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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지정학적 이해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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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냉전의 핵심지역으로 변모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은 미국의 한반도에 대 한 지정학적 사고이다. 지정학은 대외정책과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지리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81) 지정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국가 간의 관계를 단순히 객관적인 지표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지리적 구조 아래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이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82) 이러한 지정학적 사고에 입각한 국가의 전략 적 행위는 당연히 세계 정치영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83) 미 국의 봉쇄 역시 마찬가지이다. 스파이크만(Nicholas John Spykman)은 캐넌의 봉쇄 개념 에 지리적 관념을 제공했다. 그는 소련의 영토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방대했기 때문 에 소련의 중심지역을 직접적으로 공략하는 것보다는 주변지역을 봉쇄함으로써 소련의 팽창을 억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84)

80) 정성윤,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사건과 미국의 위기정책결정」(고려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7), 105-125쪽; 이신재, “EC-121 사건과 한반도에서의 미·소협력,” 군사연구 제139집(2015).

81) Russell H. Fifield & G. Etzel Pearcy, Geopolitics in Principle and practice(Boston: Ginn and Company, 1944), pp. 4~5.

82) 콜린 플린트 지음, 한국지정학연구회 옮김, 지정학이란 무엇인가(서울: 도서출판 길, 2007), 6쪽.

83) Xu Qi(Translated by Andrew S. Erickson and Lyle J. Goldstein), “Maritime Geostrategy and the Development of the Chinese Navy the Early Twenty-First Century,” Naval War College Review, Vol.

59, No. 4(2006), p. 2.

84) 최정준, “미국의 동북아시아 냉전전략과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형성: 전후 영토문제와 배상문제를 중

2차 대전 직후 한반도는 객관적 지표로만 본다면 미국에게 중요한 나라는 아니었다.

인구나 자원의 측면에서 식민지에서 막 해방된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전쟁 이 전 미국의 군부는 한국을 “트루먼 독트린을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막대한 노력과 광 범위한 지출을 불러오고, 대중으로부터 완벽하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국가를 미국이 전면적인 노력으로 존속시키기는 것은 군사적으로 해롭고 전략적으로 좋지 않다”고 평가했다.85) 미 군부는 냉전이 시작되면서 군사력 재편과정에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4만 5천 명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86) 반면 한반도 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이와 달랐다. 미국은 2차 대전 중 한반도를 미국으로 편입을 위한 제도적 장치인 신탁통치안을 구상했다. 신탁통치안에서 미국은 한반도를 동북아 에서 미국의 정치, 안보적 이익을 관철하는 데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했고 그 궁극적인 목표는 식민지역이었던 한반도를 미국의 세계경제체제로 편입시킨다는 것이었다.87) 다 만 남북분단, 미국의 한국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불신, 그리고 일본이 미국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면서 동아시아에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가치가 다소 낮아졌다.

한국전쟁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반도의 전략적, 지정학적 가치를 전반적으 로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한국전쟁에 대한 군사개입은 유럽 중심의 공산 주의 봉쇄정책을 동북아시아에서 봉쇄정책으로 확장시키는 핵심 계기가 되었다.88) 한 반도가 지정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봉쇄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탈바꿈을 시 작하자 이제 한국은 공산주의 봉쇄의 전초기지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후 한반도는 공 산주의 세력이 일본, 태평양으로 진출을 막기 위한 반공의 최전선이 되었다. 이를 위 해 한·미 군사동맹은 강화되었다. 냉전이 심화할수록 한·미 군사동맹에 대한 미·일 동맹의 후원 역시 더욱 요구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지정학적 인식의 틀은 현재도 유효하다. 과거에는 한 국이 공산주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한 최전방 지역이었다면, 현재는 중국의 부상을 견 제하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한국이 필요하다.89) 냉전기

심으로,” 동서연구 제30권 1호(2018), 114쪽.

85) “Memorandum by the Department of the Army to the Department of State,” June 27, 1949, Department of State, FRUS, 1949, The Far East and Australasia, Vol. VII, Part 2(Washington D.C.:

United State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6), pp. 1055~1056.

86) 양영조, “한국전쟁 이전 미국의 한반도 군사정책: 포기인가 고수인가?” 군사 41호(2000), 54쪽.

87) 정용욱,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114쪽.

88) 김일수,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청주: 충북대학교 출판부, 2014), 40~42쪽.

89) 윤지원·심세현, “동북아 안보환경의 변화와 미국의 안보전략,”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38집 1호 (2013).

는 물론이고 냉전 이후에도 미국의 아시아전략에 있어 일본, 한국, 대만과 양자 관계 는 핵심이었다. 미국은 이 관계를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확대하고 역내 미국의 패권체제를 유지하는 데 활용했다.90)

미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안에서 한반도의 갖는 전략적 가치에 대한 기본인식은 아 래의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의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은 극동지역의 지정학적 중추다. 한국이 미국과 맺고 있는 밀접한 관계는 미군이 일본에 대 규모로 주둔하지 않고서도 일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주며, 따라서 일본이 독립적인 군사 강국 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통일 혹은 중국 영향력권으로의 편입 등으로 말미 암아 한국의 지위가 변화하면, 극동에서 미국의 지위 역시 크게 변화할 것이고 일본의 지위도 마찬가지로 크게 변화할 것이다. 부연하자면 한국의 증대된 경제력으로 인해 한국은 어느 때보

다 중요한 ‘공간’이 되었고, 한국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값진 것이 되었다(강조는 필자).91)

브레진스키는 한국이 일본 방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일본의 군사적 성장을 억 제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한국의 지위 변화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고 성 장하는 한국을 통제하는 것은 높은 값어치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한반도의 향방이 미국의 동북아에서 패권 유지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그는 남북한 사이에 전쟁 위험이 있는 한 주한미군은 남아 있어야 하고, 주한 미군 없는 남북한 통일은 결 국 한반도가 중국으로 기울게 될 수도 있으므로 한국에 대한 통제는 무엇보다 중요하 다고 여겼다.92)

이렇게 미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서 한반도가 갖는 위치가 중요하다면, 구체적으 로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이익과 정책목표는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가. 누츠털레인 (Donald Edwin Nuechterlein)에 의하면 미국의 국가이익은 생존, 경제 번영, 자국에 우 호적 국제질서 촉진까지 여러 범위에서 추구되는데, 여기에는 일정한 우선순위가 존재 한다. 미국은 이를 기준으로 자국의 대외정책을 결정한다. 그는 이러한 국익의 우선순 위를 생존(survival), 필수(vital), 중요(major), 주변(peripheral) 이익으로 나누었다.

‘생존이익’은 자국의 생존에 직결된 이익이다. 생존이익의 영역에서 대통령은 가 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국가를 방위한다. 보통 전쟁과 같은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90) G. John Ikenberry and Michael Mastanduno, “Conclusion: Images of Order in the Aisa-Pacific and Role of the United States,” G. John Ikenberry and Michael Mastanduno(eds.), International Relations and the Asia-Pacific(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3), p. 435.

91) 브레진스키 지음, 김명섭 옮김, 거대한 체스판(서울: 삼인, 2000), 72쪽.

92) 위의 책, 244~246쪽.

다. ‘필수이익’은 미국의 정치 생존(안보)과 경제 번영, 평화적 국제환경에 대한 위 험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할 이익이다. 강대국과 전략적 세력균형의 유지, 동맹국 원조, 세계시장 접근을 통해 미국의 경제 촉진, 주요 적대국과 협상을 통한 세 계평화 구축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필수이익’은 상호 호환되지 않을 수 있고 정책결정자는 시간과 환경에 따라 적절한 것을 결정할 수 있다. ‘중요이익’은 미국 이 어떠한 행위를 취하지 않을 때, 자국의 안보와 경제 번영, 세계질서의 안정에 잠재 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역에 놓여 있는 이익이다. 동맹국 안보에 대한 위협, 동 맹국 내 위협적인 혁명 또는 반란, 미국이 중요한 국제수역으로 진입을 제한당함, 명 백한 국제법 위반 등이 발생하면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데,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주변이익’은 국방, 미국의 번영, 국제사회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침해하지 않는 영역이다. 이 이익의 영역에서는 적극 개입보다 상황을 관망하면서 낮은 수준에서 대응한다.93)

한편, ‘미국의 국익위원회’는 누츠털레인의 국익 우선순위와 다소 유사하면서도 조금 더 명확하게 미국의 국익과 정책적 목표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에 의하면 국익 은 필수(Vital), 매우 중요한(Extremely Important), 중요한(important), 덜 중요하거나 부 차적인(Less Important or Secondary) 것으로 나누고 있다.94) ‘필수이익’은 “자유롭 고 안전한 국가에서 미국인의 생존과 복지를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데 확고하게 필요”

한 이익으로 핵위협 방지 및 억지, 미국 번영을 목표로 하는 국제체제를 위해 동맹국 생존과 그들과 적극적 협력을 추구, 미국 국경지대에서 적대적 강대국 및 실패 국가 출현 방지, 주요 세계체제의 안정성 등이 이다. ‘매우 중요한’ 이익은 “침해받을 시 미국 정부의 능력에 해를 주지만 심각하게 손상하지 않는 것”이다. 핵·생화학무 기 사용위협을 억지, 대량살상무기의 지역적 확산 방지, 국제법 수용의 촉진, 중요한 지역에서 패권국 출현 방지, 동맹국의 복지 증진과 외부로부터 침략 방지 등이 구체적 인 목표들이다. ‘중요한 이익’은 “침해받을 시 미국정부의 능력에 큰 부정적인 결 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대규모 인권 침해 방지,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에 서 다원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촉진으로 전략적으로 덜 중요한 지역에서 충돌 방지, 미

93) Donald E. Nuechterlein, United States National Interests in a Changing World(Lexington: the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1973), pp. 1-29. 구영록 교수는 누츠털레인의 America Over committed(Lexington: The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1985)의 제시된 국익 분류를 기준으로 대외정 책에서 국익을 구분했다. 구영록, “대외정책의 핵심개념으로서의 국가이익,” 한국과 국제정치 10권 1호(1994).

94) The Commission on America’s National Interests, America’s National Interests(2006), p. 2.

국이 외국에서 긍정적인 영향력 유지, 국제무역과 투자로부터 미국의 경제성장 최대화 등이다. ‘부차적 이익’은 “미국의 정부의 능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것이다.

무역적자 균형을 유지, 민주주의의 확대 등이 이에 속한다.95)

미국의 국가이익에 대한 우선순위에 완벽한 합의는 없으나 모든 국익이 동일선상에 놓이지 않는 점에서 우선순위에 의한 분류는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이러한 미국 의 국익 분류의 특징을 보면, 전반적으로 우선순위가 높은 이익의 방향으로 갈수록 미 국의 생존과 세력균형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방향이거나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유지 또 는 촉진으로서 동맹국들과 협력에 의해 미국의 국익을 지켜내려는 방향이다. 반면 우 선순위가 낮은 부차적이거나 주변적인 이익의 방향으로 갈수록 미국의 낮은 수준에서 개입과 이익을 추구한다.

이러한 미국의 국가이익을 한반도에 적용하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목표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건의 변화에 따른 한반도 정책목표의 변화 역시 예측할 수 있을 것 이다. 누츠털레인의 국익 분류에 따르면, 한반도는 미국의 ‘생존이익’과 ‘주변이 익’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미국에게 서태평양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데 있어 중국과 소련의 세력을 최전선에 견제하는 전 략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또한, 한국이 미국과 양자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에서 한반도는 미국의 ‘필수이익’과 ‘중요이익’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지역이다.

물론 ‘필수이익’이 우선이고 ‘중요이익’은 상대적으로 부차적이다. 미국의 한반도 에 대한 이익의 중첩성은 ‘미국의 국익위원회’의 분석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한반 도에 대한 이익을 더 구체적으로 구분했는데, 한국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필수이 익’ 영역으로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서 생존케 하여 미국과 적극적으로 협력 해서 중요한 세계적, 지역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국가로 보았다. 동시에 한 반도는 평화를 유지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이익’으로 상정했다.96) 물론 이러한 이익 은 미국을 중심으로 볼 때 적실한 것이다. 미국의 ‘필수이익’의 대상인 국가에게는 미국의 필수이익은 자신에게 ‘생존이익’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한반도에서 ‘필수이익’은 질서와 관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의 ‘필 수이익’으로서 한반도 질서의 문제는 분단과 통일로 집약된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한반도의 분단질서가 동북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영향력을 억지하는 전초기지 임무를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97) 곧 북방의 북·중·소 삼

95) Ibid., pp. 5~8.

96) Ibid.,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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