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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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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한국의 외환위기 10년(하): 전개과정과 추후 과제

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식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일류국가 수 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공보처, 「세계화 청사진」, p.4).

이와 같이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는 지난 시대의 제도와 관행을 새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합리적으로 고쳐나가는 개혁작업의 일환 으로 성격 규정하고 있다. 즉 세계화가 국정운영의 철학이자 방향으 로 자리 잡게 된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국경이라는 장벽이 제거 되어 가는 개방의 불가피성을 시대적 흐름으로 특징짓고, 세계가 하 나가 되는 지구촌 경제에서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해야 한다는 시대 적 과제를 국가발전전략으로 제시하게 된다. 3단계로 제시된 세계화 목표를 살펴보면, 제1단계인 2000년에 세계경제 10강 진입, 1인당

GNP 2만 달러를 달성하고 선진경제구조에 진입한다는 도전적 목표

가 제시되고 있다. 제2단계인 2010년에는 정보사회기반을 완결하여 선진산업구조를 확립하고, 세계경제 8강 진입, 1인당 GNP 2만5,000 달러라는 목표가 제시되고 있다. 제3단계인 2020년에는 한국이 세 계경영의 중심국이 되고, 세계경제 7강 진입, 1인당 GNP 3만 달러 의 목표가 제시되고 있다.

1995년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처음으로 초과하게 되는데, 2000 년에 2만 달러의 목표가 달성되려면 연평균 11.9%의 성장률을 기록 해야 한다. 물론 1인당 소득은 실질 경제성장률과 달리 환율이 빠르 게 절상되면 단기간에도 목표달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1997년 말 한 국은 외환위기를 경험하게 되고 그 결과 1998년 1인당 소득은 7,000 달러대로 추락하게 된다. 2000년에 이르러서야 1995년에 밑도는 수 준으로 1만 달러대에 복귀하게 된다. 즉 김영삼 정부가 야심에 찬 목표치를 제시하였지만 1단계 세계화는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게 된 다. 오히려 특기할 점은 2000년에 2만 달러의 소득 달성 이후 2010

년에 2만5,000 달러의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불과 2.3%면 충분하다. 2020년의 목표치 달성을 위해서는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1.8%면 된다. 따라서 공보처의 자료에 따르자면 2000년까지 세계화 목표는 지나칠 정도로 높게 설정된 반면에 이후 2010년, 2020년의 목표는 지나칠 정도로 낮게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러한 세계화 목표달성을 위해 김영삼 정부가 내세운 세 계화 추진전략을 보면 매우 추상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목표를 높게 설정하였지만 수단의 빈곤으로 ‘어떻게’ 세계화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추진전략이 매우 취약하였다. 우선 수단별 전 략은 법⋅제도, 인적자원, 집행운영, 그리고 의식관행 등 네 가지 부 문의 세계화를 추진하도록 되어 있다. 국내의 법과 제도를 세계기준 에 맞게 개혁하여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도록 한다는 것 이다. 또한 21세기 정보화사회에 적합한 인적자원을 양성하여 세계 경쟁의 전략변수로 활용하겠다는 추진방향이 제시된다. 한편 주체 별 전략을 보면 일반시민⋅가정⋅기업⋅정부가 모두 동시에 변해야 하므로 개인은 세계시민의식을 정립하고 국제정보 습득과 외국어 훈련, 해외연수 확대 등을 통해 자질을 함양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 다. 기업은 경영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한편, 시장개방의 확대에 대비하여 생산성 및 유연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세계화가 추진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기업은 정부 의존에서 국내 외 기업 간 협업을 확대하고 기술개발에도 적극 힘써야 한다고 함으 로써 세계화 추세에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작지만 효율적인 조직으로 개편하는 한편, 민간의 자율성을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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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추진전략이 구체적인 실행력이 빈약한 것 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정부의 역할에 있어서 분명히 주목해야 할 점 이 있다. 즉 20세기를 근대화 시대, 21세기를 세계화 시대로 성격 규정한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전략에 있어 정부는 과거 국가주도형 발전국가에서 탈바꿈하여 민간의 자율을 최대한 존중하는 탈규제와, 경제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탈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 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전략은 이념적 성향의 측면에서 진보적 학자들의 개념 을 원용하자면 이미 신자유주의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외환위기의 발생 원인이 어설프게 추진된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전략에 기인하는 것인가라는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변 환과정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1995년 세계무

역기구(WTO)의 출범으로 범세계적인 다자간 교역규범이 통용되기

에 이르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 FTA), 유럽연합( EU) 등 배타적 광역 경제블록이 형성되는 흐름 속에 김영삼 정부는 조심스럽게 자유무

역협정(FTA)의 추진 필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96년 대

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간한 「21세기 세계 일류국가를 향한 대외경 제전략」 보고서를 보면 지역주의에 대한 능동적 대응은 매우 미흡 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즉 무역자유화의 측면에서 보면 김영삼 정 부는 우루과이 라운드 종결 이후 출범한 WTO 체제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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