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가적 풍경’에 내재된 ‘의경’
2) 일상의 자연
한 초월적인 세계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216) 언제든 나의 태도가 준비된다 면 말이다. 몇 가지의 조건을 채운다면, 내가 속한 일상적인 풍경에서도 이 특수한 세계는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
(1) 일상적 자연의 재인식
현대에서도 자연(自然)은 여전히 초월적인 해방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적 합한 대상이 되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서 인간의 영역이 크게 확장되면서 인 간이 마치 지배적 지위에 올라선 인상을 주었지만,217) 이것이 큰 착각이었음 을 알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근래 개척과 개발에 의한 환경훼손 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자연환경이 우리에게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자 이내 반성이 따르기 시작했다.218) 자연환경의 보존에 대한 범세계적인 인식이 확 장되면서 자연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재인식하는 새로운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용도에 따른 개조의 대상으로 인식되던 자연은 근래에 이르러서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명제 아래 지켜야 할 공존의 대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인식의 변화는 행위 으로 이어졌다. 도로아래 덮였던 하천을 복원하거나, 지형과 전망을 고려한 건축법처럼 직접적인 개발뿐만 아니라 건축인테리어디자인과 제품개발에도 친환경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근대에 비해서 현대의 자연은 개념적 으로 복권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의 생활에 가까워졌다. 또한
216) 푸전위안은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경은 예술의 형식이나 구체 적인 심미적인 태도가 아니라 예술의 총체에 “언제나 조용히 숨어있거나 몰래 쌓여있거나 잠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의경’이 예술가의 특정한 시각이 나 예술적인 형식에 명백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정서로 은밀히 내포되 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푸전위안,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 신정근·임태규·서동신 옮김(서울:성 균관대학교 출판부), 35.
217) 존 버거, 앞의 책, 274.
218) 마순자, 앞의 책, 302.
이처럼 새롭게 형성된 의식은 예술문화에도 새로운 경향을 만들었다. 전위적 인 예술영역에서는 이러한 분위기를 서둘러 감지하고 특수한 예술의 형태를 조직하기도 하였다.219) 뿐만 아니라 전통에 기반을 둔 동서양의 회화영역에 서도 일상적인 자연의 모습은 주요한 작품의 소재로 떠올랐다.220) ‘여가적
219) 마순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대지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대지미술은 자연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파생한 현대의 전위적인 예술장르 중 하나이다. “(그러나) 대지미술은 자연 세계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의도를 포함 하고 있다. 대지미술에서는 부서지기 쉬운 자연의 속성, 변화와 회복의 힘, 그 과 정, 자연의 질감과 장소의 본성 등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드러난다.”
마순자, 앞의 책, 303.
220) 마순자는 근래 풍경화의 성장추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요 즈음 풍경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은 자연 풍경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해양실물학자 카슨(Rachel Carson)dl
‘침묵의 봄’을 우려한 이후 자연 환경의 보존은 차츰 지구촌 전체의 주요 관심사 [참고도판 5] 카린 맘마 안데르손, <시간의 섬(Time Island)>, 2006, 캔버스에 아크 릴과 유채, 83.8×121.9cm
풍경’은 후자의 방식으로 주관화된 세계를 펼쳐낸다.
기법과 양식을 막론하고 현대회화에서 ‘일상의 자연’은 익숙한 소재이다.
아마도 이는 ‘여가(餘暇)’의 풍조가 확산된 시대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심 미(審美)가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서, 예술적 가치가 사소한 일상과 결합하게 되었다. 이러한 심미의 태도에서 우리는 생활 속의 사소한 것들로 부터 예술적 품격(品格)과 취미(趣味)를 추구할 수 있다.221) 우리의 생활공 간의 ‘일상적(日常的) 자연’은 ‘대자연(大自然)의 풍광’에 비하면 영험한 원시 자연(元始自然)의 존재적 가치는 희석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곁에 친숙하게 다가온 자연에도 ‘우주적(宇宙的)’ 속성은 여전하다. 우리는 일상의 자연에서 도 우리의 분주한 삶을 잠시 기대고 잠시 ‘여가적’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아 가 되었고, 그것은 미술의 영역에서 자연과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의 증가를 가 져왔다.”
마순자, 앞의 책, 55.
221) 彭鋒,『中國美學通史』 第5卷(宋金元卷), 313.
[참고도판 6] 토랄프 크노블로흐, <행크스빌 여관(Hanksville Inn)>, 2012, 캔버스에 유채, 150×220cm
마도 많은 작가들이 먼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일상의 자연을 그리지 않았을 까. 맘마 안데르손(Karin Mamma Andersson, b.1962)처럼 ‘일상의 자연’을 빌려와서 소박한 서정미(抒情美)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참고도판 5]) 크노블로흐(Toralf Knobloch, b.1962)과 같이 일상의 장면으로 조형적인 즐거움을 찾아서 자유롭게 재조립해내는 경우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참고도판 6]) ‘여가적 풍경’이 일상의 자연을 다루어 낼 때는 이 두 가지가 모두 고려된다. ‘일상의 자연’은 전통의 자연관(自然觀)을 만나서 다시 ‘의경 (意境)’의 가치를 덧입게 된다. 이는 내가 일상으로 ‘여가(餘暇)’를 끌어들이 는 방법이다.
현대의 자연은 도시의 생활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심 속에서 언제든지 여유를 부릴만한 도심공원(都心公園)이 일상적인 자연이 될 수도 있다.([작품 도판 6]) 또 요즘에는 잘 조경된 카페가 참 많다. 그리고 도로환경을 개선하 기 위해서 ‘연속적으로 심겨진 조경수(造景樹)’나 ‘모퉁이의 잔디밭’도 ‘여가 (餘暇)’의 현대적 소재가 될 수 있다. 작품 <옅은 하루 1>([작품도판 7])의 [작품도판 6] <Dog Fight 2>, 2018, 장지에 혼합매체, 162.2×261.2cm
경우를 보면, 건물과 도로의 좁은 간격 사이에 수풀이 심겨있다. 어쩌면 누 군가에 의해서 심겨진 것이 아니라 그냥 자라난 잡초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대강 꾸며진 골목길의 조경도 순화와 정제를 거쳐서 ‘여가적 풍경’
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 공간은 내가 분명 머물렀던 곳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골목풍경의 기록이 아니라, 일상적 자연공간에서 맛본 ‘여가’의 정서 가 고요하게 제시되고 있다. 먼저 살펴본 작품 <소리의 흔적>([참고도판 4]) 처럼 거대자연이 형성하는 깊은 심연(深淵)은 아니겠지만, 도시풍경과 어우 러진 자연이 적절히 구성되고 새로운 조형적 운율과 색조를 입으면서 조화로 운 하나의 정경이 탄생했다. 이 안에도 자연과의 조화로움에서 오는 쉼이 있 다.
[작품도판 7] <옅은 하루 1>, 2019, 장지에 혼합매체, 91.0×116.8cm
(2) 일상적 자연의 고요함
‘여가적 풍경’이 표현하는 공간은 공원(公園)이나 전원(田園)에서 쉽게 마 주칠만한 실제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것이 소박한 일상의 자연(自然)이지만 단순한 생활의 풍경이기보다는 삶의 애환과 초월적인 기대감이 담겨있다. 내 가 일상에 대한 몰입으로부터 해방될 때, 잠재된 풍경은 모습을 드러낸다.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우리는 삶을 ‘관조(觀照)’할 마음의 여백(餘白)이 생긴다는 말이다. 이를 뒤집어서 본다면, 내 삶의 풍경의 곳곳에는 이미 차 분한 초월적인 세계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222) 언제든지 우리의 관조적 시 선이 준비된다면 말이다. 몇 가지의 조건을 채운다면, 내가 속한 일상적인 풍경에서도 이 특수한 세계는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
내 삶의 다양한 풍경에서도 아득한 기억을 돕는 특별한 장소들이 몇몇 있 다. 나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시선의 목적-‘볼 것’을 잃어버릴만한 아득한 거리감은 내면의 활동을 돕는 듯하다. 초월적인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 거리감이 필수적이다. ‘원(遠)’은 ‘멀다’는 거리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아 득하다’는 감상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동양의 산수화론에서 ‘원’223)에는 두 가지의 개념이 공존한다. ‘원’은 멀리 본다는 물리적 시간과 거리뿐만 아니 라, 산수너머의 정신세계로 뻗어간다는 ‘경계(境界)’의 변화를 의미한다. 산수 (山水)의 재인식이 일어난다. 산수화에서 ‘원’의 관조방식은 ‘의경(意境)’을 불러온다. 이 거리감은 심리적인 거리이다. 회화는 구도(構圖)를 활용하여서
222) 푸전위안은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경은 예술의 형식이나 구체 적인 심미적인 태도가 아니라 예술의 총체에 “언제나 조용히 숨어있거나 몰래 쌓여있거나 잠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의경’이 예술가의 특정한 시각이 나 예술적인 형식에 명백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정서로 은밀히 내포되 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푸전위안,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 신정근·임태규·서동신 옮김(서울:성 균관대학교 출판부), 35.
223) 하영준, 앞의 논문, 359.
입체감을 만드는데, ‘아득함’이라는 심리적 거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와 반대의 효과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회화가 관조적(觀照的) 태도로 풍경을 바라보고 참된 ‘여가’를 기대한다면, 큰 움직임은 삼가고 자연(自然)이 지닌 상승적인 율동이 슬쩍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면 안에서의 활달한 운동은 줄이고, 이 공간에 고요한 운율을 되살린다. 그래서 ‘여가적 풍경’은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요-‘정(靜)’을 필요로 한다. ‘고요함’은 약동하는 ‘자연’의 순환을 담을 빈 그릇이다.
[작품도판 8]은 ‘새벽녘에 거닌 풀길’을 작품으로 옮겼다. 이 길은 근교에 서 언제든지 쉽게 마주칠만한 비포장도로이다. 넓게 펼쳐진 들판 위로 내부 조명이 밝게 빛나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더 뒤로는 마을의 집이, 그리고 아 주 멀리 희미한 산의 윤곽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은 작품의 중심주제 [작품도판 8] <풀길>, 2017, 장지에 혼합매체, 130.3×162.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