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복지국가는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1999년 이 후 김대중 정부가 보편적 사회보험과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도입한 이래 사회복지 재정 지출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의 빈곤율은 여전히 높으며, 특히 불평등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불평등의 증가는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인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복지제도가 확대되었음도 불구하고 불평 등이 증가하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지난 40년 간 전 세계적으 로 증가하는 빈곤과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개인적, 제도적 요 인을 설명하는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었다.
학자들은 빈곤과 불평등이 증가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구 분한다. 첫째, 구조적 관점에서 지구화와 기술 진보와 같은 구조적 변화 가 빈곤과 불평등을 증가시켰다고 본다. 둘째,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정부 의 조세정책과 사회정책, 기업의 노동 유연화, 노동조합의 임금단체교섭, 선거제도와 정치체제의 특성에 주목한다(김윤태, 2018.10.31.). 물론 구 조적 차원과 정치경제적 차원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급증하는 불평등의 원인을 자세히 보면 정부의 정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김윤태, 2019.03.22.).
먼저, 경제적 지구화가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주장을 보자.
1980년대 이후 기업의 경제활동은 점점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되고 기업 들은 임금이 싼 노동자를 찾아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다. 유럽과 미국의 제조업이 공동화되고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며 빈곤층이 증가했다. 세 계화가 진행될수록 각국 정부가 기업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서 경쟁적 으로 법인세, 소득세를 인하하는 한편, 복지 지출을 줄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김윤태, 2019). 실제로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복지제도는 국가재정의 어려움을 가중시켰으며, 동시에 실업보험, 공공부조 등 빈곤층을 위한 복지 재정은 집중적인 삭감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주장과 달리 선진 산업국가의 국내총생산 대비 전체 복지지출 비중은 평균 2배로 확대되었 다(Castles, 2004). 한국도 김대중 정부 이후 자본시장과 무역의 자유화 가 확대되는 한편, 복지 재정의 지출 수준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커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저소득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노동 시장의 소득 불평등이 더 빠른 속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기술의 진보와 탈산업화 과정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불평등의 기술적 요인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탈산업화의 효과를 강조한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디지털 기술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한편 소득 격차를 증가하는 핵심 원인이라고 주장했다(Erik & Andrew, 2016).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초로 2012년 기준 미국 총소득의 절반 이상을 상위 10%가 차지했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기 술의 성과를 독식하면서 디지털 기술이 불평등에 더 영향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기술 결정론은 정부의 역할, 기업의 인사 관 리 전략, 노사 관계의 권력 관계를 간과한다. 만약 기술의 진보가 불평등 의 주요 요인이라면 경제 발전의 수준, 산업구조, 교육과 직업훈련 수준 이 비슷한 국가에서 비슷한 결과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영 미권 국가들(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불평등 수준은 상당 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공공보건체제가 발전되고 노령연금이 발전 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빈곤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다(김윤태, 2017). 결과적으로 각국의 사회보장제도의 특성에 따라 빈곤과 불평등의
수준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대기업의 공장 자동화의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대규모 사업장의 숙련 노동자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로봇은 이미 놀라운 속도로 인간 노동자들을 대체하고 있다. 미국 경제를 기준으로 로봇 한 대가 추 가될 때 마다 고용은 5.6명 감소한다. 로봇 한 대는 노동자 1,000명의 임 금을 0.25~0.5% 하락시킨다(Acemoglu & Restrepo, 2018). 한국에서 도 자동화의 진행으로 제조업 숙련 노동자의 고용 비중은 감소하는데 비 해 서비스 분야 저임금 일자리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시간제, 임 시직, 파견직,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 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임금 수준이 절반 정도이며, 사회보험 가입 비율이 현저하게 낮다. 2019년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임금총액 (1,643천 원)은 정규직 노동자 월 임금총액(3,612천 원)의 45.5%에 불과 하며, 정규직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98%, 고용보험 가입률은 94.4%인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에는 각각 61%, 74%에 불과하 다(고용노동부, 2019). 노동 유연화는 시장 경쟁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기 보다 기업의 인사관리 전략과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입법을 통해 만들어 진 것이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30% 수준을 상회하고 있으 며, 특히 2020년에는 36.3%에 달한다(통계청, 2020.10.27.).
셋째, 노동시장의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노동조합의 단체 교섭 역량도 지적할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대부분의 선진 산업국가에 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하락했으며, 아예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도 증가했 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불평등과 노동시장 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산업국가들에서 경제정책과 기업의 의사결정에서 노동조합이 미치 는 영향력이 작을수록 소득 불평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Dabla- Norris·Kochhar·Suphaphiphat·Ricka·Tsounta, 2015). 한국에서
도 1989년 이후 노동조합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져 현재는 10% 수준 에 불과하다(김윤태, 2018.10.31.). 한국의 임금단체협상은 산업별 차원 이 아니라 기업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대기업과 중소기 업의 임금 격차가 크다. 또한 같은 기업 내에서도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낮다.
넷째, 빈곤과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가운데 정부의 조세정책과 사회정책의 역할이 매우 크다. 보편적 교육과 함께 사회보장제도는 사회 계급간 차이를 없애려고 시도하지는 않지만, 모든 시민들에게 기본적 사 회안전망과 적절한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건강보 험, 노령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주요 사회보장제도는 사회의 구성 원들이 집병, 노령, 실업, 산재 등으로 인한 빈곤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다. 결과적으로 사회보장제도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불가피하게 증가 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평등을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했 다. 20세기 중반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복지국가는 사회보장제도의 보 편적 적용을 통해 획기적으로 빈곤과 불평등을 감소시켰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복지국가가 약화되는 가운데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기 시작 했으며, 세계경제의 통합과 기술 진보로 인해 복지국가의 전면적 재검토 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주장이 확산되었다.
세계 각국의 복지제도를 비교하면, 보편적 복지제도가 선별적 복지제 도보다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발터 코르 피와 요아킴 팔메는 선진 산업국가의 복지제도를 분석하고 공공부조 지 출이 적을수록 빈곤층이 적은 ‘재분배의 역설’을 주장했다(Korpi &
Palme, 1998). 미국처럼 저소득층을 표적 집단으로 설정하여 복지를 제 공하는 국가에서 저소득층에게 더 적은 복지 재정이 배분된다. 반면 스웨 덴처럼 보편적 복지제도를 실행하면 중산층도 복지 확대에 찬성하며, 이
로 인해 저소득층에게 재분배되는 예산도 커져 빈곤과 불평등이 더 감소 한다. 결과적으로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스웨덴이 미국보다 빈곤과 불평등의 수준이 높으며, 공적이전의 효과로 인하여 스웨덴의 빈곤과 불 평등 수준이 급격하게 감소한다.
한국의 경우 공적이전의 빈곤 감소효과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여 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의 조세와 공적이전 이전 빈곤율은 19.7%, 조세와 공적이전 이후 빈곤율은 17.4%로 빈곤 감소 효과는 2.3%p 수준이다(관계부처합 동, 2020e). 한국의 공적사회지출(Public SOCX) 규모는 OECD 국가들 평균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고 북유럽 국가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일부 학자와 정책결정자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 재 한국의 국가부채 수준은 OECD 회원국에 비하면 매우 낮아 확장적 재 정정책을 실행할 역량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빈곤 감소 효과를 확대하기 위한 공적사회지출의 확대는 정부의 중요한 과제이다.
다섯째, 불평등이 심화되는 원인으로 선거제도의 효과를 지적할 수 있 다. 많은 학자들은 유럽과 미국의 정치 제도가 빈곤과 불평등의 수준을 다르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Iversen & Sockice, 2006). 유럽의 합 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는 비례대표제, 대선구제, 다당 제의 특성을 가진다. 선거 후 대부분 연정이 구성되며 의회의 입법 과정
다섯째, 불평등이 심화되는 원인으로 선거제도의 효과를 지적할 수 있 다. 많은 학자들은 유럽과 미국의 정치 제도가 빈곤과 불평등의 수준을 다르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Iversen & Sockice, 2006). 유럽의 합 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는 비례대표제, 대선구제, 다당 제의 특성을 가진다. 선거 후 대부분 연정이 구성되며 의회의 입법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