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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결정의 모순 제기

Ⅳ. 생태여성주의의 의의

3) 자기결정의 모순 제기

여성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구 중 하나는 여성의 신체와 삶에 대한 자율성이다.

이것은 다양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운동을 통해 주장되었다. 그러나 여 성의 자율성이란 개념은 유토피아적 요소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여성 의 몸은 남성들에 점거된 소유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들이 자기 결정권이란 개념을 사용하려면 이 개념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 개념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여성들에게 자기결정권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둘째, 여성의 자기결정권 운동이 여성의 해방으로 이어졌는가이다. 우선 서구의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은 국 제적 인구조절기구의 인구를 줄이기 위한 개입에 대해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정 치적 지적으로 거리를 둘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여성들에게 이러한 전략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아크떼르(Farida Akhter)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이해하기 힘든 것은 여성의 생식권이나 자기 신체에 대한 통제와 같은 개념이 대다수 방글라데시 여성들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가난 과 저개발의 과정은 그들의 삶을 만성적 굶주림으로 인한 아사 직전 상태까지 몰고 갔다. 생존의 본능이 해방을 향한 충동을 압도하였다. 난관결찰 수술이 이루어지는 방글라데시의 단산캠프와 병원에서 여성들은 생식의 책무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개의 경우 유인책으로 제공되는 돈과 ‘사리’라는 옷을 얻기 위해 자신의 신체에 대한 훼손을 받아들인다. 돈과 사리는 식량과 교환할 수 있으므로 여 성의 생존능력에 보탬이 된다. 어디서도 여성의 권리는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134)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방글라데시 사례와 같이 제3세계 여성들에겐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방글라데시와 같은 나라에 대한 국제자본주의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억압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신체에 대한 통제’ 혹은 ‘여성을 위한 생식권’에 대한 요구들을 부르짖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근대복지국

134) 미즈, 마리아 외, 에코페미니즘, 273쪽 재인용.

가의 안전망이 없는 ‘제3세계’ 여성들에겐 개별적 자기결정의 권리보다 공동체의 보호망이 필요하다. 따라서 제3세계의 여성들에게 자기결정권 투쟁은 현실적으로 부적절하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운동과 관련하여 볼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가 새로운 투자 영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여기에 미국의 몇몇 여성주의자들이 요 구한 ‘낙태권’이 ‘대안적 생식선택권’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앤드류스(Lori B. Andrews)는 1990년대의 생식법률 편람에서 ‘생식대안’, ‘생식자율성’, ‘생식 선택권’ 등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자기결정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이 개념들은 기업과 의사들에 의해 여성의 생식력과 육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사용된다.135)

앤드류스는 자유주의적 입장과 생명권운동(Right-to-Life Movement) 주장 사 이에 있다. 그녀는 인간의 신체, 특히 생식기관들이 재산이라고 주장한다. 곧 ‘생 식자율성’이란 여성의 몸을 나누어 팔거나 임대하는 등의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생명권운동은 태아가 법률적인 의미에서 완전한 인간이며 임신한 여성의 임의적 간섭행위로부터 법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어느 입장에서든 여성의 생식기능에 대한 정부의 관리가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를 지 배하는 것은 시장경제체제, 즉 자본축적을 위해 모든 사물과 생명체들을 상품화 시키려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가져왔던 자본주의 체제이다.136) 앤드류스가 주장 하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인간을 팔 수 있는 부분으로 계속해 서 나누다보면 궁극적으로 판매를 하는 주체가 사라지게 된다. 즉, 자기결정권이 있어야할 주체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한 자기결정권의 모순은 여성의 생식권을 위한 ‘생식권에 관한 지구적 네 트워크’의 주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생식과 성의 문제를 법률적인 문 제로 바꾸어 놓았다. 생식권은 출산을 장려하는 생식기술뿐만 아니라 출산을 억 제하는 생식기술에 의해서도 증진될 것으로 이해된다.137)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여성들은 자기결정의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은 새로운

135) 미즈, 마리아 외, 위의 책, 255쪽.

136) 미즈, 마리아 외, 위의 책, 267쪽.

137) 미즈, 마리아 외, 위의 책, 274쪽.

생식기술에 반대한다면 낙태도 반대해야 하는 것이 된다. 반대로 여성들이 낙태 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한다면 ‘생식대안’을 택하기로 결정한 여성들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자기결정권은 여성주의자들이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남녀관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주장되었으나 생식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앤드류스와 같은 전문가들은 자본의 우위에 서있는 자들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여성의 자 기결정권을 바꿔 놓았다. 자기결정권이 여성들의 생식잠재력으로부터 ‘해방’이나 수동적인 여성의 본성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문제로 바뀌게 되면, 남성들은 성 적 접촉의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진다. 게다가 여성들은 생식기 술에 의존해야 더 안전한 피임이나 출산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미즈 (Maria Mies)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여성들은 몇 가지 경구피임약, 나선형 장치, 자궁 내 삽입기구, 페서리, 낙태 사이 에서 ‘자기결정하는’ 선택권을 갖는다. ‘타이드(Tide)’와 ‘올(All)’이란 제품 중에서 선 택할 수 있다. 또한 ‘제3세계’에서의 인구조절정책은 점점 더 ‘사회적 마케팅’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여기서 여성들은 분홍 초록 황금색 알약 중에서 선택할 권리를 허용 받음으로써 ‘자기결정’과 ‘선택의 자유’에 대한 환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여성들은 여성 신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피임도구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처럼 자기결정이란 실제로는 ‘슈퍼마켓에서 선택할 자유’로 축소되었다.138)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동조하는 많은 전문가들은 여성주의자들이 여성해방을 위해 투쟁해온 자기결정권을 자본의 이익을 위한 상술로 바꿔놓고 말았다. 결국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이란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는 정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여성주의자들은 자기결정권이란 개념을 단순하게 사용해서 는 안 된다.

여성들은 ‘자기결정권’에 대한 본질이 왜곡되지 않도록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숨은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또한 기술적 가부장제가 여성의 몸을 생명 공학산업의 원료로 사용하도록 관조해서도 안 된다. 여성들은 기술적 가부장제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무엇보다 어머니세대와

138) 미즈, 마리아 외, 위의 책, 283쪽.

의 친밀한 관계, 육체로부터 초월하는 삶이 아닌 자신과의 내적인 연결과 자연과 의 연결을 통해 여성주의가 비판해온 현실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