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가적 풍경’에 내재된 ‘의경’
3) 도시적 풍경
‘여가적 풍경’이 동시대의 자연경관을 포착한다.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나의 생활환경은 곧바로 작품화된다. 내가 주로 생활하는 공간은 도시적이다.
서울은 항상 사람이 붐빈다. 나도 그 속에서 바쁜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 런데 일상의 분주함 속에 내가 은밀하게 즐기는 즐거움이 있다. 공휴일의 이 른 아침에 손님이 없는 커피숍을 방문하거나, 밤늦은 시간에 홀로 공원을 산 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귀가하고 없지만, 그곳에는 사람들의 남겨진 발자취 가 있다. 인적이 남은 빈자리는 또 다른 정경을 연출한다. 장소는 변화되어 서 새로운 가능성을 갖는다. 이는 정신적인 작용이다. 인적만 남은 장소에는 [참고도판 7]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타임스퀘어(Time Square)>, 1997, C-Print, 185×249cm
지나갔던 기억과 감정이 다시 피어오른다. 나는 그 적막한 분위기의 고요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공간 머물렀던 정서와 의미를 작품으로 실행한다.
(1) 도시의 빈 공간
‘여가적 풍경’에서 ‘비움’의 원리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는 동양예술론이 말하는 ‘허(虛)’의 개념이다. ‘허(虛)’는 ‘기(氣)’의 순환하는 작용을 불러온 다.224) 더 이상 빈자리는 ‘없음’이 아니다. ‘늦가을의 헐벗은 산’이 왕유(王 乳)의 독특한 정취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비워진 도시는 현대인의 새로운 ‘경 계(境界)’를 보여준다.([참고도판 7]) ‘무(無)’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고 순환 의 가능성으로 채워지듯이, 내 작품에서 그려진 도시의 빈자리는 새로운 감 수성과 의미로 확장된다. 이것은 대상과 나의 공간이 만드는 상생적(相生的)
224) 푸전위안, 앞의 책, 346.
[작품도판 9] <하얀 광장>, 2018, 장지에 혼합매체, 130.3×193.9cm
작용이다. 도시적 풍경에서도 비워 진 세계는 ‘여가적’ 정서가 머무를 만한 공간으로 회복될 수 있다.
작품 <하얀 광장>([작품도판 9]) 은 교내(校內)의 법대동(法大洞) 사이에 위치한 석조광장(石造廣場) 을 그려내고 있다. 크지 않은 광장 의 공간에는 침엽수가 심겨진 조경 화분이 병렬로 나란히 놓여 있다.
조경나무는 인간적으로 가꾸어진 자연의 모습이다. 공간에 비해서 소박하고 간소하게 표현된 자연의 모습은 전체를 대표한다. 가을 산 의 쓸쓸한 정경을 노래했던 왕유 (王維)의 미감이 현대적 풍경에서 도 되살아난다.225) 도시적 풍경은
‘여가적’ 시선 안에서 여전히 우주 (宇宙)의 순환을 되살리며, 현실의 새로운 ‘여가적 풍경’으로 가꾸어 낸다.
그림의 소재로써의 카페는 전통 적으로 ‘여가적’ 정서와 유사한 정 취를 표현하기 위해서 많이 사용되 었다.([참고도판 8]) 현대의 생활에 서 고요한 음악과 커피 향이 나는 225) 편역자는 ‘텅 빈 산-공산’을 “아무도 발길을 들여 놓지 않는 듯한 깊고 고요 한 산”으로 의역한다. 그리고 이러한 산의 속성을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 (桃 花源)’같은 유토피아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왕유(王維), 위의 책, 86.
[참고도판 8]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카페테라스(Café Terrace)>, 1988, 캔버스에 유채, 81×65.5cm
[작품도판 10] <하얀 식탁 1>, 2019, 장지 에 혼합매체, 97.0×130.3cm
카페가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 휴식이거나 여유로움, 그리고 마음의 회복을 의미한다. 도시적 풍경들 가운데서 카페는 ‘여가적’ 정서를 담기에 아주 적합 한 대상이다. 나는 카페를 종종 그린다. 내가 실제로 카페에서 편안한 시간 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의 시간은 도심에서 마음의 ‘여 가’를 찾는 잠깐의 정신적인 휴식이다.
내가 카페를 그릴 때 특히 주목하는 요소는 공간적인 조형미, 그리고 대 부분의 카페 그렇듯 잘 가꾸어 놓은 조경이다. 실내의 공간인 만큼 직선으로 이루어진 입체의 공간을 차분한 율동으로 순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카페를 그리면 ‘여가적 풍경’에 대한 연구 과정은 다음의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명 확하다. <하얀 식탁 1>([작품도판 10])과 <햐얀 식탁 2>([작품도판 11])는 순서대로 제작되었다. 둘을 비교해보면 먼저 그린 <하얀 식탁 1>보다 카페의 조형적인 운동력은 줄었다. 그리고 ‘여가적 풍경’의 내밀한 정서를 보여주기 [작품도판 11] <하얀 식탁 2>, 2019, 장지에 혼합매체, 130.3×162.2cm
적합한 화면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새롭게 그린 <하얀 식탁 2>는 2배로 커진 화판에 훨씬 더 적은 것들이 그려졌다. 거기에는 고요한 정 취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최소한의 요소만이 그려졌다. 다시 그려진 작품에 서 카페의 빈 공간은 ‘여가적’ 미감을 분위기로써 더욱 잘 나타내고 있다. 비 워진 도시의 풍경은 광활한 자연의 포용력에 비하면 약한 것이지만, 하루 삶 의 무게감 정도는 덜만한 ‘여가적’ 가치는 충분히 지니고 있다. 마치 과거 사 대부문인(士大夫文人)이 일상에서도 원림(園林)을 조성하고 무위적(無爲的) 활동을 통해서 정신해방을 추구했던 것처럼,226) 나는 도시의 한 카페에서 하 루치의 ‘여가’를 누린다.
(2) 인적이 남은 장소
‘여가적 풍경’의 시각은 공간의 기억을 더듬는다. ‘여가적 풍경’은 망막을 때린 감각적인 풍경이 아니라, 고요한 시선으로 삶에 대한 추억과 미래에 대 한 아득함을 바라본 세계이다. 대상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 미감으로 승화된 다. ‘여가적 풍경’에서 표현의 대상은 공간인데, 이 공간은 대체로 비워진다.
‘허(虛)’의 개념으로 이를 표현하자면, 공간은 ‘비움’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도시생활의 풍경을 그리기면서 인간적인 요소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그 렇지만 조형적 운동력을 조절하고 필선(筆線)과 색조(色調)를 통일함으로써 현대적 공간의 ‘여가적 풍경’의 정취를 만들 수 있다. 이 공간의 특성을 해치 지 않는 선에서 인적(人跡)이 남은 풍경은 특별한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추 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참고도판 9])를 보면 갈필(渴筆)의 구불구불한 선(線)을 사용하여 나무와 집이 있는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메마른 필선의 떨림이 나무 서너 그루와 집을 그려냈다. 대 관산수(大觀山水)에 비하자면 인간적인 요소인 건축물이 화면에 커다란 비율 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희는 대상적 요소와 조형적 요소를 활용하여 서 인간의 감수성(感受性)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이는 훌륭한 연출이다. 필선
226) 위첨첨, 앞의 논문, 43.
이 주는 갈증과 투박한 형태는 적막감을 극대화한다. 최종적인 ‘여가’는 무한 한 자연(自然)으로의 귀일(歸逸)이겠지만, 때로는 인간의 감수(感受)에 무게 를 두고 공간에 대한 진한 정서를 연출할 수 있다.
예찬(倪瓚, 1301-1374)의 작품 〈어장추제도(漁莊秋霽圖)([참고도판 10]) 와 <용슬재도(容膝齋圖)>([참고도판 11])
를
보면 쓸쓸하고 소쇄한 정취가 담 겨있다. 그는 두 작품에서 건조한 속필을 활용하여 긁어낸 듯한 필선을 보여 준다. 두 작품은 모두 잎을 떨군 수 그루의 나무가 바위틈에서 청초하게 자 라났다. 조형요소와 표현대상을 결합하여서 일관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두 작품 안에 그려진 대상이 차이가 있다. <용슬재도>에는 빈 정자가 간결한 필 치로 그려졌다. 이는 인간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연출이다. 이 정 자는 예찬과 관객의 눈이 머무르는 집이다. 나무와 바위 그리고 물이 만드는 청초하고 고결한 정신이 있다면, 정자가 그려진 후자의 그림에서는 인간적인 향수가 강하게 피어난다. 우리는 이 집을 더 익숙해 하고, 이를 발견했을 때 반가워하기 마련이다. 친숙함은 감수를 고조시킨다.사람은 없지만, 누군가 머물고 떠난 빈자리는 적막감을 불러일으킨다. 자 연의 정취와 인간적인 요소가 결합되면서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이 감 정은 발산하는 힘이기보다는 초연한 정신이다. 인간이 머물렀던 흔적을 화면 안에 의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긴 시간을 누적시키고 깊은 역사감(歷史感)과 세월감(歲月感)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인간적 요소는 산수의 영험함을 침범 [참고도판 9] 김정희(金正喜), <세한도(歲寒圖)>, 1844, 종이에 수묵, 23×69.2cm
하기 때문에 사용에는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빈자리의 정서가 우선이라는 말이다. ‘여가적 풍경’ 먼저 살펴본 카페의 풍경들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요소 가 강조된 작품이 있다. <Rooftop A, B, C, D>([작품도판 12, 13, 14, 15]) 는 네 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시리즈작품이다. 이 공간은 근교의 한 카페에서 빌려왔다. 가장 조용한 곳을 찾는 습성을 따라서 여러 층을 방황하던 중에 결국 루프탑(Rooftop)에 올랐다. 야외에서 오래 견딜만한 날씨는 아니었지 [참고도판 10] 예찬, 〈어장추제도(漁莊秋霽圖)〉, 1355, 종이에 수묵, 96×47cm [참고도판 11] 예찬, <용슬재도(容膝齋圖)>, 1372, 종이에 수묵, 74.7×35.5cm
만, 아무도 없는 이 공간이 갖는 정취가 좋았다. 텅 빈 공간에 의자들은 어 질러진 채 놓여 있었다. 이 정취에는 오랜 시간이 쌓여있었다. ‘인적이 남은’
공간에 대한 추억은 <Rooftop> 시리즈를 통해서 다시 재생되었다. 이는 감 각적인 복원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기억과 함께 총제적인 감수성을 덧붙인 다. 인적이 스친 의자들은 회화의 공간에서 새로운 운율을 만든다. 카페의 빈 공간의 상생작용(相生作用)을 돕는다. 이 고용한 힘의 미동은 영원히 작 [작품도판 12] <Rooftop A>, 2018, 장지에 혼합매체, 73.2×103.2cm
[작품도판 13] <Rooftop C>, 2018, 장지에 혼합매체, 60.6×72.7cm [작품도판 14] <Rooftop B>, 2018, 장지에 혼합매체,73.2×103.2cm [작품도판 15] <Rooftop D>, 2018, 장지에 혼합매체, 50.3×33.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