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적 풍경’은 개인적인 심상(心象)의 풍경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적인 세계는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 끼인 모든 인생들이 탐구해온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거창한 표현일 수 있겠으나 ‘여가적 풍경’의 표현은 인간 의 소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미적체험뿐만 아니라 창조행위가 사회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이 점차 형성되어감에 따라, 내 작업에는 새로운 의무감이 주어졌다. 이 무게감은 기분 좋은 통증처럼 나 를 단련시켜왔다. 이 과정은 바로 사적인 만족의 추구로부터 보편적인 가치 의 발견이다. 나에게 사명감은 이렇게 주어졌다. 논문은 이러한 발전선상에 있다. 수행될 최초의 작업은 ‘여가적 풍경’의 미학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다. 작품의 형성 이전에 도출된 사유를 탐구하면서 미학적 성립을 가늠해보 는 것이다. 먼저 나는 ‘여가적 풍경’에 사용된 단어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으 로 본문을 시작하겠다. ‘여가’와 ‘여가적’이라는 말에서 통용되는 대강의 뉘앙 스는 있겠지만, 내가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여가적’이라는 형용적인 표현에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명백한 심리상태가 함의되어 있다. 이 내적태 도는 동양철학의 ‘무위(無爲)’와 닮았다. 특히 송대(宋代)에서 활발하게 나타 난 ‘여가(餘暇)’2) 문화는 ‘여가적 풍경’의 성격을 파악할 중요한 토대가 된 다. 이는 개인적이고 내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동시대의 문화현상과 유사하다.
2) 송대(宋代) 미학에서 ‘휴한(休閑)’은 ‘쉼’이나 ‘여기’나 ‘여가’를 의미한다. 이는 영 어로 ‘Leisure’로 변역된다. 본문에서 단어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휴한’을 ‘여가’
라는 단어로 통일하여 사용하였다.
(1) ‘여가’의 정의
‘여가(餘暇)’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여가’는 “일이 없어 남는 시간”3)이다. 인간은 삶은 어떤 식으로든지 사회에 속하기 마련인데, 여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책무(責務)나 의무(義務)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을 의미한다. 현대에 이르러서 ‘여가’는 순수한 해방보다는 활동의 적극 성을 갖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육체적인 노동의 절대적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여가’는 점차 ‘비워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하는 문제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가’는 보다 사회적인 활동으로써의 레저(Leisure) 에 가까워졌다. 대중(大衆)에게 ‘여가’는 기본적인 일상의 요구가 되었고, 바 로 ‘어떻게 놀 것인가’하는 화두로 다루어지게 되었다.4) 그래서 사람들은 점 차 ‘여가’의 물리적인 시간과 행위의 질적인 만족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인간에게 참된 만족은 정신적인 활동에 달려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고조됨에 따라서 ‘자유’를 ‘할 것’으로 채우기보다는 ‘공백(空白)’으로 비워내 기 시작했다. 우리의 신체적인 여유로움이 최종적으로는 정신적 ‘유(遊)’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물리적인 시간에서의 자유’는 최종적인 목적 이라기보다는, ‘주체의 자유’를 위한 전제이다.5) 결과적으로 ‘여가’는 개인이 맛보는 내적인 자유를 뜻한다.
내가 ‘여가적 풍경’에서 사용한 ‘여가(餘暇)’의 의미는 이처럼 삶의 질적인 욕구를 채우는 사회적인 활동이라기보다는 내재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의미 한다. ‘여가’는 사실 마음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표현이 다. ‘여가적’이라는 언어선택에는 미학적인 함의가 있다는 것이다. 외부환경 으로부터의 해방은 현재의 나를 ‘무의미한’ 상태로 만든다. 사회적 의무라는
‘의미 상태’에서 벗어난 신체는 흐르는 시간에서 벗어나고, ‘공허(空虛)’의 심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검색일: 2021.3.2., https://stdict.korean.go.kr/).
4) 이철원, 『여가의 재해석』(서울:대한미디어, 2005), 156-7.
5) 陆庆祥, 「苏轼休闲审美思想研究(The Study on the Thought of the Leisure aesthetic in SuShi)」(浙江大学 博士/碩士學位論文, 2010), 11.
령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6) ‘여가적 풍경’에서의 ‘여가’는 무목적 (無目的), 무공리적(無公利的) 성질을 강조한다. 이러한 ‘자유’의 철학적 배경 은 동아시아의 ‘비움’의 미학으로 연결되었다. 즉 ‘무위(無爲)’로 귀결된다.
우리는 과거에 동아시아의 서화예술(書畵藝術)을 문인(文人)들의 ‘여기활동 (餘技活動)’으로 이룩한 높은 차원의 예술경지로 받아들인다. 과거 사대부문 인(士大夫文人)들이 ‘여기적(餘技的)’ 태도로 임했던 예술행위는 비전문적이 면서 또한 무목적성을 띠는데, 우리는 이 초연한 심리적 태도로부터 고차원 의 미학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 문인들의 ‘여기적’
활동에 담긴 미학적 가치를 주목하게 된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여가적’이라는 단어는 전통의 ‘여기적(餘技的)’ 가치 를 담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왜냐하면 ‘여기(餘技)’라는 말이 동양미학의 근본적인 정신을 대표하기에, 이는 과거로 귀속된 언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가(餘暇)’라는 단어의 선택에는 전통의 ‘여기적(餘技的)’
가치를 현대적인 의미로 되살리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이해를 확보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외연(外緣)을 넓히는 것이다. 따라서 ‘여 가’는 ‘휴식(休息)’일 수도 있으며, ‘놀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역의 차원 끝에는 ‘정신적 해방’이라는 궁극의 미적체험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다. 명확하게 고정되지 않은 단어사용은 의도적이다. 단어적인 불명확함으로 부터 ‘직설(直說)’을 피하고, 작품으로 ‘은유(隱喩)’한다. ‘여가적 풍경’에 대 한 어휘적인 해석에는 여지가 있지만, 이는 점차 작품의 미묘한 뉘앙스로 차 분히 제시되고 있다.
6) 陆庆祥, 위의 논문, 11.
(2) ‘여가’의 개념과 특징
‘여가적(餘暇的) 풍경’은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자유(自由)이다. 이는 신체 의 자유를 전제로 하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의미부여를 할 수 있음 을 의미한다. 나에게 ‘여가적 풍경’은 현실의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 다. 송대(宋代)의 ‘여가(餘暇)’에는 이처럼 적극적인 쉼의 의미가 잘 담겨있 다. 이 미학적 특징은 현실을 피동적(被動的)으로 수용하고, 적극적인 감수성 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아니다. ‘여가’는 일삼는 것이 없고, 보잘것없어 무가 치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주체적인 적극성을 지니고 있다.7) ‘여 가’는 성숙한 심리상태의 미학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시선은 주체 성을 띠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이러한 미학적 태도로 세계를 바라보면, 현실의 삶은 변화하여 ‘우주(宇宙)’에 담긴 ‘미(美)’가 그 풍경 속으로 들어온 다는 것이다.
신체적 자유가 내재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내재적 자유는 시간의 여유로움이나 신체적 불구속의 상태에서도 ‘한심(閑心)’없다면 결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여가적 풍경’의 성취는 내밀한 것이다. 적극적이고 능 동적인 ‘여가’의 획득은 확고한 내적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여가’의 심경 을 지닌 사람은 생활의 환경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염담 (恬淡)’하고 ‘자적(自適)’하게 하여서 ‘여가’의 내적 상태에 이른다.8) 반대로
‘여가’의 심경을 지니지 못하면, 물리적인 불구속에서도 외부의 현상에 이끌 려서 가게 된다. 이 경우에는 몸은 한가하지만, 결코 쉼을 누릴 수 없다.
또한, ‘여가’는 개인화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여가적 풍경’ 역시 내가 순수하게 체험한 세계이다. 그래서 ‘여가적 풍경’은 지극히 사적이고 깊이 내 면화된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풍경은 내적인 평화가 회복된 세계이
7) 彭鋒,『中國美學通史』 第5卷(宋金元卷)(江蘇:江蘇人民出版社, 2014), 39.
8) 陆庆祥, 앞의 논문, 11.
고, 참된 휴식으로 자신의 정신적 휴양을 누리는 정신적인 차원의 안식이 된 다. 이러한 미학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개체성(個體性)을 특징으로 삼는다.
‘여가는 현실의 업무 상태에 노예화된 의식을 해방한다. 확대된 자유는 능동 적인 존재 개인의 영역을 넓힌다. 이는 필연적인 작용이다. 그래서 결과적으 로 ‘여가’는 개인생명의 보호와 유지라고 할 수 있다.9) 내적인 자유를 지닌 사람이 능동적인 삶을 삶게 되듯이, ‘여가’는 미적체험에서도 주체성(主體性) 을 강조하게 된다. ‘여가적 풍경’의 시점에서 나는 오직 홀로 존재한다. 이는 참된 ‘여가’를 기대하는 자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고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가’의 심미적 태도는 자율성을 띠고 대상에 순수하게 접근한다.
이는 예술에 대한 동서양의 통일된 견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심미적 태도는 칸트(Immanuel Kant,1724-1804)의 미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미학에서 예술적인 체험은 ‘상상력’과 ‘이해력’이라는 자유로운 활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명확한 목적을 갖지 않지만, 특수한 목적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율적인 미적체험은 주관적이고 개별적이지만, 또한 보편성과 필연 성을 갖는다는 것이다.10) 그러나 ‘여가’는 심리적인 활동을 중심영역으로 삼 는 칸트식의 미적체험과는 차이점이 있다. 칸트의 미적체험에는 대상이 있으 며, 대상이 바로 ‘미(美)’가 된다. 반면에 ‘여가’는 하나의 특정한 대상을 필 수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의 활동자체가 곧 ‘여가’이기 때문 이다. 그래서 여가는 ‘고정된’ 심미적 활동보다는 ‘자유로운 실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11) 이러한 ‘여가’의 특성은 ‘여가적 풍경’에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여가’의 태도로 작품의 대상을 선택하는 일은 자연적이고 우주적(宇宙的) 귀 속이다. 그래서 미적체험을 위한 도해(圖解)의 대상을 발견하는 서구의 미적 태도와 거리가 멀다. 나에게 작품은 나와 동일시된다. 그곳에서 직접 내적인
‘여가’를 추가한다. 나는 ‘여가적’ 상황을 누리고, 그 자체로 만족한다.
9) 陆庆祥, 앞의 논문, 13.
10) 陆庆祥, 앞의 논문, 12.
11) 陆庆祥, 앞의 논문,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