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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몸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74-77)

연구참여자들 중, 산업연수생이라는 신분(참여자 3, 4)으로 한국에 처음 들어 왔을 때는 합법적인 신분이었지만, 계약 기간을 지키지 못하고 사업장을 이탈하게

되어 불법 체류자가 되었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체를 이동하는 사유의 대부분은 근 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 을 거절당할 때 이루어지지만, 실제 사유는 낮은 임금이 나 임금체불(참여자 1)과 같이 주로 임금과 관련된 이유가 가장 크고, 열악한 작업 환경(참여자 3, 4)도 사업체이동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밝혀졌다.

연구참여자들은 한국에서 높은 강도의 노동을 요구하는 일자리에 대한 소문은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작업 종류에 따라 쉬는 날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 달리다 보니, 버틸 수 있는 체력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근무처를 이탈하거나 옮기 게 된다(참여자 3, 4). 특히 최근 우리나라와 체결을 맺어 노동 인력을 송출한 지 얼마 안 되는 동티모르 노동자들은 매우 열악한 작업장에서 장시간 일을 해야 하 는 경우가 많았다. 몇 날 며칠을 바다 위에서 배만 타고 오징어 잡기를 했던 참여 자 3과 4는 쉬지 않고 계속 일만 하다 보니, 몸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일만 시켜, 참여 자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노예로 취급당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힘든 상황을 3개월 정도 겪고 나니, 참여자 3과 4는 작업장을 이탈할 결심을 한다. 불법 체류 자가 될지라도 이대로 지쳐 쓰러질 수는 없었으니까....

처음 월급 한 달 한 달마다 잘 주었어요. 하지만 2달 전, 회사 불났 어요. 그래서 사장님 다른 공장 구해서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 때 돈 못 받았어요. 하지만 회사사정 잘 알기 때문에 참았어요. 하 지만 이번 달, 저번 달 모두 준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직 못 받았어 요. 27일 월급 받는 날인데...

(참여자 1)

날씨 나쁜 날만 일 안 해요. 일요일, 빨간 날 ... 안 쉬고 계속 오징어 잡았어요. 바람, 비, 너무 날씨 안 좋으면 안 나가고, 일 항상 하니 까.... 너무 힘들어 배안에 있어 하니까 멀미 ... 배 멀미 너무 계속 하 니까 머리 아파, 배 아파 ... 너무 힘들고 밥 안 먹고 일 하고... 힘들었 어요. 사람이 아프면 약 주고 쉬고 해야 하는데, 한국 사장님 계속 일 시 켜요. 집에서 키우는 개도 아프면 보살펴 주는데, 한국 사람들 계속 일만 시켜요.

(참여자 3)

일요일도 매일 일 하고, 하루 10시간~11시간 일하고 ... 한국사람도 외국인도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한국사람은 사람이고, 우리 외국 인은 사람 아니고 동물입니다.

(참여자 4)

삶의 주체적 선택이 아닌 빈국에서 태어나 신자유주의 시대의 물결을 타고 자의 든 타의든 이주노동자로써 한국에 들어온 연구참여자들이지만, 인간적 존엄성마저 짓밟히면서도 코리안 드림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돈 모아 금의환향할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생의 의지는 놀랍도록 강렬하고 아름답다.

연구참여자들의 고충을 보면‘작업장에서의 차별 대우’가 가장 높았고, 그 다 음으로‘모욕이나 욕설’ ‘임금체불’ 순이었다. 참여자 대부분은 적은 소득으로 생계유지는 물론 가족들 부양의 책임을 지고 있다. 특히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 교육을 위해 이주노동을 결행하게 된 참여자 1의 경우는 임금 체불이 계속 될 경우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이주노동자의 근로조건이 많이 향상되었지만, 참여자 3과 4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바다 한 가운데서 쉬는 날도 없이 힘든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을 인간이 아 닌, 소나 말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까지 했다.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 경과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은 그들이 낯선 땅에서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과제이 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형틀에서 떼어낸 콘크리트 막대기를 옮기는 것이었다.(중략) 콘크리트 덩어리는 보기보다 무거워서, 추위로 뻣뻣해졌던 몸이 화끈거리면서 등판 이며 겨드랑이에서 땀이 비질비질 배어나왔다. 겨우 다 옮겼는가 싶으면 천장에 매 달린 호이스트가 움직여 새 일감을 부려놓았다. 일할 때면 귀마개를 꼭꼭 챙겼지 만, 파고든 소음 때문에 머릿속은 콘크리트 반죽을 들이부은 것처럼 멍멍했다.(물 한모금,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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