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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에 나타난 원심적 선교

B. 신약의 원심적 선교

3. 바울서신에 나타난 원심적 선교

사가 있는 곳에 선교가 이루어졌다.”127) 성령의 인도하심을 입은 선교의 흐름은 사 도행전에서 낱낱이 확인 할 수가 있다. 김영동은 그의 책에서 “성령은 선교 사역에 있어서 새로운 형식의 원천이요 검증이다”128)라고 이야기 한다. 이제 바울 서신을 통하여 원심적 선교가 어떻게 진행되고 이루어졌는지를 알아보겠다. 바울은 원심 적 선교의 대표적 인물이었고 바울서신을 연구하면 신약성경에서 원심적 선교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바울서신을 연구하는 것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연구가 될 것이다.

“오늘날은 보잘것 없고 미미한 터키의 작은 마을로 변했지만, 한때는 로마제국의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였다.”130) 길리기아 다소는 희랍인과 동방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던 상업과 교육의 중심 도시였다. “바울은 회당 교육을 통하여 영향을 많이 받았고, 희랍적 요소들을 습득하게 되었다.”131) 따라서 바울은 유대적 교육을 받았 으나 동시에 희랍적인 문화권에서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삶에 가 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유대주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울은 다른 랍비 의 학파들보다 이방인들에 대해 더 개방적이었던 힐렐 학파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바울은 유대교의 전도를 잘 알고 있었으며, 적극적으 로 전도에 참여했었다고 볼 수 있다.”132)

“성령이 바울을 희랍인들에게 보내었을 때 그것은 그들을 복음화 하려함 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바울 자신으로 하여금 그의 메시지의 참된 핵심을 보 는 것을 가능하게끔 하려함이었다.”133) 바울은 유대 기독교에서 자랐고 회심을 했 기 때문에 희랍의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하여는 잘 알지를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바울을 희랍 사람들에게 보내셨고 희랍의 기독교를 직접 체험케 하셨 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여 진리의 복음과 메시지의 참된 핵 심을 확실히 알게 하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이것은 기독교와 문화와의 관계와 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빙크(Bavinck)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문화 사이에는 긴밀하고도 역동적인 관계가 있다”134)고 말이다.

130) Charles Ferguson Ball, The Life and Journeys of Paul, 이수철 역,『사 도 바울의 생애』(New York: 예스 콤뮤니케이션즈), 11쪽.

131) 이용원, ‘바울과 선교’,『선교와 신학 1집』(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 부, 1998), 94-95쪽.

132) David J. Bosch, 김병길・장훈태 공역,『변화하고 있는 선교』, 205쪽.

133) Joseph Comblin, The Meaning of Mission, 채은수 역,『선교의 의의』

(서울: 한국로고스연구원, 1992), 124쪽.

134) J. H. Bavinck, The Impact of Christianity on the Non-Christian World, 전호진・권순태 옮김,『기독교선교와 세계문화』(서울: 성광문화사, 1990), 52쪽.

폴 히버트(Paul G. Hiebert)는 “문화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조직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가장 깊이 공유된 기본적인 믿음과 가치에 의 하여 함께 연결되어 있다”135)고 말하였다.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그리스 도를 만난다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경험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유대적 교육을 받았으나 동시에 희랍적 문화권에서 활동을 하게 되 었다. 그리고 로마 시민이었으며, 희랍-로마 문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던 디아 스포라 유대인으로서 받은 영향은 결국 이러한 복합적인 환경이 바울로 하여금 바 울 되게 하였던 크나큰 요인이 되게 하였다. 바울이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한 사 건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회심이었다. 바울의 회심 사건은 바울 의 선교적 삶의 출발점이 되었다. 바울을 오랫동안 잘 알던 사람들은 율법을 최고 의 규범이고 삶의 기준으로 삼았던 그가 전적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게 되 자 “바울을 미친 것으로 생각”136)이 들 정도로 바울은 완전히 변했다.

사도 바울의 선교관에 대하여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가 있다.

“하나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문제이고, 둘째는 선교사와 교회의 통일성이고, 셋째는 선교 원리와 그 적용”이다. “첫째는 바울이 종종 그 순서에 있어서 유대인을 먼저 뽑은 것은 구원사에 있어서의 그들의 위치 때문이지 시간적 순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모두를 구원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초대교회가 선교 적 교회였던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선교와 교회를 분리 하지도 않았고, 또 그 럴 필요가 없었다. 교회가 팽창하면서 교회 문제들을 해결하고 이단에 대한 변증들 때문에 선교가 잊혀진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교회와 선교를 제 도상에서 따로 취급한 것 뿐, 교회와 선교는 분리 될 수 없는 것이다. 셋째는 “사도 바울의 선교 방법에 대한 것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여러 사람

135) Paul G. Hiebert, Anthropological Insights for Missionaries, 김동화・이종 도・이현모・정흥호 옮김,『선교와 문화인류학』(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2000), 58쪽.

136) 사도행전 26:24 -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 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에게 여러 모양으로써의 전도방법이고, 또 하나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 정 책”(롬 15:10)이다.137) 보쉬(Bosch)도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은 그 것을 잘 표현 한다: ‘그의 사도직 개념은 그가 회개하고 동시에 복음을 맡아 이방 인들에게 보냄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로 특징지어 진다’138)는 것이다.”

바울의 원심적 선교는 그 범위가 컸다. 제 1차, 2차, 3차에 걸쳐서 바울 선교의 활동 범위는 어느 누구보다도 컸다. 많은 교회들을 세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고 또 그들로 하여금 다시 복음의 증인이 되게끔 하였다. 바 울 서신은 원심적 선교에 있어서 가장 실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공동서신 에서의 원심적 선교를 기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