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이 진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최치원, 2014). 따라서 베버의 사회과학론에 들어 있는 주장들을 고려하면 Wertfreiheit는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 또는 ‘가치판단 자유’, 그리고 용어의 간명성을 위한다면 줄여서 ‘가치자유’로 해석하고 표현함이 베버의 의 도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다.
2) 가치자유: 가치평가, 가치연관, 가치토론
의미의 타당성도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누구에게도 당위적으로, 도덕적으로 또는 규범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칠 수 없으며, 단지 그가 무엇 을 할 수 있는지, 경우에 따라서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르쳐줄 수 있을 뿐이라는 것 이 베버의 주장이다. 다음 <표 1>의 사례들은 사회과학이 할 수 있는 한계들을 예시 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표 1> 과학의 사실 확인과 철학의 당위적 판단 구분
사실 확인 당위적 판단
하나의 구체적 사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우리가 하나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천적으로 무엇을 당위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이 구체적 상황이 다른 모습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되었는지
어떤 관점 하에서 이 상황이 바람직한 것으로 또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지 하나의 주어진 상황 A에 다른 하나의 상황
B가 실제적 행위 규칙에 따라 그리고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가지고 통상적으로
따라 일어나는지
이들 관점들을 귀속시킬 수 있는 보편적 진술이 가능한 명제가 있는지
하나의 구체적으로 주어진 실제적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또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장래 발전할 것인지
하나의 구체적 상황이 하나의 특정한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하는 데 기여해야만
하는지 특정한 인간들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또는
불특정한 다수가 같은 상황에서 한 특정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아마도
형성하게 될 것인지
아마도 또는 형성될 이 견해가 옳은지
주) Max Weber, 1917/2011, pp. 153-154
<표 1>에서 보듯이 베버는 사실과 가치의 구분을 통해 가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이 불가능하며 사실의 영역에서나마 과학적 지식을 보존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가치에 대한 지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데 이유는 서로 갈등하는 가치들 간의 화해불가능성 때문이다. 사실과 가치의 이질성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들 간의 갈등이 화해할 수 없는 전쟁 상태이기 때문이다. 베버는 적어도 사실 영역에서의 과학적 지식은 인간에게 인간의 조건에 대한 명료성을 더해 준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사회 현상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주는 사회과학은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료성을 높여준다. 베버는 이러한 명료성이 적어도 행위자가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를 깨닫게 하는 의미를 제공한다고 말했다(박성우, 2014).
(2) 가치연관
가치평가가 사회과학이 할 일이 아니라면 사회과학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치평가가 과학적 분석을 통해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주장이 과학에서 모든 가치 관련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베버는 가치중립적 사회과학이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전성우, 2011a, p. 13).
베버에게 역사는 끊임없는 구체적인 현상들로 이루어져 있는 절대적 무한성이다.
이런 무한성 속에서 현상들이 가진 문화의미를 인식하고자 노력하는 분야를 그는 문화과학이라고 불렀다. 이때 문화의미는 현상이 법칙이 아닌 개인의 가치와 연관됨으로써 비로소 생겨난다. 따라서 “문화 개념은 가치 개념이다”(Max Weber, 1904/2011, p. 69).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상들 가운데 우리가 그것을 가치와 연관 짓는 순간부터 현상은 우리에게 문화가 되고 문화의미가 생겨나는 것이다. 현상은 우리에게 알 가치가 있고 의미를 가지는 것이 확정된 뒤에야 연구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현실을 가치에 연관시키는 과정”으로의 이 같은 가치연관은 경험적 연구에서는 연구대상의 선별과 구성을 지배하는 것이다(Max Weber, 1917/2011, p.
156).
베버는 가치를 연관 짓는 것의 토대로서 가치판단과 가치를 평가하는 것의 토대로서 가치판단을 날카롭게 구분했으며 전자의 가치연관이 문화의미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가치연관은 그래서 세상사의 절대적 무한성 가운데 인간의 가치를 통해 중요성이 부여된 유한한 단면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문화의미가 부여된 모든 역사적 개체들은 불가피하게 가치에 근거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만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베버의 입장을 오늘의 사회과학 용어로 살펴본다면, 연구대상 자체가 가치에 의해 결정되며, 연구대상이 결정된 후에는 분석 수준에서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검토할 수는 없기 때문에 무엇을 중요한 변수로 검토할 것인가 또한 가치에 의존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게 되는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점이 연구의 대상과 변수의 선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김용학
& 장덕진, 1991, p. 57).
(3) 가치토론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것을 원할 때 그것이 가진 고유 가치 자체 때문에 원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다른 목적에 적절한 수단이 기 때문에 원할 수도 있다. 여기서 과학적 고찰이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목적에 대 한 수단의 적합성 문제이다. 목적에 대한 수단의 적합성 검토에서 과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첫째, 목적을 달성하는 데 그것을 위한 수단이 적합한지 타당성을 판단한다. 둘 째, 주어진 여건, 수단에 견주어 목적의 실현가능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셋째, 목 적이 실현 가능하다면 수단의 실행에 따른 부수적 결과를 추정한다. 따라서 과학이 최종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행위자가 자신의 이상과 목적을 스스로 비판적으 로 평가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며, 행위자로 하여금 자신의 욕구에 딸려 있는 궁극적 공리에 대해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이해하면서 설명”하는 노력이다. 이는 특정 현상에 대 해 사후적인 의미에서 판단하지 말고 행위 그 자체에 내재한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해적 설명은 인간 행위의 진정한 궁극적 동기를 규명하기 위해 행위를 경험적으로, 인과적으로 분석하며 만약 자신과는 다른 가치판 단을 내리는 사람과 토론할 경우 상대방의 진정한 가치판단 입장이 무엇인지 규명하 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가치 간의 토론인 가치토론이 이루질 수 있는 것이 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또는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두 당사자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비로소 가치 에 대한 입장표명을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 가치토론의 진정한 목적이다. 가치판단의 의미들에 대한 상호 인식이 토론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Max Weber, 1917/2011, p.
145).
베버는 가치평가를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할 것을 주장했지만 가치연관과 가치토 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가치평가 문제를 다시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 들이고 있 는 것이다. 따라서 가치자유는 가치판단에 대해 자유스럽게 논의하라는 것이지 가치 판단을 하지 말라는 요구가 아닌 것이다(최치원, 2014). 가치에서 벗어나거나 비켜서 있을 때 가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헌신적으로 달려들어 자 신의 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류성희, 2011).
비록 이를 통해 도달하는 결론이 영원한 것이 없는 “존재 판단들의 혼돈”일 수도 있 다. 왜냐하면 이해한다는 것이 반드시 용서나 수용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토 론의 끝은 우리가 합의를 보지 못하는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일 가능성이 더 크다.
베버는 제한적인 가치평가가 허용되는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이 부분이 그의 가치 이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그럼에도 연구자가 전제조건에 주목한 이유는 불가피하게 가치평가를 할 수밖에 없을 경우를 대비해 내놓은 베버의 처방이 탐사보도 에도 적절한 조언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베버의 주장은 한마디로 약점을 인정 하고 고백하면서 평가를 하자는 것이다. 그는 ‘객관성’ 논문과 ‘가치자유’ 논문에서 가치 평가가 허용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Max Weber, 1917/2011, p.
136; 1904/2011, pp. 44-45). 첫째, 지극히 상이한 가치들을 부정확하게 혼합시킴으로써 가치들 간에 존재하는 갈등 관계를 은폐하여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지 말고 자신이 현실 을 가늠하고 또 가치평가에 이른 기준이 어떤 것인지를 독자와 스스로에게 명확히 밝혀 야 한다. 베버는 가치평가의 순수성이 담보된다면 이런 가치판단은 무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유용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가치중립은 사회과학론 전반에서 줄기차게 비판받고 있다. 중립성과 진실은 아무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중립성이 자기기만이거나 진실을 은폐하는 수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불가피하게 가치평가를 내릴 경우 상 대방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자신의 서술 중 무엇이 논리적으로 규명된 것이고, 경험 적인 사실 확인이며, 가치평가인지 등을 엄격히 밝혀야 한다. 사실의 확인과 당위적 판 단을 혼합시키는 것은 선동가들이 하는 행위의 특성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정파적 가치 판단이 주저 없이 주장될 수 있을 때에 허용될 수 있다. 주장의 허용 대상에는 극단주 의자도 포함될 수 있는데 때로는 “극단적인 회의가 새로운 인식의 아버지”이기 때문이 다.
베버의 가치이론에 대해 근본적인 가치의 존재나 가치 간 위계적 질서에 관심을 갖 지 않으면서 인간의 행위에 지침이 될 참된 개념을 전개시키거나 가르치지 않았다는 비 판이 제기됐다. 예를 들어 스트라우스(Leo Straus)는 베버가 자신이 이해하는 가치가 무 엇인지 결코 설명하지 않은 채 그저 가치와 사실의 절대적 이질성을 전제함으로써 특정 사실로부터 그 사실이 갖는 가치적 특성도 그리고 반대로 가치 있는 혹은 바람직한 어 떤 것으로부터 그것의 사실적 특성도 추론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 베버는 참된 가치 시스템의 존재를 부정하고 갈등하고 있는 가치 혹은 동등한 지위를 갖는 다 양한 가치만을 인정할 뿐 이러한 갈등이 인간의 이성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베버의 제자이기도 했던 루카치(Georg Lucacs)는 “엄격한 가치자유”
란 “진실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도달했던 비합리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비판했다(최치원, 2014, pp. 62-63 재인용). 최치원(2014)은 이에 대해 세계를 이해하는 여러 다른 지평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각각의 지평은 그 나름의 고유의 존엄성 혹은 내재적 고유성이 있다 는 베버의 생각을 전혀 고려하고 않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박성우(2014)는 베버의 사회