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정파보도 역시 한국 탐사보도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정파보도가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라는 점에 이견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없으며, 그 심각성에 있어서는 진보와 보수 언론 사이 질적인 차이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이다(박승 관, 2017; 박승관 & 장경섭, 2001a, 2001b). 한국 언론인이 정파보도를 관행화하는 배 경에는 한국 정치 현실에 뿌리내리고, 언론인들의 의식구조 속에 각인된 보수-진보의 이분법적인 신념이 있다. 언론과 언론인들은 특정 정파와 유착 내지 적대하면서 자신 의 각인된 정치 이념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언론을 활용해 왔으며, 이것을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퍼져 있다. 정당하다고 믿는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치세력을 지원하고 상대 정파를 공격하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라는 이념윤리적 언론 관이 아직 한국 언론에서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승관(2017)은 한국 언론인 들은 각자의 이념에 스스로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신념의 관철을 위해서 언
론이라는 공적 자원을 수단시하고 이러한 일을 언론인 본연의 합당한 임무로 당연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탐구해 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pp. 8-14).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한국 언론의 정파보도를 노태우,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론 시장을 과점했던 <조선일보>, <중 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은 여론 형성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특정 정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반대 정파를 공격했고, 반대로 <한겨레신문>과 <경향 신문> 등 진보 언론은 이른바 ‘조중동’ 연합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에서 역시 특정 정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강명구, 2005). 노태우, 김영삼 정권 시기 보수 언론은 정권의 언론 개혁 의지를 스스로 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고 기득권을 유지했다(강준만, 2000).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권이 등장하자 보수 언론은 구정권 을 택했고 진보 언론은 신정권을 택했다. 이전 시기와 다른 점은 정파적 양극화 현상 이 시작되면서 언론이 독자적으로 정파보도를 강화해 나갔다는 점이다. <한겨레신문>
과 <경향신문>에 이어 정부 소유의 <서울신문>이 김대중 정권과 노선을 같이하면서
‘조중동’에 대립하는 ‘한경서’ 진영을 형성했고, 김대중 정권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 러싸고 벌어진 정권과 언론, 그리고 언론 내 대결 상황은 언론 전쟁으로 규정될 정도 였다(강명구, 2004). 최영재(2005)의 신문 사설 연구에 따르면 <조선일보>와 <한겨레 신문>의 경우 노태우,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 정권에 대한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정파적 양극화는 더욱 격화됐고 지 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노무현은 대선 이전부터 보수 언론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표현했다(강준만, 2007, p. 667), 대선 기간에는 보수 언론은 노무현을, 진보 언론은 이 회창을 적극적으로 비판했고(최진호 & 한동섭, 2012), 보수 언론은 대선 이후에는 5년 내내 노무현 정권을 공격했다(박정의, 2006).
극심한 정파보도는 한국 사회에 “아노미적 소통 위기”를 초래했고(양승목, 2011, p.
vi), 한국 언론이 직면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이재경, 2004; 이준웅
& 최영재, 2005; 최장집, 2005). 학자들뿐만 아니라 수용자들도 언론이 자신들보다 더 정파적이라며 언론을 신뢰하지 못하는 1번 원인으로 정파보도를 지목하고 있을 정도 이다(김영욱, 2009). 더욱 심각한 것은 정파적 양극화까지 중첩돼 있다는 점이다. 수용 자 이념의 정규분포를 반영한 언론의 정규분포는 사라진 지 오래이며 양극단을 중심 으로 특정 정파와 유착된 정파적 진영 언론 만이 존재할 뿐이다. 진영으로 갈라선 언 론은 스스로의 정파적 이익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정치행위자로 변모했고, 공공 이 익 감시자에서 사적 이익 추구자로 변신하면서 공론장의 기능을 방기했다(박승관, 2011, p. 134). 이런 구조는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더욱 고착화되었고(김균, 이정훈,
& 박영흠, 2012), 정치와 언론, 여론 모두 누구라 할 것 없이 균열의 늪에 빠져 분열
의 악순환 고리를 되풀이하고 있다(최영재, 2011).
우선 정파보도는 유착이나 적대의 상태로 탐사보도에서 절대적인 조건인 독립성 을 근본적으로 제약한다. 탐사보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언론사가 외부 압력에 동요 되지 않아야 하고 언론사 내에서는 언론인이 데스크의 정당한 편집권을 넘어선 월권 행위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탐사보도에는 성역이 없어야 하지만 정파보도는 정치 권력의 반을 동맹으로 만들고, 나머지 반은 적으로 만들었다. 언론이 노골적으로 정파 보도를 표출하기 시작한 후 자신들이 유착한 정파에 대한 탐사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나아가 정파적 양극화는 정파보도로 포기하고 남은 나머지 반쪽에 대해서도 탐사 보도를 제약한다. 정파적 양극화가 탐사보도에 치명적인 이유는 양극화가 언론사들 간의 담합의 성격을 띠면서 진영으로 뭉친 그들 내부의 경쟁을 제약해 경쟁 내지 생 존 전략으로서 탐사보도의 필요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담합은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사업들 간의 공모”로 담합을 통해 과점 기업 들은 독점 기업과 같은 이익을 누리게 된다. 때문에 담합은 법적 규제를 받게 된다(권 수진, 신영수, 김호기, & 최문숙, 2011; 김남수, 2007; 장연화 & 백경희, 2013). 담합 의 또 다른 형식으로는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이 있다. 신사협정은 당사자 사이에 자유스러운 의사로서 약속의 성립과 이행을 추구하는 합의 형식으로, 합의가 이행되지 않더라도 어떠한 법적 강제도 제기되지 않는다(최신섭, 2003).
한국 언론의 정파적 양극화는 담합 또는 최소한 신사협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 다. 일반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 때 원자재가 필요하듯 뉴스에서 원자재는 정보원이 제공하는 정보이다. 정파적 양극화는 언론인들이 무리 지어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파 와 정보 제공과 처리에 대한 조건에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를 이루었을 가능성을 뜻한다. 유착한 정파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반대 정파에 대한 적대적 공격이 그것이 다. 그들 사이 합의를 규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상품의 종류나 규격을 통해 유 추할 수 있다. 공장에서 제품이 상품이라면 언론에서는 뉴스가 상품이다. ‘대북 지원과 북한 핵’, ‘종합부동산세 폐지’, ‘호주제 폐지’ 이슈에 대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 아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한국일보>의 보도를 분석한 최현주(2010)에 따르 면 ‘대북 지원’에서는 동아, 중앙, 조선이 보수, 한국과 경향이 중도, 한겨레가 진보로 나타났다. 경제 차원인 ‘종부세 폐지’에서는 동아, 중앙, 조선이 보수, 한국이 중도, 경 향과 한겨레가 진보로 나타났다. 사회, 문화 차원인 ‘호주제 폐지’에서는 조선이 중도 로, 나머지 분석된 신문들은 모두 진보로 나타났다. 대형 이슈일 경우 동질성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예를 들어 2008년 5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촛불집회 기간 동안
‘조중동’과 ‘한경서’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보도를 비교한 분석에 따르면, 두 진영의
언론들은 기사 수, 제목, 정보원, 주관적 태도 등에서 확연하게 동질성을 보였다(김주 완, 2009).
정파적 양극화가 탐사보도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신문의 탐사보도 역사를 추적 해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2천 년대 초반 신문사들은 기세 좋게 경쟁적으로 탐사보도 에 뛰어들었지만 기세는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특별기획취재팀을 중심으로 시작된 탐사보도 기풍이 신문사 전체로 확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며 탐사보도 전통을 정 착시킨 세계일보(박현수, 2005, pp. 24-26; 세계일보사사편찬위원회, 2009, p. 422) 외 에는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탐사보도를 조직 내 전통이나 브랜드로 정착시키지 못했다.
특히 탐사보도의 유행과 퇴조의 기울기가 매우 가팔랐다. 이는 탐사보도의 토대가 그 만큼 취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또는 경쟁 전략으 로 시작했지만 그 의지나 전략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만든 이유가 있었다는 것으로 연구자는 그 이유를 정파적 양극화로 추정한다.
신문사들은 2천 년대에 들어서자 경쟁적으로 탐사보도 부서를 신설했다. 신문에 서는 <중앙일보>와 <세계일보>가 앞장섰다. 당시는 탐사보도의 유행으로 불릴 정도였 는데, 2007년 발족한 한국탐사언론인회에 참여 의사를 밝혔던 언론사는 당시 <경향신 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부산일보>, <세계일보>, <전자 신문>,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KBS>, <MBC>, <SBS> 등 13곳으로 언론인만 백여 명이었다(한국탐사언론인회, 2007).
신문사들이 전담부서를 신설하는 등 탐사보도를 강화하는 이유는 당시 사고(社告) 등을 통해 볼 때 뉴스의 질을 통한 경쟁력과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겠다는 측면이 컸 다. <한겨레신문>의 경우 탐사보도 전담부서를 공식 출범시키기 전인 2005년 5월 16 일 당시 편집국장은 창간 17돌을 맞아 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문의 질을 높이기”
위해 탐사보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신문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지요. 이를 위해 탐사보도, 기획보도를 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로 ‘부장급 현장기자’를 두었습니다.
이분들이 오랜 취재경험을 가지고 현장에서 깊이 있는 기사를 내놓을 겁니다. 각 팀들이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탐사보도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겨레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획기사가 속속 나올 것입니다(김종옥, 2015).
<경향신문>도 탐사보도 전담부서 출범 전인 2004년 9월 13일 사고 형식으로 신문 1면에 “질 높은 심층, 탐사보도”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