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I. 대전환기의 세계와 동아시아

Ⅴ. 한-미 동맹과 북한문제

한-미 동맹이 한반도에서 당면하고 있는 가장 위중한 문제로 지 난 십수 년간 관여해 온 것은 북핵문제다.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에 즈음하여 다시 북핵문제에 관한 정책방향에 관하여 해묵은 논란이 일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가 각각 정치적 입장에 입 각한 독자적인 방법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상황은 오히려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북한은 생과 사의 문제로 핵 문제를 붙들고 미국에 도전하여 왔음에 반하여 미국은 정부의 교체 에 의한 정책변화로 일관성과 실효성 있는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07년 7월 TV토론에서 임기 첫해 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건 없이 직접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힘 으로써 북핵 해결에 대한 기대를 드높였으며, 새 행정부가 과연 어 떠한 대응으로 진전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실제로 이루어진 다 해도 북측으로서는 체제보장의 가능성에 최대 관심을 가지고 임할 것이다. 미국이 과연 김정일체제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 것 인가가 관건이다. 오바마 후보를 지원하여 온 싱크탱크 미국 진보 센터(CAP: Center for American Progress)가 발간한 ‘44대 대통령을 위 한 진보 청사진’에 그레고리 크레이크 변호사(백악관 법률 고문 내정) 가 기고한 정책제안은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100일 내에 대통 령특사를 북한에 보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39)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정일 위원장과의 직접회담 용의 표 명으로 북한 입장에서는 자국에 유리한 진전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 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 지도부는 각각 아마도 1994년 제 네바 합의 당시의 정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힐러리 클 린턴 상원의원의 국무장관 지명에 이어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 이루 어진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와 1999년 페리 프로세스의 부활 가능 성에 대해서도 보도된 바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009년 1월 13일 상원인준 청문회에서 북핵문제에 대해 시급성을 갖고 행동할 것을 천명하였고, 별도 서면 답변에서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제 거하기 위해 6자회담과 양자 간 직접 외교를 추구할 것이며, 플루토 늄 생산과 우라늄 농축, 핵 확산 활동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는 한 관계 정상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추가 적인 제재나 평양방문 등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상은 1월 13 일 북한측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선 북-미 관계 정상화와 후 핵폐기’를 주장한 데 이어 나온 미국측의 입장으로서 양측이 일단 원칙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언론은 풀이한 바 있다.

북한과 모종의 합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요구인 것을 알면서도 이를 수용해야 하는 이른바 ‘불합리성의 딜레마(dilemma of

unreasonableness)’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문제다. 특히 김

정일의 건강과 통치기반의 불안정성이 유포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 봉책에의 집착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북한이 일단 검증체제에 동 의함으로써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되었으나, 북한의 최대 목표는 39) 󰡔조선일보󰡕}20081121일자

어디까지나 체제유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여건을 수용하는데 극히 주저할 것이다. 예컨대 IMF나 세계은행에 의 가입이 허용되어도, 금융위기의 여파로 다소 완화되기는 하였지 만 까다로운 융자조건(conditionalities)의 충족과정을 거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동참할 가능성은 아득해 보인다.

부시 행정부가 2008년 6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를 불완전하 나마 6자회담의 성과로 평가하고, 919공동성명에 의한 절차를 진행 시킨 것도 체제에 대한 북한당국의 이러한 집착을 감안하고, 대이라 크전의 부담 등을 고려한 현실적인 타협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2기 출범에 즈음하여 북핵문제 해결과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동시에 논 의하는 이른 바 ‘폭넓고 새로운 접근(a broad new approach)’하에 완전 한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표로서 견지하되, 6자회담의 테두리 내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북핵문제에 관한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정책을 조 정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측은 유세과정에서 북한이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 게 핵프로그램을 제거한다면 6자회담 당사국들은 북한에 대해 경제 적 지원, 제재 완화, 안전보장은 물론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정 상화라는 밝은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며 북핵문제를 해결하는데 있 어 6자회담만으로는 부족하며, 동맹인 한국과 일본과의 협력과 조정 을 통해 북미 직접대화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2008년 8 월 발표된 민주당 정강정책의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항목에서도 ‘북 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검증가능한 종결과 북한이 생산한 핵분열 물 질 및 핵무기의 숫자를 확인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지한다’40)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40) http://marcambinder.theatlantic.com/Platform%208%207%2008%20%282%29.pdf

부시 행정부가 핵문제에 관한 대응을 조정한 것은 결국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체제의 현상변경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다는 현실 인 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 이전 에 북한체제의 장래라는 근본적인 문제의 향방에 관한 대응책을 이 제 주변국, 특히 6자회담 참가국들이 본격적으로 마련해야 할 단계 임을 시사하고 있다 할 것이다. 김정일의 신변에 변화가 있다면 더 구나 이러한 과제에 대한 관계국들의 조율이 급박한 현실이다. 그러 나 문제는 점점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 테러지원국 지 정 해제 조치 후 ‘일본 외교의 수치’라는 표현으로 묘사된 바 있는 격앙된 일본의 반응처럼 납치문제에 관한 일본의 계속되는 경직성 은 당연시 되던 6자회담 참여국 간의 단결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 다. 중국이 특히 금융위기의 파장과 오바마 행정부 등장 이후의 미 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어떠한 내용으로 북한의 장래에 대하 여 종국적인 입장을 정리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그루지야 사 태를 위시한 미국의 대러시아 관계 악화도 우려스럽다. 북한은 이러 한 상황을 역이용하여 우위에 서서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협상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919공동성명에서 직접 관련당사국들에 의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에 관한 별도의 포럼에서의 협상을 약속하고, 6자는 동아시 아에서 안보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과 수단을 모색하기로 합의하였 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6자회담체제는 북한의 장래라는 과제에 착수 하지 못한 채, 핵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늪을 헤매면서 형식적인 테두리만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김정 일의 통치기능에 변고가 초래될 가능성으로 북한 내부정세에 관한 각국의 이해충돌이 첨예해질 소지에 관해서도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이 한반도의 장래를 위해 주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서 좀더 시야를 넓혀 한-미 동맹이 한반도의 장래와 지역안보 전체에 관한 응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앞으로의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후기 부시 행정부가 위에 언급한 ‘폭넓고 새로운 접근’ 이라는 방향을 설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교섭의 흐름은 핵문제에 집중된 타성에서 크게 탈피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를 새로운 안목으 로 점검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오바마 대통령이 유세과정에서 강조해 온 새로운 외교적 지평에 비추어 북한체제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 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6자회담을 뛰어넘는 새로운 체제 가 어떠한 방향으로 모색될 것인지에 관해서도 신중한 검토를 필요 로 한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6자회담의 장래에 관하여 확신을 가 질 수 없는 상황하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적절한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이 북한과의 직접교섭을 포함하는 한-미 -중의 3자 위주의 교섭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확대된 동아시아 다자체제나 브루킹스연구소가 제안하고 있는 G-16의 역할을 상정하 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른바 ‘균형의 힘’이라는 전략하에 모 종의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으로서는 문제의 실 질적인 진전을 기한다는 의미에서 교섭과정이 과도하게 다자 차원 으로 확대될 경우 교섭이 복잡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해야 할 것이다. 다만 교섭의 근간이 성공적으로 진전될 경우 한반도 평화체 제를 위한 많은 나라들의 참여와 지지가 확보될 수 있는 기제는 바

람직하다.

그러나 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있어서 한반도의 장래를 위해 한-미 동맹이 분산시켜야 할 전략적 위험은 실로 복잡다기하다. 북 한 현 체제의 불확실성은 물론이고, 중국의 북한지역에 대한 이해와 일본의 대한반도 영향력 확보의도 그리고 일-중 간의 지역에서의 세 력경쟁과 언제나 앞으로의 전진을 옥죄고 있는 한국 내 여론의 현주 소가 그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은 힘의 한계를 절감하고 대화와 외교의 길에 더욱 확연하게 접어들 공산이 커져, 북한체제의 안보위 협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창조적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의 현 공산당 집권세력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을 넘는 위기, 특 히 대규모 난민이 동북3성으로 유출될 경우 극심한 사회적・경제적 불안으로 외자의 이탈을 초래하게 되는 동시에 중국의 개혁・개방정 책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는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 다. 그들은 이러한 사태가 심한 경우에는 현재 잠복하고 있는 보수 분자들을 일깨어 중국 내 보수・진보 세력 간의 정치투쟁으로 발전 할 소지가 있다는 걱정도 놓지 못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 부에서는 만약 북한정권의 급격한 붕괴로 한국에 의한 이른바 흡수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한-중 간의 국경지역은 극도의 긴장국면에 휩 싸일 것이며, 과거 베트남이 통일되었을 때의 중-월 분쟁과 같이 한 -중 간의 국경에서 총소리가 날 개연성도 거론하고 있다.

중국의 이상과 같은 한반도문제에 대한 민감성을 감안할 때 한국 이 핵문제와 북한체제나 인권, 그리고 그 정권의 장래문제에 관하여 중국적 이해관계와 관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 이다. 미국은 앞으로 중국에 대한 세력균형이나 전략적 대결보다는 중국의 지도적 지위를 인정하고 지역 또는 지구적 차원의 적극적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