에서 교육눈에 보이는 (페이지 8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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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핵심 성장동력을 발표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기존의 분야에 ‘기술’을 붙여 만든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 ST(우주항공기술), ET(환경공학기술) 등이 있습니다. 이미 2001년에 ‘6대 미래유망기술’로 선정된 이들 분야에는 CT(문화기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화와 기술이라는 이질적인 개념을 하나로 합쳐 낯선 모습을 보이는 이 단어는 199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을 지낸 원광연 교수가 주인공입니다. 인간컴퓨터상호작용(HCI)학회, 가 상 현 실 연 구 센 터 (VRRC), 과학예술포럼(SciArt Forum), 예술공학센터(ATEC), 청소년 문화기술체험센터(NaDa Center) 등이 모두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새로운 생각이라면 정답이 아니더라도 인정해 주어야만 창의성이 커집니다”

정답보다 독창성에

‘융합과학의 개척자’라 불리는 원광연 교수를 만나 융합적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법에 대해 질문해 보았습니다.

‘융합’은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다양한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자세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의 시선으로만 바라본다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하면서 명확하게 구분을 하려 듭니다. 과학 아니면 예술, 물리 아니면 화학, 문과 아니면 이과 하는 식이죠.

선진국은 ‘융합’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습니다. 다각적인 태도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지도층이나 연구자들도 융합적인 마인드를 이미 가지고 있죠.

외국의 학교 교과서도 분야별 융합을 토대로 문제를 던지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정부가 나서서 융합을 장려하는 상황입니다. 아직은 우리의 사회 시스템이 단조롭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나라 교육체계의 장점도 있겠지만 아직은 선진국의 사례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미국만 해도 교육방식과 교과목 구분 등 교육의 틀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수한 학생부터 낙제점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편차가 커서 문제라는 지적도 있지만, 비슷한 성적과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을 양산하는 우리의 교육체계를 재점검할 필요도 있습니다. 특히 융합에 기반한 자유로운 사고를 권장하는 교육철학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교수님은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고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하는 등 융합 분야의 선구자로 활동해 왔습니다. ‘융합’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모범적인 교육 사례로 우리나라를 지목하곤 합니다.

우리의 교육체계 중에서 어떠한 것을 장단점으로 꼽을 수 있을까요?

‘문화’라는 현상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분야는 많습니다. 미학, 인류학, 언어학, 문화사회학 등 인문사회과학의 대부분이 문화를 소재로 삼습니다. 그러나 과학이나 공학의 측면에서 문화를 다루겠다는 관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지금의 문화는 과학기술과 결합해서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만 해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소통 본능이 정보통신기술(IT)과 만나면서 사이버 스페이스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사회학이나 신문방송학에서 커뮤니케이션 행동을 분석했겠지만 요즘은 전산학에서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소셜 네트워크를 해석합니다.

정치학이나 경제학도 수학과 통계를 도입한 덕분에 분석의 폭이 넓어지고 새로운 관점이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기존의 학문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겠지만 수학과 과학과 공학 없이 문화를 해석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질 것입니다. ‘융합 마인드’를 가져야만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창의성이 발현되려면 기초실력도 튼튼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돌아보며 깊이 생각할 여유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능력의 120퍼센트를 발휘하도록 꽉 짜여진 커리큘럼으로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도 기르기도 힘들겠죠.

가용 시간의 80퍼센트만 공부를 시키고 20퍼센트 정도는 여유시간으로 주어야 합니다. 어렵다면 5퍼센트만이라도 여유 시간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문화기술대학원은 지난 2005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15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문화기술’이 무엇인지 어떠한 융합을 시도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창의성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닌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라고 말씀한 바 있습니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교사들은 어떤 시각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여유가 생기면 학생들은 무조건적으로 따라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 박자 쉬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할까?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까?’ 이렇게 고민하면서 서로 다른 관점을 키운 학생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만큼 생각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요.

교사가 어느 과목을 가르치든 교과서에 담긴 내용보다 더 큰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과목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입시가 아니라면 장차 어디에 쓰일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수학의 원리와 풀이방법을 가르치기에 앞서서 왜 이러한 방식을 고안해야 했는지, 나중에 어느 곳에 필요한지 등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면 학생들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윤리과목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면 학생들이 지루해하기 쉽지만 지적재산권에 대한 토론을 덧붙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아이디어도 노동의 결과로 인정해야 할까’를 주제로 의견을 나누다 보면 학생들도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여러 분야를 통합해 생각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현실의 잣대에 맞추어 평가하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교사나 어른들이 맞다 틀리다 평가하려 하면 아이들은 더 이상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정답이 아니더라도 또한 틀린 답이더라도 새롭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히 인정해주는 가치관을 심어준다면 창의성은 저절로 커지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에게서 자발성과 적극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생이 “1 더하기 1은 3입니다” 하고 대답했다면 학교에서는 실수한 것으로 간주하고 점수를 깎겠죠. 그러나 다른 심오한 이유가 담겼을 수도 있습니다. 교사는

“왜 그렇게 생각했니? 어떤 생각으로 3이라는 답을 낸 거니?” 하고 친절하게 물어보고 다시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숙제를 낼 때도 평가를 할 때도 단순히 맞고 틀림의 차원을 넘어서서 의견을 교환해야 합니다. 저도 대학원 학생들에게 ‘생각이 필요한 숙제’를 자주 내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무한대의 개념을 시나 그림이나 음악 등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라는 식이죠. 표현을 위해서는 우선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대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느라 수학 공부도 저절로 열심히 하게 됩니다.

다만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개념을 정확히 사용했는가, 독창성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심오한 수학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가, 타인과의 공감대를 얼마나 크게 형성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죠.

창의적인 교육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교사가 학생보다 더 창의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어린 학생들보다 창의적인 두뇌를 가지는 것은 어렵죠. 교사는 맞는 답을 가르쳐 주려는 태도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군요.

그렇다면 교사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한국과학창의재단 초청으로 강연을 했을 때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서 매번 다른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융합적 사고력을 통해 문제해결력을 기른다는 융합인재교육(STEAM)의 목표와도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학생들에게

‘융합 마인드’를 심어 주려면 교사가 어떠한 능력을 갖춰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교사 스스로가 창의적이 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의 창의성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큰 주제를 던져주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과학자나 예술가들이 어린 시절 큰 자극을 받은 경험을 이야기할 때도 공통점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문제풀이 기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닌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는 학교 선생님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이죠.

중요한 것은 지식과 해결책을 직접 전달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정답을 가르치는 훌륭한 강의는 외국 대학의 온라인 자료를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일선의 교사들은 수업콘텐츠를 기획하는 입장으로 마음가짐을 바꾸어야 합니다. 왜 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가, 이 시간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얼마의 자극을 주겠는가, 어떠한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일방적인 강의 대신에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친절하게 피드백을 주며 정확하게 평가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물론 강의보다 기획이 훨씬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가 물어보는 질문은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잘 모르겠으니 우리 한 번 같이 답을 찾아보자.” 선생님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또 다 할 수도 없습니다. 융합교육은 기존의 교육방식과는 많이 다릅니다. 교사는 기획자의 역할, 길을 찾아주는 역할, 동기부여자의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융합수업은 ‘어떻게 가르치는가’보다는 ‘어떻게 연출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기존의 수업방식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그래서도 안됩니다. 다만 단순한 문제풀이의 범위에서 벗어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의미를 일깨워줘야 말씀한 부분을 실제 교육콘텐츠로 만들려면 교사의 부담이 커질 것 같습니다.

각기 다른 학생들의 아이디어와 반응을 정확히 평가하고 그에 적합한 수업내용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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