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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태여성주의

Ⅲ. 생태여성주의에서 본 생태철학

2) 새로운 생태여성주의

초기 여성주의 연구는 기술과학이 가부장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다 름’의 정치학에 관심을 두고 있다. 와츠맨(Judy Wajcman)은 사회학적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인종, 나이, 계급, 역사, 민족에 따라 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모든 문화 안에서 성 차이는 사회조직과 기본 적인 개인의 정체성을 이룬다.110)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오늘날 자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인위적 개 입이 된 자연문화이며, 또한 과학의 담론에는 남성성이 비의존적이고 사심없는 진실 말하기의 본질인 것처럼 보이게 되어서 사회적 성별의 문제가 보이지 않게

109) Plumwood, Val, Feminism and Mastery of Nature, London:Routledge, 1993, 36-37쪽.

110) 와츠맨, 주디, 페미니즘과 기술, 조주현 옮김, 당대, 2001, 39쪽.

되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과학에는 ‘강한 객관성, 즉 인간평등의 프로젝트에 참 여한 객관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111) 또한 생명공학의 발전함에 따라서 기술 과학(technoscience)이 갖고 있는 인간과 사물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에 대 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앙코마우스TM는 생쥐이지만 인간의 암 정복을 위해 암 유전자를 이식받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연구재료로서 맞춤제작되어 팔리므로 유기체와 상품간의 경계를 모호 하게 만들고 있고, 유전자는 유전공학자들이 생명이나 유전자를 조작, 이식, 복제하 면서 마치 사물이나 상품처럼 이용하고 있으므로 생명과 사물간의 경계선을 위반하 는 실례가 되고 있다.112)

그녀는 오늘날 세계가 여성인간, 앙코마우스TM처럼 저작권을 상징하는 ⓒ를 위첨자로 첨가시킴으로 상품으로 변형시키거나 인간을 비생물적인 유전자로 환 원하여 상품화하는 세계임을 폭로하고 있다. 이런 기술과학시대는 유전자가 이식 된 유기체들을 넘어서 잡종을 만들어내었다. 분자생물학과 생명공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을 조작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간이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은 심각한 윤리 문제가 따를 뿐만 아니라 생태계와 인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미 우생학적 선택과 제거는 복지의 시혜적 차원에서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술과학은 행위자로서 막대한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정치 경제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지구적 자본주의 사회는 과학과 기술이 제기하는 복합적인 정치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해러웨이는 이러한 기술과학시대의 사이버문화는 권력과 부의 이동, 사회적 불평등 등의 정치경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녀는 사이보그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인간과 기계가 떨어져서 살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유기체와 기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본 다.113) 더욱이 기술과학은 인간을 비생물적인 유전자로 환원하며 생명체까지 상 품화함으로서 인간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성이나 인종, 국가

111) 해러웨이, 다나 J., 한 장의 잎사귀처럼, 243쪽 참조.

112) 해러웨이, 다나 J., 겸손한 목격자, 민경숙 옮김, 갈무리, 2007, 13쪽.

113) 해러웨이, 다나 J., 위의 책, 12쪽.

를 막론하고 지구적으로 열려있어서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자와 적게 갖고 있는 자의 불평등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해러웨이는 자연과 여성의 동일하다는 입장을 거부하면서 오히려 기술과학의 잠재력을 이용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적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새로운 여성 의 역할을 모색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자연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하여 자 원으로서의 자연, 심층생태주의의 초월적 또는 원초적 자연, 사회생태주의의 변 증법적 자연, 본질적/문화적 생태여성주의의 여신이나 어머니로서 자연을 모두 거부한다.114) 해러웨이는 괴물들의 약속(The Promise of Monsters: A Regenerative Politics for Inappropriate/d Other) 에서 새로운 생태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가 갈 수 있는 물리적 장소도 아니며, 울타리나 둑으로 에워싸서 보호 해야할 보물도 아니며, 구원하거나 침범해야 할 본질도 아니다. 자연은 숨겨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드러내야 할 필요도 없다. 자연은 수학과 생체의학적 코드로 해독되 는 텍스트도 아니다. 자연은 기원과 재생과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타자”도 아니다.

어머니도 유모도 노예도 아니며, 인간이 재생산하는 모체도 자원도 도구도 아니 다.115)

해러웨이는 자연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만들어지는 구성물로 보고 있다. 그녀는 ‘자연문화(natureculture)’라는 하나의 단어 로 자연과 문화의 이항대립을 붕괴시킨다. 그녀에 의하면 자연과 문화는 원래 하 나였는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분리된 것으로 계승되었다. 즉 인간은 과거 역사의 영향을 받으며, 현재의 노동, 자본, 위계질서, 생산성 등의 복잡한 체계들 속에 갇혀 있는 생물학 속에 들어 있다. 또한 과학은 과거의 역사일 뿐 아니라 동시대 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여러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생물학은 역 사적 담론이지, 세계 그 자체가 아니다.116)

인간은 자연 속의 일부분으로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미

114) 이귀우, 생태담론과 에코페미니즘 , 49쪽.

115) 이귀우, 생태담론과 에코페미니즘 , 49쪽 재인용(Haraway, Donna, “The Promise of Monsters: A Regenerative Politics for Inappropriate/d Other”, eds. Grossberg, Lawrence, Nelson, Gray, Treichler, Paula, Cultural Studies, New York:Routeledge, 1992, 296쪽).

116) 해러웨이, 다나 J., 한 장의 잎사귀처럼, 민경숙 옮김, 갈무리, 2005, 13쪽.

래는 기술혁명을 통해서 인공과 자연, 기계와 인간을 더욱 더 하나로 연결시키려 들 것이고, 더욱이 기술과학은 자본주의와 손을 잡고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생명 공학사업으로 인간을 포함하는 생태계를 착취 파괴하는데 서슴없는 행동을 할 것이다. 따라서 인공과 문화를 부정하고 생명과 자연만을 따로 분리해내려는 시 도들은 무의미해지게 된다. 인간이 자연에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부장제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넘어서서 새로운 총체적인 세계관과 인간관이 필요하다.

새로운 생태여성주의는 여성주의 시각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의 미래를 새롭 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과거 여성들의 경험적 지혜를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새 로운 생태여성주의는 다양한 생태여성주의의 다름과 차이를 포용해야 한다. 인간 은 늘 새로운 갈등과 문제들이 발생하는 역사적 과정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방법을 모색하고 대안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대안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고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다.

새로운 생태여성주의는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온 사고와 언어를 바꿔나가 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여성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경험들을 한다. 그러 므로 여성주의 운동 역시 시대와 역사에 따라 정치적으로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현재 생명공학기술은 여성들의 삶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와 생명체까지 상품화하고 있다.

새로운 생태여성주의는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과정의 언어로, 맞물리는 매듭마다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새로운 생태여성주의는 사회 학적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사회학적 성별(gender)의 대립적인 세계관을 넘어 서야 한다. 둘째, 생태여성주의는 인간중심주의, 남성주의적 이원론과 같은 한정 된 독단보다는 서로 다른 학문 간의 연계, 새로운 이론의 언어, 새로운 형태의 연합된 정치 등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생 태여성주의는 오늘날 기술과학 속에 숨어 있는 자본의 속성을 드러내면서, 사랑 과 협동, 상호주의, 연대, 미래에 대한 책임, 타인에 대한 배려, 돌봄의 태도 등의 여성적 가치들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