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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보도와 탐사보도의 상충성

많은 경우 언론인이 스스로의 이념이나 가치에 함몰돼 자신의 분노를 보도에 가 감없이 투영하는 언론 현실을 감안할 때, 박승관(2017)의 지적처럼 탐사보도를 주장 하기 이전에 객관보도라도 먼저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에서 연구자가 객관보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에 대한 존중 속에서 과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객관보도의 윤리는 탐사보도의 윤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객관보도의

과학적 엄밀성은 오히려 탐사보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과 학적 탐사보도 기법의 발달은 객관보도의 윤리를 적극 수용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제2장 이론적 논의에서도 살펴보지만 베버(Max Weber) 역시 가치와 사실의 분리 속 에 가치함몰에 빠져 가치와 사실을 안이하게 혼동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다.

다만 탐사보도와 객관보도의 핵심 원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 연구자의 주장이다.

객관보도를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객관보도의 확립 과정을 바탕으로 했 을 때 연구자가 이해하는 객관보도의 핵심은 언론인은 보도 과정에서 가치배제 또는 가치중립을 지키는 객관적 관찰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객관보도는 언론인이 현실에 개입하거나, 가치를 주창하거나, 문제의 해결을 직접 시도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 고 있다. 그 이면에는 이념 또는 가치에 대한 불신과 사실에 대한 확신이 은연 중에 깔려 있다.

우선 시기적으로 탐사보도의 암흑기와 객관보도 황금기가 겹친다. 제1차 세계대 전을 전후해 객관보도가 확고한 규범으로 정착하는 시점에 탐사보도는 급격하게 쇠퇴 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 사회적 격변 속에서 객관보도에 대한 반성이 고조되던 시점 에 탐사보도가 부활하기 시작했다(Feldstein, 2006; Shapiro, 2003). 탐사보도의 중흥기 인 워터게이트 보도는 역으로 언론인들이 객관보도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 경우였다.

<워싱턴 포스트>가 9개월 동안 단독으로 워터게이트 관련 기사를 쓸 때 백악관 출입 기자들은 백악관 관계자들에게 사건에 대한 언급을 요청하고 발표문을 그대로 받아 보도하는 식으로 일관했고 그 배경 논리가 객관보도였다.

암흑기 동안 탐사보도를 하고 싶은 언론인은 객관보도를 주장하는 편집인들과 갈 등을 겪어야 했다. 객관보도를 신봉하던 편집인은 황색보도와 함께 탐사보도도 폐기 했고, 지배적인 글쓰기 방식으로 정착된 역피라미드형 기사쓰기는 탐사보도 글쓰기와 충돌했다. 편집인들에게 탐사보도와 황색보도는 똑같은 선정적 보도였다. 탐사보도 언 론인들은 객관보도를 비판했다. 스테펀스(Lincoln Steffens)는 “기계처럼 기자들은 선 입견이나 성향, 스타일도 없이 발생한 대로만 뉴스를 보도하도록 요구 받았다. 모두가 비슷하게”라고 한탄했다(Ward, 2004/2007, p. 281). 막 태동하기 시작한 대학의 언론 학과에서 쓰이는 교재들은 객관보도는 수용한 반면, 탐사보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Marshall, 2011, p. 28).

반대로 언론인들은 점점 공보 담당자들이 내놓는 보도자료에 의존해 갔다.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1916년 2,461개였던 일간 신문의 수가 1969년 1,753 개로 줄어들었고 대신 뉴스 체인이나 미디어 그룹이 생겨나면서 TV나 라디오는 더

이상 탐사보도에 투자하지 않았다. 공보부가 정부는 물론 기업으로까지 확산되면서 정부와 기업은 기자실을 만들고 공보 담당자를 고용하면서 언론 통제를 시도했고 언 론인들은 공보 담당자의 발표에 의존하는 것이 스스로 기사를 발굴하는 것보다 쉽다 는 것에 적응해 갔다(Dinan & Miller, 2011/2011). 한 연구에 따르면 1926년 12월 29 일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 실린 255개의 기사 가운데 147개가 공보 담당자를 출발로 하고 있었고, 1월 14일자 <뉴욕 선>(New York Sun)의 경우 162개 기사 중 75개가 같은 방식이었다. “오늘날 언론인은 보도자료를 받기 위해 출입처를 돌아다니는 탁발승과 다를 바 없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Schudson, 1978, p. 144).

탐사보도와 객관보도는 사실에 대한 존중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작동 방식에서는 다르다. 탐사보도는 폭포를 통한 변화를 추구하는 반면, 객관보도는 정보를 통한 설명 이 우선이다. 보도 방법에서도 탐사보도가 목격과 증언, 재구성 등을 주로 사용하지만, 객관보도는 관찰과 정보, 설명 위주다. 진실은 언론인이 자료를 파고, 신뢰할 만한 내 부 고발자를 취재원으로 발굴하고, 사안을 자체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드러 난다는 것이 탐사보도 언론인들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탐사보도는 연구나 증거에 기 초한 폭로 방식을 이용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도덕적 분노를 유도하고자 한다. 탐 사보도 언론인들이 객관보도를 싫어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중립성 요구 때문이었다 (Ward, 2004/2007, p. 333). 사물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중립은 그냥 중립지대에 있는 것으로 중립은 옳고 그름의 고민이 필요 없는 상태이다. 언론인들이 중립을 객관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중립은 객관이 아님에 도 객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가장 안정한 방법이었다.

메릴(Merill)은 객관보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 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는 이것이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객관보도가 불가능하다 고 주장한다. 첫째, 언론인 자신이 객관적 행위를 방해하는 제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행위를 함에 있어서 자신의 경험, 지식, 환경, 교육, 또는 기타 다른 요인들의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언론인이라면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둘째, 언론인은 전체 사실을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인이 낱낱의 사건이나 문제들을 속속들이 알고 정리하여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 다. 셋째, 사실과 관계없이 독립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인이 사건이나 문제를 만나서 도 감정적으로 움직이거나 그 속에 끌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 넷째, 언론인은 편견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찬성, 반대, 편중이 없어야 한다. 다섯 째, 언론인이 자신이 쓴 기사에 견해를 넣지 않을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의견과는

전혀 별개의 기사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송정민, 1996, pp. 109-110 재인용). 이런 전제들은 실현 가능 여부를 떠나 탐사보도와 충돌하고 있다. 탐사보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념이나 가치에 대한 신념은 탐사보도의 중요한 자양분이었다. 또 탐 사보도 언론인들은 중립을 배척하며 오히려 악당을 규정하고 그에 대한 폭로를 통해 서 여론을 자극하고자 했다. 연구자는 객관보도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객관보도 도 언론의 한 유형이라는 점을 직시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탐사보도의 갑작스러운 퇴조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의 연구들도 있는데 우선 음모론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 탐사보도의 표적이었던 기업들이 탐사보도를 없애기 위해서 대규모 소송이나 광고 중단 등으로 압박했고, 언론사가 이에 굴복하면 서 퇴조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Filler, 1976). 이런 주장에 대해 당시 기업들이 폭로 기사를 막으려고 한 것은 맞지만 그 관계를 너무 과장했고, 잡지들이 겪었던 경영 위 기 원인을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는 반박도 있다(Marcaccio, 1984). 또 일부 잡지들이 기업들의 공격으로 무너진 것은 맞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탐사보도에 대한 시민 의 관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Regier, 1932, pp. 206-207). 그러나 음 모론이나 자연사론은 탐사보도의 갑작스러운 퇴조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최고점에서 갑자기 최저점으로의 급락을 설명하기에 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Fitzpatrick, 1994, pp. 113-114). 루즈벨트는 1906년 3월 중견 언론인 모임인 그리다이언 클럽 (Gridiron Club)에서 탐사보도를 비난한 데 이어 4월 14일에는 새로 건설된 하원 건 물에 초석이 놓여 지는 공식 행사에서 탐사보도에 대한 공격을 이어 갔다. 그는 “갈퀴 를 든 사람(the men with muck-rakes)들은 사회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존재들이 지만 갈퀴질을 멈출 때를 알아야” 한다며 “추문 폭로 재주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 지 않고, 말하지 않고, 쓰지도 못하는” 언론인은 “사회에 도움이 되고, 선에 유익한 존재가 아니라 악의 잠재적 원천 가운데 하나로 급속히 변해간다”고 비난했다 (Altschull, 1990/1993, pp. 504-505). 연설 내용이 다음 날 신문 1면을 장식하면서 머 크레이커(muckraker)는 탐사보도 언론인을 가리키는 낙인이 됐다. 루즈벨트는 나중에 상원을 금권정치가 집단으로 묘사한 탐사보도 언론인 필립(David Graham Phillips)에 대한 언급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연설에서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탐사보도 언론인들을 싸잡아서 비난했다. 버니언(John Bunyan)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은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읽히는 기독교 서적으로 그 안에 나오는 갈퀴를 든 남자는 현실에서 눈 앞의 이익만을 쫓는 사람으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갈퀴는 속물 근성을 가리킨다. 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