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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가적 풍경’에 내재된 ‘의경’

1) 대자연의 풍광

산수화가는 현실의 산과 물을 ‘음양(陰陽)’의 인식체계라는 ‘우주적(宇宙 的)’ 원리의 메타포(Metaphor)210)로 이끌어냈다. 산수화는 이러한 독특한 정 신세계를 구현하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 산수화가들이 본 자연(自然)은 장 대(長大)한 ‘우주(宇宙)’의 실존적 대표자였다. 자연의 무한함은 인간과 극명 한 대비를 이룬다. 산수화 화면 안을 구성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산수화 에 담긴 자연의 스케일(Scale)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수화가가 ‘자

210) 김현숙, 「근대 산수 인물화를 통한 리얼리티 읽기」, 『미술사99프로젝트』

2000, 37.

[참고도판 4] 제주 올레길에서 촬영한 바다 사진(촬영일: 2021.8.28.).

연(自然)’의 영험함에 자신을 귀속하고자 ‘자연’을 표현한다면, 폭넓은 원경 (遠景) 자연의 풍광을 화면 안에 그려 넣는다. 자연은 영속적(永續的)이다.

과거에나 현재에도 여전히 그것의 영험함을 지키고 있다. 대자연(大自然)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정신을 기탁할 만한 견고한 대상으로 존재한다.

‘여가적 풍경’은 고대산수화가의 심리적인 배경을 공유한다. 내가 그려내 는 풍경이 비교적 현대적인 풍경화일지언정 ‘여가적 풍경’에는 은일(隱逸)의 저의(底意)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참된 ‘여가(餘暇)’를 찾아서, 나는 광대한 자연의 모습으로 향한다. 그래서 도시가 한눈에 보일만 한 정도의 산중턱을 오르기도 하며, 무한하게 펼쳐진 대해(大海)나 큰 호숫가를 찾기도 한다. 또 한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이나, 멀리 뻗은 들판에서도 큰 자연을 맛보고 참 된 휴식과 회복을 누린다. 내밀한 기대감을 갖고 맞이하는 대자연은 새롭게 인식된다. 대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원시자연의 존재를 맞닥뜨리게 한다. 대자연의 ‘영험(靈驗)’함을 마주하면 우리의 잠들었던 영 (靈)이 깨어난다. 이러한 체험의 장소는 곧바로 ‘여가적 풍경’으로 환원된다.

(1) 대자연의 공간성

작품 <소리의 흔적>([작품도판 5])은 화판 네 개를 이어붙인 대형작품이 다. 100호 사이즈 네 판의 장지(壯紙) 위에 광폭의 바다가 그려졌다. 나는 이 바다를 직접 보았다. 바다의 수평선은 무한히 뻗어갔다. 그리고 그것의 세월은 영원한 것처럼 보였다. 이 바다의 큰 호흡은 나의 작은 숨이 기댈만 한 것이었다. 나는 바다의 풍광을 작품으로 옮겼다. 내게 다가온 바다의 인 상은 ‘넘실대는 파도의 운동’이라기보다는 초월적인 관념에 가까웠다. 나는 대자연(大自然)에 드리운 존재를 느꼈고, 작품에서 그것을 되찾고 싶었다. 실 제 바다는 무엇보다 푸르다.([참고도판 4]) 그러나 나의 작품에서 바다는 탈 색되고, 대신 두터운 호분의 물질감이 남았다. 하늘과의 경계인 수평선은 희 미해지고, 문득문득 돌섬이 흔적처럼 남아있다. 이 작품에서 볼 것은 오히려 덜어졌다. 목적을 잃은 시선은 내면의 깊은 곳을 환기한다. 대자연의 풍광을

마주한 이의 자세는 겸허해진다.

때로 우리는 이러한 대관적(大觀的) 풍경화를 간편하게 낭만적인 취향으 로 판단하지만, 이 시선의 깊이를 따지고 보면 진지하고도 어려운 일임을 알 게 된다.211) 회화로 환원된 대자연은 그 어떤 풍경보다 시선의 깊이를 요구 한다. 대자연의 시간은 적막한 시선의 깊이만큼이나 무한대로 늘어난다. 우리 는 대자연 앞에서 영원을 맛보는 것이다. 대자연의 풍광을 담은 회화는 현대 에서도 쉽게 사용되는 작품의 소재(素材)이다. 대자연으로 향하는 회화는 아 마도 제의적(祭儀的)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회화장르 중 하나일 것이 다. 이것이 대자연의 풍광이 갖는 장소적 특수성이다.

211) “世人止知吾落筆作畫,卻不知畫非易事

郭熙·郭思 撰, 『四庫全書總目提要』卷112 子部 22『林泉高致集』,〈畫意〉.

[작품도판 4] <소리의 흔적>, 2021, 장지에 혼합매체, 162.2×521.2cm

(2) 자연의 총체적 수용

화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자연(自然)을 관찰한다. 이는 대자연(大自然) 의 견고함과 변화무쌍함의 조화로움을 체험하고, 현상을 초월하는 ‘경계(境 界)’를 발견하기 위함이다. 미우인(米友仁, 1090?-1170?)212)은 자연에 대한 관찰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밤비가 개려하고, 새벽안개가 이미 녹으면 그 모습이 이와 같은데, 내가 대개 소수와 상수의 수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장난 삼아 그려서 무어라 이름할 수 없지만, 신기한 정취는 고금(古今)의 화가들 부류는 아니다.”213) 미우인은 자연을 특별한 변화의 모습을 보고 그림으로 그려냄으로 ‘신기한 정취’라는 미적체험을 획득했다. 대자연의 원시적인 힘은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자연의 변화는 가끔씩 놀라운 장관을 연출해낸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이 주는 특별한 미적인 체험을 경험하기 위해 명승지를 찾는다. 이러한 체험은 우리에게 큰 해방감을 줄뿐만 아니라 미적체험의 폭 을 확대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여가적(餘暇的) 풍경’이 자연의 ‘신기한 정취’를 곧바로 복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의 놀라운 드라마가 분명 우 리의 심금을 울리긴 하지만, ‘여가적 풍경’의 이미지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피 한다. 왜냐하면, 일몰이나 일출처럼 자연의 극적인 변화는 너무 ‘감정적’이기 때문에, 비록 이것이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나 정제가 필요하다. 감정은 쉽게 소모되지만, 뜻은 깊숙이 남는다. 그래서 초연한 세계를 꿈꾸는 화가는 자연 으로부터의 체험도 일회적인 기쁨에 만족하지 않고, 자연의 다채로운 모습을 모두 수용하고 종합해가는 것이다. 긴 시간을 두고 자연을 살피는 것이다.

이것이 석도(石濤)가 말하는 ‘수진기봉(搜盡奇峰)’214)이고, 곽희(郭熙)가 제

212) 중국 송나라의 서화가. 자는 원휘(元暉). 미불(米芾)의 아들로, 예서(隷書)를 잘 썼고 산수화를 잘 그렸으며, 그의 아버지를 ‘대미(大米)’라 부른 데 대하여 ‘소 미(小米)’라고 불리었다.

213) 유검화, 『중국고대화론유편 - 제4편 산수2』, 김대원 옮김(서울:소명출판, 2010), 25.

214) “搜盡奇峰打草稿也山川與予神遇而跡化也,所以終歸之於大滌也

시하는 ‘흉중나열(胸中羅列)’215)의 태도가 아닐까. 이러한 깨달음은 내가 다 양한 자연풍경들을 작품으로 옮기고 표현의 결과를 반성하면서 깨달은 바이 다.

대자연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자연’의 존재에 이르기 위함이다.

石濤, 『中國畫論叢書 - 石濤畫語錄』, 兪劍華标点註譯(北京:人民美術出版社, 1962), 43.

215) 박재석은 자신의 논문에서 흉중나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임천고치집은 이러한 과정을 흉중나열이라고 말하는데, 이때 만약 주체의 구성 작용을 강조하고 마음속에서 형성되는 주관적 이미지를 자연 대상의 고유한 객 관적 특성보다 더욱 중요시하게 되면 그것은 본고에서 말하는 주관적 이상주의 로 고양되게 되는 것이다.”

박재석, 앞의 논문, 75.

[작품도판 5] <흙탕물>, 2016, 장지에 혼합매체, 130.0×162.2cm

‘여가적 풍경’의 미감이 지나치게 감각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자 연은 스스로 지극히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함으로 우리를 감정에 빠트리기도 한다. 감정적인 상태에서 지성은 둔해진다. 어느 한 방향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미술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여가적 풍경’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예 술의 내용을 따르자면, 지나친 감각을 피하는 절제가 요구된다. 대자연의 다 양한 모습 가운데에서도 적절한 내용과 외형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 가적’ 의식에 걸맞은 옷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반성적 예시가 되는 작품을 살펴보겠다. <흙탕물>([작품도판 5])은 ‘여가적 풍경’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던 과도기의 작품이다. 우리는 때때로 해 지는 서쪽 하늘을 본다. 구 름과 빛이 수분 내에 만들어내는 금빛향연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정을 맛 보게 된다. <흙탕물>은 이 감정을 서둘러 되찾는다. 금빛향연을 강한 물질성 으로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요지는 이러한 회화가 ‘여가적 풍경’의 초연함과 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다채로운 체험은 그것을 아우르는 통찰력 을 기르기 위함이다. 이 말은 현실적인 체험이 주는 다양한 감정에 휘몰리기 보다는 순화된 감정으로 고요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여가적 풍경’은 ‘의경’의 총체적인 미감을 추구하는 지적인 작업태도라고 할 수 있 다. 과거와는 변화된 작업태도이다. 지금의 나는 이러한 순화된 정서에 걸맞 은 자연의 모습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