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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가의 패러다임 변화

2.1. 사회변화와 문화·여가

서구 선진국들에서 나타나는 문화·여가의 변화를 고찰하면 매우 흥미 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회변화에 따라 문화의 개념과 본질이 시대 별로 달리 인식되고 있으며, 문화·여가 역시 그 변화의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가장 큰 동인은 근대문명의 발전과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변화이다.

먼저, 유럽에서 발생한 계몽주의와 문화·여가의 변화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관습과 의례, 전통적인 생활문화, 축제와 놀 이문화, 전통적인 명절 등 민중들에 의해 전승되던 전통문화가 탄압되던 시기이다(김문겸 2008). 17~18세기에 유럽을 휩쓴 계몽주의는 문화와 문 명 진보의 핵심 또는 근간을 인간 이성의 계몽으로 간주하였다. 계몽주의 는 정치, 사회, 철학, 과학 이론 전반에서 상식, 경험, 과학을 중심으로 한 이성을 강조하면서 중세유럽의 폭압적 전제군주와 가톨릭교회의 족쇄로 부터 인간 이성을 해방하고 이를 통한 인간의 존엄, 평등, 자유권을 강조 하는 사회발전을 촉진했다(김광선 2010; 원용진 1996).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계몽주의는 인간 이성에 의한 문화·문명의 진보 를 맹신한 나머지 민중들에 의해 전승되어 온 전통문화를 통제하고 탄압 하였다. 그 대신 신중산층을 중심으로 전통문화나 전통생활양식에 대한 이른바 ‘생활양식 개조운동’이 확대되었다(김문겸 2008).

뒤이은 빅토리아 시대(1827∼1901)에는 근대적 문화·여가가 형성되었 지만 농촌문화의 기반은 붕괴되었던 시기였다. 산업혁명에 의한 경제발 전이 성숙기에 이르러 대영제국의 세력이 가장 왕성했던 이 시기에는 유 럽의 제국들과 미국에서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산업화·도시화가 왕성하게 진전되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산업사회의 도시문화 발전을 토대로 이룩했던 문화·문명의 발전을 시민정신과 지성 발전의 총체적 모습으로 인식했다(김광선 2010; 원용진 1996).

빅토리아 시대의 산업사회 발전은 농경 중심의 전통사회가 따르던 계 절적 순환리듬의 생활방식을 규격화, 표준화에 따라 인위적 생활리듬으 로 변화시키면서 근대적 문화·여가를 형성했다. 산업화를 통해 부를 축적 한 자본가 계급 또는 중산계급은 전통사회 및 노동자 대중과 구별되는 자신들의 문화·여가 또는 여가문화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즉 ‘합리적 레 크리에이션 운동’을 통해 음악, 독서, 연극, 놀이게임, 스포츠, 휴가 형태 의 계급지향적인 근대적 문화·여가를 발전시켰다(김문겸 2008). 18세기

‘생활양식 개조운동’에 의한 농촌문화와 전통문화 탄압에 이어, 도시 중 심의 산업사회는 19세기 및 20세기 초의 계급지향적인 근대적 문화·여가 형성을 통해 농촌문화와 전통문화를 붕괴시켰다.

20세기 들어 대량생산시대가 도래하고 자본주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소비자본주의하에 대중문화를 통한 문화·여가가 확대되었다. 이 시기에 는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의 등장으로 노동효율성이 극대화되고 일관공정 라인에 의해 대량생산시대가 도래했다. 또 국제노동기구에 의한 노동시 간 단축과 더불어, 자본가들은 높은 임금을 통해 노동자들을 보다 순종적 으로 유인했으며, 국가는 더 많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여 대량생산을 가 능하게 하는 대량소비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김문겸 2008).

생산성 향상에 의한 더 많은 임금 보장과 국가의 복지 지원에 의한 소 비문화 확산과 더불어, 자동차의 보급 확대에 의한 생활패턴 변화는 일반 대중의 문화·여가 수요를 증대시켰다. 이와 함께 TV 방송, 영화, 음악, 스 포츠 등 상업적 문화·여가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문화·여가활동 이 자본주의 보편시장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문화·여가 중심적 가치관이 중산층 또는 일반 대중의 보편적 생활윤리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자본주 의 이행기부터 탄압되고 붕괴된 농촌문화와 전통문화는 문화·여가의 보 편시장으로부터도 소외되기에 이른다.

20세기 후반 또는 말부터는 세계적인 큰 변화들이 이어졌다. 자본주의 경제의 재구조화, 국가조절기제 변화와 국가의 역할 축소, 세계화와 지방 화, 유연적 축적과 자본주의 생산의 변화, 소비시장의 파편화 등 다양한

변화가 발생했다. 특히 ICT 및 디지털로 대변되는 신기술의 급속하고도 지속적인 혁신은 정보화시대를 넘어 다양하고 폭넓은 문화의 생산과 소 비가 이루어지는 문화의 시대를 가능하게 하였다.

과거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에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생산 자에 비대칭적으로 집중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소비자들은 대량으로 생 산된 문화·여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대중적으로 소비하거나, 또는 전문가 및 전문가 집단에 의해 공급되는 문화예술을 관람하는 것이 보편적이었 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보권력의 비대칭적 구조가 매우 완화되었다. 이 제 일반인들도 획기적으로 증대된 정보역량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차별화된 문화·여가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자신 들이 추구하는 다양하고 차별화된 가치를 문화·여가의 생산자들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문화·여가활동에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일반 인들 간 정보와 가치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 문화·여가를 창출하는 능동 적 주체가 되고 있다.

2.2. 문화민주주의로의 정책 패러다임 변화

앞서 논의한 사회변화에 따른 문화·여가의 패러다임 변화, 특히 20세기 후반 또는 말부터의 변화는 선진국의 문화·여가정책이 기존의 ‘문화의 민주 주의(democratization of culture)’에서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로 전환하는 상황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17세기 계몽주의 시대에서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문화·여가의 패러다임은 주로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근대화·산업화·도시화된 문화·여가 공급의 확대라 고 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문화·여가정책을 문화의 민주주의 기조에 기 반하도록 하였다.

문화의 민주주의(democratization of culture)는 전후 유럽 및 서구 세계 를 지배했던 문화·여가정책의 기본 이념으로 ‘예술의 문명화 가치’, ‘서구 의 고급문화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접근성’을 강조하는 정책 패러다임이다.

즉, 주류 문화예술 밖의 문화적 표현이나 실천은 무시하는 엘리트주의적 문화 관념에 기초하여, 전문가에 의한 공급 중심적 또는 본질적으로 하향 식의 문화·여가정책이다(Gattinger 2011). 전문 예술인 지원을 통한 문화 교육 및 문화·여가 확대, 문화·여가 거점시설 확충, 문화의 생산과정보다 는 그 결과물의 공급에 집중한 문화·여가정책이 이에 포함된다. 문화의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접근성에 기반을 둔 문화·여가정책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성주인 외 2014).

1970년대부터 서구 선진국들에서 문화의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기존의 문화·여가정책에 대한 비판논의가 대두되고, 문화의 민주주의의 대안으 로 문화민주주의 논의가 1980년대를 거치면서 크게 확산되었다(Gattinger 2011).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 논의는 1972년 프랑스 문화부의 연구조사부장 Girard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그는 현대사회에서 문화 가 창조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문화는 소비재 상품을 생산하는 다른 산업 과 다를 바 없으며, 예술은 대중시장을 위한 포장에 불과할 뿐이라고 경 고하였다. 그러면서 다양한 하위문화들로 하여금 ‘스스로 표현’하도록 장 려하고 의사소통 매체를 통하여 다른 하위문화나 보편적 하위문화와 관 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도록 문화정책이 변화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Girard 1983).

Girard의 이러한 주장 이후 전문 예술인 중심의 문화·여가 공급 정책을 비판하면서, 일반인, 즉 아마추어 대중의 능동적 문화 활동을 장려하는 문화민주주의에 입각한 문화·여가정책이 확산되었다. 이른바 생활문화 육성, 문화·여가 공동체 육성, 동호회 네트워크 확대, 문화자원봉사 확대, 전문예술과 대중문화의 공동 발전 등을 강조하는 문화·여가정책이 이에 포함된다(성주인 외 2014).

문화의 민주주의가 접근성을 강조하는 문화·여가정책 패러다임이라면, 문화민주주의는 참여권을 강조하는 패러다임이다. 달리 말해, 문화의 민 주주의가 ‘모든 사람을 위한 문화(culture for everyone)’를 지향한다면, 문화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 의한 문화(culture by everybody)’를 지향한 다(Langsted 1990). 그러나 유의해야 할 점은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

다고 해서 기존 패러다임에 기초한 정책이 중단되거나 축소되어야 한다 는 의미는 아니다. 이후 선진국의 최근 문화·여가정책 동향 부분에서 다 시 논의하겠지만, 문화민주주의를 따르고 있는 선진국들 역시 기존의 문 화민주주의에 입각한 문화·여가정책을 여전히 중요하게 추진하고 있다.

2.3. 진지한 문화·여가와 사회성 문화·여가의 확대

문화·여가의 개념과 범위가 달라지고 확대되면서, 문화·여가를 통해 추 구하는 목적과 가치도 다양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중 하나가 보다 적 극적이고 계획적으로 여가활동을 영위하는 진지한 여가(serious leisure)의 확대이다. 진지한 여가는 TV 시청이나 낮잠, 잡담 등의 일상적 여가 (casual leisure)의 상대적 개념으로 “특정 기술의 습득과 지식의 추구 등 전문성을 얻기 위해 참가자들이 관심을 갖는 측면에서 이에 충분한 실력 이 있는 아마추어(amateur), 취미가(hobbyist), 자원봉사자(volunteer) 등이

문화·여가의 개념과 범위가 달라지고 확대되면서, 문화·여가를 통해 추 구하는 목적과 가치도 다양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중 하나가 보다 적 극적이고 계획적으로 여가활동을 영위하는 진지한 여가(serious leisure)의 확대이다. 진지한 여가는 TV 시청이나 낮잠, 잡담 등의 일상적 여가 (casual leisure)의 상대적 개념으로 “특정 기술의 습득과 지식의 추구 등 전문성을 얻기 위해 참가자들이 관심을 갖는 측면에서 이에 충분한 실력 이 있는 아마추어(amateur), 취미가(hobbyist), 자원봉사자(volunteer) 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