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자본자유화와 외환위기

문서에서 한국의 외환위기 10 년 ( 하 ) (페이지 103-110)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태국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995년 태국은 금융 허브를 창설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본자유화를 추 진했고, 역외금융시장을 개방했다. 한국보다도 훨씬 앞서 가는 자본 자유화를 추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개방화 정책의 결과 외국자본 이 쏟아져 들어와 경제 버블이 만들어졌다. 단기적으로 자본이 유입 되는 상황에서 경상수지 적자는 큰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경상수 지 적자를 상회하는 자본수지 흑자는 환율강세 요인으로 작용하였 다. 경제주체들이 고평가된 환율에 대해 일종의 착시현상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었 다. 결국 투기세력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상업은행마저 투기세력과 동조하여 위기를 심화시켰다. 이는 이 시기 이 지역에 대한 국제유 동성 공급이 갑자기 회수된 규모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동아시아 5개국(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에 대한 민간부문의 자금 유출입을 보면, 1996년 750억 달 러 순유입이 1997년에는 132억 달러 순유출을 보였고, 1998년에 도 342억 달러의 순유출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급격한 자금흐름의 변화를 주도한 주체는 국제 상업은행들로, 1996년 이 지역에 352억

1997 1998 421

104 한국의 외환위기 10년(하): 전개과정과 추후 과제

회수해 나갔다.4) 외환위기의 후 폭풍으로 지속된 국제유동성의 동 아시아 탈출 러시는 1998년 동아시아 국가들이 극심한 경기침체를 경험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국제유동성의 변화무쌍한 변동 성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배울 수 있다. 즉 아시아 의 신흥시장국가와 같이 자본이 부족한 국가들이 순차적인 자본자 유화를 통해 부족한 자본을 해외로부터 조달하여 생산적인 부문에 투자하고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교과서적인 자본자유화의 장 점도 있지만, 자본자유화는 다른 한편으로 펀더멘털을 반영하지 않 는 센티멘털의 변화로 인해 자기실현적인 기대에 따른 급격한 자본 이동을 가능하게 하여 Boom-Bust Cycle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 할 수 있다.5)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전후로 한 자본유출입 현황은 <표 1>에 정리되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적자가 231억 달러로 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국제수지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발생 당해 연도에도 경상수지 적자는 83억 달러에 달하였고,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필요한 외환이 국제금융 시장으로부터 원활히 조달되지 못한 결과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기

4)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자본이동의 흐름에 관한 연구로 본인의 졸저 Understanding the Determinants of Capital Flows: An Empirical Investigation(2002)을 참조. 한편 자본자유화의 거시경제적 효과에 관한 실증분석으로 Kim, Kim, and Wang(2004) 를 참조.

5) 자본이동이 Boom-Bust Cycle을 촉발하는 요인인지 여부에 대한 실증분석으로 Kim, Kim, and Wang(2005)은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Tornell and Westermann(2002)39개 중진국을 대상으로 하였다. 자본이동의 자유화가 거시 경제적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원인은 선진국과 달리 신흥시장국가의 자본시장이 불완전하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서는 Obstefeld(2004), Mishkin (2006) 등을 참조 하기 바란다.

구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 만 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는 흑자로 전환되었다. 특히 1998년에는 경상 수지 흑자폭이 무려 404억 달러에 달하게 되는데, 이는 수출이 감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경기침체로 인해 수입이 급격히 감소한 결과였다. 그러나 1999년 이후 수출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기록하였 고, 수입도 회복세를 보이면서 경상수지는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흑 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게 된 가 장 큰 이유는 환율이 대폭적으로 조정되어 우리나라 수출품의 경쟁 력이 강화된 반면 수입품 가격의 상승과 국내 경기의 회복세 지연으 로 수입증가세가 비교적 완만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 들어 서비스 수지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크게 흔 들릴 우려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관광, 유학 등 해외 서 비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반면에 국내 서비스산업의 경 쟁력은 크게 향상되지 못하고 있어 서비스 수지의 개선이 획기적으 로 마련되지 못할 경우 경상수지 적자기조가 정착될 우려가 있다.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다소 흔들리고는 있으나 1998년 이후 2006년까지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면서 외환보유고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자본수지의 측면에서도 외환위기 직후인 1998 년에 32억 달러의 자본수지 적자를 기록한 이후 2001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흑자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수지의 움직 임을 예의 주시하게 되면 과거와는 달리 경상수지 적자 또는 흑자를 보전하기 위한 성격의 자본흐름(accommodative capital flows)이 아니라 경상수지의 상황과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자본흐름(autonomous capita l flows)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6) 이와 같이 경상수지 흑자기

106 한국의 외환위기 10년(하): 전개과정과 추후 과제

이 크게 확대됨에 따라 외환위기 발생 직후 몇 년간은 직접투자와 증권투자가 크게 증가하여 자본수지도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 러나 2005년 이후 증권투자 수지가 오히려 적자를 기록하고 있음에 도 불구하고 해외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이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는 국내기업의 투자자금 소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업을 비롯 한 국내 수출업체의 선물환 매도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예금은행이 해외차입의 형태로 환리스크 관리에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 벌 달러 약세 기대에 따른 투기적 수요, 국내외 금리차와 외환 스왑 레이트간 괴리 발생 등으로 재정거래 수요가 증가한 것도 외화차입 이 증가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최근 우리 정부는 원/달러 환율이 여타 통화 대비 과도하게 절상 됨에 따라 내국인의 해외 부동산 취득 및 증권투자를 확대하여 자본 수지의 적자를 유도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표 2>

를 보면 2000년 말을 기준으로 할 때 원화는 22.4% 절상된 반면 엔화 는 4.5% 절하되었다. 2002년 초를 기준으로 할 경우 원화는 28.4%

절상된 반면 엔화는 11.6% 절상되었다. 2005년 말을 기준으로 할 경우 원화는 7.8%, 엔화는 불과 1.1% 절상되었다. 이와 같이 원화의 절상폭이 큰 이유는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자본수지 도 동시에 흑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의경우 경상 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저리의 일본자금을 차입하려는 엔캐리트레 이드가 증대되었고, 일본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도 증가하여 자본수지가 2005년 이후 큰 폭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6)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본인의 졸저 Understanding the Determinants of Capital Flows: An Empirical Investigation(2002)을 참조.

❙표 1. 우리나라 국제수지

(단위: 백만 달러)

구 분 1996 1997 1998 1999 2000 2 005 2006

1. 경상수지 -23,120 -8,287 40,371 24,522 12,251 14,981 6,093 A. 상품 및 서비스 수지 -21,257 -6,456 42,689 27,812 14,106 19,025 10,451 1. 상품수지 -15,077 -3,256 41,665 28,463 16,954 32,683 29,214 수출(FOB) 130,038 138,731 132,251 145,375 176,221 288,971 331,845 수입(FOB) 145,115 141,986 90,586 116,912 159,267 256,288 302,631 2. 서비스 수지 -6,179 -3,200 1,024 -651 -2,848 -13,658 -18,763 수입 23,412 26,301 25,565 26,529 30,534 45,129 51,874 지급 29,592 29,502 24,541 27,180 33,381 58,788 70,637 B. 소득수지 -1,815 -2,454 -5,638 -5,159 -2,421 -1,563 -539 C. 경상이전수지 -49 623 3,320 1,869 566 -2,482 -3,820 2. 자본수지 23,327 1,314 -3,197 2,040 12,110 4,757 18,619 A. 투자수지 23,924 1,922 -3,368 2,430 12,725 7,097 21,652 1. 직접투자수지 -2,345 -1,605 673 5,136 4,285 2,010 -3,484 2. 증권투자수지 15,185 14,295 -1,878 8,676 11,998 -1,728 -22,544 3. 기타투자수지 11,085 -10,768 -2,162 -11,382 -3,557 6,815 47,679 B. 기타자본수지 -598 -608 171 -389 -615 -2,340 -3,033 3. 준비자산증(-)감 -1,389 11,922 -30,975 -22,983 -23,771 -19,806 -22,112 4. 오차 및 누락 1,182 -4,949 -6,200 -3,579 -590 68 -2,600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

❙표 2. Dollar Index 및 주요국 통화 절상 률 비교(2007년 3월 기준)

구 분 Dollar

Index 한국 유로 일본 중국 태국 말레

이시아 인도 네시아 2000년 말 대비 -13.2 22.4 32.2 -4.5 6.5 24.5 8.1 2.7 2002년 초 대비 -17.2 28.4 33.2 11.6 6.5 25.9 8.1 11.7 2005년 말 대비 -4.4 7.8 10.5 1.1 4.2 20.6 7.6 6.9 : Dollar Index는 한국이 포함된 board 기준, (-)는 절하를 의미.

한국의 경우 OECD 가입과정에서 자본자유화에 유의한다고 하면 서도 국내 금융기관의 단기 대외지불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108 한국의 외환위기 10년(하): 전개과정과 추후 과제

점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점은 국내 금융감독기능의 취 약성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은행 건전성의 가장 중요한 지표인 BIS 자본비율의 경우 제도가 시행된 1992년 이후 한 번도 국제기준인 8% 이하로 하락한 일이 없었으며, 1996년 말에도 9.14%의 양호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건전성 지표인 무수익자산은 1990년대 초반 전체 자산의 7%대로 다소 높은 수준이 었으나 계속 축소되는 추세를 보여 1996년 말에는 4%에 근접한 것 으로 발표되고 있었다. 결국 국내 금융기관이 수치상 건전성을 유지 하였다고 할지라도 실제로는 엄격한 자산분류기준이 적용되지 못한 느슨한 금융감독체제가 외환유동성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우 를 범했던 것이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국가에 적용되는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단순히 외환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거시경제 긴축정책에 한 정되고 있지 않다. 금융부문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금융개혁과 같은 제도개혁 과제가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포함되고 있는 것은 일견 바 람직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금융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본 및 금융부문의 자유화가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포 함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한국의 경 험에 비추어 볼 때 불완전한 자본자유화에도 불구하고 금융부문의 건전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없는 경우에 과도한 단기차입으로 인한 외환유동성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부문의 건전성 확보 를 위한 금융개혁의 필요성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중요한 항목으 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자유화가 금융부문의 건전성 을 제고시켜 줄 것인지 여부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이전 제1세대 워싱턴 컨센서스는 철저한 시장우월주의 에 기초하여 자본시장 개방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장경 쟁을 제고하여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믿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수차례에 걸친 외환⋅금융위기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제2세대 워싱턴 컨센서스 또는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가 대두되기 에 이른다. 즉 자본자유화가 무조건적으로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아 니라 개도국들이 자본자유화의 이익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는 내용으로 수정된 입장을 개진하게 된다. 이와 같은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는 결국 시장원리의 원활한 작동 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진화된 것이다. 개도국의 경우 무분별한 자본자유화를 추종하게 되면 자본시장의 폭과 깊이가 없어 외국자본의 영향력이 매우 강해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외자의 유출입에 따라 경기변동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냄비 경제의 특성이 고착화될 우려가 있다. 문제는 개방이 먼저냐 개혁이 먼저냐의 순서이고, 자본시장의 개방 없이 자본시장의 폭과 깊이가 개선될 수 있느냐는 논쟁으로 귀결된다. 스티글리츠는 아시아 국가 들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규제했거나, 개도국 은행들이 적정자 본요건을 현격하게 증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면 금융위기를 충분히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7)

7) Stiglitz, Joseph E., Capital-market liberalization, globalization, and the IMF, Oxford

문서에서 한국의 외환위기 10 년 ( 하 ) (페이지 103-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