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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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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모으기 힘들어요.

(참여자 5)

한국 올 때, 서류, 대사관, 한국어 시험, 교육 받고, 건강검사, ... 전부 준비해서 200만 원 정도 썼어요. 한국에서 먼저 일 하고 있는 형이 도와주었어요. 하지만 다른 친구들 한국 가기 위해, 700 만원~1200만원 들었어요. 아는 사람에게 돈 빌려, 이자 주고 ....

2년 시간 열심히 일해서 빚 갚고.... (은행에서 대출 받을 수 없어 요?) 태국에서 신용 좋아야 대출돼요.

(참여자 6)

외국인 노동자들, 연수생으로 들어와도 회사 부도나면 무조건 자기 나라로 돌 아가도록 돼 있거든요. 다른 데로 취업할 수 없고 시켜주지도 않아요. 관리업체도 관리비만 받아먹고 끝이에요. 다들 몇 천 불씩 빚 얻어 왔는데 그냥 자기 나라 돌 아가 봐요. 아버지, 어머니, 삼촌, 고모, 이모, 다 죽게 돼요. 빚 때문에 살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그런 거 생각해 주는 사람, 그런 거 생각해주는 법, 한국에 없어요. (나마스테, 93)

당시 브로커를 통하여 불법으로 비자 발급받는 데 드는 비용은 송출국에서 평균 5~9년간의 수입과 같은 금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자 5는 불합리한 조건이 많 아, 높은 이자 빚을 얻어 브로커에게 많은 돈을 주고 한국에 입국할 수 밖 에 없 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한국에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약 2~3년은 빚과 이자를 갚 는데 주력하고 나머지 기간은 돈을 모을 수 있는 기간으로 계획하여 그대로 진행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 와서 살다보니 현실과 이상은 차이가 많 았다. 생각지 못한 임금체불과 계약조건의 차이, 고물가와 뜻밖의 사고, 질병 등, 여러 가지 악조건이 산재해 있어서 계획한 대로 빨리 돈을 모으기 힘들었다.

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어느 정도의 필요한 말은 구사하고 있었으나, 30대 중반 이 넘어서면(참여자, 1 5, 6) 언어라는 게 쉽게 익혀지지도 않을뿐더러, 한국 사 람과 접촉할 기회가 적은 탓에, 알고 있는 언어마저 잊혀져가고 있어서, 언어 소 통에 따른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음식의 거부감은 시간이 지나 면 익숙해지거나 본국의 음식을 해먹을 수 있지만, 언어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영 위하고 존재가치를 표현하는 기본적 수단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어려움은 매우 크다. 한국어를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위축감으로 나타나 며, 이들이 일주일에 하루라도 자유스럽게 모국어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되는 것이다.

하긴 어머니는 조선족이니까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 적어도 자신에게 수치 를 주거나 학대 하려 드는 사람들에게 한국말로 대꾸할 수는 있을 테지. “그만 때리세요, 왜 욕해요, 돈 주세요” 따위 말고도 여러 가지 어려운 말들을. 선처, 멸시, 응급실, 피해 보상, 심지어 밑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느니, 개 발에 땀난다는 말까지(코끼리, 11).

김재영의 『코끼리』에서는 이방인인 경우, 주류언어에 편입되지 못하고 언어 소수자로써, 언어적으로 소통이 어렵다 보니, 모든 시민적 권리를 배제당하고 법 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이주남성노동자들의 처지와 똑같은 약자의 처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한국 말 잘 하고 싶어요. 근데 배우고 ... 시간 없어요. 그래서 답답해요.... 회사에서 한국어 배울 시간 있으면 좋겠어요.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따로따로 ... 나눠서 배우면 쉬워 ... 이주노동 자 지원센타에 한국 말 배우는 프로그램 있다고 ... 갔어요. 하지만 공부 많이 진행하니까 ... 어려운 한국 말 가르쳐 배우기 힘들어요.

저는 조금 하고 수업하는 어려운 거 가르쳐 ... 제가 할 수 있는 단 계 없었어요. (한국 오기 전에 한국말 안 배웠어요?) 아주 조금 공 부했어요.

(참여자 1)

처음에는 진짜 회사분들 사장님부터 진짜 가족식구처럼 해줬어요.

그리고 이제는 계약 끝나서, 나와서 5년 동안 계속 밧줄 공장 일 했 는데, 공장 사정 있어서 그만 두었어요. 다른데로 옮겼는데 말 안 통해서 닭 잡는 양계장 그때는 미등록자 되어 무시했어요. 이제는 미등록자니깐 .... 말이 안 통하니깐 못 알아들어서 무시하고....

말이 안 통하니깐 ... 그래서 와이프가 와서 공장장한테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말 하고, 무슨 일 있으면 와이프한테 말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후부터는 무시하지 않았어요. 외국사람 한국에서 살면, 제일 문제는 말 안통해서 많이 힘들어요.

(참여자 5)

처음에 올 때 언어 안 되고, 사장님 어리니까 자기 맘대로 해요.

잠자고 싶은데 막 노래 틀고 ... 잠 못 자요. 하지만 사장님 잠자면 조용해야하니깐 다른 사람도 조용해야하니깐 사장님 자니깐 따라가 야 되는 거에요. 아무것도 다 못해요. 말 하고 싶어도 말 잘 안되니 까 참았어요.

(참여자 6)

참여자 6은 한국에 온 지, 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듣는 것은 어느 정도 눈치 로도 짐작해서 알 수 있지만, 자신을 대변하거나 옳지 않은 일에 대해 항변해야 할 상황에서는 언어 소통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좌절을 느낀 적도 많다고 한 다. 특히 참여자 1, 5, 6 은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려고 하였지만,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언어 습득 속도가 느려,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았다. 참여자 1은 언어의 중요성을 알고 몇 번이나 한국어 프로그램에 참여 했지만, 프로그램 종류가 다양 하지 않아서인지, 학습 수준이 너무 높고 진도가 맞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 다.

알제리 출신의 디아스포라 지식인이었던 프란츠 파농(1988)이 “그들의 힐끗 보 는 눈이 마주칠 때, 그는 늘 방어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언어 소수자들은 피부색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모어를 사용하는 것을 바라보는 타 자들의 시선 앞에 쉽게 위축된다. 거주국의 주류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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