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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그리스 국가 부채 위기 원인에 대한 다양한 관점

그리스 국가 부채 위기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맥락과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위기의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리스는 반복되는 국가 디폴트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디폴트 사태가 있을 때마다 해외에서 차입한 공공부채 상환과 관련해 그리스의 경제적 또는 정치적 환경과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개입도 있었다. 독립전쟁 후 1827년 그리스의 정부 수립 당시 발생한 막대한 국가 부채로부터 시 작된 이러한 유산은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그리스가 남부유럽의 자본주의 경제국으로 준주변국가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과정에서도 계속 되었다(Fotopoulos, 1985). 오래전부터 그리스의 정치 및 경제는 중심 채권국들에 대한 자본 의존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이들 국가의 경제 방 향에 극적인 변화가 생기면 큰 영향을 받았다. Michael-Matsas(2010) 가 말한 대로 “그리스 자본주의 (및 그리스 국가의) 역사는 파산의 역사”

이며, 파산 선언은 항상 범세계적 경제위기 발생 이후에 일어났다. 사실 그리스는 1893년과 1932년에도 파산을 선언한 바 있으며, 파산 선언은 대공황 등의 급격한 경기변동 발생 후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위기의 재발 은 이른바 대출의 “서든 스톱(sudden stop)”26)에서 기인했다. 이러한 현 상은 신흥경제국 역사에서 상당히 흔한 패턴이며(Catao, 2006), 일부 학 자들이 주장하듯이 유로존에서도 이런 패턴이 발생한 것이다(Mansori 2011). Lazaretou(2011, p,20)가 정리한 바와 같이, “선진 채권국들의 경제, 금융 여건이 바뀔 때마다 신흥경제국으로의 저금리 자본 유입 중단 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신흥경제국들은 곧 국제수지 위기와 부채 위기에

26) 중심국의 금융 여건이 갑작스럽게 변화하면서 중심국에서 주변국으로의 저금리 자본흐 름이 끊기게 되는 상황.

직면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리스 국가 부채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리스는 금융위기의 ‘일차적’ 영향을 즉각적으로 받지는 않았다(Farnsworth &

Irving, 2011 참조). 대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대출의 ‘서든 스 톱’이 상호 보완적인 요인들의 파괴적인 조합에 대한 촉매제로 작용했는 데, 본고의 다음 부분에서 제시하는 바와 같이,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인으 로 유로화 채택 후 그리스의 경제 및 재정 운용 실적을 꼽을 수 있다.

국가 부채 위기 원인에 대한 상반된 의견들이 있는데, 크게 국내 요인 에 무게를 두는 의견과 구조적 요인, 특히 유로존 가입이 그리스 정치경 제에 미친 영향을 강조하는 의견으로 구분된다. 국내적 요인에 중점을 둔 의견은 확대정책을 그리스 위기의 핵심적인 동인으로 본다(Lyberaki &

Tinios, 2014, p,194). 이러한 접근법에서는 불공평한 배제적 복지제도 가 공공부채의 확대를 가져왔고, 따라서 그리스 복지국가가 ‘국가 재정위 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Matsaganis, 2011). 언뜻 보기에는 역 사적인 변화 추세가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1960~2012 년까지의 그리스의 GDP 대비 공공부채비율(%) 추이를 살펴보면, 공공부 채는 1980년 이후 크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1990년대 초반에 GDP의 약 100%를 기록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전까지는 큰 변화 없이 상 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되다가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궤적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1974년 민주주의 수립 당시부터 서유럽식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으며, 양당체제의 효과적인 수립과 함께 복지국가 확대 시 대가 시작되면서 1981년 사회민주주의정당(PASOK)이 집권여당이 되었 다. 이미 1982년까지 공공교육 확대, 직업교육 도입, 최저임금 및 연금 인상, 기여실적이 없는 농부에 대한 사회부조 연금 도입과 같은 복지제도

가 확대되었다. 또한 1983년 국가보건서비스(ESY)의 제도화로 그리스 역사상 처음으로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해 보편적인 접근이 제공되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정당(PASOK) 정권은 그리스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후견주의(clientelism)를 타파하지 못했으며 분절화된 사회보험제도도 통합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정치적으로 더 많은 직업그룹을 포함시켰으며(Tsakloglou, 1990), 어떤 국제 기준과 비교해 보아도 고소득층에 대한 낮은 과세 수준을 인상하거나 이들의 잘 알려진 탈세 관행을 철폐하려 하지 않았다(Papadopoulos & Roumpakis, 2012). 이러한 관행들로 인해 그리스 복지 국가는 빈약한 재정의 경로 의 존적인 궤적으로 접어들었고, 주로 정규직 근로자에게만 제공되는 사회 적 급여의 분절화 된 특성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림 5-2〕 그리스의 GDP 대비 공공부채비율(%) 변화 추세: 1960~2012년

자료: IMF(2011);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세미나(2012.5.31.) 자료집 <그래프 10.1> 재인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부채 위기를 그리스의 복지국가 확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좀 과장된 면이 있다. 물론 〈표 5-1〉을 보면 1980년대 1인

당 사회복지지출은 크게 증가했고, 1990년대에는 서서히 증가하다가 구분 1980 1985 1990 1995 2000 2005 2009 2010 2011 룩셈부르크 5,600 6,130 8,170 10,040 11,970 15,000 16,270 15,590 15,140

자료: Authors elaboration. OECD, Social Expenditure: Aggregated Data, https://stats.oecd.org

그리스 위기 원인에 대한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그룹은 구조적 요인의 설명력을 강조하며, 거버넌스 구조 및 유로존의 경제 역학, 특히 유로존 내에서의 그리스의 경제 실적에서 위기의 근원을 찾는다(Lapavitsas et al., 2010; Streeck, 2013).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의 유로존 가 입은 은행 및 금융 부문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분야에 대해서는 적합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당시 그리스는 자국 통화인 드라크마화의 반복적인 평 가절하 정책에 의존하고 있었다. 사실 그리스의 2001년 유로존 가입으로 인한 주요 경제적 결과 중 하나는 준주변국으로서 그리스와 여타 EU 중 심국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던 생산성 및 경쟁력 격차의 폭이 더욱 확대되 었다는 것이다(Lapavitsas 등, 2010 참조). 이와 같은 불균형은 1981년 그리스의 EEC 가입 이후 나타나기 시작했다(Fotopoulos, 1993).

유로화 도입 이후, 그리스의 경제성장은 주로 내수 진작, 건설 및 부동 산 부문에 대한 투자(Brissimis, Garganas & Hall, 2012 참조)와 국내 뿐 아니라 보다 발칸지역, 키프로스, 터키에서의 금융 및 은행 서비스 확 대와 보다 일반적으로는 서비스 부문 확대에 의해 이루어진 반면, 같은 시기에 기술, 연구, 혁신에 대한 민간부문 투자는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 했다. 또한 그리스 생산체제가 중소기업(대부분 가족 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도 계속 진행되었다. 중소기업들은 불가리아 같은 인접국에 존재하 는 상당한 규모의 지하경제로부터 지속적인 이익을 얻었는데, 지하경제 에서는 비용을 낮추기 위해 사회보험이 필요 없는 저숙련 상태의 불안정 한 노동자(precarious labour)를 주로 고용했다(Karantinos, 2006).

유로존에서 그리스의 준주변국 자본주의 경제는 수출보다는 내수와 정 부소비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균형 잡힌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었다. 독재정권 이후의 그리스 생산체제는 균형예산과

수출주도 경제성장이라는 유로존의 경제적 근거와 쉽게 어우러질 수 없 었다. 왜냐하면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는 통화 발행 또는 평가절하와 같은 주요 통화정책 도구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 었기 때문이다(Lapavitsas, 2011; Polychroniou, 2011).27)

Scharpf(2013: 121)가 제시한 바와 같이, 유로존 체제는 남부유럽 국 가들과 유럽 중심국가들 사이의 구조적 차이의 원인을 해결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유로존 금융기관들이 모든 회원국에 대해 균일한 여신 제공 정 책을 적용함에 따라 생산체제의 차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유로존은 과거 는 물론 현재에도 서로 다른 복지 및 생산 체제들 사이에 상호 이익이 되 는 상보성(complementarities)을 창출하는 경제 체제로 기능하지 못하 고 경제적인 불균형을 증폭시켰고, 독일과 같은 보다 발전된 시장경제국 들이 수출가 인하를 위해 그들의 뛰어난 생산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 에 상당한 수준의 임금제한(wage restraint)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 다. 이에 대해 Roberts(2012)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낮은 임금 과 합리적인 생산성 증가로 그리스나 스페인 같은 국가들은 독일과 같은 국가들보다 더 낮은 가격에 수출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1990년대부터 계 속된 장기간의 ‘자국 내 가치평가절하’ 기간 동안 독일의 노동비 인상도 중단되었다. 따라서 단위노동비 격차가 줄어들면서 다른 유럽국가들이 독일에 대해 가지던 엄청난 경쟁우위도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아래 그림은 그리스가 유로존 회원이 되었던 1999~2015년 동안 일어 난 이러한 변화를 그래프로 보여 준다. 그리스의 임금수준은 독일보다 지 속적으로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었으나, 그리스의 단위노동비용(ULC)은 독일보다 상당히 높았고 대상 기간 동안 크게 증가했다. ‘고평가된 실질

27) 포르투갈과 아일랜드 같은 다른 EU준주변국들도 이와 유사한 길을 걸었다(Mansori, 2011).

환율’의 영향은 2001~2009년 동안 ULC와 임금 사이의 평행적인 추세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독일 ULC 그리스 ULC 독일 LP

따라서 독일 등 EU 핵심국가들은 임금인상을 제한하면서 높은 생산성 을 유지하고 무역흑자를 달성할 수 있었던 반면(Lapavitsas 등, 2010), 그리스 같이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생산성 낮은 국가들이 선택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유로화로 차입하는 것이었

따라서 독일 등 EU 핵심국가들은 임금인상을 제한하면서 높은 생산성 을 유지하고 무역흑자를 달성할 수 있었던 반면(Lapavitsas 등, 2010), 그리스 같이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생산성 낮은 국가들이 선택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유로화로 차입하는 것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