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장애인 가족 상담 지원 현실화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183-186)

장애 자녀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진단받는 순간까지 여러 단계의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한다. Perske(1973)는 자녀의 장애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불확실성, 충격, 부정, 죄의식, 분노, 우울을 경험하는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인다고 했다. 어머니 여성의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양육스트레스로서(윤영희, 2017), 돌봄 부담으로 인한 우울이 삶의 질에 유의미한 부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부경희, 2021). 어머니 여성이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은 가족 기능 전체에 영향을 미쳐 비장애인 가족에 비해 낮은 가족 기능을 갖게 된다(석말숙, 2013).

그러나 아이가 장애로 진단을 받는 과정에서 어머니 등 양육자와 가족은 상담을 비롯한 필요한 지원을 받기 어렵다. 성인기에 접어든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를 대상으로 상담지원에 대한 생애주기별 요구에 대해 연구한 김경민(2019)에 따르면, 상담지원 요구는 크게 자녀 양육에 필요한 정보 획득 요구와 어머니의 양육 스트레스와 심리적 어려움에 도움을 받기 위한 치유 목적의 상담 지원 요구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연구 참여자들은 두 영역 모두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보고하였다. 부모의 경험을 중심으로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어려움에 관한 질적 연구를 실시한 한연주(2019) 역시 장애 조기발견의 지연, 공식적 진단 및 통합적 개입체계의 부재,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부족, 이용할 시설의 부족 등을 공통적인 어려움으로 보고하였다.

이는 본 연구 참여자의 내러티브와도 일치하는데, 복지현은 자녀의 늦은 발달을 눈치채기는 하였으나, 자녀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소아정신과에 방문하였고, 장애 진단은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 받을 수 있었다.

이수정은 자녀의 발달지연을 알아차리고 39개월에 소아정신과에 방문하여 지적장애로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으나 초등학교 2학년 때 공식적인 장애 진단을 받기 전까지 어떠한 상담 지원도 받은 적이 없다. 정은정 역시 26개월에 자폐 진단을 받았으나 개인적으로 치료실을 수소문해 찾아가 치료수업을 받거나 교육기관에서 만난 학부모들을 통해 발달장애아의 교육 정보를 획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장애 자녀 양육을 위한 상담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자녀가 장애로 진단받은 가정에 대한 상담지원은 국내법에 명시되어 있는 장애인 가족의 권리이다. 국내법은 교육과 복지 영역에 존재하는데,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제28조에서는 교육감이 특수교육 대상자와 그 가족에 대하여 가족상담, 부모교육 등 가족지원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장애아동복지지원법」제23조에서는 가족이 장애아동에게 적합한 양육 방법을 습득하고 가족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가족상담을 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두 법 외에도 발달장애인을 위해서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어 있다.

「발달장애인법」제31조에서는 발달장애인과 동거하는 보호자에게 전문적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고, 시행규칙에서 심리상담 서비스를 개인 심리상담, 부부 심리상담 또는 가족 심리상담, 동료 상담 등으로 구체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제32조 2항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발달장애인의 형제·자매인 비장애 아동 및 청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정서발달과 심리적 부담 해소 등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발달장애인 부모에게 심리·정서적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보건복지부의

‘발달장애인 부모상담지원 사업’으로서 정책적으로 구현되었다(김나경, 최지혜, 박지연, 2021). 그러나 ‘발달장애인 부모상담지원사업 장애통계연보’에 의하면 상담은 주로 어머니 등 주양육자를 대상으로 양육 스트레스 등 부정적 정서를 다루는 등 자녀 교육 정보 및 양육법 개입을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의 심리적인 문제의 개입 역시 양육 스트레스에 대해 심리내적 접근 외의 사회적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김희신, 2018).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는 장애자녀 돌봄 노동, 수면부족과 같은 신체적 부담감 및 사회적 활동의 제한(이복실, 박주영, 이율희, 2013) 등으로 비장애 자녀 어머니뿐 아니라 다른 장애 영역의 어머니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양육 스트레스와 우울을 경험한다(최해경, 2010). 따라서 심심치 않게 언론 보도에 오르내리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양육자의 극단적인 선택은 우울의 결과일 수 있다. 본 연구 참여자인 이수정과 정은정은 ‘죽고 싶었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였는데, 그 당시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과 같은 고립감을 느꼈으며, 누구와도 만나기 싫은 극도의 우울감을 경험하였다고 하였다. 이수정은 자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커녕 멸시하며 차별과 배제를 자행하는 초등학교 담임교사를 만나 아이가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으로 자기 표현을 하면서 일견 ‘퇴행’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를 절망적인 순간으로 기억하였다. 또한 자녀가 성인이 된 이후에 별안간 발생한 불안증으로 복지관이나 직업현장 등 사회적으로 소속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자녀에게 삶이

‘결박’된 순간에 죽고 싶었다고 하였다. 정은정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통합학급 담임이 통합을 거부하며 자녀를 개별반에 머무르라는 결정을 하였을 때

‘세상에는 우리가 설 곳이 없구나’를 느끼며 ‘그냥 아이랑 나랑 죽어버릴까’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였다. 즉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여성의 양육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우울감은 심리 내적인 요인이라기보다 장애인에 대한 낙인 및 사회의 차별과 배제 및 사회적 지지망의 미비와 더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장애 자녀 어머니들이 상담 경험에서 자신들의 특수성을 상담자가 이해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족을 나타냈다고 보고한 선행연구(김희신, 2018)의 결과와도 일치한다. 이 연구에서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스트레스와 대인관계, 정서적 어려움에 대한 심리적인 도움을 원하면서도, 자녀들의 문제가 떠오를 때면 자녀 문제를 먼저 다루어 자녀 교육과 양육에 대한 정보를 알기 원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자녀만의 고유한 특성을 상담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하나의 진단명으로 일반화되는 것을 고통스러워하였으며 현실적인 복지서비스를 원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심리적인 문제의 개입 및 치유를 위한 상담에서도 상담자는 장애 자녀를 둔 양육자의 사회적 정서적 고립을 막기 위한 사회적 정서적 지지망의 구축과 가동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양육스트레스의 경감을 위해서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등의 도입을 통해 돌봄을 분담할 수 있는 공적 체계가 확보되는 것이 중요하다. 2017년 장애인 실태 조사에 의하면,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은 부모와 가족이 82%에 달하며, 활동지원사 등의 공적 돌봄 서비스 제공자는 14%에 불과한 실정이므로 돌봄을 위한 공적체계의 확립은 절실한 문제다.

한편 장애인 가족 지원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간의 장애 수용의 편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자녀의 장애를 수용한다는 것은 장애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단점 외에 가진 능력을 부족하나마 인정하고 자녀를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장애 수용 정도는 가족 내 돌봄을 전담하는 어머니와 다른 구성원간의 편차가 크다. 이 편차는 자녀와 긴밀하게 접촉하여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양육자와 그렇지 않은 구성원간의 장애에 대한 지식의 불균형에서 일차적으로 기인한다. 어머니는 모든 결정을 외롭게 혼자하였고, 장애자녀 교육의 모든 선택의

책임과 의무가 지워져 있고,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은 양육의 주체인 엄마에게 책임과 압력을 지우며, 이러한 불균형을 조정하는 정보 제공이나 절차를 안내하는 체계는 전무하다(임은정, 주정민 2021). 본 연구에서 복지현은 배우자가 장애 자녀를 무시하고 버릇을 잡는다며 때리는 일을 수시로 겪었다. 조부모는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버릇’을 잡는 행동을 교육적이라고 착각하였다. 이수정은 장애가 있는 아이 때문에 자신의 삶이 불행해졌다는 배우자에게 절망하였다.

정은정은 어머니에게 ‘아이를 시설에 보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남편은 아이의 교육에 관해 전혀 소통하지 않았다. 가족 내 장애 수용의 편차는 가족 기능의 저하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장애인 가족 지원은 자녀의 장애에 대한 부모의 태도와 지식의 불균형을 장애 진단 초기부터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 적극적으로 가족 전체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183-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