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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경제적 적응 우수 사례

4.1.1. 금산군의 J씨(필리핀 출신) 가족

J씨(46세)는 국제결혼을 하고 한국에 거주한 지 11년 4개월이 되었으며 남편(49세)과의 사이에 2녀(초등학생)를 두고 있다. 주중(일요일‧공휴일 제 외) 내내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루에 3~9시간 요양보호 일을 한 다. J씨는 요양보호사 일을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도와드리고 싶어서 시작 했다. 일이 힘들다고 남편이 말렸지만 J씨가 고집해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 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집에서 돌보았는데 그때 딸 들도 아픈 아버지를 외면하고 외로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힘들고 외로 운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 일로는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받고 있다. J씨는 요양보호사 활동을 하면 서 농외 소득을 올리면서 삶의 보람도 느낀다고 하였다.

4.1.2. 횡성 다림촌(多林寸)

농촌지역 다문화가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 안정적 가정생활을 이룰 수 있도록 하며, 아울러 노인들의 일자리 지원을 위해 다림촌(다문화음식 점)을 운영하고 있다. 다림촌(多林寸)은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수용하고 이해하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사회’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서 로 다른 개개인이 어울려 작은 마을을 이룬다’는 것이다. 다문화음식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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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촌은 다문화가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고자 추진해온 여성결혼이민 자들의 일자리 사업이다.

다림촌의 추진 경과를 살펴보면, 2010년 5월에 횡성군 사회복지법인 원 주가톨릭사회복지회가 다림촌 건물을 매입하였다. 2010년 6월에 금융감독 원지정기탁‧서울시공동모금회 지원사업에 공모하여 다문화음식점 시설설 비 및 취‧창업전문교육, 음식조리교육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2010년 9월에 는 여성결혼이민자 5명이 시범적으로 다림촌 영업을 시작하였다. 2010년 12월에는 일반음식점 신고를 하였고, 2011년 4월에는 사회적기업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사업 인증을 신청하였다. 그리고 2011년 5월에는 다림촌을 정식 개소하였다(그림 3-10).

다림촌의 주요 메뉴를 살펴보면, 베트남 음식으로는 쇠고기 쌀국수 포 (pho)와 월남쌈 고이꾸온(Goi cuon)이 있고, 태국 음식으로는 파인애플 볶 음밥 카오팟 사파로드(Khao phat sapparod), 볶음면 팟타이(phad thai), 새 우 볶음밥 카오팟 꿍(Khao phat gung)이 있다. 일본 음식으로는 버섯 샤브 샤브와 메밀국수 소바(soba)가 있고, 캄보디아 음식으로는 춘권 롱티오 (spring roll)가 있으며, 중국 음식으로는 어향육사(어향이란 소스에 돼지고 기와 야채를 썰어 넣어 볶아서 만든 요리)가 있다. 그리고 한국 음식으로 는 손맛 칼국수, 손맛 만두국, 비빔밥이 있다. 칼국수와 만두는 횡성군종 합사회복지관의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들이 만든 것을 사용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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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10. 다림촌

4.2. 경제적 부적응 사례

4.2.1. 횡성군의 D씨(베트남 출신, 27세)

결혼정보회사의 소개로 결혼을 했으며 한국에는 2006년에 입국하였다.

딸(5세)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남편(38세)은 뇌성마비이고 간질이 있다.

남편은 농사일은 못하고 화각공예를 하고 있다. 남편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이고 장애수당도 받고 있다. 마을의 빈집을 월세 10만 원에 빌 려서 살고 있는데 겨울철에는 전기보일러의 사용으로 인해 전기세가 많이 나와 생활비가 부족하다. 부부싸움의 원인은 주로 돈 문제 때문이라고 한 다. D씨는 베트남에서 혼자 살고 계시는 친정아버지를 도와주고 싶으나 자 신들의 경제적 형편이 너무 어려워 송금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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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였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사는 시부모님은 양식이나 반찬 정도를 도와 주고 있다. D씨는 경제적으로 비전이 없어서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 고 하였다.

4.2.2. 담양군의 T씨(캄보디아 출신, 25세)

T씨는 2006년에 한국에 입국했으며, 남편과 시어머니, 아들(3세)과 함께 살았다. 남편(47세)은 쌀농사(2,000평)를 했는데 태풍으로 인해서 수확량이 감소하고 쌀값이 폭락하여 부채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비 닐하우스 농사까지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 함께 죽자.”고 말하며 방안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남편과 시어머니는 죽고, 부인과 아들은 목숨은 건졌지만 몸에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T씨는 앞으로 어린 아들과 살아갈 길이 막막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