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가적 풍경’에 내재된 ‘의경’
1) 공허와 쓸쓸함
‘텅 빈 공간’은 ‘공허(空虛)’한 느낌을 만든다. 먼저 살펴본 왕유(王維)의 시(詩)를 보면, 그는 쓸쓸한 정취를 나타내기 위해서 특별히 가을의 산을 ‘공 산(空山)’로 표현했다.257) ‘공산’은 ‘사람이 없는 산중’을 의미한다. ‘의경(意 境)’은 인적 드문 ‘빈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의도적으로 비워진 예술에서 우 리는 어떤 결핍을 목격한다. 사람과 사건들로 가득 찬 일상의 삶은 예술가에 의해서 ‘텅 빈 공간’으로 인도된다. 곧 우리의 시선은 이내 목적을 잃어버리 게 되고, 빈자리가 주는 ‘공허함’ 속에서 우리는 홀로 깊은 쓸쓸한 느낌을 체 험한다. 이 쓸쓸한 미감은 예랑(葉朗) 교수가 말하는 ‘의경’의 ‘적막감(寂寞 感)’과 동일한 것이다. 단조(短調)로 만들어진 음악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 나 노래되듯이, ‘공허’로 만들어진 쓸쓸함이라는 예술의 미감은 종결되지 않 는다.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건강하거나 병들었거나 상실감으로 비롯한 미감 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된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밝고 즐거운 활동으로 상황을 뒤집거나, 또 다른 방법은 그 슬픔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는 울어야 할 때는 울어야 한다. 왕유의 적적 (嫡嫡)한 심정은 매번 떨쳐 내거나 더 밝은 것으로 물리쳐야하는 성질의 문 제가 아니다. 자연(自然)은 일회적인 도피처라기보다는 슬픔을 마주하고 ‘관 조(觀照)’로 통찰력을 얻는 성숙의 장소가 된다.
<용해된 대지>([작품도판 22])에는 이러한 정서가 잘 나타나 있다. 한 방 향으로 길게 튀어나온 반도(半島)가 있는 이 그림은 중묵(中墨)으로 그려졌 다. 반도를 중심으로 아래에는 더 담해진 먹(墨)으로 바다가 채워지고, 위로 는 옅은 담묵(淡墨)이 하늘을 채우고 있다. 각 면적의 경계는 흘러내리고 있 다. 이는 창작시 가장 주안점을 둔 의도된 표현이다. 나는 ‘어느 흐린 날의 바닷가’가 내게 주었던 ‘적막과 쓸쓸함’에 매료되었다. 그 바다의 대기는 많
257) 왕유(王維) 외 다수, 앞의 책, 86.
은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체험은 공감각(共感覺)적이었다. 마음을 적시는 습 기가 충만하게 담긴 정경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한지(韓紙)의 매체적 특성과 수묵(水墨)기법을 활용한 미술을 이러한 미감을 오랫동안 표현해온 전통적인 재료였다. 완성된 작품은 수묵화처럼 먹(墨)의 농담으로 전체를 채 우고 있다. 쓸쓸한 미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모든 색채는 배제되었다. 왜냐하 면 색채는 너무 명확한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회색조의 풍경에서 남 겨진 것은 불분명한 바닷가의 인상이다. 많은 것이 비워진 ‘공허한’ 회화에서 깊은 감수성이 끌어올려진다. 구도를 보면 전통회화의 방식대로 대상의 형태 를 주관적으로 변형해가지 않는다. 내가 체험한 실제 바다의 사진은 가장 빠 른 스케치였다. <용해된 대지>는 사진 그대로의 구도를 유지하면서, 강한 물 질감(物質感)으로 대상을 환원해내고 있다. 대상은 불분명하게 제시되고, 순 간이 영원으로 고정된다. 그래서 해변의 풍경은 ‘적막한 반도’의 추상적인 인 [작품도판 22] <용해된 대지>, 2021, 장지에 콜라주와 혼합매체, 91.2×117.0cm
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공허’와 쓸쓸함은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온 최초의 ‘공 허’에 불안과 당혹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반항심은 가라앉기 마련이고, 점차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슬픔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이를 삶의 일 부로 인정하고 초연한 태도로 다루어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내적인 태도의 변화는 작품으로 귀결된다. 나는 창작행위로부터 삶의 문제나 무게감을 해소 하는 작용을 기대하였다. 나의 경우에 환상(幻想的), 도피적(逃避的), 그리고 일탈(逸脫)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일시적이었고 이내 변화가 따랐다.
생각의 변화는 창작활동의 전면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이전의 작품이 ‘기록 적’이라면 지금은 ‘현재적’이다. 이전에 생명력(生命力)이 만들어놓은 흔적을 [작품도판 23] <The Way into Red>, 2016, 장지에 혼합매체, 60.6×72.7cm
기록했다면, 지금은 자라나고 있는 생명의 존재를 담아내고자 한다. 그래서 산천에(山川)에 자신을 기탁했던 구도자(求道者)처럼, 나는 영원히 머물만한 세계의 존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품 <The Way into Red>([작품도판 23])는 이러한 사고의 변화이전에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하나의 감정 으로 물든 석양의 풍경을 기념하며 그린 것인데, 회화 안에서는 이 자연의 드라마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강조된 붉은 색채와 중앙 집중적인 구도, 그 리고 물질성이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놀라운 경험의 순 간이 회화로 고정되어있다. 이에 반해서 5년 뒤에 그려진 <물가 1>([작품도 판 24])은 유사한 시간대에서 담아낸 풍경이지만 정서와 그에 따른 표현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점이 보인다. ‘공허’와 ‘쓸쓸함’은 보다 슬픔의 순화된 감 정이다. 여기에서는 관조적(觀照的) 시선이 담겨있다.
또한 나중에 제작된 <물가 1>([작품도판 24])는 분명하게 ‘볼 것’이 제시 [작품도판 24] <물가 1>, 2019, 장지에 혼합매체, 130.3×162.2cm
되지 않고 있다. 이목을 사로잡는 조형적인 장치가 없다. 먼저 살펴볼 것은 구도이다. <The Way into Red>가 화면의 정중앙에 일어나는 회화적인 사 건, 즉 붉은 색과 강조된 소실점으로 인해 우리의 시선이 빼앗기는 반면에,
<물가 1>의 구도는 수평적이어서 운동감이 적다. 후자는 보다 수평적인 구도 이다. 수평의 방향으로 색면들이 적층(積層)되어 있다. 색면의 경계인 외곽선 은 자연의 모습에 근거를 두고 운동감을 줄인 채 유기적 형상으로 뻗어가고 있다. 프레임 내부에서의 공간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입체적 묘사 에 대한 흔적은 없으며 표현은 대체로 평면적(平面的)이다.
더 바랜 듯한 색채 또한 정신적인 여백의 공간에 순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색채 역시 구도와 동일한 맥락을 따라 적용되고 있다. <The Way into Red>의 색채는 원색적이고 과격하다. 명도(明度)뿐 아니라 채도(彩度)의 범 위가 폭넓다. 이러한 명확한 대비는 눈길을 강하게 사로잡는 반면에, 늘어난 운동력만큼이나 ‘여가적’ 정서는 반감된다. 이에 반하여 <물가 1>의 색채는 보다 절제되어 있다. 이미지 내부에서 색채의 스펙트럼이 제한되었다. 명암의 차이는 줄이고, 채도를 낮춤으로써 발산하는 색채의 고유한 힘이 줄어들었다.
색채는 감정을 유발하는데,258) 이러한 감각적인 작용을 의도적으로 조절되었 다. 회화는 존재의 방식을 결정한다고 했다. 작품에 대한 태도는 미술의 외 형을 바꾸었다. 수평적이고 적층적인 구도와 색채사용의 절제함으로써, 스스 로 긴 시간을 머무를 만한 ‘여가적 풍경’을 찾게 되었다.
258) 칸딘스키는 색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색은 영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앞의 책,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