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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권리로서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을 검토하기 위해서 개인의 권리가 어떻게 사회적 맥락에서 보장될 수 있을지에 관한 웨스틴(A. F. Westin)의 통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개인이나 단체 또는 기관이 스스로에 관하여 타인과 의사소통을 함에 있어서 그 시기, 방법과 정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서 프라이버시권을 정의한다.12)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권리가 사회적인 관계를

10) 김종철, 2001, “헌법적 기본권으로서의 개인정보통제권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 인터넷법률 제4호: 40-43면.

11) 로렌스 래식, 김정오 옮김, 2006, 코드 2.0, 서울, 나남: 451-458면.

설정한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권은 구체적으로 고립성(solitude), 친밀성(intimacy), 은닉성(reserve), 익명성(anonymity)이라는 성질로 구성된다.

‘고립성(solitude)’은 평온하게 타인이나 공공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친밀성(intimacy)은 둘 사이에서나 혹은 개인적으로 서로에 밀착하여 편안함과 솔직함을 느끼는 것으로서 부부관계, 가족관계, 친목회 등이 그 예이다.

‘은닉성(reserve)’은 원치 않는 침해로부터 심리적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한계를 설정하는 경우다. 인간의 삶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친밀성을 갖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게 마련이지만 아주 친밀한 관계라 할지라도 타인과 공유하지 않고 자신만 갖고 있고자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것이거나 아주 성스러운 것, 치욕스런 것, 표현하기에 불경스런 것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러한 은닉성의 요소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정신적 거리(mental distance)’ 혹은 사회적 관계에서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를 만들어 의사소통을 한다.

‘익명성(anonymity)은 인간이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게 되는 경우에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감시받지 않는 상황에서의 자유로운 행동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 필요한 것이다. 익명성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익명성이 개인에게 새로운 자아정체성을 발견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13) 또한 익명성은 연령이나 성별 같은 사회적 정체성의 영향을 배제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보다 평등한 상황을 설정할 수 있게 해준다.14)

12) Alan F. Westin, 1970, Privacy and freedom (Vol. 67). New York: Atheneum. p. 7; "the claim of individuals, groups, or institutions to determine for themselves when, how, and to what extent information about them is communicated to others".

13) Elizabeth M. Reid, 1991, Electropolis: Communication and community on internet relay chat. Melbourne, University of Melbourne: pp.6-19.

웨스틴이 지적하는 프라이버시권으로서 정보프라이버시를 바라본다면, 개인 정보자기결정권이라는 헌법적 권리는 단순히 인격적 가치의 보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개인의 존엄성, 자아정체성, 창조성, 자율성과 연결점을 형성함으로써,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존엄과 자율성 내지 자유권의 핵심이념인 자기결정권의 근원적 전제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2.2.2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우리나라에서는 정보프라이버시권을 헌법상의 권리로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으로 파악한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판시한 바 있다.15)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 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 할 수 있는 권리 이다. 즉 정보주체가 개인정보의 공개와 이용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보호대상이 되는 개인정보는 개인의 신체, 신념, 사회적 지위, 신분 등과 같이 개인의 인격주체성을 특징짓는 사항으로서 그 개인의 동일성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일체의 정보라고 할 수 있고, 반드시 개인의 내밀한 영역이나 사사(私事)의 영역에 속하는 정보에 국한되지 않고 공적 생활에서 형성되었거나 이미 공개된 개인정보까지 포함한다. 또한 그러한 개인정보를 대상으로 한 조사·수집·보관·처리·이용 등의 행위는 모두 원칙적으로 개인 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에 해당한다.”

14) Joseph B. Walther & Judee K. Burgoon, 1992, “Relational communication in computer‐

mediated interaction”, Human communication research, 19(1): pp. 50-88.

15) 헌재 2005. 5. 26. 99헌마513, 주민등록법 제17조의8 등 위헌확인 등.

하지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헌법적 근거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고 있다.

김일환 교수는 ‘정보자기결정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관련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겠으나 헌법 제10조에 대해 특별법적 성격을 가지는 제17조의 규율내용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라고 한다. 정보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는 오늘날, 헌법 제17조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는 사행활의 평온을 침해받지 아니하고 사생활의 비밀을 함부로 공개당하지 아니할 권리로서 자신에 관한 정보를 관리 통제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22)

이와 관련한 판례도 있다. 자신에 관한 정보를 스스로 관리, 통제 할 수 있는 권리가 인격권, 자유권의 일종이며, 이것이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프라이버시권 이라는 판례이다.23) 대법원 또한 헌법 제10조와 제17조를 적용하여 이른바 ‘개인정 보자기결정권’이 보장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24)

정리하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가 갖는 인격적 가치로부터 파생되는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의 핵심내용인 자기결정권과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보장 양자 모두를 종합하여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근거 내지 성격을 결정하여야 한다고 본다. 더 나아가, 아래에서 검토하는 바와 같이 개인정보의 공공재적 성격으로 인해서 그 제공과 제공에 따른 편익의 선택권 또한 개인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22) 김일환, 앞의 논문(주 17): 101-102면 참조.

23) 서울고등법원 1995. 8. 24. 선고 94구39262 판결. 하집 1995(2)464 참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불가침은 사생활의 내용을 공개당하지 아니할 권리, 사생활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개 를 방해받지 아니할 권리, 그리고 자신에 관한 정보를 스스로 관리 통제할 수 있는 권리 등 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로서 인격권 자유권의 일종인데 오늘날 정보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 면서 그 보고가 절실하여 이를 국가가 보호하여 주지 아니하는 경우 기본권이 바로 침해를 받는 직접적 권리다.”

24) 대법원 1998. 7. 24. 선고 96다 42789 판결: “헌법 제 10조와 제 17조의 헌법 규정은 개인의 사생활 활동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되거나 사생활이 함부로 공개되지 아니할 소극적인 권리는 물론, 오늘날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 는 적극적인 권리까지도 보장하려는 데에 그 취지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