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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가적 풍경’에 내재된 ‘의경’

2) 기억과 그리움

『임천고치집(林泉高致集)』은 현상세계로부터 이미지를 수집하고, 정제하고, 재배열하는 일을 ‘흉중나열(胸中羅列)’259)이라고 표현한다. ‘흉중나열’은 객관 적인 것들로부터의 필수적인 요소를 선별하는 정제과정이다. 산(山)이 어떻 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화가자신만의 견해로 관찰의 경험을 기억하고 재구성 한다. 산의 객관적인 특성의 모든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닌, ‘정수(精髓)’만을 취하여 이념적 전형을 구축한다. 작품은 엄밀하게 따진다면 또 다른 하나의 결핍된 세계이다. 감각하는 모든 것이 하나의 세계라면, 그것으로부터 추출해 낸 예술작품은 정확성의 차원에 있어 보다 열등한 상태이다.260) 그러나 우리

259) 박재석, 앞의 논문, 76.

260) 곰브리치는 플라톤의 철학을 서술하면서, 회화가 또 다른 결핍된 세계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 회화의 세계는 열등한 세계일 수도 있지만, 기호적 [작품도판 25] <Skating Day (B)>, 2020, 장지에 혼합매체, 45.5×53.0cm

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의 약동하는 도약이 없다면, 세계는 메마르고 공허 한 물질의 세계라는 것을 안다. 인식은 우리의 신장(身長)을 훌쩍 넘어서 영 원(永遠)에 맞닿아 있다. 예술작품이 이처럼 높이 솟은 인식의 세계를 좇는 이상경(理想境)이라면, ‘정수’로 골라낸 작품의 내연은 의미가 풍부하고 훨씬 높은 차원의 가치를 담게 된다. 곽희(郭熙)는 기억을 종합하여서 유가적인 이념과 도가적 미감이 풍성한 이상경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상 경을 작품을 통해서 그리워한다. ‘여가적 풍경’도 역시 과거를 추억한다. 그 리고 그것에 대한 주관화된 기억을 표현한다. ‘여가적 풍경’이 펼쳐내는 세계 역시 기억의 잔존물이 아니라 의미가 풍성한 하나의 이상경이라고 할 수 있 다. 이 이상경은 깊이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의경’의 미감은 때로 ‘그리움’

으로 나타난다.

‘그리움’이 꼭 지난 과거에 대한 추억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랑(葉 朗) 교수가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본향(本鄕)을 떠난 심정과 그것을 그리워하는 마음, 즉 어떤 상실감(喪失感)이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261) 그것은 영원(永遠)에 대한 감지(感知)이며, 과거 산수화가들의 산천 경물(山川敬物)을 통해서 담고자 했던 깊은 감수(感受)였다. 이는 ‘철학적인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262) ‘여가적 풍경’은 장소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 인생의 총체적 감수이다.263) 이는 ‘우주(宇宙)’의 미감이다. 나는 <반짝이는 물>([작품도판 26])을 통해서 해안에 걸친 물의 ‘반짝임’을 추억했다. ‘반짝 임’이라는 일시적 기쁨은 영속적인 자연의 모습과 대비를 만든다. 이 작품 안에는 ‘반짝이는 기쁨’과 ‘무한하게 뻗어가는 시선’이 공존한다. 이 둘은 대 비를 만든다. 작품의 주제는 제목인 ‘반짝임’이 말해주듯이, ‘해안을 쓸어 오 르면 사라지는 반짝임’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원경(遠景)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자연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기고 나면, 우리의 눈은 멀

이거나 놀이의 기능처럼 또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에른스트 곰브리치, 앞의 책, 113-115.

261) 예랑, 앞의 논문. 223.

262) 주량즈, 앞의 책, 469.

263) 주량즈, 앞의 책, 470.

[작품도판 26] <반짝이는 물>, 2021, 장지에 혼합매체, 146.0×102.1cm

리 해안선을 따라 멀리 뻗어간다. 이런 시선의 확장은 무한함을 만들고 특별 한 ‘인생감(人生感)’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먹(墨)과 호분(胡粉), 그리고 종 이(壯紙)의 표면으로 만들어진 무채색조(無彩色調)의 표현은 감정을 순화시 키고 거리감을 형성한다. 해변에는 관조적(觀照的) 시선이 자리 잡고 ‘인생감 (人生感)’이 충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