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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대전환기의 세계와 동아시아

Ⅵ. 한-미 동맹과 지역안보

한-미 동맹이 당면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비전을 추구함에 있어 이에 기여할 수 있는 주변환경이라는 관점에서 동북 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의 안보문제가 중요함은 자명하다. 특히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진행되고, 미-중, 중-일 간 전략적 경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한-미 동맹이 지역안보에 관하여 어떻게 기능하고, 미-일 동맹과는 어떠한 연관성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역 전반의 전략적 구도에 있어 핵심요소라고 할 것이다.

지역안보와 관련된 한-미 동맹의 역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최근 부각된 사안 중의 하나가 한-미 동맹의 전략적 유연성문제다. 한-미 동맹은 공통의 가치와 한-미 양국의 국익이나 비전이 받쳐주는 한 지역을 비롯한 세계 어느 곳에서도 공동의 대응체제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추상적인 가치나 국익이라는 체계하에서 원론적 으로 공통의 가치나 이익을 추구한다 해도 구체적인 주한미군의 활 동범위의 문제라거나 한국군의 참여 범위에 관하여 반드시 명확한 지침이 확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전략적 문제에 관한 신중한 판단으로 동맹의 역할에 관한 양국의 입장을 긴밀히 조율하 면서 유연성의 문제를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체 제라는 종국적 비전에 기여하도록 이 문제에 관한 한-미 양국의 마 찰을 최소화하면서 지역 내에서 그리고 지구적으로 역할을 정착시 켜 나가는 것이 동맹의 비전이나 장래를 위해서도 불가결의 요건이 라 하겠다.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는 당초 한반도로부터 발생하는 요인보다는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이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어가는 전략적 환경하에서 정보통신 혁명의 성과를 활용하여 대테러전에 대처하고, 대량살상무기(WMD)의 비확산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등장하였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미래의 불특정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군의 신 속성의 극대화를 표방하는 광범위한 질적 변환(transformation)을 추진 해 왔다. 흔히 묘사되는 것처럼 해외주둔 미군의 성격을 ‘붙박이형 군’에서 ‘신속기동군’으로 일신시킨 것이다. 장거리 투사능력과 정밀 타격능력 그리고 각 군의 통합운용능력을 격상시킨 기동군 위주의 이러한 21세기형 변환은 필연적으로 미군의 해외주둔정책과 동맹 네트워크에 대한 근본적인 재편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본적 정책방향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가안보전략 (NSS 2002 & 2006)’과 ‘4년간 국방검토(QDR 2001 & 2006)’를 비롯한 미국 의 각종 정책문서에 충실히 반영되었고,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추진 력으로 구체화되어 왔다. 이미 2003년 11월 25일 부시 대통령은 「미 군의 해외군사력 태세의 재검토에 관한 공식성명」에서 “21세기의 새 로운 전쟁개념과 전략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해 전 세계 미군 의 전략적인 재배치가 불가피하다”고 발표함으로써 해외주둔 미군 의 재배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전략적 유연성을 높이려는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2004년 3만7,500명이던 주 둔 병력을 2008년 현재 수준인 2만8,500명(당초 2만5,000명)으로 유지 하기로 합의했고, 전시작전권 환원과 한미연합사 해체에 따라 필요 하게 될 새로운 지휘체계에 관해서도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2006년 1월 19일 워싱턴 제1차 한-미 간 장관급 ‘동맹파트너십을 위한 전략대화(Strategic Consultation for Allied Partnership)’에서 그동안

한-미 안보정책구상(SPI)을 통하여 협의되어 온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양국의 원칙적 합의가 발표되었다. 이 합의는 “한국 이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환의 논거를 충분히 이해 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는 것과 “전략 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 이 동북아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주한미군의 외부 로의 유출(flow-out)과 유입(flow-in)또는 한국을 경유하는(go through) 경우에 관한 것이다. 유출과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는 한-미 동맹의 지역동맹화에 관한 우려와 한국이 미국의 세계 전략기지로 전락하 거나 역내 갈등에 연루될 위험성, 대북방어와 억지에 관한 안보 공 백의 우려 등이었다.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이나 북한 급변사태 같은 때에 있을 수 있는 유입의 경우에도 한국이 당연히 영향받을 것이라 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모든 가능성의 경우에 관하여 그 동안 많은 논란이 거듭되어 왔으며 한-미 동맹은 물론 나아가 지역안보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안이라 할 것이다.45)한국으로서는 높 은 신뢰관계와 유기적으로 기능하는 동맹관계로써 가급적 구체적인 경우마다 의무적 또는 권고적 사전협의라거나 사후협의 또는 통보 를 충실히 이행하는 체제가 마련될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여기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되

45) 전략적 유연성의 현실적 수용 입장에 관해서는 하영선 편저, 󰡔-미 동맹의 비전 과 과제󰡕, EAI, 2006, pp.80-88, 101-102; 김영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운 용 조건」, 󰡔-미 동맹 로드맵󰡕}이상현 편, 2008, pp.117-145 참조. 전략적 유연 성에 관한 비판적 견해에 관해서는 배성인, 󰡔전략적 유연성, -미 동맹의 대전 󰡕, 2007; 정욱식, 󰡔21세기의 한-미 동맹은 어디로?󰡕, 2008 참조

어 온 대만해협의 유사시에 한-미 동맹이 어떻게 발동되어야 할 것 인지에 관해서 검토해 보기로 한다. 대만사태는 대만의 장래를 두고 미-중 간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해상봉쇄나 상륙작전을 감 행함으로써 무력충돌로 발전하는 시나리오로 19951996년 대만해 협 위기 시 중국의 미사일 시위와 같은 다양한 상황을 상정할 수 있 을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대만문제에 관한 미-중 간 충돌은 특히 최근 수년간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격상된 단계에서는 지구상의 거 의 모든 나라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이라는 어려운 국면에 맞 닥뜨리지 않기를 바라는 극히 곤혹스러운 전략적 상황이다.46)

미-중 간 대만문제에 관한 분쟁의 격화나 무력충돌과 같은 상황은 당사국인 미국이나 중국에도 범세계적 안보에 직결되는 중대한 도 전을 안겨 줄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중국의 점증하는 군사력은 별개 의 문제로 하더라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신속기동 군으로 개편된 군사력이나 의지의 연합정책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 것인지 절감한 상황에서 향후 상당기간 그러한 무력충돌에 극히 신 중한 입장을 취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미 -중 관계의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적지 않은 요인들이 잠재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도 특히 새로운 시대의 전쟁양상에 대비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사이버 전쟁, 대위성 전쟁, 대공대함무기, 잠수함, 탄도미사일 등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지적하고 있다.47)한-미 동맹이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중 충돌의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지에 관해 대강의 방향을 검토

46) Kishore Mahbubani의 언급 주석 44) 참조

47) Robert M. Gates, “A Balanced Strategy, Programming the Pentagon for a New A ge, Foreign Affairs January/February 2009, p.33.

해 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사실 가능성은 적다하더라도 전략적 유연성문제로 중국이 주한미군 기지나 한국에 대한 공격을 경고하 고, 한국의 해상교통로의 봉쇄에 나선다면 한국으로서는 국가 존망 의 위기를 맞이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한편, 미국은 대만문제에 관한 정책이라는 측면에서도 전통적으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강조하여 왔다. 전략적 모호성은 물론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상황에 따른 다양 한 선택의 여지를 중시한다.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서도 ‘전략적 불 리(strategic liability)’에 빠질 수 있는 단순논리에 기초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출범 초기에 이를 ‘전략적 명 료성(strategic clarity)’으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모든 상황을 사전에 예측하여 명료한 정책을 규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결국 사태가 발생하면 그 대응책은 그때마다의 의회나 여론의 향배에 따라 영향받기 마련이며, 명료한 정책을 규정하여도 행정부의 선택의 여지만 좁히면서 책임만 증대 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48)

주한미군의 작전에 있어서의 전략적 유연성은 물론 대만정책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과 차원이 다른 문제이겠으나, 실제 문제로서는 그러한 작전의 유연성은 결국 정책의 모호성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 구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대만사태 와 같은 중대한 국면에 출동될 가능성은 미국에게는 중대한 국익에 속한다. 이 문제와 관련, 일본의 경우에도 예컨대 2001년 4월 미-중 간 정찰기 충돌사건에 관한 분규에서 이 정찰기가 오키나와의 카데

48) Nancy Bernkopf Tucker, Dangerous Strait: The U.S.-Taiwan-China Crisis,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5, pp.186-211.

나 공군기지를 이륙하였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 바 있다. 일본은 국제공역에 대한 정찰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미국의 권리에 대해 묵시적인 지지를 제공했지만, 일본이 뜻하 지 않게 이러한 분규에 말려들지 모른다는 우려가 대두되었다.49)

한국 정부는 전술한 바와 같이 2006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의 필요성을 존중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 은 불명확하다. 주한미군의 경우에도 우리 정부로서는 평소에는 동 아시아지역 내 국제공역에서의 정찰작전에 대한 양해를 제공하되 그러한 공역의 이원에 관해서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 지 모른다. 다만 대만해협에서 미-중 간 무력충돌이 상당 규모로 진 행되거나, 한반도에서의 사태발생과 연계되는 경우 등 구체적인 상 황의 전개에 따라서는 우리의 안보이익을 신중히 고려하면서 한-미 동맹의 차원에서 긴밀한 협의를 통한 대처가 요구된다 하겠다.

미국의 대만정책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관해서도 사 전에 모든 구체적 가능성과 대응책을 규정하여 명료성을 기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이에 대해 서도 모호성을 가급적 크게 향유하는 기제를 선호하겠지만 동맹의 건전성을 위해서 한국의 주권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고, 중국 의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이익을 가늠하면서 신중히 대응해 나가도 록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사전에 필요한 체제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 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시의 교환공 문에 의한 ‘사전협의’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49) Charles M. Perry & Toshi Yoshihara, The U.S.-Japan Alliance, Preparing for Korean Reconciliation and beyond, The Institute for Foreign Policy Analysis, Inc ., 2003, p.121.

한-미 동맹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협의의 관행화가 중 요하다. 사실 사전협의는 규정이 있는 미-일 동맹에 있어서도 역사 적으로 실제 협의가 있었느냐의 문제를 두고 논란이 많았는데 미국 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립하고,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전략적 목표 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동맹의 신뢰에 관한 문제에 관하여 신 중히 접근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의 지역안보에 관한 역할을 고려함에 있어서 미-일 동 맹과의 연관성도 중대한 사안이다. 첫째, 1996년 「미-일 신안보공동 선언」과 1997년 「미-일 신방위협력지침」 발표 이후의 주일미군 재배 치 등 유동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현재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운영되는가 하는 문제다. 둘째, 북한 급변 사태나 중국의 전략적 불투명성에 대비하여 한-미 동맹과 미-일 동 맹을 더욱 근접한 형태로 운영하거나 삼각동맹으로 발전시켜야 한 다는 제의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셋째,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과 어떠한 연계를 가 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러한 세 가지 문제는 시간적으로 단기, 중기, 장기적인 관점에 서 양 동맹의 관계를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세 가지 문제가 상 호연계된 사안이고, 여러 가지 가변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으며, 시 간적으로도 단순하게 구분하는 데 무리가 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원 론적인 수준으로 문제를 점검하고자 한다.

먼저 첫째 문제인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단기적 연관성으로 서 1997년 「미-일 신방위협력지침」은 ‘주변지역의 유사시’라는 개념 을 도입하여 「주변사태법」 등 유사법제 관련 법안 등의 입법을 서둘 러 왔다. ‘주변지역의 유사시’라는 것은 당초 주로 한반도 사태를 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